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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5년 성탄 1강 그의 이름, 임마누엘(이사야 7:1-25)202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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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성탄 1강


그의 이름, 임마누엘


말씀: 이사야 7:1-25

요절: 14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저희 가운데 성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저희 가운데 맑고 아름다운 성탄 캐럴송을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성탄 캐럴은 밝고 경쾌하게 교회에서 울려 퍼지고 모든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의 시점인 B.C. 734년에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전쟁의 서곡이 음습하게 퍼지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고 그 가운데 한 줄기 빛으로 들려오는 성탄 소식이었습니다.

이사야 7장 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때는 유다 22대 왕 아하스가 제위에 오른 지 2년 되었을 때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왔습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앗수르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며 주변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반앗수르 동맹을 결성하고 앗수르에 대항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만은 그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유다를 쳐서 무너뜨리고 아하스를 끌어내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유다를 그들의 통치 아래 두고자 하였습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은 마약을 자국에 밀반입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합니다. “너 대통령직 내려놓고 빨리 도망가. 그렇지 아니하면 죽일 거야.” 이 말에 마두로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퇴진할 수도 없고 끝까지 항전하겠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함대와 폭격기 등 첨단 무기로 베네수엘라를 포위하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다 왕 아하스의 입장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과 똑같은 위치였습니다. 역대하 28장을 보면 유다 남쪽에서는 아람 군대가 공격하여 엘랏 항구를 빼앗고 심히 많은 유다 백성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북쪽에서는 북이스라엘이 치고 내려와 하루 만에 십이만 명의 유다 군사를 죽이고 20만 명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이 두 나라뿐만 아니라 블레셋, 에돔도 유다를 침공하여 백성들을 잡아갔습니다. 유다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적들에게 유린당하고 초토화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여러 나라들의 먹잇감이 되어 찢겨 갔습니다. 이제 예루살렘만 남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들려오는 소식은 어떻습니까? 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각개전투로 유다를 치던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이제는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총공격하여 왔습니다. 그야말로 유다는 바람 앞에 촛불같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아하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마치 숲속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렸습니다. 오금이 저리고 이가 덜덜 떨렸습니다. 마음은 녹아내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혼비백산(魂飛魄散, 혼과 몸이 이리저리 흩어진다는 뜻으로 정신이 없어서 넋을 잃음을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습니까? 아하스 왕이 국제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패권국이 교체되는 국제 정세 가운데 약소국이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까? 아닙니다. 유다가 국제정치를 잘못한 이유도 아니요, 약소국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8장 1~7절을 보면 아하스 왕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였다 합니다. 그는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는 죄악까지 행하였습니다. 그는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숭배를 하여 유다 온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도록 하였습니다. 이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들어 징계하신 것입니다. 왕과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백성들이 죽임 당하고 잡혀가고 처참히 짓밟히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유다 왕 중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찾아가십니다. 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근처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하나님께서 그의 종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그를 심방하십니다. 스알야숩의 뜻은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은 하시지만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남은 자를 통해 다시 회복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때 아하스 왕은 적들의 침공에 대비하여 물을 확보하고자 기혼 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거기에서 아하스를 만나 메시지를 전하라 하였습니다. 그가 전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삼가며 조용하라 하십니다. 사람이 위기 가운데 빠지면 패닉 상태에 이르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평소에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어려우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소리를 내뱉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마음을 다잡고 조용하라 하십니다. 둘째, 두려워 말고 낙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적들이 나라 전체를 짓밟고 이제 예루살렘성을 향하여 진격하고 있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겠습니까? 낙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타다 만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하십니다. 부지깽이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지팡이 같은 막대기입니다. 불에 타다가 꺼져 연기만 나는 막대기는 무엇을 불태울 화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단번에 삼킬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불 꺼진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그들이 유다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만유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면 어떤 원수도 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하스는 그들은 불 꺼진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람과 에브라임 왕들이 말합니다. 이제 예루살렘만 남았다. 우리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아하스를 쳐서 쓰러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자.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7,8절을 형제 자매 순으로 읽겠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그들이 곧 예루살렘을 함락할 것 같이 위세등등하지만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아하스 너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더 나아가서 아람과 이스라엘이 65년 안에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2년 후 두 왕이 죽임을 당하고 아람은 B.C. 732년에 망하고 그 후 10년 뒤 북이스라엘도 앗수르에 의해 망하였는데, 65년 후인 B.C. 669년 앗수르 에살핫돈 왕이 이주 정책을 펴므로 북이스라엘은 단일 민족성을 잃어버리고 다시는 나라를 일으키지 못하였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패망하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에게 경고하십니다. 9절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아하스와 그의 백성이 이 예언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그 나라가 견고할 것이지만,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고 세상의 다른 나라를 의지할 때 그들도 굳게 서지 못하고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이 말씀 앞에서 앗수르를 의지하는 정책을 회개하고 하나님 한 분을 굳게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계획을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권면 앞에서도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아하스에게 말합니다. 10,1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으리라”는 이 계시를 못 믿겠거든 어떤 징표라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확실한 징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어찌하든지 믿음을 심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하스는 무어라 합니까?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신명기 6장 16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유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한 자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오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려는 이유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계획대로 행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권유를 완악하게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각으로 꽉 차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기 방안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교만하였고 세상의 힘을 더 의지하는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하스를 향해 참으로 완고하고 악하구나 판단하지만, 실상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의 물질이나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동역자를 의지하고 자신의 계획과 자신의 힘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당할수록 자기 방법을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고집부리는 완고한 아하스를 이사야를 통하여 책망하십니다. 13절 말씀을 강영국 목자님이 읽어주시겠습니다.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게 하려느냐.” 그의 불신과 우상숭배 영향으로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그 백성이 짓밟히고 갈기갈기 찢겨 죽어갈 때 하나님의 마음도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애끓는 그 마음은 그들이 잘못된 길에서 속히 돌이키고 속히 회복되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하스는 대놓고 하나님의 호의와 깊은 사랑을 배격하였습니다.


아하스가 어떤 징조도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완고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네가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니 내가 친히 징조를 보여줄 수밖에 없구나!” 이는 반발하고 늘 불만에 차 있는 십대 자녀를 돌보는 엄마와 같습니다. 완악하고 불신앙으로 가득한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이 왜 이토록 인내하며 친절을 베푸시는가요? 이는 그가 “다윗의 집”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괴로움을 감수하시며 다윗과 맺은 언약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를 지켜내십니다. 아하스 왕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주신 징조, 곧 예언의 신실성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증거는 바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에 한 ‘처녀’로부터 한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임마누엘’인데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그 아이는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될 때까지, 곧 23년간 곤궁에 처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아하스가 미워하는 두 왕(아람과 이스라엘)의 나라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징조는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 직후에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구원자에 대한 약속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 3:15). 이사야 선지자는 53장 1절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고 탄식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대신 죽으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니! 이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그것도 처녀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난다는 사실 역시 누구도 믿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임마누엘의 은혜는 죄로 죽어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임한 가장 좋은 기쁜 소식입니다.

“쉿! 비밀입니다.” 여러분은 비밀스러운 좋은 소식을 누구에게 알려줍니까? 정말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마누엘의 징표를 아하스 왕에게 알려줍니다. 아하스는 유다 왕 중 가장 악하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전혀 없는 자입니다. 이런 아하스에게 임마누엘의 징조를 주셨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건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아하스와 그 백성들은 이제 그대로 버려두어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함이 옳아 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임마누엘의 징조를 아하스에게 주신다는 말입니까?

임마누엘 징조를 아하스 왕에게… 여기에는 우리 죄악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만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곡한 권유까지 거부한 자들에게조차도 함께하고자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포기해야 마땅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는 아하스처럼 죄악되어서 영원히 심판받을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사랑입니다. 임마누엘의 크신 사랑을 감사드리고 찬양드립니다.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임마누엘의 예언을 당대의 징표로 삼으실 뿐만 아니라, 약 700여 년 후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미래적인 예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인생들에게 완전하고도 영원한 구원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는 이 예언의 말씀은 마침내 독생자 예수님이 처녀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냄새나는 우리 죄인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주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인간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되 아기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오셨고, 죄인들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은 아하스같이 교만하고 우상 숭배하는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죄인들과 함께하시기 위해 낮고 천한 이 땅에까지 찾아오시고 교만한 자, 정욕에 찌든 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자, 자리에 드러누워 꼼짝하기 싫어하는 부담스러운 중풍병자, 각종 죄인들과 함께하시며 병든 내면을 진리의 말씀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확실히 받은 사람 중 하나가 세리 레위입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사람이 미워하는 세리가 되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동족도, 이상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두신 고귀한 꿈도 외면하였습니다. 그는 돈이 많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수록 사람들과는 멀어졌고 그의 내면은 불안과 허무, 절망, 고독,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찾아오시사 3년 동안 그와 함께하시며 그의 병든 내면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악명 높은 세리 레위를 성 마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도 임마누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한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고 3년 기간에 5개 회사를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잘해보려고 했다가 몇 개월 만에 그만두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절망이 되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이 정도도 안 된 자였습니다. “내 직장 문제가 왜 이리 안 풀린단 말인가?” 하며 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목자님은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을 주시면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날마다 이 말씀을 수백 번 암송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6개월쯤 되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힘들었지만 계속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1년쯤 되었을 때 제 마음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크고 은밀한 것을 주신다 하셨는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무엇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는 급여도 제대로 안 나왔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후 직장 생활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던 자를 사업을 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30년의 세월을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직장의 어려움과 사업의 수많은 사건들을 통하여 늘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진 죄인과 함께하시사 하나님의 역사에 남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의 귀하신 종들을 배우며 동역하여 주의 역사를 섬기게 하십니다. 주님의 임마누엘의 크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죄인은 일평생 임마누엘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임마누엘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하늘의 하나님께서 오늘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예수님을 심령으로 모셔 드리고 예수님의 임마누엘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18절부터 25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로 무시한 유다가 받게 될 심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유다가 일시적으로 위험은 피했지만, 더 큰 위협이 앗수르로부터 오게 됩니다. 유다가 의지한 앗수르는 유다를 멸망시키는 침략군이 되어 벌떼같이 달려들어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앗수르뿐 아니라 파리 떼 같은 애굽도 달려듭니다. 파리와 벌로 비유된 애굽과 앗수르의 군대는 유다 땅 전역을 뒤덮게 됩니다. 아하스 왕이 많은 돈을 주고 데려온 삭도 ‘곧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은 유다 백성의 전신을 밀어 수치스러운 상태가 되게 합니다. 유다 땅은 황무지가 되어 남아 있는 소유물은 겨우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거의 전멸하여, 그 짐승에게서 나온 젖이 남아돌 정도가 됩니다. 그 땅이 심히 황무하여 과거에 포도나무가 뒤덮여 있었던 언덕들이 모두 가시덤불로 뒤덮이게 됩니다. 그곳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서식하게 됨으로 사람들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화살과 활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쟁기로 갈던 산에도 사람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유목을 통하여 겨우 꾸려 나가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와 같이 악한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큰 환난의 풍파가 닥칠 때, 우리는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약속을 지키시고 임마누엘,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이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만이 우리의 근본적인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성탄에 우리 모든 심령 가운데 임마누엘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죄와 허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찬송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한 불신과 자기 계획과 세상 방법을 늘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모든 심령과 우리 삶 가운데 임마누엘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죄인은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