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종로2부 여름수양회 2강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말씀/요한복음 3:1-21
요절/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생망’ ‘아보하’ ‘FOMO’ 무슨 뜻일까요? ‘이생망’ 은 ‘이번 생은 망했다’ ‘아보하’는 ‘아주보통의하루’ ‘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줄임말입니다. ‘이생망’이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의 벽은 넘을 수 없다는 10년전 청년들의
심정을 담은 말이라면 요즘 청년들은 거창한 성공보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사는 인생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SNS에 올라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남들보다 뒤쳐지면 어떡하지 하는 FOMO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 세 단어 속에 숨겨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이 지금보다 더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참된 만족과 기쁨, 평안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이렇게 누구나 나만의 하나님 나라를 갈망합니다. 본문의 니고데모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시간 말씀을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분들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축복을 받고, 이미 거듭난 분들은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감격과 감사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3:10절과 19:39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재력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목사님이면서
국회의원인데, 존경도 받고, 부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니고데모는 모든 면에서 자기 완성을 이룬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죠? 표정을 보니 별로 관심없는 것 같네요. ‘목자님! 제 꿈은요 배민 라이더하면서 필요한 만큼 돈벌고, 여유있음 주식도
하면서,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 드라마 정주행하는게 좋아요~ ‘이런 아보하 같은 삶을 요즘은 더 선망하는지도 모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아무것도 하지않는 청년백수가 무려 406만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쉬는데는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삶을 바꾸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니고데모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룬 그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심한 시간, 은밀하게 예수님의 방을 ‘똑똑’ 노크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왜 ‘밤’에 찾아왔을까요? 아마 동료 바리새인들이나, 공회원들의 눈치가 보였겠죠. 왜냐하면 예수님과 사이가 그리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도 있지만 밤은 왠지 니고데모의 현재 마음의 상태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는 찾아온 용건을 말하기
앞서 예수님을 ‘랍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하며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CT처럼 훤히 보시는 예수님 앞에서는 어림없죠. 예수님은 단번에 그가
왜 이 밤에 찾아왔는지 아십니다. 그의 고민, 그의 문제가
무엇인지 의사처럼 진단하시고, 확실한 처방을 내려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듭남이란 무엇일까요? ‘거듭남’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자주 씁니다. ‘저 친구 예전에는 방황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거듭났어’ ‘ 그 회사는 위기를 겪은 후 고객 중심으로 거듭났습니다.’ 뭔가 이전과 다른 모습이 되었다는 그런 의미죠?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로부터의 거듭남입니다. ‘위로부터 거듭남’이요? 이는
성경의 거듭남이 인간적인 노력, 결단, 의지나 혹은 세상적
지위나 사람의 인정 같은 조건개선과는 다름을 의미합니다. 니고데모는 이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건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후 들어가는 천국과는 다른 개념이죠. 지금 내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입니다. 여기서 사람은 니고데모만을 가르키지 않습니다. 지금 이자리에 계신 여러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왜
거듭남이 필요한 것일까요? 그냥 이대로 살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 나라를 보려면 반드시 거듭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니고데모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세상 모든 것을 갖추고도
어둡고 답답했던 건 그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그 내면에 하나님 나라가 없으면
공허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참 쉼과 만족,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빈 공간을 세상의 물질, 사람의 인정과 같은 것들로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습니다. 마치 밑이 터진 항아리처럼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물은 세례 요한의 물세레를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죠. 그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를 볼 때 거듭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께로
돌아키는 것입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 처참하게 무너진 뒤, 인생의 밑바닥에서 했던 고백, 기억하십니까?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보서서 하리라 하고.”(눅15:17~19)
이렇게 회개할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도행전 2:38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근본적이며
본질적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을 통한 거듭남’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를 돕기 위해 사람의 탄생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은 참 신비롭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의
수정란이 되고, 그 작은 생명 안에서 세포가 나뉘고, 뇌와
심장과 뼈와 장기가 차례로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먼저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 때부터 영혼의 재탄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과의 탯줄이 연결되며 생명의 영양분이 공급됩니다. 그 때 죽어있던
영혼의 심장이 쿵쾅쿵광 소리를 내며 깨어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육체의 탄생이 신비롭듯, 성령으로의 재탄생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일입니다. 다만 이 역사는 보이지 않게 순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8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보이지 않죠. 하지만 소리는 들립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풀잎을 보면 아 바람이 부는구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처럼 존재합니다. 회개한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바람처럼 역사합니다.
그 때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봄 바람처럼 살랑 살랑, 어떤 사람에게는 태풍처럼 슁~ 붑니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흔적이 남듯,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도
그 삶에 변화의 증거(흔적)가 남습니다.
그러면 그 열매와 증거가 무엇입니까?
97년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센터에 나왔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쁜 대학생 누나들을 기대했는데, 그러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당시 저의 마음은 실패와 절망감에 차가운 겨울날씨같았습니다. 그런데
센터에서 처음 저를 반갑게 맞아주신 선배님의 순수하고 진심어린 미소는 이런 저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여느
서울사람과 달리 밝고 따뜻한 미소가저를 감동시켰고, 그 미소의 비밀이 궁금했고, 그래서 성경공부를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미소는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기쁨’의 증거가
아닐까요?
이러한 기쁨 외에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삶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줍니다. 먼저
감사가 생깁니다. 좋은 일 속에서도 감사하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감사하게 됩니다. 시험을 잘 봐도 감사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섭니다. 형편이 넉넉할 때도 감사하고, 부족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긍휼과 사랑을 실천하려 애씁니다. 상처 주는 사람을 미워만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원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긍휼로 바라보며 축복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거듭난 사람은 이 땅에만 매여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들고, 시간과 물질과 청춘을 주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주님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알차고 보람 있게 살아갑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거듭난 사람도 때로는 흔들리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비교와 두려움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들며 일어섭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답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여러분도 다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아직도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됐습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며 반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러한 것들을 알지못하느냐”며 하시며, 꽉 막힌 그를 도우십니다. 이처럼 아무리 율법을 많이 알고 지켜도 이러한 거듭남은 알 수 없습니다. 거듭남은
지식과 이해의 영역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복음의 핵심 ‘믿음으로 거듭남이 무엇인지’ 구약의 한 사건을 예로 드시며 설명하십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민수기 21:4-9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배고픈 광야길이 계속되자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때 불뱀이
나와 그 원망한 사람들을 물었습니다. 뱀에 물린 사람은 고통 속에 죽어갔습니다. 이 때 모세가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하나님은 독에 효과가 좋은 약초를 주신
것도 아니고, 그냥 뱀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쳐다보라고 하십니다. 이에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습니다. 그리고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쳐다본즉 모두 살았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말을 한 하나님을 단순히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선택지가 없습니다.
살려면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 사건을 예로 드셨을까요?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사건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높이 들리십니다. 뱀의 형상을 보면 사는 것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면 살게
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육체의
생명을 얻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영혼의 생명, 곧 거듭남과 영생을 얻습니다.
16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조롱하고 무시합니다. 심지어 God dam it! 하며 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죄와 죽음의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인간들을 살리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주셨다는 것은 그냥 이 땅에 보내신
것 뿐 아니라 십자가에 그 고귀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이자 니고데모가 그토록 보고싶엇던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을 그져 믿기만 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나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산 나를 위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크고 넓은 사랑입니까? 이 사랑이 밤 같던 니고데모의 마음에
빛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접하였습니다(요19:39)
그러나 이 사랑을 거부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니고데모를 포함한 유대인들은 메시야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를 무너뜨리고, 악한
사람을 싹 쓸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심판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기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구원의
손길을 거부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영적 사망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빛보다 어둠을 선택한 증거입니다.
19~21절을 보십시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예수님은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어둠에 있던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빛을 보면 모든 피조물은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합니다.
그런데 죄악된 인간만이 빛으로 나오길 거부하고 어둠에 머물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움과 죄의 달콤함을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를 명심하십요. 마지막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질문은 딱 하나입니다. “너는 예수님을 믿었느냐?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느냐? 성령으로 거듭났느냐?” 부모님의 믿음이 나를 대신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오래 교회에 다닌 배경이 나를 대신 거듭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내일이 반드시 내게 주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오늘밤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지만 죽음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빛 되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요. 니고데모처럼 인생의 고민과 숙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오십시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거듭남의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 구원의 때요 지금이 은혜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시간 우리가 눈을
들어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그 분을 믿음으로 죄사함과 구원, 거듭남과 영생 얻기를 기도합니다.
저에게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난과 누나의 죽음을
겪으며,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명문대를
목표로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수능실패로 계획한 대학에 가지 못했고, 97년 국민대 입학했습니다. 실패감과 운명적인 생각으로 술을 마시고, 학과공부에도 흥미를 갖지 못한 채 방황했습니다. 이 때 한 선배님의
권유로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한 말씀이 강하게 저를 붙들었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안에 내가 찾던 하나님
나라 곧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깨닫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수양회 참석하였고,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제 안에
불었습니다.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 이제껏 경험치 못한 기쁨, 동시에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죄인으로써의 고통과 용서의 감격이 교차하는 신비롭고 신령한 경험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동안 저를 무겁게 짖누르던 실패와 운명의 어둠 싹 사라지고, 밝고 환한 빛이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입에서는 찬송이 터져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렇게 거듭난 새 사람이 된 후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인상도 변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돈,성공이 아닌 주와 복음을 위해 선교사로 살고자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그런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순종하여 직장생활을 하며 국민대, 상명대 캠퍼스 역사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벌써 20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제 안에는 거듭남의 감격과 감사가 흐려지고, 대신 세상에서 안정과 즐거움을 쫓았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3년동안 이곳 저곳 메뚜기처럼 직장을 옮겨야 하는
현실문제로 두려움,근심,염려 가운데 지냈습니다.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숨만 나왔습니다. 이때 ‘100번의 한숨보다 한번의 기도를 하라’ 동역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심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무거운 짐이
벗어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3주만에 기적적으로 현재 직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물론 지금 직장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100일 휴가가 있을정도로 100일안에 자의든, 타의든 그만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나도 저 신세가 안되려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루하루
좌불안석처럼 지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하던 어느날 회사 옆 교회의 높은 첨탑과 그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십자가 밑에는 이런 글이 써있었습니다. ‘예수구원’ ‘예수생명’’예수소망’.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소망이요, 생명이지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과 염려가 싹 사라졌습니다. 내 인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이 후 저는 자연스럽게 출근할때, 퇴근할때, 수시로 그 교회의 첨탑위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 시간 죄인을 사랑하사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죄사함과 하나님 나라 영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찬양 드립니다. 제가 현실을 바라보기 보다,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거듭남의
감격과 감사의 힘과 능력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고, 이곳에서 성과를 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니고데모는 여러 면에서 승리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하나님 나라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볼 때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바람처럼 역사하셔서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거듭남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