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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6년 마태복음9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19-34)2026-05-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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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마태복음 제 9 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19-34

요절/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지난 강의를 통해 신자의 경건 생활에 대해 배웠습니다. 구제, 기도, 금식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은밀히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자의 물질 생활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의롭게 살고자 힘쓸 때 과연 실제적인 필요인 ‘돈’과 ‘의식주’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염려가 들어옵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다루시며 의식주 문제의 성경적 해법을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하시는 나의 아버지 되심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믿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때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번 잠시 눈을 감아보겠습니다. 자, 타이머신을 타고 우리가 2000년전,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고 계신 그 갈릴리의 언덕, 그 현장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습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칩니다. 발아래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평온하고 기쁨이 넘칩니까? 아니면 지치고 고단해 보입니까?


자, 그 군중 속에 있는 한 젊은 청년을 주목해 봅시다. 그 청년 이름을 누구로 할까요? ‘사무엘’이라고 합시다. 사무엘은 오늘 밤이 걱정이 됩니다. 지난달 빌린 밀 두 가마니를 갚아야 하는데, 밭의 소출은 신통치 않습니다. 그의 집 흙벽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어 밤마다 도둑이 들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에게 ‘보물’이라고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낡은 외투 한 벌과 몇 푼 안 되는 동전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모여든 군중들을 향하여 저 멀리서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 백성이 누리는 팔복의 메시지는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어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서 구제와 기도와 금식과 같은 신앙생활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잔잔하였지만,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물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그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날까? 어떻게 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생기면 제국의 수도인 로마 여행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물질관에 관한 첫마디가 뜻밖이었습니다. 19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20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사무엘은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니, 쌓아 둘 보물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하죠. 당장 내일 먹을 빵도 없는데, 땅에 쌓지 말라고요? 하늘에 쌓으라고요? 그건 부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이죠. 돈이나 좀 많이 벌게 해 주시고서 그런 말씀을 하셔야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듯 말씀을 이어갑니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사무엘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 말이 맞았습니다. 그는 온종일 돈 생각뿐이었습니다. 회당에서 기도를 할 때도,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머릿속에는 ‘돈’이 떠다녔습니다. ‘이번 달에 생활비로 얼마 들어가는데~’ 하면서 늘 손익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땅바닥에 딱 붙어 있었습니다. 보물이 땅에 있으니 그의 마음도 땅에 있고,, 마음이 땅에 있으니 그의 영혼은 흙먼지 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눈’ 이야기를 하십니다. 22,23절을 읽겠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사무엘은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자신의 눈이 ‘탐욕’이라는 안개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질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곁에 있는 가족의 웃음도, 이웃에 사는 송다윗이 이번 달에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결정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24)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돈도 챙기면 그거 좋은 거 아닌가? 왜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사무엘도 갈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나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여러분, 재물의 힘을 아십니까? 우리가 과대평가 해서도 안되지만, 과소 평가 해서도 안됩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안정과 편리함을 주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를 가로채려는 맘몬신, ‘주인(Mammon)’의 얼굴을 하고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이 주인이 되는 순간, 창조주 하나님은 내가 섬기고 예배할 주인이 아니라 내 필요를 채워주는 ‘조수’로 전락하고 맙니다.


자, 이제 시계를 2천 년 후로 돌려 2026년 오늘, 우리가 사는 도시의 광장으로 와 봅시다. 갈릴리의 그 청년이 가졌던 물질에 대한 고민이 오늘날에는 해결이 되었습니까? 전혀 안되었습니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더 정교하고 거대해졌습니다. 지금은 모든 보물을 돈으로 대체하여 은행에 두기도 하고, 주식이나 가상화폐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부동산이 큰 보물입니다. 이제 옛날처럼 흙벽이 구멍 뚫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우리는 스마트폰 속 인터넷 뱅킹 숫자에 민감합니다. 이번 달은 대학 등록금 내느라고 잔고가 확 줄었습니다. 내가 산 주식이나 비트코인이 떨어지는 날이면 하루종일 기분이 꿀꿀합니다. 인터넷 부동산 시세를 보니 다른 집들은 다 몇억씩 올랐는데, 내가 산 집은 요지부동입니다. 올라도 찔금 오릅니다. 이정도면 괜찮은데, 집없는 사람은 거주 불안에 휩싸이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물가 상승’과 ‘자산 가치 하락’은 현대판 좀과 동록입니다. 거기에다 스미싱, 보이스 피싱과 로멘스 캠은 우리의 보물을 뺏어가는 날강도들입니다. 잠깐 사이에 전 인생에 걸쳐 모은 돈을 빼앗아 갑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보이스피싱 전화 한번 안 받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록 도둑들이 활개를 칩니다. 시대가 바뀌고, 방식만 바뀌었을 뿐 좀과 동록, 도둑들이 과거나 현재나 우리의 보물을 앗아갑니다.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서울에서 자가에 사는 대기업 김부장’ 이야기가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고 서울에서 자가를 가지고 사는 김부장’ 정도 하면 상당히 성공한 사람 축에 속하는데, 직장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었다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방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중에도 갈릴리의 사무엘처럼 마음이 갈라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주일에는 “주님만이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찬양하지만,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는 “돈이 없으면 끝장이다”라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염려’의 정체입니다. 염려는 헬라어로 ‘메리조’인데,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 한 조각,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 한 조각. 이 찢어진 마음 틈새로 불안이 엄습하고,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어, 난 불행해~’ 하는 자조섞인 탄식이 독소가 되어 나의 영혼을 부식시킵니다.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질문하십니다. “너의 진짜 아버지는 누구냐? 너의 통장의 잔고냐,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이냐?”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러한 흔들리는 마음을 아시고서 손을 들어 하늘과 들판을 가리키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저기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가 ‘내일 먹을 벌레가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며 우울증에 걸려 나뭇가지에 앉아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새들은 그저 노래하며 아무 걱정 없이 날아다닙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데, 걱정 없이 잘 삽니다. 하나님이 심어두신 생명의 질서 안에서 새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움직일 뿐입니다. 들판의 꽃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실을 뽑아 옷을 해 입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빛깔과 자태는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솔로몬의 비단옷보다 눈부십니다.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SNS나 카톡 프로필에 대통령 영부인이 입은 옷이 너무 아름답다고 사진을 올려놓은 사람을 보셨습니까?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꽃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어 올린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꾸지람이기 보다 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우리에 대한 예수님의 ‘안타까움’ 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데, 왜 고작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느냐? 너희는 새보다 귀하고 꽃보다 소중하다.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야!”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드셨습니다. 모든 피조세계와 모든 생명체를 만드신 조물주입니다. 건물주하고는 비교가 안됩니다. 그리고 창조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흡족해 하셨습니다. 이러한 창조 세계를 “이제부터 난 너희들에게 관여하지 않을터이니 알아서들 살아” 이렇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세계를 결코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생명을 영위하고, 그들이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붙들고 계십니다. 돌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주일에 일하지 않고 쉬고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지금도 창조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도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더군다나 우리 인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한’ 존재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재 아닙니까? 거기에다 자신의 소중한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양자 삼은 제자들이야말로 얼마나 더 귀하고 특별한 존재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목숨을 위해 먹을 것을, 몸을 위해 입을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절규에 가까운 이 외침이 우리 마음에 들려오나요? 제 딸 하은이가 대학생입니다. 아버지인 제가 등록금이 비싸다고 안 주겠습니까? 미국 국제수양회, 유럽 국제수양회 간다고 하면 그 비용을 대지 않겠습니까? 물론 형편이 안되면 잘 설명하고, 본인이 알바해서 보태고 아버지도 보태서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은 아무일도 안하고 입만 벌리고 있으라는 그런 뜻으로 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일하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본문의 의미는 “창조주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신다. 귀히 여기신다. 필요를 아신다. 끝까지 책임지신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물질로 인해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펴고, 힘써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물질에 대한 주님의 가르치심이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우리 인생의 혼란을 단번에 정리해 주는 ‘황금의 법칙’을 선포하십니다. 33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의 인생이 꼬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님, 일단 대출금 좀 갚고 나서 주의 나라를 구하겠습니다.”, “일단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한 후에, 아니 애들 다 키우고 난 후에 주의 의를 실천하겠습니다.” “생활 형편이 나아지면 십일조도 하고, 선교사님들도 후원하고, 구제도 하겠습니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논리는 정반대입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에 두고 먼저 구하면 너의 대출금 문제, 취업 문제, 결혼 문제, 집 문제, 자녀 문제를 내가 ‘보너스’로 처리해 줄게.” 이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설적 신비입니까? 


‘그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하는 것, 불의한 이익 앞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갈 때, 내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관리 구역이 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만 순종하면 됩니다. 왕이 특별히 관리하는 구역에서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물질에 관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쐐기를 박습니다.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참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내일’이라는 시간이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자기 일을 스스로 염려하게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니, 인간인 너는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불행을 오늘로 끌어당겨 미리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신자는 오직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뿐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 40년을 굶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오늘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 맡겨진 수고를 감당하면 됩니다. 내일 아침에는 또 다른 신선한 만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세계선교대회(WMC)가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UBF 창립자이신 이사무엘선교사님은 80년대, 90년대 한국에서 선교대회가 있을 때마다 오셔서 방향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번은 한국 목자님들이 사무엘선교사님이 무슨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잘 아는 오늘 본문 주제 말씀인 마6:33절을 말씀하시면서 이제껏 자신은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UBF사역을 감당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이루신 역사가 바로 UBF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UBF 자비량 선교역사는 마6:33 말씀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역사입니다. 특히 80년대, 90년대 선배 목자들과 선교사들은 마6:33말씀을 의지하여 ‘성서한국, 세계 선교 장막터를 넓혀라’ 외치며 선교역사를 섬겼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각 대학 캠퍼스에 UBF동아리가 생겨났고 233개국 15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번 WMC의 주제 강사이신 란워드목자님은 여덟번에 걸쳐 메시지를 수정하여 보내왔다고 합니다. 또한 네 분의 소감강사들이 은혜롭고 감동적인 소감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합창으로, 청년 학생들은 댄싱으로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각 대륙별 선교사님들과 현지 목자들이 많이 오는데, 마6:33 말씀이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우리가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누가 우리를 갈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선교 대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있어 마6:33 말씀은 중요한 시기 때마다 나를 붙들어주었던 약속의 말씀입니다. 저는 대학 졸업후 중국선교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붙들고 결혼은 하나님께 맡기고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데 전념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라목자와 중국선교 가정을 이루도록 해 주셨고 중국선교사로 나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종로2부 책임목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마6:33말씀이 소명을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팔여 년의 기간을 2부 목자님들의 동역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때가 되어 이제 스텝목자의 자리를 내려 놓습니다. 주님은 평신도이든, 선교사이든, 스텝목자이든, 어떤 위치에 있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주의 약속을 붙들 때 마음에 평강을 주시고, 여유를 주시고,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와 기쁨을 주시매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 주신 우리 구주 예수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상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늘 하나님 나라와 의를 생각하셨고, 그 일을 이루고자 항상 애쓰셨고, 마침내 자신의 소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복된 삶을 추구합시다. 


자, 이제 다시 갈릴리 언덕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가 봅시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끝나자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각 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갑니다. 사무엘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여전히 동전 몇 개뿐이고, 집으로 돌아가면 갚아야 할 빚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의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땅바닥의 흙먼지만 보고서 걸었지만, 이제는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봅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그래, 저 새를 먹이시는 분이 내 아버지라면나는 결코 망하지 않아. 오늘 나는 빚 걱정 대신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거룩하게, 어떻게 정직하게 살까? 또 세상 속에서 어떻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까?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고민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에도 이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2026년 무한 경쟁 시대, 양육강식의 냉혹한 현실, 탁월한 AI의 등장, 인간을 뛰어넘는 로봇의 등장이 우리를 심히도 위협합니다. 뉴스나 유튜브를 보면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식으로 얼마를 벌었네. 아파트를 샀는데 지금은 몇십억 올랐네’하는 자랑섞인 이야기를 들으면, ‘난 그동안 뭐했나?’ 자책하며 부정적 생각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노후 걱정을 하며, 물질을 더 땅에 쌓아야 안전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들려주신 약속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제 땅의 창고에서 하늘의 창고로 옮깁시다. 이제 우리는 물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배’하는 자가 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생을 던질 때, 하늘 아버지는 당신의 명예를 걸고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의 염려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를 마음껏 누리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