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4 주일 빌립보서 특강 푯대를 향하여 말씀/빌립보서 3:1-21 요절/빌립보서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종로 2부 형제 자매님들과 주님의 말씀을 나누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유럽 첫 개척 열매인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신 귀한 편지 통하여 그의 진심과 사랑을 보게 하시고 우리에게 남은 생을 달려갈 비전을 보게 도와주십시오. 성령님께서 이 시간을 주장하시고 말씀하여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말씀은 23년전 제가 선교사로 나갈 때 붙잡은 선교 요절입니다. 멀고 낯선 곳에 오래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그간 있었던 얘기를 나누는 기분입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그런데 기쁨 (Joy)이라는 단어가 여섯 번 나오고 기뻐하라 (Rejoice)는 여덟 번 나옵니다. 그래서 혹자는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감옥에 있는데 그리 기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가 예수님 안에서 뚜렷한 인생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1:21에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이 유럽에서 처음 개척한 교회입니다. 빌립보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행16장). 자주 옷감장사 리디아, 점쟁이 소녀에 붙은 귀신 쫓아냈다고 투옥된 일, 자결하려던 간수를 구원한 사건 등이 떠오릅니다. 로마시민을 사전심리도 없이 매부터 때린 집정관을 혼내 준 일도 있었습니다. 그후에 아마 리디아의 가족 친지들, 간수의 가족 친지들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는 성장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간 뒤에도 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그를 계속 써포트했습니다. (4:14-18) 지금은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쓰고 있습니다. 그리웠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매들아’도 포함된 호칭입니다. 형제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같은 사람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은 아버지가 같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1장 그리스도를 얻고자 버렸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기뻐하라고 하시지만 객관적 상황을 보면 별로 기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감옥에 있으면 기쁩니까? 그런데 기뻐하라고 한다면 그 이유가 있겠지요. 본문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찾을 겁니다. 우선 기쁜 마음을 준비하시고 메시지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삼가라고 당부하는 것이 있는데 개들과 행악하는 자들과 몸을 상해하는 일입니다. 맹견주의라는 말일까요? 약점을 한번 물면 집요하게 놓지 않는 개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은 가르치고 자신은 악을 행하는 위선자들, 신체를 훼손하여 할례 받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개요, 행악자요, 몸을 상해하는 사람들인데 당시 할례를 강조하며 율법주의를 내세웠던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디도서1:10-11) 그들은 복음만으로는 구원이 충분치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복음 플러스율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표시로 몸의 일부분을 잘라내는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할례파, 할례당, 또는 손할례당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의롭다 하셨습니까? 의롭다 하신 것은 할례 받기 전입니다. (창 15장) 진정한 할례는 마음에 받는 것입니다. 4절.“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사실 육체를 신뢰할라 치면 바울이야말로 스펙이 괜찮았습니다. 그의 BC 시절 이력서를 볼까요? 5-6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또 당시 알아주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유대인 율법주의자 누가 와도 해 볼만 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7-8a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여기서 ‘해’란 손해(Loss)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인 줄 알았던 것들이 알고 보니 모두 손해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엄청난 것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8b.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가장 고상하다는 영어 표현은‘surpassing greatness’입니다. 압도적으로 위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뭐가요? 예수님을 아는 것. 이것이 나의 잘난 BC시절 스펙을 압도해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냄새나는 배설물 버리듯이. Rubbish 쓰레기 버리듯이. 8b.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이 세상적으로 자랑거리요 믿고 살던 것들 쓰레기통에 쳐 박고 그 대신 얻고자 한 것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를 얻고 또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고 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모든 일에 동참하고 싶었습니다.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어떻게 해서든지’는 줄여서 ‘어찌하든지’죠? (김 어찌 목자) 그는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얻고자 했습니다. 죽어야 부활할 테니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까지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제2장 푯대를 향하여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을 돌아보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사납고 살기등등한 유대 종교지도자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후 그의 실적은 눈부셨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나바와 안디옥교회 개척, 1,2,3차 전도 여행을 통해 이룬 성령의 역사, 신약성서 27권중 13권을 쓴 영적 권위, 데모데,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같은 복음의 일꾼양성 등등 셀수 없습니다. 고난도 엄청 받았습니다. 고후 11:23-28에서 그는 간증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와. 이 정도되면 고난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원로로서 할만큼 하셨으니 방향이나 주고 주로 후배들의 잘못을 지적이나 하면서 존경해 주기를 바랄 만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바울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12-14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직도 아직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예수께 잡힌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합니다. 감옥에서요. 예수님께 잡힌바된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달려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살아 계신 예수님께 붙잡혔습니다. 그는 영적 소경이었던 그는 예수님이 벌써 죽고 없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눈을 치시고 아나니아를 통해 왜 그를 잡으셨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행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의 죄값은 사형도 가벼운 것이었지만 주님은 그를 오히려 주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이 은혜를 끝까지 감당하고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이루었던 업적이나 고난이나 허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고자 했습니다. 푯대는 영어로 Goal입니다. 목표 예수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요? 우리의 목표도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골인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이지 맙시다. 자랑도 맙시다. 후회도 맙시다. 다만 앞에 놓인 하나님의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갑시다. 15-16절. 우리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들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저와 동역자가 오늘 본문의 3:10절 말씀을 붙잡고 2003년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23년전 제가54세 동역자가 49세 때였습니다. 날 낳으신 어머니가 49세에 하나님 나라에 가셨는데 동역자와 저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요절은10절이었는데 우리가 읽은 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입니다. 요절 때문인지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러 번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저희는 괜찮았습니다. 당시 아파트 몇평짜리에 사느냐가 생활 정도를 추측하는 질문이었는데 우리는 50평짜리에 살았습니다. 시카고 겨울은 몹시 추웠습니다. 한국 아파트에서 겨울에도 반팔셔츠 입고 지냈는데 거기는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넷은 한국에 비하면 굼벵이 같아서 속이 터졌습니다. 직장을 구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1년을 백수로 지냈습니다. 그 다음은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기로 해요. 은행 권총강도 사건, 자동차 사고, 심장 절개수술 암 수술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일들을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실 것입니다. 종로2부는 뿌리가 깊은 챕터입니다. 원래 종로에서 서울의 큰 센터들을 다 개척 보내고 종로는 학생회와 학사회로 나눴는데 종로 3부 학생회가 생기면서 학사회는 종로2부로 불렀습니다. 이 종로 2부에서 개척한 센터 이름들을 말해볼까요? 동교, 서교, 1부, 7부, 관악3부, 5부, 북악, 정릉, 인천 등입니다. 빠진 데가 있나요? 그런데 그루터기 종로 2부는 아직도 종로 2부입니다. 바울요회는 아직도 있고요. 고 최 사무엘 목자님과 저는 종로 2부의 터줏대감 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일방적으로 쓰셔서 두 챕터와 많은 요회들을 개척하고, 가정교회들을 세우고 세계 여러 나라에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왜 터줏대감 마다하고 생고생을 자초했을까요? 저는 역사를 조금 이룬 후에 자족하여 안일에 빠지려하고 있었습니다. 파송했던 선교사님들의 고난을 편안한 본국에 앉아서 들을 때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각오는 했지만 그리 고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감옥에 있지는 않지요? 23년이 지났습니다. 누가 어디보자 열매를 내놓아라 물으시면 빈손 밖에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내놓아 봐 하시면 내 영적내면이 조금 자란 것 같습니다. Somebody에서 Nobody가 되는 법을 좀 알았다고 할까요? 선교사 인생 23년에 많은 1:1을 하고 역사를 섬겼지만 걸출한 제자를 양성하지 못했습니다. 왔다가고 왔다가고가 수십명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를 조금 더 키우셨습니다. 금년 요절이 고전9:18절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우리 신자들의 상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 주신 사명의 상도 받아야 합니다. 평신도 목자의 상은 자비량으로 값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상을 받으려고 1:1을 합니다. 변화시키시는 분은 성령이심을 믿고 남든 떠나든 나는 상 받는 심정으로 1:1을 합니다. 상 받을 때 어떻습니까? 의무와 부담감으로 억지로 받습니까? 아니면 기뻐서 달려와 받습니까? 저는 말씀을 전할 때 상 받는 사람의 심정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경험과 관록으로 준비 없이 하지 않고 마치 처음 말씀을 대하는 사람처럼 새롭게 말씀을 파고 준비해서 말씀 공부를 합니다. 지금은 매주 5팀을 하고 있습니다. 백수지만 바빠요. 누군가 백수가 과로사 한다던데 조금 이해가 갑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13-1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제3장 국적이 어디세요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메시지 전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처럼 가슴이 턱 막히게 하는 말씀도 드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족한 나를 본받지 말고 너는 부디 성공해서 이 아비의 한을 풀어다오’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종로2부 가족들에게 무엇을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이 캄캄해집니다. 내놓을 것이 없어요. 굳이 내놓으라고 한다면 보잘것 없지만 셀프 메시지훈련이 그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나는 매주 다음 주 메시지 말씀을 미리 공부하고 메시지 듣기 전에 소감을 씁니다. 내가 받을 메시지를 먼저 써 보면 말씀을 깊이 받는데 도움이 됩니다. 오늘 말씀준비도 그렇게 했습니다. 지난 3년간은 문제지, 답안지, 소감을 차례로 컴퓨터에 가지런히 보관했는데 한 주도 빼지 않았습니다. 소감을 안 쓰면 잠이 안 와요. 로욜라 요회리더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매주 금요일 소감모임을 갖습니다. 오후 6시 반에 시작해서 9시 넘게 발표하는데 항상 첫 번 발표자는 접니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엔 남녀로 나눠서 성경공부를 돌아가면서 인도하는데 1번 문제는 항상 제가 대답합니다. 내가 인도하는 날에도 동역자들은 웃으며 나에게 1번 문제를 묻고 또 풀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 내놓으라면 주일 전에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써서 헌금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1995년부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31년간 계속 썼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다섯 개씩 쓰다가 지금은 10개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2025년에는 1년이 52주일이니까 520개 이상의 감사제목, 기도제목을 준비된 헌금과 함께 드린거지요. 버릇이 되니까 토요일 밤까지 기도 감사제목을 못쓰면 잠이 안 옵니다. 이 습관의 좋은 점은 가끔 컴퓨터에 저장된 10년 20년 전의 기도제목을 읽어 보는데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 기도제목들이 다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잊어버린 내 기도제목을 하나님은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이루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내게는 약점과 부족한 점이 훨씬 많습니다. 눈꼽 만큼 내놓을 만 한것이 한 개라면 바윗덩어리 같은 회개제목은 열개도 넘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와 긍휼이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죄인을 참으시고 이제껏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사랑하는 빌립보 형제들을 생각할 때 한가지 바울을 슬프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적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7,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립보에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희생과 죽으심의 사랑에 역행해서 세상 명예와 자랑과 쾌락을 좇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은혜를 죄짓는 면허증처럼 남용하는 자들도(antinomians) 있었습니다. 반대로 구원이 예수님의 죄 사하심 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율법의 행위가 더해져야 한다는 율법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을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구원의 은혜를 왜곡시키는 복음의 적들이었습니다. 그 원수들에게 유린당하는 형제들을 생각할 때 바울은 눈물이 났습니다. 그들을 따라가면 멸망이요 물질 우상을 섬기는 길이요 부끄러운 일들을 자랑하며 땅속에 코를 박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야 합니다. 20,21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저와 동역자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가 국적법에 따라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65세가 넘으면 이중국적도 가능한 법이 생겨서 복잡한 서류 끝에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국적이 어디세요? 물으면 잠시 생각해야 합니다. 시민권이 둘이라서요. 말씀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 하십니다. 미국시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헷갈리지 않도록 ‘너는 천국시민이다’ 라고 도장을 찍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시민입니다. 목자님들이 정치얘기를 하실 때가 있습니다. 미국에선 공화당이다 민주당이다 한국에선 더불당이다 국힘당이다 하면서 의견이 다릅니다. 저는 천당과 예수당을 좋아합니다. 혈액형을 물으면 J형이라고 답합니다. 여러분의 국적은 어디세요? 천국 시민들은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영원 불변하는 가치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의 연약하고 썩을 몸이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15:51-52).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15:58)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종로2부 형제 자매님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서로 한 가족으로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헤어질 수 없는 사이입니다. 천국에서 또 만나니까요. 그러니까 다소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품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습니다. 다음에는 말씀을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마더베리는 성경공부를 보물찾기 (treasure hunting)라고 하십니다. 진짭니다. 저도 50년전 공부했던 요한복음과 지금 양들과 공부하는 요한복음의 깊이가 다릅니다. 작년에 공부할 때는 깨닫지 못했던 의미가 금년에 새롭게 옵니다. 그럴 때 감추인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쁩니다. 한가지만 덧붙인다면 소감을 빼지 않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소감으로 영성을 덧입고 1:1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건 낡은 UBF식이 아니냐고 하는 분이 있는데 시편은 3000년전 다윗의 소감이 잔뜩 들어 있는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영원히 낡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지금도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영원 불변하시니까요. 예수님의 1:1 제자양성 방법도 2000년 넘었지만 낡지 않고 오히려 새롭고요. 오늘 우리는 소제목으로 ‘그리스도를 얻고자 버렸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국적이 어디세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얻기 위해 버릴 것이 있는가? 나의 달려갈 최종 목표는 어디인가? 결승선에서 누가 날 기다리고 있는가? 내 국적은 어디인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사도 바울의 인생소감인 빌립보서 3장을 묵상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볼 때 죄와 허물 밖에 내 놓을 것이 없는 죄인을 발견하고 용서와 사하심을 구합니다. 말씀 통하여 제 남은 인생의 목표를 예수님과 하나님나라에 확정하게 도와주십시오. 버리고 내려놓고 믿음의 경주를 선한 싸움을 끝까지 완주하게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종로2부의 동역자님들이 서로 사랑하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상을 자원하여 기쁨으로 감당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의지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