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마태복음 제 15 강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말씀 / 마태복음 9:18-38 요절 / 마태복음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하나님은 출애굽 때 모세를 통해 바로와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사탄과 죽음 권세를 뒤흔드시고,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증거하셨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중에서 10가지를 기록하였고, 이를 통해 이땅에서 살아가는 천국백성들이 어떻게 질병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까지 믿기 원하시는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금식에 관한 교훈을 가르치고 계실 때, 한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와 누가는 이 사람이 회당장 야이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절하며 말했습니다.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누가는 그 딸이 그의 무남독녀이었으며 나이는 12살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딸이 12살이면 아직은 귀엽고 예쁠 때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쯤 되어 이제 귀여움 티는 좀 벗고,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제 틱틱대기 시작하는 때이긴 하나 그래도 상태가 괜찮을 때 입니다. 아빠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야 되었을 아이였습니다. 그러한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죽었습니다. 나이가 70이나 80이 되어 죽으면 한 세상 여한이 없이 살다 간 것으로 보고 유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인생을 살아보기도 전에 12살의 나이에 죽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었겠습니까? 그 아이는 아마 갑자기 중병에 들려 손을 제대로 써 볼 틈도 없이 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비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당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와 같은 중풍병자도 자리에서 일으키시고, 나병환자와 각종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것을 들으면서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 예수님이시라면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그 죽은 아이의 몸에 손을 얹어 주시기만 하면 살 것이니 제발 와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지난 강의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만큼이나 훌륭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러한 믿음에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 관리를 따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상한 마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잔치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즉시 살리시러 가십니다. 우리도 자녀나 양들의 문제를 주님께서 능히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여름수양회와 JBF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있는데, 본문의 관리처럼 영육간의 자녀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귀하게 여겨, 엎드려 간구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그런데 그 와중에 다른 일이 생겨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이미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사방에 가득하여 예수님이 관리를 따라 가는 중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혹시라도 다치실가 에스코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알고보니 이 여인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는 부인병으로서 하혈하는 증세를 뜻 합니다. 당시 율법에서는 이는 부정한 병으로 인식되어 다른 사람과 격리되어 있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여인은 결혼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했더라도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여인은 병에서 낫고자 많은 물질과 시간을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온갖 민간요법을 시도해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더 증세는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떤 병이든지 고치실 수 있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기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서도 시큰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패배감에 빠져 있지 않고, 이 예수님이라면 자신을 고치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부정한 여인이라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는데,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만날 길이 없어보였습니다.여인은 기도하던 중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믿음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전례없는 창조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누가들으면 이단이다 비성경적이다 회개하고 소감을 쓰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인의 마음은 간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깁니다. 그 과정은 험란했습니다. 여러번 사람들에 밀려 이리저리 치이고 실패했을 겁니다. 수차례 시도한 끝에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데 성공하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당시 예수님 주위에는 수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중에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여인의 믿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으로 두려워하는 여인에게 안도와 위로의 말씀을 하십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귀하게 받으셨습니다. 옷자락만 만져도 자신을 고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힘도 백도 없는 부정하기까지 한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라는 믿음,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예수님께 나온 믿음을 기뻐 받아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약속의 땅에 거하였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자신과 아내는 늙어 더 이상 자식을 가질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힘들어져 자신의 종이 자신의 후사가 될 것이라 불투명스럽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찾아오사 그가 하늘을 보게 하시며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더 나은 의, 천국에 들어가는 의를 소개합니다. 이는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었던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라는 자에게 주시는, ‘의’ 입니다. 여인은 도저히 나을 가망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 믿는 것,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는 믿음 입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부정한 여인,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 많은 실패를 한 사람, 힘도 백도 없는 힘 없는 불행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3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임이요.”,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녀는 가장 운명적이고, 슬픈 사람으로 보였지만, 예수님은 이런 그녀를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딸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질병에서도 나음 받는 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녀를 12년 동안이나 괴롭히던 질병이 그녀를 가난하게 하고 애통하게 만들었지만, 이는 하나님이 내리는 저주나 벌이 아닌, 그녀를 정금같은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크신 섭리였습니다. 천국의 아들, 딸들도 이땅에 살면서 질병으로 고통하기도 하고, 큰 어려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믿음은 정금같이 빚어집니다. 그들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운명적이고 슬픈 인생이지만, 그들의 실상은 천국 주인이신 예수님의 아들 딸들이요, 영원히 빛나는 믿음을 가진 자들로 입니다. 비록 이땅에서 잠시 잠깐 누리는 건강과 물질과 안락함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건강과 영원한 부귀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됩 것 입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이 그 관리의 집에 도착해보니 그 집안에는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의 규범서라고 할 수 있는 미쉬나에 따르면 상가(喪家)에는 아무리 미천한 자라 할지라도 두 명의 피리 부는 자와 한명의 애곡하는 자가 준비되어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집안 식구들도 그러한 자들과 함께 죽은 자의 물건들을 뒤집어 놓고 우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피리 부는 자와 떠드는 자들은 그러한 고용된 전문 애곡사들과 또한 상가 집에서 술과 고기를 얻어먹기 위해 모여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시끌벅적한 분위기 가운데 죽음이 주는 슬픔과 두려움을 이기고자 몸부림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게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잠자는 자를 깨우는 것과 같습니다.
소녀는 의학적으로 볼 때 죽은 것은 분명하였습니다(막 5:35, 눅 8:49).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살았어도 죽은 자이나,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살 자는 죽었어도 산 자입니다. 소녀의 시신을 앞에 두고 있는 무리들은 그녀가 자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가 막혀서 비웃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비웃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에 가득 찬 무리들을 내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믿음이 없는 무리들에게는 그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내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예수님은 무리를 내보내신 후에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그 순간 주님의 창조의 능력, 부활의 생명력이 그 죽은 아이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으로 모든 생명은 다 하나님께로서 온 것입니다.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생명뿐입니다. 죽음이 정복하고 있는 몸에 하나님은 다시 생명을 주시어 부활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부여자가 되십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도 살리시는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죄와 범법으로 인하여 죽은 영혼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오직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은 소녀를 일으켜 세우시는 것은 늦잠 자는 아이를 엄마가 깨워 학교에 보내는 일보다 쉬운 일 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2. 내가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님이 관리의 집에서 떠나가실 때 두 맹인이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따라오며 계속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2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예수님이 들어가신 집은 세리 마태의 집이거나 아니면 가버나움의 선교본부로 쓰인 임시 거처이었을 것입니다. 두 맹인들은 야이로의 집에서부터 이곳까지 계속하여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이 끈질기게 은혜를 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이에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일이란 그들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맹인이 장차 눈을 뜨게 되리라는 예언은 있어도 실제적으로 눈을 뜬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여 그러하오이다" 본문의 두 맹인은 예수님이 바로 오시리라 예언된 메시야, 곧 다윗의 자손임을 믿었습니다. 그 메시야가 능히 자기들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그들의 눈을 만지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눈을 뜨게 하시는 치유의 손길을 베푸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 치유 역사를 하시되 먼저 그들의 믿음을 보기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먼저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까? 믿음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을 맺는 출발점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보았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도 않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문제를 능히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당면한 영육간의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우리가 주님께서 능히 나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증거로 맹인처럼 주님께 줄기차게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반드시 그러한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맹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눈을 뜨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사 35:5,6). 예수님은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감격스러워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렸습니다.
3.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소경들이 눈이 떠져서 나갈 때,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말을 못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장래가 있을 수 있고요, 사고나 질병으로 말을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람처럼 귀신들려 말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의 사람은 아마 처음에는 말을 하다가 귀신이 들려 말을 못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자 말 못하던 사람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었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능력의 역사에 크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불신과 시기심에 가득하여 예수님을 비난하여 말했습니다.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들로서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눈앞에서 성령의 역사를 보고도 불신으로 인하여 악령의 역사라고 폄하하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을 열렸지만 영적인 맹인들이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렇게 믿음이 없고 악하니 그 당시 수많은 백성들이 각종 병과 귀신들린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믿음이 없고 타락한 세대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여기서 '추수할 것' 이란 복음 진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영혼들을 말합니다. 그 시대에 추수되어야 할 사람, 곧 심령이 준비되어 복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은 많았습니다. 수많은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그들이 백성들의 목자요 추수할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자기들도 영적으로 기아 상태에 있었고 백성들을 추수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추수할 일군이 아니요 방관하는 직업적 종교가들이었습니다. 그 시대는 일군이 적었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세례 요한, 그리고 아주 적은 숫자의 신실한 자들만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방황하는 양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울 믿음 있는 목자들이 필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그러한 일군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내어 주소서" 라는 말은 "강제로 밀어내어 달라" 는 뜻입니다. 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긴급히 행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는 기도야 말로 천국 일꾼을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제자들을 세우고자 애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그러한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영적인 추수할 일군이 되는 것은 자기의 선택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택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오늘 날 세상이 참으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추수할 일꾼이 적은 시대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은 넘쳐나는데, 이들을 도울 사람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 역시 몇몇 영혼들을 섬겨보았고, 섬기고 있다고 하지만, 숙련된 일꾼들이 날카로운 낫으로 무르익은 곡식을 척척 추수하여 창고에 들이듯이, 힘 있게 역사를 섬기지 못하였습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저 역시 추수할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제목이 탄식처럼 절로 흘러 나왔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준비된 영혼들을 추수하는데 쓰실 수 있는 추수할 일꾼이 되길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시도록 힘써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보시며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우리가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나아가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실제적인 믿음을 배워 우리 모두가 믿음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종로2부 공동체가 추수된 알곡들로 채워지고, 추수할 일꾼들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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