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로마서 제 18 강
복음의 제사장
말씀/ 로마서 15:14-33 요절/ 로마서 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 문제를 어떻게 도왔는지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소명을 언급하며, 왜 자신이 개척하지도 않은 로마 교회를 이토록 심정을 갖고 섬기는지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더불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비전과 사명에 관하여 말씀하며 로마 교회 성도들을 동역자로 초청합니다. 우리가 일생 열정 넘치는 스피릿으로 하나님 역사를 섬긴 바울의 정체성을 새롭게 배우고, 우리 각자의 부르심과 비전을 되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복음의 제사장 직무(14-18)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의 로마 성도들을 향한 칭찬으로 시작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바울은 편지를 쓰는 이 시점에 아직 로마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로마 교회의 몇몇 사람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19강에서 자세히 다루어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에는 아직 바울이 얼굴도 모르는 성도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편지를 쓰는 바울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의 갈등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전에 서신서의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자신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복음의 기초를 그 어떤 서신서보다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이후 바울은 그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말씀에 기초하여 도운 후 다시 그들을 칭찬함으로 다독이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을 존중하면서도 뼈 있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바울의 사려 깊은 목자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의 어떤 점을 칭찬하고 있습니까? 그는 먼저 ‘선함이 가득함’을 칭찬했습니다. 여기서 '선함'은 삶 가운데 나타나는 정직, 친절, 배려 같은 ‘덕’을 의미합니다. 로마 교인들은 교회 밖에서도 인정받는 ‘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 교인들이 '모든 지식이 찬 것’을 칭찬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믿음뿐만 아니라 올바른 성경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건전한 교리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존 칼빈은 종교개혁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기 전에 먼저 전통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래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통 기독교 교리를 잘 알고 있어야, 이단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 교회 성도들이 서로 권하는 자임을 칭찬했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르침 받기보다 가르치기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소통의 달인이라 불리는 김창옥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애청하는 분들이 오히려 자신의 안티들을 양성한다고 하며 권면이 쉽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김창옥 교수가 부부간에 잘 소통을 방법에 관한 강연을 하면, 이를 들은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여보 이 강의 들어봐, 자기랑 똑같아, 와서 좀 배워, 자기에 꼭 필요한 강의야.” 이런다는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서 동영상 링크를 보내주면 남편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다른 남자가 하는 말을 안 듣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 놈은 말만 번지르게하지, 지가 말하는대로 사는 줄 알아?” 하며 김창옥 교수에 대한 반감만 더 키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창옥 교수는 지혜롭게 권면하는 법을 소개합니다. “여보, 시간 날 때 이것 좀 봐봐. 이미 자기가 다 아는 내용이야, 그런데 재미있어~” 우리가 좋은 지식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덕을 갖춰서 지혜롭게 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은 자신이 개척하지도 아직 방문한 적도 없는 로마 교회에 조심스럽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 성도들이 이미 복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아는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해 이 편지를 썼다고 말합니다. 마치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한번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이야 편지를 이메일로 간단히 보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긴 내용을 양피지에 오류 없이 쓰는 것만 해도 엄청난 수고였습니다. 학자들은 로마서 집필에만 거의 6개월에서 1년 가까운 시간과 수백만원 이상의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원본을 집필하고 보내기 전 사본을 필사하고 인편으로 전달하는 비용까지 더하면 그 수고는 더 컸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기꺼이 이 모든 수고를 감당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로마 교회를 위해 편지를 쓰는 데 ‘담대함’이 필요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가 교회의 갈등 문제에 개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직접 만나서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로만 돕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되고 감옥에 갇힌다는 성령의 계시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이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면 반드시 감옥에 가게 될 텐데,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보이니 로마는 어떻게 간단 말인가?” 하고 생각할 때, 어쩌면 로마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지 못하더라도 이 편지만은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복음의 진수를 담아 로마서를 썼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아는 로마서는 이렇게 바울의 입장에서는 로마에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탄생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집필 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이후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쉽게 로마에 갈 수 있었다면, ‘로마서’라는 위대한 성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또 바울은 이 편지를 ‘대략’ 썼다고 말하는데, 이는 한국어 어감으로는 ‘대충 썼다’고 느껴지기 쉽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몇 가지를(부분적으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곧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복음의 진수 중 핵심적인 몇 가지를 담대하게 로마 성도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쓴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로마서를 썼다고 말합니다. 그 은혜란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말한 은혜는 곧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삼으신 ‘부르심의 은혜’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받은 바 은혜는 점점 희미해지고, 현실 문제는 크게 보여 신앙생활이 어려워지기 쉽습니다. 학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거나 장학금을 받을 때,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때에 안정된 직장을 얻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직장인들도 업무 성과가 좋거나 승진했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불러 주신 부르심에 대해서는 별로 은혜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어 고생스러운 인생길을 걷게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르심의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며 그를 만나 주셨고, 그의 엄청난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를 자신의 이름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았고 수없이 매를 맞았으며,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된 것을 고통스러운 짐이나 인생의 올무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위해 핍박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라고 늘 고백했습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입니다. 과거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될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예수님을 위해 살도록 일꾼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할 때 가장 괴롭습니다. 계속 놀고먹는 삶은 처음에는 즐거울지 몰라도 결국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사명을 가지고 땀 흘려 수고할 때, 삶의 가치를 깨닫고 행복을 느낍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죄인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일꾼이 된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것 자체가 바울에게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일생 죄악된 세상 문화를 따라 살다가 죄의 삯으로 사망과 심판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의 역사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무 자격 없는 나를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불러 주신 이 은혜를 깊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들의 현재의 모습 그대로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복음의 일꾼으로 빚어 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소망 가운데 우리 각자에게 때를 따라 말씀을 주시고 훈련해 가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적인 사랑에 깊이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죄인인 인간을 대신해 흠 없는 제물을 드려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중요한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의 제사장’ 직분이 바로 이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전하는 이 사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자신이 받은 이 부르심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평생토록 오직 이 한 가지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제사장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대한 사명을 맡은 자입니다.
이 사명을 위해 그가 구체적으로 섬겨야 할 자들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대상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이요, 세상의 죄를 좇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 이들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로 드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해산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믿음의 선한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거룩한 사명을 위해 그의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사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 믿는 자들은 구원의 은혜만 누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복음의 제사장 직무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옳고 그름이 모호한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로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복음의 절대적 가치가 흔들리고, 세상의 편리함에 맞춰 신앙생활도 편하게 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이런 시대를 역행하여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 신앙을 잃고 세상과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럴 때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복음의 일꾼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복음의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에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일꾼 삼아 주신 이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17, 1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려고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과 표적과 기사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시기 위해, 자신을 통해 말씀과 사역에 표적과 기사의 능력,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 것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이 제사장 직무를 믿음으로 감당하고자 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방인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고자 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기사와 표적으로 함께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연약한 우리와 함께하시어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와 찬송으로 올려 드립니다.
2. 바울의 선교비전(19~33)
19절을 보십시오.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여러 지역과 유럽의 관문인 마게도냐를 거쳐 동 유럽 지역에 해당하는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을 편만하게 개척하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선교 정책이 무엇이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그의 선교 정책은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남의 터 위에 쉽게 집을 짓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바울은 이사야 52장 15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에게는 복음을 듣지 못하여 멸망의 길을 가는 영혼들을 어찌하든지 구원하고자 하는 불타는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이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그의 개척정신으로 인해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23절)라고 말할 만큼 사역이 충만했지만, 그는 그것으로 자기 사명을 다했다고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선교 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로마를 거쳐 땅끝인 서바나(스페인)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22~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롬 15:22-24) 이 구절을 통해 바울의 불타는 선교 비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엄청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그의 사역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위대한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성과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 19:21)고 말하며,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새로운 표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세계 선교 명령을 따라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려는 개척정신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로마로 가려던 계획이 여러 번 막혔지만, 그는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마로 나아갈 좋은 길이 열리도록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바울이라고 지치지 않고 힘들지 않았던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주님이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배가 큰 풍랑을 만나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주님이 바울 곁에 오셔서 위로하고 도우셨습니다. 바울이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를 곁에서 도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우심 덕분이었습니다.
바울은 나이가 들어서도 로마를 넘어 땅끝인 서바나(스페인)까지 가려는 비전을 품었습니다. 그는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롭게 개척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꼭 바울처럼 해외를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과 사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끝까지 충성한 것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개척정신입니다. 개척정신은 사람을 언제나 새롭고 활력 있게 만듭니다. 반대로 안주하려는 마음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고생스럽더라도 개척정신이 충만할 때 우리는 내면의 기쁨과 생명력을 맛보고,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개척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각자가 받은 부르심의 자리에서 그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힘 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편하고 쉬운 길을 고집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거나, 심고 뿌리는 수고 없이 열매만 얻으려는 마음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때마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개척정신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안주하려는 마음을 이겨 내고,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개척자의 삶에 기꺼이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25–27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예루살렘에 먼저 들러야 할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연보하였음이라 그들이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그들은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5–27).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이방 교회에서 모은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예루살렘 모교회와 이방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30–33절에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첫째, “나로 유대에 있는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건짐을 받게 하고”(31a)라는 요청, 곧 유대의 불신자들로부터 보호받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 “내가 예루살렘에 대하여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31b), 곧 그가 섬긴 구제 사역이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도록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렇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로마 성도들을 만나 함께 쉼(안식)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32절). 마지막으로 그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로마 성도들과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33절).
지난 화요일, 내년 청년대학생 수양회 소그룹 인도자들을 위한 준비 수양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70명이 넘는 청년들이 모였고, 저희 종로2부에서도 2명이 참석했습니다. 6개월 동안 복음의 일꾼이자 제사장으로 성장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드린 이 청년들을 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귀한 청년들을 성령 안에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시고, 이 시대의 복음 제사장으로 귀하게 사용해주시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다만 은혜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부르사 위대한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우리가 사도 바울과 같은 비전과 개척정신으로 세계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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