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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누가복음 38강 "아버지의 원대로 " (누가복음 22:39-71)2023-01-30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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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누가복음 38

 

아버지의 원대로

 

말씀/ 누가복음 22:39-71

요절/ 누가복음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우리 모두의 인생에는 화룡정점과 같은 시기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 중요한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시기가 비교적 빠르게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러한 화룡정점의 시기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감적으로지금이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약 그러한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어떻게 준비하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은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39-4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 감람 산으로 가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수많은 불치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삶의 의미를 몰라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빛이 되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것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 삶을 끝마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준 위대한 스승 정도로 기억될 것입니다.

 

인류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준 이들은 예수님 외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투스는흐르는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금 수 없다.’는 말을 남김으로 인류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강물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으므로 두 번째 발을 담글 때 그 강물은 더 이상 처음 발을 담궜을 때 그 강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헬라클레이투스의 이 가르침에 기초해 지어진 노래가 김창완의 청춘입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만약 예수님의 삶에서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수많은 불치병자를 고친 전설적인 의사, 무식한 시골 어부들을 인류의 스승으로 키워낸 위대한 교육자, 현실의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내세의 소망을 전해 준 천국 소망의 전도자 등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에게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복음을 복음되게 하고 기독교를 기독교되게 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동양에서 가장 잔혹한 처형방식으로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끓는 기름에 사람을 던져넣는 것입니다. 또 사지를 말에 묶어 말이 네 방향으로 달리게 함으로 가운데 있는 사람을 찢어 죽이는 방식도 참혹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차원이 다릅니다. 보통 건강한 청년의 경우 십자가에 매달려 3일 정도 고통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3일간 당하는 이 고통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고통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 죄가 없지만 인류의 죄를 대신한 속죄 제물이 되어 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 육체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그것이 인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라는 사실입니다. 잔을 마신다는 표현은 고대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왕이 내리는 무서운 벌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나님이 진노하여 내리는 벌을 받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각자 눈을 감고 고양이가 나에게 화를 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번에는 사자가 분노하여 포효하며 어금니를 드러내고 나에게 달려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비교하면 한낱 고양이에 불과합니다. 세상 권력자가 분노해도 무섭거늘 가장 강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죄로 인해 나에게 분노하신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지만 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잠시 후 체포되어 군병들이 내리치는 채찍을 맞을 때 그 채찍 끝에는 날카로운 뼈조각이나 쇠가 붙어 있습니다. 그 채찍이 예수님의 살과 근육과 힘줄을 찢을 때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입니다. 벌거벗겨진 채 손과 발목에 굵은 대못이 박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음으로 상상을 초월한 고통을 당할 때 그것은 하나님이 부으시는 무시무시한 진노의 잔입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오늘날 청년들 표현으로 완전히 멘탈이 붕괴되셨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 있을 힘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몸을 내던지고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파묻은 채 절규하듯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어떠합니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예수님은 자기의 생각과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날 청소년의 표현으로 바꾸면 예수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빠, 나 이 잔 안 마시면 안돼?” ! 이렇게 말하는 아들 앞에 그 어떤 아버지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그래 다른 길을 한 번 찾아보자. 이 잔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무슨 다른 길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자.” 이렇게 말하지 않을 아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인류의 죄문제를 한번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만약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셨습니다.

 

43-44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어느순간 혼미하던 정신이 맑아지고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천사가 우리의 기도를 돕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주는 힘을 받아 기도에 집중하실 때 예수님의 온 몸에서 땀이 솟아났습니다. 보통 땀은 피부 밑으로 바로 흘러내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땀방울은 마치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얼마나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아니 목숨과 영혼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기도하셨을까요?

 

그것은 십자가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입니다. 러시아는 전황이 불리해지거나 아니면 전략상 필요할 경우 수도 키이우에 미사일을 날립니다. 우크라이나 시민의 입장에서 러시아 군이 미사일을 쏘는 장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쉬이잉 바람소리와 함께 어느순간 미사일이 날아와 건물을 폭파시키고 사람을 살상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사탄입니다.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배반하려는 마음을 심은 것도 사탄입니다. 이 사탄과의 싸움은 혈과 육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사탄과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구약에서 견고한 성 여리고가 기도할 때 무너졌습니다. 여리고성보다 훨씬 작은 아이 성을 공격할 때는 어떠했습니까? 여리고성도 함락시켰는데 아이성 쯤이야 하면서 자신감 넘치게 덤볐습니다. 그런데 패전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간이라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몰래 재물을 숨겼습니다. 아간을 돌로 쳐 죽임으로 이 죄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승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2-1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기 전 산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그 마음에 사랑이 없는 것을 보셨습니다. 자기들의 이권과 유익만을 생각하는 탐욕이 가득한 것을 보셨습니다. 양들에게 인기가 많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악한 시기심이 가득한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 가운데 진정으로 양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는 새로운 영적 지도자들, 목자들을 세워달라고 밤이 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의 주된 내용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키워냈던 제자들이 각자 자기 살 길을 찾아 도망갈 때, 온갖 모욕과 침뱉음과 고난을 당할 때, 십자가 아래에서 사람들이지금 당장 내려오면 당신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겠다라고 말하며 조롱할 때, 그러한 사람들의 말을 통해 사탄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유혹하고 시험할 때 그 모든 유혹과 시험, 멸시천대와 조롱, 배신감을 다 참아내고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예수님은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45-46절을 보십시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4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유혹(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장 기도해야 할 때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47-53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유다는이 자가 바로 예수다군병들에게 알려주는 표식으로 스승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자다가 방금 일어난 베드로는 이 상황을 보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 칼은 한 종의 오른쪽 귀를 떨어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이것까지 참으라말씀하시고 떨어진 종의 귀를 제자리에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잡으러 온 종교 지도자들과 군인들에게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처럼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말씀하시고 순순히 체포되셨습니다. 기도로 준비한 예수님은 참으로 의연한 태도와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54-62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때는 유월절 요즘 달력으로 4월 초순입니다. 해발 800미터 높이의 예루살렘은 밤이 되면 초겨울처럼 추웠습니다. 체포되신 예수님의 뒤를 몰래 좇던 베드로는 추워서 모닥불 있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불빛에 비쳐진 베드로의 얼굴을 알아본 한 여종이 이 사람도 저기 체포된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고발했습니다. 화들짝 놀란 베드로는이 여자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가, 나는 저 자를 알지 못한다.”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또 그와 같이 말하자 다시 부인했습니다. 한 시간쯤 후 다시 한 사람이 그의 말투를 듣고 장담하며 이 사람이 갈릴리 사람인데 정말로 예수와 함께 있던 자라고 고발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부인했습니다. 그 순간 닭이 통곡하듯 꼬끼요 울부짖었습니다. 동시에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이 눈이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오늘 본문은 기도로 준비하여 승리하시는 예수님과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잔 베드로가 실패하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굳이 기도하지 않아도 내 뜻과 의지로 충분히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33절에서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감옥에도, 죽음의 자리에도 가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이런 연약함이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지난 2013년 한 학생이 서울대 경영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연세대 로스쿨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로스쿨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1학기 전체 1등을 했습니다. 2학기 기말고사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밤 그는 한 교수의 연구실에 잠입했습니다. 어깨너머로 비번을 알아낸 후 잠입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수의 컴퓨터를 열어 해킹 프로그램 설치를 시작하려 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경비원이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얼른 캐비닛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경비원은 캐비닛 문을 열고 그 안에 숨어있던 그를 발견했습니다. 경비원은 밤늦게 학생이 교수실에 가는 것을 수상하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할 정도이면 얼마든지 자기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터인데 그가 왜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벌였을까요? 본인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순간 마음에 유혹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번 학기 아무래도 1등을 놓칠 것 같은데 항상 1등만 하던 내가 1등을 놓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삶에서 명예로운 이 1등의 기록의 유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로스쿨 학생으로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그는 캐비닛에서 발각되는 순간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깊은 후회를 하였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미처 자기도 알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 연약함은 유혹의 순간 갑작스럽게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자기 안에 있는 이 연약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하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며 꼬끼요 우는 닭소리는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한다던 베드로 네가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통곡하며 그를 나무라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베드로는 흐흑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큰 실패였습니다. 그는 이 실패로 인해 다시 재기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인생실패요 학점으로 치면 인생 F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른 후 베드로의 이 실패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 연약함을 깊이 인정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63-7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체포한 이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렸습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너를 친 자가 누구인지 맞추어 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그들은 예수님을 심문하고 재판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올 해 2 26일부터 2층에서 종로7부는 자립적인 예배를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 종로7부는 next generation을 세우고 제자양성해야 하는 중차대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자립예배를 앞두고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을 통해 기도로 준비하도록 방향을 주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Next generation을 세우고 제자양성하는 것은 나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시고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제가, 또 우리 종로7부 모든 분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로 자립 예배와 차세대 제자양성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7부를 섬겨주시고 부족한 저의 메시지를 들어주신 종로 2부 목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