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5년 가을 수양회 주제 2강 그 안에서 행하라 (골로새서 2:1-23)2025-11-03 02:19
작성자

2025년 가을 수양회 주제 2강


그 안에서 행하라


말씀 : 골로새서 2:1-23

요절 : 골로새서 2:6-7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쉿~! 비밀입니다. 이거 아무에게나 알려주는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건 바로… 보물이야기입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편지를 씁니다. 그의 마음에는 이런 간절함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너희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너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닫기를 원한다.”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신앙과 세상의 가치가 충돌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어볼수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을, 골로새서 2장을 통해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PART I : ‘하나님의 비밀’

1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바울은 직접 본 적 없는 성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몸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영은 여전히 성도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멀리 떨어진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한 믿음으로 연합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공동체입니다.


그럼, 바울이 이렇게 간절히 애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절~3 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바울은 강력히 말합니다.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기 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와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의 비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심지어 배설물처럼 여긴다.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알고 있던 지혜, 지식.. 유익하다는 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다른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알면 참된 생명을 얻고, 영생을 누리며, 세상을 이길 힘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그것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사는것과 같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아는 것은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우리는 보통 보화라 하면 금과 은, 다이아몬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사막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단순한 유리조각에 불과하고, 깊은 바닷속에서는 진주가 길가의 흰돌과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는 보석이지만, 누구에게는 그저 돌맹이일 뿐입니다.

예수님 역시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고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과 구원의 보화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미련하게 보지만,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이십니다.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지혜, 구원, 영생 모두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근데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예수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4절~5절입니다.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나는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질서와 믿음의 굳건함을 기쁘게 봄이라.”


율법주의, 헬라 철학, 신비주의가 섞여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참된 지혜와 확신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PART II : ‘그 안에서 행하라’

요절 6절~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영적 나침반과 같습니다.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여기서 ‘주로 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모든 삶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과거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죄와 사단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이 엄청난 은혜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유일한 주인(Lord)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신앙의 중심 선언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뜻과 감정, 나의 계획과 미래까지도 주님께 완전히 맡기며, “이제 내 삶의 주도권은 예수님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이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동의를 넘어선, 우리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관계적인 서약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구원은 바로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할 때’ 시작되고, 우리의 성숙한 신앙은 이 고백 위에 굳건히 세워집니다.


둘째, “그 안에서 행하되” 

‘행하라’ 단순히 가만히 머물러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순간,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면, 이제 그분의 뜻과 성품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든, 치열한 직장 속에서든, 또는 가정에서의 소소한 일상에서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고 말이죠. 이렇게 현재 우리의 자리에서 그분을 묻고 따라가는 삶, 그게 바로 '그 안에서 행하는' 삶의 진짜 의미입니다.

셋째,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는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께 뿌리를 깊이 내린다는 것은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존재의 중심이자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뿌리내릴 곳은 오직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목자님이 밥을 잘 사줘서? 친절해서? 아니면 메시지가 좋아서? 아니면 맡은 직분 때문에? 이런 이유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이러한 외적인 것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중심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분께만 뿌리 박아야 합니다. 다른 곳에 뿌리를 두면 우리의 신앙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공급받고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주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진정한 신앙의 생명력이 유지됩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이 단순히 외적인 키가 몇이고 어디 살고 이런 지식적인 정보를 넘어, 서로 대화를 해보고 생각과 마음을 나눌 때 비로소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듯 진정한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어 관계를 맺을 때, 뿌리를 깊이 내릴 때 그분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뿌리를 깊이 내려야지만 어떤 시련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뿌리를 깊이 박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필요하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잠시 기도 생활을 전화 통화에 비유해 볼까요? '하나님. 저 시험 보는데 무조건 잘 보게 해주세요. 뚝!’ , ‘하나님. 돈이 필요한데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 뚝!’ 

이런 일방적인 기도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과 서로 주고받는 쌍방향 대화입니다. 내 소원만 주구장창 랩하듯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쉬듯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도입니다. 길을 걸을 때, 일을 할 때, 사람들을 만날 때, 힘든 일이 생길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그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매 순간 그분과 연결되어 있으려는 마음입니다. 곧, 주님께 매 순간 묻고 구하고 함께 하는 삶 그것이 “그 안에 뿌리를 박는 삶” 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안에서 행하며, 그분께 깊이 뿌리내릴 때 우리의 믿음이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요동치 않는 견고한 반석 위에 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서 자연스럽게 샘솟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단순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만 느끼는 피상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환경이 어떻든, 고난과 역경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변함없이 신뢰하며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고, 굳건히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감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감사는 믿음이 깊어질수록 더욱 커지고, 그리스도께 뿌리가 깊이 박힐수록 더 풍성하게 넘쳐흐르게 됩니다.


PART III :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들라’

8~10절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하지 못하게 하라.”

당시 골로새 교회 안에는 영지주의 사상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비밀 지식(그노시스)’을 통해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상을 “헛된 철학”이라 단호히 지적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생각이 존재합니다.

“진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내 경험이 곧 진리다.” 

그 속에는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신다.”

즉, 다른 가치는 우리를 채울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만족과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10절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하고 완전합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전부이시며,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완전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되시며, 우리는 몸이 됩니다. 죄인이고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머리에 붙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될 일입니다. 

11절~15절입니다. 형제, 자매 순으로 읽겠습니다. (시작)

할례와 세례, 율법의 불완전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생명을 입었습니다.

구약의 할례는 몸의 일부를 찢음으로서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에 온몸을 찢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고 완성하셨습니다. 

세례의식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행위를 통해 옛사람이 죽고 하나님 안에서 새 삶을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믿는 우리가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그에 부활과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완전하신 뜻을 깨닫게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대로 살 힘도 없었고 늘 율법의 정죄아래에 짖눌려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하심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셨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어 믿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을 이룰수 있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할례, 세례,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16절 이제 바울은 구체적인 오류들을 지적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율법적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은 장래 일의 그림자일 뿐이며, 실체는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18절 또한 “천사 숭배”를 언급합니다.

천사 숭배자들은 인간은 부족하므로 천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적 전문가’나 ‘신비 체험’을 강조하는 잘못된 신앙 형태와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머리를 붙들지 않는게 문제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때에만, 몸인 우리는 공급을 받고 자라날 수 있습니다.


20절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즉,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인간의 금욕적 규칙은 겉으로 보기엔 경건해 보여도,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거룩은 행위나 금욕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내면의 변화입니다.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 안에 뿌리내릴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리스도를 주로 받기 전에는 죄로 고통하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외롭고 불신에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님은 바쁘셨고, 형은 멀리 떨어져 지냈습니다. 친구라 여겼던 사람들은 떠나갔고, 마음의 문은 점점 닫혀 갔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깊어지자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고,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하나님 대신 세상과 나 자신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하나님은 조용히 부르셨습니다. 어느 날, 형의 권유로 UBF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발걸음을 시작으로 제 마음을 말씀으로 저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게 하셨습니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저를 잘 아시고 저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여셨을 때, 복음의 진리가 제 마음에 파고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한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내 삶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그분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인생을 세밀하게 이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 제 삶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결혼의 은혜와 두 자녀의 축복을 주셨고, 교회에서 섬기는 자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던 제게 담대함을 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교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저는 진정한 보화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최고의 보물이십니다.

이제 저는 골로새서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주님께 내려놓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한 꾸준한 발걸음을 내딛으려 합니다. 제가 가족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누며, 유튜브 성경 콘텐츠 만들기 같은 것을 통해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구체적인 일들을 행할 것입니다. 

가랑비처럼 스며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국 제 영혼을 완전히 적셨고, 그 사랑은 제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혹시 지금 이 자리에서 여전히 공허함과 불확실함 속에 계신 분이 있다면, 저처럼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그분은 내 안에 거하시고 나를 이끄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늘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