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로마서 제 16강 빛의 갑옷을 입자 말씀/ 로마서 13:1-14 요절/12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옷이 날개다’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 수 많은 치과의사들이 모인 자리에 연애인인 치과의사가 참석한 것을 보았는데요. 눈에 확 띄더라구요. 확실히 옷 입는 것이 일반인하고 달랐습니다. 옷만 잘 입어도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합니다. 빛이 나게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아름답고 영화로운 옷을 만들어 입히도록 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신약시대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로마서의 실천편인데요. 현재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를 살피고, 성경은 어떤 옷을 입으라고 하는지를 배우길 기도합니다.
첫째, 권세에 복종하라(1-7)
1절을 읽겠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본문은 과거 일제 식민 통치 시절에 일본 정부가 한국통치를 정당화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심지어 공산주의자들, 독재자들도 이 말씀을 들어 교회에 대한 자신들의 권위를 내세우는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정치 세력과 타협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로마서의 실제적 적용의 첫머리에 많고 많은 내용 중에서 왜 하필이면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바울이 말하는 걸까요? 우리는 바로 앞에 나오는 로마서 12장 끝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무슨 내용이죠?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우리가 어떻게 악을 이길 수 있습니까? 기본 원칙은 선으로, ‘원수를 사랑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당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원수, 핍박의 근원지가 어디입니까? 로마 정부입니다. 네로 황제를 비롯하여 당장 그리스도인들의 모임과 신앙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정부의 권세 잡은 자들을 생각할 때 성도들은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 나라를 빼앗아 통치하고 있는 그들은 타도의 대상이지 추호도 복종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로마 정부에 대해 어떤 자세로 대할 것인가? 당시 교회로서는 심각한 고민이었습니다. 그 해답으로 주어진 방향의 말씀이 바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입니다.
왜 교회가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자들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권세를 주신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권세자의 됨됨이를 보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권세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보고 믿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법을 보십시오.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정권까지도 세운다고 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 왕이었던 바로에게 했던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영역에서 일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역주권 사상(領域主權 思想)’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이것을 영접할 때 모든 권위에 복종할 수 있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의 권세를 거스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2). 3절을 읽겠습니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우리가 다스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라’ 이 바울의 권면은 로마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 성도들은 역사적으로 선을 실천하여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로마는 결코 선하지 않았습니다. 황제는 부도덕했고, 지배층은 민중을 수탈하여 자신들의 배만 불렸습니다. 무자비한 박해가 로마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찬식 때 예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하신 말씀을 낭독했기 때문에 이것을 ‘인육을 먹는다’고 오해했고, ‘유아를 살해 한다’, ‘혼음을 한다’ 등의 루머들이 떠돌아 그들을 이상한 집단으로 취급하였습니다, 박해를 피해 카타콤(로마에 있는 자연 동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결코 선을 행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을 행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박해에도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았습니다. 붙잡혀 뺨을 맞고, 고문을 당하여도 욕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법 아래에서 선을 행했습니다. 누구도 돌보지 않고 버려진 갓난 여자 아기들, 장애 아기들을 데려다가 키웠습니다. 그들의 경제 형편이 좋았겠습니까? 이렇게 로마 교회는 250여년 이상을 참고 인내하며 선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성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세상에 나타날 줄 믿습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 세상 지도자를 세우신 목적은 선인들을 보호하고 악인들을 벌하려는데 있습니다. 세상 지도자는 본인이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서 권선징악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권세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교회는 그들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양심을 따라’라는 말은 신앙의 본질과 비본질을 나눠서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국가가 힘으로 교회를 억압하고 신앙을 부인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양심을 따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유대 공회 지도자들이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나도 이것을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24:16)고 했습니다. 로마성도들은 로마황제가 신앙을 부인하도록 한 일에 대해서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항했습니다. 순교했습니다.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 일반적인 요구에는 적극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에 순종해야 합니까? 6절을 읽습니다.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세금을 잘 내는 것입니다. 이는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한다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일찍이 바리새인과 납세문제로 논쟁을 벌일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언약 신학’ 특강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언약이나 고대 종주권 언약이나, 이것을 유지하게끔 하는 첫 번째 원리가 무엇이었습니까? 조공, 즉 세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세를 납부한다는 것은 통치자와 피통치자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서, 언약 관계를 지키겠다는 공식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다스림을 받는 자는 반드시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또한 세금은 국가 유지와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당시 최악의 7년 기근이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7년의 풍년 기간 동안 애굽 백성들이 세금을 성실히 납부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을 모아 두았다가 흉년기간에 애굽도 구하고 인근 지역까지 구제할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창42:46-57) 또한 성도들은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표시이며, 다스림을 받겠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또한 세상 권세자들을 향하여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7)고 합니다. 우리 성도는 권세자들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대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딤전2:1,2). 권세자에 대한 판단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둘째, 빛의 갑옷을 입자 (8-14)
8절을 읽겠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일차적으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게 금전적인 빚을 지거나 어떤 해도 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국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에서는 본문을 이렇게 말합니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이 번역에서 보듯이 본문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갚아도 항상 남아 있는 빚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끊임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때 율법을 다 이룬 것이 됩니다.
율법이 무엇인가? 9절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십계명 중에서 윤리적 실천을 강조한 계명들입니다. 그밖에 다른 계명도 있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10절을 읽읍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부정의 부정은 강한 긍정입니다. 헤드릭슨은 본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큰 유익을 주는 것이다”
성도들이 사랑이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1절을 봅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구원의 완성의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 아가페적 사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한맺힌 기도처럼, 성도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시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셨고, 선을 행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여기에는 ‘Already~ but not yet’이란 중요한 신학적 사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혹시 잠자고 계신 분 있습니까? 영적인 잠에서 깰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신부로써 잠에서 깨어 준비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신랑을 맞이하는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 할 수 있었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한 다섯 처녀는 허둥지둥 당황만 하다가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습니다. 떨어진 기름을 어떻게든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2-14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꼬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인간은 밤에, 어둠 가운데 숨어서 죄를 짓습니다.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등은 ‘밤 문화’의 대표적인 행동들입니다. 당시 로마의 시민들은 부를 축적하며 최고 수준의 문화를 누리면서 술의 향연을 즐겼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로마는 퇴폐적인 성적 쾌락을 즐기는등 실로 타락의 극치를 달렸습니다. 그러한 문화 속에서 사단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니며 성도들을 유혹하여 신앙을 버리고 그들처럼 육신의 일을 도모하라고 부추킵니다. “영적인 순수성을 지키느라, 남 섬기느라 참 고생이 많네~.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너도 한번 해 봐. 딱 한번만 그 즐거움을 느껴봐” 속삭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둠의 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제까지 그랬을지라도, 오히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대낮의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와야 합니다. 밝은 빛 가운데 있으면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억제하며 단정한 옷과 마음가짐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인간에게는 선을 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때에만 인간이 빛의 자녀가 됩니다. 빛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옷은 또한 ‘빛의 갑옷’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전투중에 있습니다. 진리와 믿음과 말씀으로 완전 무장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엡6:11-17).
‘빛의 갑옷,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여기 본문 말씀을 통해 탕자에서 성자로 변화된 어거스틴의 예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354-430)은 어린 시절 마니교(Manichaeism)에 빠졌습니다. 마니교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라는 이원론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그는 이 이원론에 기초하여 방탕을 합리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갈등했습니다. 후에 그가 쓴 ‘고백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속으로 ‘지금 당장 내 안의 정욕을 끊어야지~ 지금이야말로 끊어버릴 때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죄악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옛 자리를 숨 가쁘게 지키려고 하는 내 자신을 본다.... 고통은 극에 달했다.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인생의 비참함이 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강한 폭풍이 영혼을 흔들더니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이웃집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나는 조심스럽게 바울 서신을 펴들고 제일 먼저 눈길이 닿는 부분을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더 읽지 않았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이 말씀이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쳐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어둠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마침내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육신과 싸웠고 이겼습니다. 그는 ‘탕자’에서 ‘성자’로 거듭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옷,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 삼고 그 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그분의 인격과 삶을 배우고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라고 하였고, 저는 ‘예수로 충만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욕을 위하여 육체의 욕심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현재 그리스도의 옷, 빛의 갑옷을 입고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빛의 갑옷이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리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 기도하는 것과 말씀 보는 횟수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영적인 즐거움이 없어집니다. 그 다음 단계로 마음이 딱딱해지고 불평이 많아지며, 남과 비교하며 판단하는 마음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로 육체의 즐거움을 찾게 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마시거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영적인 모임에 자꾸 빠지게 되고, 모임이 싫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혹시 나에게 이런 증상이 있지는 않는가? 점검해보길 바랍니다. 혹시 이런 증상이 나에게 있다면, 우리가 돌이켜 다시 말씀 보기에 힘씁시다. 기도합시다. 억지로라도 청년의 정욕을 버리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는 영적 모임에 참여합시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는 마치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합니다. 배는 물이 있어야 항해할 수 있지만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안됩니다. 침몰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교회도 세상에 있어야 하지만 세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입어야 할 옷은 ‘빛의 갑옷’입니다. 빛의 자녀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나타내는 축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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