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추수감사절 특강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라 말씀/ 신명기 8:1-20 요절/ 11절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인간은 감사보다는 망각에 익숙합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풍요로울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오늘 신명기 8장이 그 문제를 다룹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길 기도합니다.
신명기는 광야 40년 생활을 끝내고 요단강 동편 모압평지에서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서 모세가 이스라엘 광야 2세대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들 앞에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땅에는 큰 성읍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큼지막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시원한 물이 채워진 우물들이 이미 파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저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름다운 땅을 곧 차지하게 된다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랩니다. 모세가 백성들 앞에 섰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어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희에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2) 이 말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시나요? 좀 이상하지 않나요? “자, 이제 광야 고생길 끝~, 가나안 꽃길 시작~. 여러분! 지난 과거는 다 잊으세요. 앞으로의 축복만을 생각하세요”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왜 광야 길을 기억하라고 하는 걸까요? 좀 있다 생각해보고요.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있을 때 그들 머리 속에 어떤 장면들이 스쳐 갔을까요? 황량한 사막, 휘날리는 모래바람, 작렬하는 태양, 타는 목마름. 이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만나, 동풍을 타고 진 사면에 내려 앉은 메추라기를 잡아 맛있게 먹던 메추라기 고기 파티, 밤마다 타오르던 불기둥, 광야 길을 인도하던 구름기둥,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장면... 그들이 지나온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4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광야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매일 아침 그들이 만나를 거두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구나”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배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지난 한 해도 이러하지 않았습니까?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있었고, 마음이 지친 날들도 있었고, ‘아이들 학원비는 댈 수 있을까?’ 물질 걱정하기도 하며, 학생들은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취업 교육을 받으면서도 과연 취업이 될까? 불안한 마음에 잠 못 이룬 적이 있지 않습니까? 군대에 간 사람은 훈련받을 때 “이 훈련 끝까지 해 낼 수 있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잖습니까? 하지만 하루 하루를 돌아보면 그 모든 자리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서 우리와 함께 하신 곳입니다. 감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기억’입니다. 뭐라고요? 따라 해보겠습니다.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기억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걸음걸음마다 함께 하셨다는 그 기억에서 감사가 피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의 길을 주셨고 그것을 기억하라 하십니까? 2,3절을 읽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에 바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 명의 정탐꾼들이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며 부정적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약속을 믿지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광야로 물러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불신앙의 세대를 광야에서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 40년은 단순히 벌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신뢰하도록 하시는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때론 이처럼 믿음보다 현실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이때 하나님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십니다. 그 멈춤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광야는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믿음 훈련 학교’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광야에서 새로운 세대를 키우셨습니다. 애굽에서의 노예 근성을 벗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빚어지는 세대 말입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만나를 보며 하나님의 신실함을 배웠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따라가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여, 결국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세대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광야의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서 다음 세대와 새로운 마음을 준비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광야의 길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광야에서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돈도, 사람도, 기술도 그들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 반석의 물, 말씀만이 그들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려 하셨느니라.”(3)
이스라엘이 걸었던 광야 40년의 길을 똑같이 걸으셨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나아가 40일을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그 자리에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시험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넘어졌던 그 자리마다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고 순종으로 이기셨습니다.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 마귀가 유혹할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이자 완전한 순종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최종적으로 예수님은 그 마지막 생을 십자가 순종을 통해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순종은 곧 우리의 순종이 되었고, 그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의 근거가 됩니다.
지금 오륜교회에서 다니엘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저는 줌으로 보면서, 김수현 집사님의 ‘사명(死命)에서 사명(使命)으로’란 간증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녀의 경력은 단 한 줄인데요. ‘전신 화상 생존자’입니다. 그녀는 모태신앙이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좇아 살았습니다. 세상의 인정, 평가, 그리고 눈에 보이는 수치나 숫자를 따랐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서 그녀의 인생에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좀 잘되게 해주지”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27살에 결혼날짜를 잡고 신혼집을 마련하여 짐을 옮기는데 성경과 신앙서적은 부모님 집에 그냥 놔두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저를 찾아오세요” 좀 교만한 말을 했습니다. 상견례하고 난 다음날, 전신 55%, 심재성 3도 화상. 그녀의 인생은 말 그대로 불길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불은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삼켰습니다. 헬기로 이송되면서 그녀가 구조대원에게 무엇을 물어보았을까요? “저, 결혼해야 되는데, 이거 흉 남나요?” 그리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화상 전문병원에서 죽음의 문턱을 여러차례 넘었습니다. 전신 화상 환자는 피부가 다 타 녹아져 없어진 상태라 수분의 증발과 외부로부터 병균을 막아주기 위해 항생제와 수액들을 주렁주렁 달아야 했습니다. 의사들은 화상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익은 살이 하얗게 변할 때까지 아무 치료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 침대에 팔이 묶인채 밤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치료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가피 제거술’입니다. 불에 하얗게 익은 살을 긁어내고 기증된 피부로 덮는 수술입니다. 또 새 피부가 자라면 덮어놓은 피부와 서로 엉거붙지 않도록 썩기 전에 그것을 긁어서 다시 걷어냈습니다.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진행되는데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 진통제나 마취제 없이 그냥 진행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맨 정신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다시 그날이 왔습니다. 이른 새벽, 간호사 선생님들께 턱을 덜덜 떨면서 부탁드렸습니다. “제발 저를 저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가족들 몰래 비닐에 담아 조용히 버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새벽마다 고통에 잠들 수 없어 흐느끼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아니면 차라리 그냥 빨리 죽여주세요.”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첫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교만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니요. 위로가 아니라 이런 꾸짖음을 하시다니~” 하나님이 너무 야박해서 울분이 터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성경을 가까이 하면서 교만하지 말라는 이 하나님의 음성이 깊이 깨달아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따라 살지 않고 사망으로 굴러 떨어지던 그녀를 가까스로 붙잡아 심폐소생술을 하셨음을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펑펑 울면서 자신이 주인되고자 했음을 회개하고 생각나는 모든 죄들을 회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의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4:7) 10년동안 끝없는 피부 이식, 재건 수술, 그리고 가피재거술, 다시 재활 그리고 찾아온 것은 대인 기피증, 계속되는 고난속에서 그녀는 더 뜨겁게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만성통증 장애를 가지며 삽니다. 바람만 불어도 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온 몸에 유리가 박힌 것 같은 통증이 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아이를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신축성 없는 피부가 문제였습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커지면서 배가 불러와야 하는데, 신축성 없는 피부로 인해 배는 안 불러오고 장기를 누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서 드디어 아이를 낳았습니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생명을 돌보는 이 사명으로 인해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광야 길에서 만난 하나님은 냉정한 재판장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자녀가 품 안에 안기길 바라는 애통해하시는 아버지였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셨 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도 자신이 현재 광야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는 광야의 길은 결코 패배의 시간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 살도록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입니다. 예수님의 승리 안에서 안전한 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예수님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도우십니다(히2:18). 이를 믿길 바랍니다.
모세는 이제 다른 어조로 말합니다. 그의 목소리에 경고의 울림이 있습니다. 12절부터 14절 ‘염려하노라’까지 읽겠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가나안은 풍요로운 땅입니다. 만나를 주워 먹던 손에 이제는 포도송이가 쥐어질 것입니다. 물 없던 광야와 달리 우물마다 물이 차 있고, 돌 대신 밀과 보리가 그들의 발 밑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가장 무서운 시험이 찾아옵니다. ‘풍요의 시험’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17)
사랑하는 여러분, 이 경고가 3500년 전 이스라엘에게만 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 같이 들려오는 말씀입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하고 성실히 살아서 얻은 수입과 성취들. 우리는 종종 그것들을 “내가 했어”라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여러분의 건강, 일터, 대학교, 기회, 숨 쉬는 공기, 사역의 열매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감사는 ‘내가 한 것’을 자랑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남한은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보다 더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면 북한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일성이 죽고 난 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고 국가에서 주던 배급이 끊기자 수 백만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같은 민족안에서 이렇게 다릅니다. 어떤 탈북민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대한민국을 개 같은 세상, 개 같은 나라, 썩고 병든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와서 보니, 개 같은 세상이란 말이 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가 유모차를 타고 다니고, 주말이 되면 개가 가족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여행 다니고, 개 병원, 개 백화점, 개 호텔까지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개들이 북한 주민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주님을 믿고 기도해서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고 번영하고 잘 살게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이 탈북민이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현재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세계선교를 감당하는 기독교 강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축복이 아닙니까? UBF창시자 이사무엘선교사님이 UBF가 많이 성장 발전하였을 때 주일 광고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UBF 초창기에 우리 부부는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풍요로워졌습니다. UBF도 많이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헤엄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은 ‘지금 무슨 말씀하시지?’ 의아해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사무엘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교만해지지 않고자 얼마나 투쟁했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이루었다 생각될 때, 교만이 우릴 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능력도 주셨고, 기회도 주셨고, 감당할 체력도 주셨고, 사람도 보내주셨고, 운도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주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무엇으로 나타나야 합니까? 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6절을 읽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1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20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모세는 반복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어떤 축복이 옵니까? 1절을 보면 첫째, 살게 됩니다. 둘째, 번성하게 됩니다. 셋째, 기업을 차지하게 됩니다. 삼중 축복을 받습니다. 반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20절을 보니, 멸망하게 됩니다. ‘감사’는 단지 말로만 ‘감사합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감사는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그분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는 순간 신앙은 생기를 잃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결과를 동일하게 ‘멸망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생명주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결코 멸망되길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기억하라’ 기억은 신앙의 뿌리이며, 감사는 그 뿌리에서 자라는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가 아닙니까? 오늘의 숨, 오늘의 삶, 오늘의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교회 식구들, 이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올 한 해 우리가 아무리 힘들었어도,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붙든다면, 아니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안다면, 감사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추수 감사절에 우리 모두 이런 고백을 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 광야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풍요속에서도 여전히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저는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어떤 감사제목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가슴 깊이 새겨 놓으신 기억은 이것입니다. 올해 뿐 아니라 지난 8년간 종로2부 책임목자 직분을 감당하면서 그 길이 때론 광야 길이기도 하고, 때론 가나안에 있기도 했지만, 그 모든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감사제목입니다. 그리고 우리 2부 동역자들이 함께 해 주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기억은 그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그 사람의 인생이다.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라고까지 말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말년에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모든 것을 잊어 버리셨습니다. 오랜기간 함께 동역했던 장로님이 “목사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경직 목사님은 “당신 누구요?” 되물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경직 목사님이 잊지 않고 기억했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나는 죄인입니다.”, 두 번째는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말을 반복하여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다 잊어먹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않고자 하는 것이 있을까요? 범위를 좁혀서 올 한해를 돌아보면서 꼭 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소감으로 써서 서로 나누고 하나님께 감사 찬송드리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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