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
보라
요한복음 1:29~42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군대에서 고참이 이등병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한 뒤 묻습니다. "눈앞에 뭐가 보이냐?" 이등병이 답합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고참이 말합니다. "그래, 그게 남은 네 군생활이야."군대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합니다. 군대에 있을때는 제대만 하면 앞이 환해질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제대한 후에도 앞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던거 같습니다. 20대에는 학업과 취업 문제, 30대에는 결혼과 직장문제, 40대에는 승진과 연봉 문제, 50대부터는 건강과 노후 문제가 우리의 앞날을 어둡게 합니다.그런데 여러분 오늘 말씀에는 눈을 감지 말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보라’고 외치는 사람이 나옵니다.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요? 보면 무엇을 얻는 것일까요? 이 시간 우리가 세례 요한의 외침을 잘 듣고 어떤 마음으로 이번 수양회에 참여할 것인가,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 함께 29절을 읽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우리 앞날을 환하게 밝혀줄 중요한 단어 3개가 있습니다.
첫번째 단어는 “보라”입니다. 왜 "보라"고 외쳤을까요? 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보라"는 단순히 구경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목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앞 날이 잘 안 보이는 이유는 정말 봐야 할 것을 안 보기 때문입니다. 대신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눈 앞에 닥친 취업문제, 물질 문제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아~ 하이닉스를 샀어야 했는데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보와 재미있는 영상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유튜브, 넷플릭스, 웹툰을 보느라 밤에 잠도 안자고 봅니다.그런것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들이라면 보고 또 봐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이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또 다른 더 깊은 문제에 빠집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 전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요즘 BTS나 손흥민보다 인기가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 "당신이 메시야입니까?"하고 질문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내 뒤에 오실 그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저를 보지 마시고 그분을 보십시오. 그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단어는 “세상 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 죄'란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피상적인 원인을 찾아서 조치하면 잠깐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재발합니다. 마당에 돋아난 잡초를 비유로 들어보겠습니다. 잡초가 보기 싫다고 눈에 보이는 이파리만 가위로 썩둑 잘라냅니다. 그러면 당장은 마당이 깨끗해 보입니다.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며칠만 지나면 다시 무섭게 자라납니다. 진짜 원인은 땅속 깊이 박혀 있는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다른 어떤 조치를 해도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잡초 뿌리와도 같은 근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 요한이 말한 "죄" 입니다. 한 개인의 죄가 아니라 세상 죄, 그것이 바로 세상과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입니다. 세례 요한이 보라고 외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피상적인 원인을 찾아서 임시 조치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주목해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셋 번째 단어는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지고 간다는 것은 해결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하라고 방향만 알려주지 않고, 직접 해결하신다는 뜻입니다.사실 죄 문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만약 내 안의 죄의 욕망이 쉽게 통제되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원하는 대학에 가고 최고의 직장에서 꿈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죄 문제는 처방전도 없고 약도 없습니다.그런데 성경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누군가 내 죄값을 “대신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습니다. 죄의 대가는 놀랍게도 죽음입니다. 죽음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입니다.하지만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치러야 할 그 무시무시한 죄값을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지금 그분이 우리 앞에 오셨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그분이 누구일까요?
29절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과 같은 짐승의 피를 뿌려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양의 피는 일시적인 효과 밖에 없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백마리. 이스라엘에는 한 해에도 수 십만 마리의 양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분을 어린 양으로 보내 주셔서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죽음으로써 댓가를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이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지 이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선지자입니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얘기는 하지 않고 예수님만 보라고 외쳤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내용으로 외쳤습니다.
다 함께 35, 3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스승님이 입만 열면 예수님을 보라고 하니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 오는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3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무엇을 구하느냐?" 이 질문은 ‘따라 오는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입니다. 곧 신앙의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질문에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 라고 답변했습니다. 이 대답은 순수하게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예수님 한 분을 알아보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초청하셨습니다. 다 함께 39절을 읽어보겠습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지 말고, 직접 와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을 경험하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머물기 시작한 그때는 '열 시쯤', 즉 지금의 오후 4시였습니다. 이 시간이 바로 제자들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 주님과의 역사적인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수양회에 참석한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앞의 염려를 내려놓고,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만남의 시간을 보낸 제자들이 과연 무엇을 발견했을까요?다 함께 40~4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그들은 주님과 함께 머물며,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임을 깨달았습니다. 가슴 벅찬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안드레는 곧장 형 시몬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안드레는 주저 없이 시몬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42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셨으니" 시몬은 '모래'라는 뜻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시몬은 모래처럼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1세기 기독교를 떠받치는 든든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우리의 근본 문제인 죄 문제가 해결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주님 안에서 최고의 강점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각자 다양한 이유로 이번 수양회에 참석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양회에 임하는 마음가짐만큼은 한 가지로 통일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바로 ‘보는 것’입니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바라보십시오. 그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더 깊이 만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며 저의 지난 과거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예수님을 바라보기 매우 어려운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늘 눈앞에 닥친 현실의 어려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은 언제나 걱정과 염려로 가득했습니다.저의 인생의 걸음걸음이 다 그랬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친구 관계가 늘 고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 진학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직장을 구하는 것이 온통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게도 저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바로 스무 살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형을 통해 저를 성경 공부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말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진정한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그 후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후 조금씩, 내 힘으로만 쥐고 살던 인생의 운전대를 주님께 맡겨 드리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의 제 자신을 솔직히 돌아봅니다. 여전히 예수님보다 내가 처한 현실 문제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현재 IT 개발자로서 급변하는 시대를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직장 내 갈등과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여전히 제 마음을 염려하게 만듭니다. 고민하느라 밤잠을 이룰 수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나같이 현실 문제에 매여 버둥거리는 사람이 어떻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한단 말인가.'말씀강사라는 자리가 제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준비하는 동안, 주님은 스무 살 그 시절, 제 삶에 찾아오셨던 부르심의 은혜를 다시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책임지려고 할 때는 늘 불안과 염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제 모든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이번 말씀강사를 맡고 '내가 과연 자격이 있는가' 자책하고 있던 제게, 주님은 세밀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진영아, 부족해도 괜찮다. 네 힘으로 다 짊어지려고 애쓰지 마라.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내게로 와서 나를 보아라."주님은 이 부드러운 음성을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결단했습니다. "예 주님, 제 눈을 멀게 했던 세상의 모든 염려들을 내려놓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먼저 바라보겠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함께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 시간 제가 확신 있게 외치겠습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아멘) 이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염려와 유혹으로부터 과감하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적어도 이번 수양회 2박 3일 동안만큼은 오직 예수님께만 집중하기를 원합니다.주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복음의 비밀을 우리에게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번 수양회가 그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발견하고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다 같이 요절을 읽고 기도하겠습니다."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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