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가을 하박국 특강 2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말씀 / 하박국 3:1-19 요절 / 하박국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하박국에게 묵시로 주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에 낙심하였습니다. 그 사회는 강포와 패역이 넘쳤고 율법은 해이해져 정의가 시행되지 못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이런 사회를 보고 하나님은 도대체 왜 가만히 계시는가 항변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납고 잔인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이스라엘이 비록 죄악되었지만 그들 보다 훨씬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바벨론은 단지 하나님의 막대기, 곧 징계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도 지나치게 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국제 정세가 혼란하고 두려운 심판이 이루어지는 그 시대에 의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었을 때 미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온 땅은 다만 잠잠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박국 선지자는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전능하시고 엄위하신 하나님, 당신의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에 영접하였을 때,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넘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믿음, 구원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우길 기도합니다.
1.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1절을 보면 하박국의 기도는 '시기오놋'에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시기오놋'이란 "열정적인 시가"를 의미하는데,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감정을 고취하는 음악의 한 형태입니다. 그만큼 하박국 선지자가 강한 감정과 긴박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박국의 기도가 어떠합니까? 2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는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는 KJV 영어 성경에는 "I have heard thy speech"로 되어 있는데, 하박국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강대국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정말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앞의 1장 5b절을 보면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하박국은 하나님의 이러한 징계 계획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박국은 자기 백성들에게 닥칠 재앙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현재대로 사는 것이 그들에게 축복된 것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때 생명력이 넘치는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거룩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름답고 순수한 신앙으로 활기차고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그러한 신앙은 사라지고 이제는 세속적인 삶에 깊이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대한 사랑이 약해졌습니다. 율법은 해이해졌으며 음란과 불의, 강포와 패역만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쾌락과 물질에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이들은 징계를 받더라도 어찌하든지 새롭게 되어야만 했습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민족,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들로 회복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의 계획을 영접하고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은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부흥"이라는 잘 알려진 CCM 이 있습니다. "이 땅에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찬양입니다. 우리는 이 찬양을 부를 때 새벽이슬 같은 많은 주의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길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역사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꿈꿉니다. 물론 부흥에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이 말하는 부흥은 좀 더 내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얻어지는 내적인 새로워짐입니다. 부흥이란 'Renew'(새롭게 함), 'Revive' (다시 살림)를 말하지만 'Repeat'(반복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우리는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그 일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번역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 나오듯이,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것 같은 그 영광스런 일을 다시 한번 행해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죄의 포로가 된 우리, 영적으로 죽은 것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다시 한번 행하사 우리를 새롭게 하여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이 침략하지 않게 하소서!”,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박국은 백성들의 목자로서 그들에게 닥쳐올 참상이 두렵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습니다. 징계를 통해서라도 백성들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워주시길 원했습니다. 이 믿음과 소망으로 그는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 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에스겔 37장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십니다. 죽은 지 오래 되어 뼈들이 매우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자 뼈들이 맞추어지고 힘줄과 살이 붙으며 가죽으로 덮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뼈가 말랐고, 소망이 없어졌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으사 하나님의 큰 군대로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부흥입니다. 하박국은 이런 부흥이 이 수년 내에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수년 내에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그만큼 부흥에 대한 긴박성과 열망을 갖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정작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은 성적이나 건강, 물질 문제를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회복하게 해 주시도록 부르짖지 못합니다. 부흥을 향한 기도제목이 없을 때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기도하되 반복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우리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회복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박국의 기도를 드림으로 이 시대에 다시금 믿음과 도전정신이 살아나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한국과 세계 캠퍼스 제자양성을 힘있게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3-15) 하박국이 들은 소식은 심히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그가 다가오는 재앙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나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박국은 힘써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3,4절입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 광명이 햇빛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데만은 팔레스타인 남동쪽에 있는 사해 지역입니다. 바란 산은 에돔과 시내산 사이의 광야 지역입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신다는 것은, 과거에 시내 산에 강림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신다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는 말씀 한마디로 광선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권능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강력한 전염병을 통하여 사람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그러한 전염병도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하나님이 시내 산에 임재하시는 광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실 때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습니다. 모든 백성이 진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광경과 소리에 다 두려워 떨었습니다. 연기가 용광로에서 치솟아 뿜어 나오는 것 같았고 온 산 전체가 뒤흔들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심히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이를 경험한 백성들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출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한번 보면 좋겠다, 하나님의 음성을 한번 들으면 좋겠다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그 앞에서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이 임하실 때 이스라엘의 원수인 구산이나 미디안도 환난을 당하고 무너집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8-11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 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주의 나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추었나이다.” 여기에 나타난 표현들은 출애굽과 홍해 도하 사건, 그리고 가나안 정복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병거를 모는 용사와 같으십니다. 그는 홍해를 분히 여겨 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십니다. 10절의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는 것은 홍해가 갈라진 것을 말합니다. 바다 양쪽으로 큰 물벽이 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던 것으로 묘사합니다. "해와 달이 그 처소에서 멈춘“ 사건은 여호수아 장군이 기브온에서 전투할 때 태양과 달이 멈춘 것을 의미합니다. 하박국은 이상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계속해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악인을 심판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2-15절입니다.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둘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하박국은 갈대아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큰 시련과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큰 영광과 권능으로 그 백성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셨으며, 가나안의 강대한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묵상할 때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여전히 그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고 큰 용기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을 이기고 하나님을 심령으로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3.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16-19) 16절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은 다가올 환난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입니다. 이제 조만간 바벨론이 쳐들어옵니다.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갑니다. 이런 소식 앞에 그는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의 창자가 흔들렸고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 환난 날을 기다릴 때 그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썩이는 것"이란 NIV 영어성경에 "decay crept into my bones"인데 뼈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뼛속이 녹아 내리며"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유다 징계의 계획도 믿음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때가 점점 가까이 오자 그는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1970년대 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북한의 김일성이 그의 60살 환갑 잔치를 서울에서 한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60세 되던 해가 1972년이었는데, 그때가 다가 오자 사람들이 점점 두려워했던 것을 저도 기억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나라의 영적 타락을 징계하시기 위해 북한이 공격해 오게 하신다고 가정해 봅시다. 북한의 최우선 공격 목표는 서울이라고 합니다. 휴전선 부근에 위치한 수천 대의 장사정포가 일시에 포탄을 쏘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의 방공망이 아무리 촘촘해도 이렇게 지근 거리에서 쏘아대는 수천, 수만발의 포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요즘 관세 전쟁을 볼 때 미국도 믿을 만한 나라가 아니라고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로 위협하며 200만이나 되는 병력이 쳐들어와 무자비한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온몸이 떨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박국이 느낀 두려움과 고통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극도로 황폐하게 됩니다. 17절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이스라엘의 3대 나무는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풍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습니다. 그러면 밭에 먹을 것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후로 의지할 생존 수단은 가축입니다. 그러나 양도 없고 소도 없습니다. 바벨론이 침략하여 다 빼 앗아가 버립니다. 17절이 말하듯 이런 상황이 되었습니다.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소유하여서 그것으로 인하여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곤경 속에서는 즐거워할래야 즐거워할 수가 없고, 기뻐할래야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어떠합니까? 18절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는 두려움과 절망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은 만유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닥쳐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그의 언약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징계하니 너희는 마땅히 죄의 댓가를 받으라"고 그저 냉정하게 말씀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의 백성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고 마음 아파하는 분이십니다. 눈물을 머금고 엇나가는 아들을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십니다. 이 징계를 통해 그의 백성들이 새로워지고 다시 살아나는 부흥을 원하는 분이십니다.
하박국이 이 하나님을 영접하였을 때 그의 마음에 있던 모든 두려움과 절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래,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이 시련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백성이 되자" 하는 결단이 섰습니다. 그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지금도 성전에 계셔서, 온 세상 역사를 주관하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합니다. 결국에 가서 반드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그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무엇보다 하박국은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이는 참으로 위대한 신앙입니다. 그가 이러한 믿음을 가졌을 때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였습니다.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 그 분 자체 때문에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박국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풍성할 때 즐거워합니다. 밭의 소출이 많고 우리에 양과 외양간에 소가 많을 때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에도 우리 요회에 양들이 몰려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쎈타에 사람들이 차고 넘쳐서 과거처럼 일대일 공부를 할 자리가 없게 될 정도가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체를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묻는 내용인데 전체가 107문답입니다. 그중에 제1문답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각자의 인생 목적을 묻습니다. 그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보다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더 즐거워한다면, 이는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고 즐거워할 때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인생 목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 때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요즘 금값이 매우 비싸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괴를 사서 집에 보관하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가끔 금고를 열어 금괴를 꺼내어 금을 쓰다듬으며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귀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이 잠시 세상을 편하게 살도록 해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끝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의 최고봉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상하신 분인지 알았습니다. 얼마나 최고의 보물이 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버렸습니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빌3:8)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그런 믿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박국은 더 나아가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시련을 허락하시지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하박국은 이 믿음으로 주시는 훈련을 잘 감당하고자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하박국이 구원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는 어떻게 됩니까? 19a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의 힘이 되셨습니다. 사람에게 힘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힘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섬기는 것도 내게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으면 생각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힘을 뺏어가기만 합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밧데리가 방전되듯 힘이 다 빠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게서 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8:10도 말합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나님을 기뻐할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습니다. 이사야 40:31도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세상의 소식들은 우리에게 근심이 됩니다. 그래서 밤에 잠이 안 오고 염려와 걱정으로 피곤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눈을 들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 나는 다 이해할 수 없으나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하박국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힘을 얻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발을 험준한 산을 넘실넘실 뛰어다니는 사슴 발과 같게 하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높은 곳에 다니게 하셨습니다. 세상사에 찌드는 삶이 아니라, 높이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 충만함을 맛보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눈앞의 일들에 매몰되지 않고 멀리, 넒게, 높이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꾸준한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가를 더욱 알아야겠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최고의 보물되신 그리스도를 날마다 더욱 소유하며 그리스도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아무 일에도 요동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참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시련과 환난이, 우리를 부흥케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손길로 믿고 인내로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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