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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고린도전서 5강 몸은 성령의 전(고린도전서 5:1-6:20)2025-10-27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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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고린도전서 제 5 강


몸은 성령의 전


말씀 / 고린도전서 5:1-6:20

말씀 /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다들 괜찮으신가요? 건강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몸과 관련된 일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인사 말로도, 이뻐졌다. 살이 빠졌다. 멋있어졌다. 외모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외모에 대한 언급은 피하더라도, 건강은 좀 어떠냐? 아픈데 없냐? 밥은 먹었냐? 등 안부를 묻는 말도 몸과 관련된 말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현대철학자들은 "이성보다 몸이 먼저다!"라고 외치며, 영혼이나 이성이 아닌, 몸을 자아실현의 주체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로 격상시킨지 오래입니다. 고린도전서가 쓰이던 시기에, 사람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으로 영(靈)은 선하고 고귀하지만, 육(肉)은 악하고 무가치하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있었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았으니 육체는 뭘 해도 상관없다는 거짓 가르침이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몸은 그저 영혼의 감옥이나 일회용 그릇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몸을 경멸하는 것이 문제였다면, 오늘날은 몸을 우상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혼은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내 몸의 만족과 행복이 최고야!"라고 외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신앙생활을 '몸과 마음의 힐링(치유)'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거나, 몸의 욕망과 만족을 정당화하려는 세속적인 흐름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5장과 6장을 통해 몸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우리의 몸에 대한 가치관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몸이 음란과 탐욕의 도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5:1-13)


1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5:1)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 첫 번째 주제는 성적인 부도덕 곧 음행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어떤 교인이 '아버지의 아내(계모 또는 첩)'를 취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는 구약 율법에서도 엄격히 금지하고 저주했던 근친상간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음행은 심지어 도덕적 기준이 낮았던 이방 사회에서조차 용납되지 않는 수준의 패륜이라고 지적합니다. 복음으로 거룩해야 할 교회에서 세상보다 더 추악한 죄가 발생했다는 것은 교회의 타락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습니까? 2절을 자매매님들이 읽겠습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그들은 이 일을 묵인했습니다. 어쩌면 고린도 교인들은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울 사도님, 베드로 사도께서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하지 않았습니까? 죄를 덮어주는 것이 사랑이지 않습니까?” 심각한 죄를 짓는 사람을 많이 받아들이는 교회일 수록 사랑이 풍성한 교회일까요? 바울은 이러한 침묵이야말로 교만이라고 단호히 책망합니다. 바울이 요구한 '통한히 여기는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애통하듯, 공동체에 들어온 죄악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탄식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공동체 내에 이런 심각한 죄가 들어왔음에도 통한히 여기지 않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강한 어조로 책망합니다.


3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바울은 고린도성도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았지만, 성령 안에서 그들과 함께 있어 이미 그 죄에 대해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는 의견을 제시하거나 고린도성도의 동의를 구한게 아니라, 주의 종으로서 심판을 선언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이 문제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기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4, 5절을 형제, 자매 순서로 읽겠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제시한 해결책은 교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능력으로 모여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 즉 출교였습니다. 요한 칼빈은 교회에는 말씀, 성례, 권징 3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권징은 치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교회 내의 죄악과 부도덕을 바로잡아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고, 말씀과 성례의 순수함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출교는 교회의 권징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것으로서 더 이상 교회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교회 출석도 금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권징이 얼마나 중요한지, “권징이 없는 교회는 없는 교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서 예수님은 이와 관련하여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출교는 죄를 지적받았음에도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에게 내려집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권위에 근거해야 합니다. 바울이 출교를 명한 궁극적인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범죄한 영혼의 구원에 있습니다. '육신을 멸한다'는 것은 그가 교회 공동체에서 쫓겨나 비참함을 경험하도록 하여 스스로 죄악을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징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여,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도록 돕는 최후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6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울은 심각한 죄를 묵인하는 고린도 성오들의 태도를 강하게 책망하고, '누룩'이라는 비유를 들어 죄의 강력한 전염성을 가르쳐 줍니다. 만일 교회가 죄를 그대로 방치하면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온 교회가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죄를 교회 전체의 생명이 달린 문제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교회가 죄의 누룩을 제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선언합니다. 7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누룩 없는 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신분에 맞게, 예수를 믿기 전에 가졌던 묵은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즉 죄악 된 습성과 옛 사람의 습관을 날마다 자신을 살피며 과감히 버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요즘은 많이 간소화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온 가족이 모여 달콤한 참깨나 콩, 팥 등의 소가 들어가는 송편을 빚으면서 추석 명절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유월절은 누룩조차 없는 맛없는 떡을 준비했습니다. 추석은 가족화합을 도모하고 내년에도 풍년이 오기를 기원하는데 목표를 두지만, 유월절은 공동체 안에 들어와 있는 묵은 곰팡이를 제거하는데 최대의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교회들처럼 사순절이나 성령강림절 등의 절기를 지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수양회를 갖고, 부활절에 부활장을 암송하고, 성탄예배를 맞이하여 합창과 보배합을 합니다. 또 4년에 한번씩 국제수양회나 세계선교대회를 갖기도 합니다. 내년에 선교대회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매주 갖는 소감모임이나 또는 매일 줌으로 갖는 새벽기도와 양식모임을 통해 우리는 말씀 앞에서 회개와 결단을 함으로 우리 안의 묵은 누룩을 버리고, 거룩한 새 떡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우리 공동체가 거룩한 떡덩어리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귀한 수단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다음 주에 ‘그리스도를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라는 타이틀로 가을수양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수양회 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메세지, 말씀공부, 소감 등을 통해 우리 안에 묵은 누룩이 제거되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새롭게 빚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9~10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말씀을 오해하였음을 언급합니다. 바울이 ‘음행하는 자들과 섞이지 말라’고 했다고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은 물론이고 탐하는 자들, 속여 빼앗은 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 그 어느 누구와도 섞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바울이 그렇게 말했다면 세상에는 숱한 죄인들로 가득 차 있기에 성도들은 지구를 떠나서 살던지, 세상과 단절하고 성도들끼리만 모여서 살던지 해야할 것입니다(9,10).


11절을 자매님들이 읽겠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바울이 경고하며 교제를 단절하라고 한 대상은 '형제라 일컫는 자' 입니다. 곧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이와 같은 악한 죄를 고의적으로, 그리고 회개 없이 지속할 때 교제를 끊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고집하는 '형제'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은, 교회의 거룩함을 지키고 죄 지은 형제의 영혼 구원을 위한 최후의 사랑의 행동입니다. 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바울이 출교 대상으로 언급한 6가지 죄에 대하여 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음행(포르노스) 입니다. 음행은 결혼 한 배우자와의 관계가 아닌 모든 성적인 행위를 의미합니다. 

2. 탐욕(플레오넥테스) 입니다. 이는 물질욕에 사로잡혀 타인을 돈 버는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입니다. 또는 교회나 소그룹에서 신뢰 관계를 악용하여 다단계 판매(피라미드)나 투자 사기로 형제들에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는 경우도 해당합니다.

3. 우상 숭배(에이돌롤라트레스) 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독교 신앙과 명백히 충돌하는 뉴에이지, 점술, 사주, 이단 사상 등을 공공연히 따르는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

4. 모욕( 로고스)은 무고히 남을 비난하고 헐뜯는 언행으로 공동체에 분열과 상처를 주는 경우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단체 채팅방에서 특정 형제를 상습적으로 헐뜯고 욕설, 비난을 퍼부어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라 볼 수 있습니다. 또는 교회 지도자나 형제들을 향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중상모략을 일삼아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는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5. 술 취함 (메뒤소스)은 무절제하게 술에 중독되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경우입니다. 오늘날 사례로 치면, 알코올 중독 치료를 거부하고 술에 만취하여 주사를 부리거나, 타인에게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6. 속여 빼앗음(하르팍스)은 사기를 치거나 강압적으로 형제의 재물을 빼앗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보이스피싱이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 관계에서 형제의 지위나 약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강탈하거나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핵심은 12,1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지혜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연습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바울은 많은 나이에도 판단력이 흐리지 않고, 더 나아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의 영적인 시야를 업그레이드 해줍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치 그의 곁에 신자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반응을 예상하면서 걸음마를 떼듯 하나하나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영적인 통찰력과 권능을 우리 공동체 가운데에도 덧입혀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시선의 초점이 ‘경계선’에 맞춰져 있음을 봅니다. ‘교회 안’과 ‘바깥’을 나누는 경계선 입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을 전부다 깨끗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에 하실 일입니다. 그 전에는 경계선 안, 곧 교회 공동체를 깨끗하게 하려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눈은 교회 안에 맞춰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무엇보다 신자들 자신의 마음속 은밀하고 어두운 곳을 살펴 그 안에 감춰진 누룩을 발견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윤모세 목자님은 소감 모임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서로가 서로의 감시 받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각자가 바울과 같은 통찰력과 권능을 갖고, 먼저는 내 자신을 살피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함께 살펴 우리 모임을 거룩한 공동체로 지켜가기를 기도합니다.   



2. 몸은 성령의 전 (6:1-20)


6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바울은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과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의 신자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모든 것을 판단하여 묵은 누룩을 철저히 제거하여 순수와 진실의 누룩 없는 떡으로 명절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그런 연습과 훈련을 통해 세상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지혜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판단으로 세상을 판단해야 할 원대한 비전을 가진 공동체입니다(2). 신자 각 사람은 마지막 날에는 천사들마저 판단할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문제를 들고 세상 법정에 가서 재판을 하고 있으니... 바울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3).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이 교수님이 아니라 중학생 아이를 찾아가서 진로상담을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성경도 성령도 모르는 세상법정이 어찌 신자들의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겠습니까?


3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여기서 ‘하물며 세상일이랴’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영적인 일은 판단하지만, 일상의 문제들은 판단할 수 없다는 건가요?’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끼리 사업을 하다가 다툼이 생길 수 있고, 서로 물건을 사고 팔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같이 사업을 해서도 안 되고. 돈거래를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못을 박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관계가 심각하게 어려워져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에 그런 분들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가르침은 그런 분들의 주장과 다릅니다.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니 세상법정에 맡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7절은 손해를 본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그는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님을 철썩 같이 믿고 거래를 했다가 그 형제님에게 속아서 돈을 빼앗겼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는 ‘속은 것을 생각하니 너무 억울해서 살 수가 없네. 내가 재판을 해서라도 내 돈을 찾아야지’ 이런 심정으로 소송을 건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 사람에게 ‘차라리 손해를 보고 빼앗겨야지 그걸 법정에 들고 가서 소송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정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법정이 아닙니다. 당시 재판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문 곁이나 시장에서 열렸습니다. 많은 불신자들 앞에서 믿는 자들이 서로의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신자들 앞에서 무슨 망신입니까? 바울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전체적으로 신앙이 열등한 상태에 있다고 평가합니다. 세상의 지혜는 소송을 해서 손해를 되찾는 게 상식인데, 그리스도의 뜻을 좇아 생각하는 바울의 입장은 다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송들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가르침입니다.


8~10절을 형제, 자매, 형제 순으로 읽겠습니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형제를 속여서 빼앗은 자에게 빼앗은 것을 돌려주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말씀을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모르십니까? 형제님 그런 일 하시면 천국에 못갑니다. 지옥에 갑니다.” 이런 무서운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무슨 짓을 해도 천국에 가게 될거니 이 땅에서 마음대로 살아도 될거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자체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하는 의구심을 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구원의 은혜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엄히 경고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신 형제님이 다른 형제를 속인다구요? 빼앗고 손해를 끼친다고요? 그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십니다.” 나이지리아 야바텍 센터에 강도가 들이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저와 가족은 한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강도 중 한 명이 그들이 강도짓을 하고 있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하며 당황하고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그는 크리스찬 강도라서 양심상 교회는 털지 않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UBF 센터가 일반교회와 달리 십자가를 크게 세워놓거나 하지 않기에 교회인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며 동료들에게 이곳은 털지 말자고 하였는데, 평소 영향력이 없었는지 동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찬 강도라는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크리스탄 사기꾼, 크리스찬 보이스피싱범… 있을 수 없는 조합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이런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과거형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즉 여러분의 믿음의 선배들 중에도 과거에는 방탕하고, 탐욕스럽고, 성적으로 문란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현재 상태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아무리 불의했을지라도,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상속자가 되었습니다(롬 8:17).  씻음(세례와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입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었음을 뜻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죄가 없는 자로 인정받은 것 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이 놀라운 신분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9절과 11절의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우리는 불의에서 떠나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음행을 피하고, 모든 불법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여기서 '미혹을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항상 우리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 다 이해하실 거야'라고 속삭이며 합리화하게 만듭니다. 미혹의 가장 큰 요인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타협하려는 우리 자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스스로 불의에 속아 거룩함을 포기한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의의 종이 아님을 기억하고,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12절을 자매님들이 읽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이어서 바울은 다시 한번 성적인 문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자유' 문제를 다루며 성도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줍니다. 고린도교회는 돈이 많았고, 성경지식도 풍부했고, 각종 성령의 은사들이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요.” 새한글성경으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락 되어 있다.”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이로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복음을 오해해서, “우리는 이제 율법에 매이지 않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자유야!”라고 외치며 자신들의 음란한 생활까지 합리화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니 마음껏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그 자유를 사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제약이 있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는 내 맘대로 하는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 자유가 무엇에 얽매여서 중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중독이 되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절대로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우리가 얻은 자유는 나를 위해 방종할 자유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기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자유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절제와 책임감 안에서 피어납니다. 우리의 자유를 육체의 욕심을 채우는 데 남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을 왜 함부로 불의의 도구로 내어주면 안 됩니까? 바로 우리 몸의 존재 목적 때문입니다. 1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라는 사상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당시 고린도교회 사람들의 말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신자들이 일상의 문제들과 신앙의 문제를 연관시키지 않고 분리시켜 따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배는 음식을 먹고 마시기 위해 있을 뿐이고, 마지막 날에는 사라져 없어진다는 생각입니다. 몸과 영을, 몸과 주님을 따로 분리시키는 생각. 더 나아가 신앙과 일상을 따로 분리시키는 생각입니다. 더 나아가 고린도 성도들은 성적인 죄를 짓는 것을 합리화할 때 이렇게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고프면 밥 먹는 게 본능이듯이, 성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도 육체의 본능이야! 그러니 음란은 죄가 아니야!"라는 논리였습니다. 마치 음식과 배처럼, 몸과 성욕이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논리를 단숨에 반박하며 우리 몸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선언합니다.


첫째, 우리 몸은 오직 주님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13절 하반부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부터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우리의 몸은 음란을 위한 몸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일시적인 쾌락이나 본능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도구가 아닙니다. 성적인 쾌락을 위해 함부로 사용되도록 디자인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값으로 산 존재이며, 우리의 삶 전체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의 몸을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14절을 자매님들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 능력은 곧 우리의 몸도 다시 살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소중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진 몸을 함부로 음란이나 불의에 내어줄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는 말씀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우리의 몸을 세상의 욕심에 맞추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의 도구로 드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합당한 예배입니다. 우리의 몸은 소중합니다. 이 몸으로 오직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죄 씻음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이제 예수님과 연결된 거룩한 일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지체를 가지고 창녀와 음행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내어 창녀의 지체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입니다.


16, 17절은 창조의 원리를 상기시킵니다. 성적인 연합은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합니다. 그런데 만일 창녀와 합한다면 그는 창녀와 한 몸이 되어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 됩니다. 음행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되어 그의 성품을 닮아가야 할 몸을, 죄와 연합시키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죄입니다. 18절은 그래서 “음행을 피하라”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이 ‘피하라'는 ‘도망치라’는 뜻으로서, 유혹이 생길 때마다 반복적이고 철저하게 그 자리를 떠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음행을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죄(탐욕, 도적질)는 대부분 몸 밖에 영향을 주지만, 음행은 몸 자체를 더럽히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단절시키는 가장 수치스럽고 파괴적인 죄입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 몸의 가치를 최종적으로 확정해 줍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신자들의 몸은 성령이 들어와 머물고 있는 성령의 전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성령을 주실 때 우리 몸을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서 들어오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자 들어오실 때, 월세나 전세를 낸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을 구입하여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소유의 몸에 손님으로 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소유인 성전의 전이 된 몸에 우리가 은혜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몸으로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세상의 지혜가 아닌 그리스도의 지혜를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받으십니다. 우리의 몸이 분위기나 사람들의 눈치에 얽매이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에 매이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린도처럼 음란하고 부도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범죄한 형제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아 궁극적으로 그 영이 구원을 얻게 하는 사랑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신 우리의 몸, 성령이 거하시는 이 거룩한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적극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