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 하박국 특강 1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 / 하박국 1:1-2:20 요절 /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요즈음 전 세계는 강대국의 패권주의 의해 약소국들이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는 형국입니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자국 우선주의, 그리고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만이 지배합니다. “미국에 투자해라” 해 놓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공장을 짓기 위해 파견된 한국 기술자들을 체포하여 구금하였고, 이제야 풀어주었습니다. 공의는 사라지고 온 세상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하박국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은 왜 택하신 나라인 유다 안에 악이 계속되도록 내버려두시는가?” “어떻게 잔인한 갈대아 사람(바벨론)으로 하여금 유다를 심판하게 하시는가?” 여기에 대해 하나님은 답변하십니다. “악인을 반드시 심판한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고 심판가운데 누가 살아남는가를 배우길 기도합니다.
하박국이 활동한 시기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 때인데, 주로 여호야김(B.C.609-598) 시대였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와 비슷합니다. ‘하박국’이란 단어는 ‘포옹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그가 백성들을 꼭 끌어 안고자 했던 선지자였음을 알려줍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품듯이 내가 너를 얼마나 끌어안고자 애썼던가~” 애타게 예루살렘을 포옹하고자 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박국은 세상 역사를 역사 철학적 관점보다는 개인 신앙 체험기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보통 구약의 선지자들은 어떻게 선지자가 되죠?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십니다. 예레미야의 경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 하십니다. 그러자 예레미야가 ‘나는 아이입니다. 말을 못합니다’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손으로 그의 입을 대시며 ‘내가 내 말을 너의 입에 두겠다’ 하시면서 주권적으로 그를 선지자로 세웁니다. 반면 하박국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부르신 것이 아니라 본인이 먼저 하나님께 찾아가서 “하나님, 왜 이토록 세상이 불공평합니까? 불의합니까? 악인들이 왜 이리 설치고, 그들이 잘 나갑니까? 왜 이토록 의인이 고통을 받습니까? 답 좀 해주세요.” 이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 하나님의 묵시가 그에게 임하여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하박국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과 신앙 회복운동에 내심 기대를 걸었습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유월절을 지키고자 힘쓰는 것을 보면서 ‘아, 이제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겠구나. 율법대로 사는 제사장 나라가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이 채 마무리도 되기 전에, 요시야왕은 주전609년에 애굽왕 바로느고와 므깃도에서 맞서 싸우다가 전사합니다. 여호아하스가 왕으로 옹립되었지만 3개월후 애굽왕 바로느고가 그를 옥에 가두고 엘리야김을 새 왕으로 세우고, 그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여호야김이 어떻게 통치합니까? 바로느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성들에게서 은금을 빼앗아 바쳤습니다. 백성들은 고통하고 있는데 왕은 고급 레바논 백향목을 수입하여 궁전을 크게 짓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궁전을 짓도록 일을 시켜놓고 전혀 임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선지자들을 죽이고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성전에 이방 우상들을 두었습니다. 어느 겨울날 하루는 왕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진 두루마리를 낭독하는데, 서너 쪽이 낭독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베어 화로불에 던지고, 또 낭독하면 칼로 베어 화로불에 던지기를 반복하여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참람한 짓입니까? 그런데도 이를 본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말리거나 옷을 찢는 자가 없었습니다.(렘36:21-25) 이처럼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약자들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렘 22:3). 하박국 선지자가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였겠습니까? 이러한 시대 문제를 들고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힘 있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다 해 먹는 것처럼 보입니다. 분명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 했는데, 독하게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다 독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거기에다 동,서로 갈라지고 좌우이념으로 갈라져서 극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믿음의 길을 가기보다 세속화, 물질화, 정치화되고 있습니다. UBF 공동체도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박국처럼 시대 문제를 안고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UBF의 태동도 4.19와 5.16 군사 쿠테타를 거치면서 사라베리선교사님은 암울한 시대 문제를 안고 이 나라 대학생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고민하고 기도한데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넉달이 되어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이렇게 열두 제자들에게 기도방향을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 종로 2부도 제자양성의 간절한 소망과 열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청년과 대학생들을 우리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시다. 제가 회개하고 기도로 역사를 섬기길 기도합니다.
하박국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묵시로 받은 경고’입니다(1). ‘경고’ 하나님은 엘로우 카드, 더 나아가 레드 카드를 내밀고 계십니다. 빨리 회개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구체적 내용이 무엇입니까? 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란다고 합니다. 믿기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악을 심판하기 위해 더 악한 갈대아 사람, 바벨론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사납습니다. 참을성이 없고 성급합니다. 폭력적입니다. 모든 민족이 두려워하는 대상입니다. 그들의 군마는 먹이를 잡으려는 표범보다 더 빠릅니다. 저녁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이리보다 더 사납습니다. 그들의 마병은 마치 공중에서 먹이를 움켜쥐기 위해 쏜살같이 돌진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오는 목적은 강포를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살육을 위해 온다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자는 모래처럼 긁어모아 노예 삼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 왕들을 트럼프보다 더 무시합니다. 비웃습니다.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점령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힘을 자신들의 신으로 삼고 의지합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힘의 논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11절 하반절 “이에 바람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 하나님은 왜 이토록 지나치게 범죄하도록 하여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행한대로 되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김과 그의 추종세력이 행한대로 보응하십니다. 폭력은 폭력으로, 탐욕은 탐욕으로, 멸시는 멸시로 되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돌이키지 않으면 엄중하게 심판하십니다. 여러분은 현재 하나님께 어떤 경고를 받고 계십니까? 또 우리 공동체가 어떤 경고를 받고 있습니까? 우리가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엄중한 심판이 있기 전에 돌이킵시다.
하나님의 이러한 응답에 하박국이 기뻤습니까? 기도 전보다 더 당혹스럽고 더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시는 기도응답이 내 생각과 영 딴 판으로 나올 때, 아니 전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나올 때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낙담이 되고 오히려 기도 전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 두 번째 항변을 합니다. 12-17절입니다. 하박국은 세 가지를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 거룩한 이시여~’ ‘여호와’는 언약과 관련하여 쓰는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거룩’은 구별된 택한 백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반석이시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시며 안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두신 이유는 단지 경계하기 위하여서가 아닙니까? 그 정도로만 해야지,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십니까?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십니까? 이거는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잖습니까?” 세 번째, 그들의 행태는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싫어하시는 이방적 종교 행위와 같다는 것입니다.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이런 방식으로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이 과연 옳으니이까? 반문합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기도가 논리적으로 맞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바꾸실 것을 기대하며 파수꾼처럼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2,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은 하박국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이 묵시를 기록하라’ ‘이 묵시’는 하박국서입니다. ‘판에 새겨서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는 당시 황제의 전령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전령은 황제가 전달하는 중요한 내용을 판에 새겨서 각 고을로 달려가서 전해야 합니다. 하박국도 하나님의 말씀을 판에 새겨 온 유다에 다니면서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전해야만 합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 종말이 속히 이릅니다. 결코 거짓되지 않습니다. 더딜지라도 반드시 응하므로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종말’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이 기도했던 내용이나 기대와 완전 다릅니다. 다음으로 이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세상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박국서의 핵심 말씀인 4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그의 마음’은 누굴 말합니까? 여호야김과 그의 추종 세력이며, 또한 바벨론 군대입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합니다. 거짓이 있습니다. 교만과 거짓, 이것은 사단 마귀의 대표적인 특징 아닙니까? 그들은 마귀의 손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그들의 끝이 무엇인가? 5-20절에 나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과 화가 있게 됩니다. 조금 있다 살펴 보겠습니다.
반면 의인은 어떻게 됩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살지 않는 악인들의 삶의 행태가 비교하며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믿음의 특징은 교만이 아닌 겸손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그 분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특징은 거짓이 아닌 정직입니다. 남 유다는 20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중 3명의 선왕은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아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더라”라고 평가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그들의 삶의 기준이 자기나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허물이 있었지만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말씀에 복종하고자, 말씀대로 살아볼려고 애썼습니다. 또한 자신에게서 발견된 죄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정직하다고 평가하십니다. 이것을 믿음이라 하시며, 이를 의로 여겨주십니다. 요시야 왕을 살펴봅시다. 그는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20세부터 본인이 직접 통치합니다. 26세때 성전을 보수하다가 성전에서 토라, 율법서를 발견합니다. 그는 낭독 되는 율법을 듣고서 조상들의 죄와 유다의 죄에 대해 옷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그리고 율법에 기록된 것을 지키고자 예배 방식을 정화하고 유월절등 절기를 회복시킵니다. 그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말씀대로 행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본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에스라를 비롯한 여러 종교개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의 뜻은 의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뜻도 있지만, 또한 ‘의인의 삶의 방식이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어떤 것에 도전하여 그 일을 이루게 되면 참 기쁩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어오면, 믿음으로 살던 방식에서 내 능력을 의지하는 방식으로 바꿔지기가 쉽습니다. “I can do it.” 그러면 안됩니다. 계속하여 우리는 믿음으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은 말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세상은 자기 능력과 스펙, 인맥, 돈을 의지하여 살아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 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5-20절은 하나님께서 악한 바벨론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는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화 있을진저’란 말이 반복되는데, 이것을 ‘호이(הוֹי, hoy)신탁’ 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저주의 노래’입니다. 상갓집에서 부르는 노래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가? 5가지입니다.
첫째, 노략을 하는 그들은 노략을 당할 것입니다(7,8). 폭력을 휘두르며 노략질하면서 재미있어 하고 신나하던 그들이 이제는 반대로 그들이 행한대로 당합니다.
둘째, 그들은 재앙을 피하기 위해 높은 성벽을 쌓고 안전하게 거한다고 생각하였겠지만 결코 안전하지 않으며 평강이 없을 것입니다(9-11). 그들의 부당한 행동은 그들의 영혼에게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육체보다 더 소중한 영혼의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가 소출로 가득 채운 창고를 보고서 ‘내 영혼아 이제 편히 먹고 마시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취해가시면 그는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셋째, 그들은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여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후에 다 불 타 없어지게 되며 다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12-14). 왜냐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K-Pop이 세계 속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영국이 세계선교를 주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선교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영국의 ‘비틀즈’그룹이 세계문화를 주도하던 시점부터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K-Pop, K문화가 세계에서 인정받으면서 반대로 선교 열정이 사그러질 수 있습니다. 내년 5월에 한국에서 세계선교대회가 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선교 열정과 열기가 다시 살아나길 기도합니다.
넷째,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며 하체를 드러내게 한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15-17). 그들은 누구입니까?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잘 해 주니까 자기의 속 마음을 다 털어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수치스럽게 하여서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똑같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우상은 어떤 것도 할 능력이 없습니다. 말도 할 수 없고 생기도 없습니다. 거짓 스승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인 거룩한 성전에 계셔서 온 우주를 다스리며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입을 다물라’고 하십니다. 욥기서에 보면 고난중에 불평하던 욥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인가를 계시하자 그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세 한탄하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은혜없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상처주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영접하며 그 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합니다. 세상은 불의합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악인들이 득세하며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이 고통을 당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때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악한 자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선이 승리하고 믿음으로 산 의인이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나의 힘을 의지하여 살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복종하며 믿음으로 살 것인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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