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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6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1-30)2026-07-1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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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


다 이루었다

 


말씀/요한복음 19:1-30

요절/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자 그리스도이신 주님께서 왜 죽임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죽으시는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사형 판결받으신 예수님 (1-16)

 

18장에서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의 불법 재판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으나, 유대인들은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으나, 직접 처형할 권한이 없었기에 빌라도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손을 거쳐 예수님이 로마식으로 처형당하기를 원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21:23)는 율법의 기록대로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되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것을 온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죄수 한사람을 풀어주는 유대인의 풍습을 이용하여 유대인들과 협상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목소리 높였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빌라도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풀어주자니, 그를 고소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폭동을 일으킬까 봐 두려웠습니다. 빌라도는 군중의 요구를 달래면서도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해, 채찍질만 하고 풀어주려는 타협안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로마의 채찍은 그 끝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그 끝부분에 동물의 뼈나 납덩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채찍에 맞으면 쇳조각들이 살을 파고들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으스러지고 심하면 내장이 튀어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채찍에 수없이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여기저기 터지고 피범벅 되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나서, 군인들은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주님의 머리에 씌우고 왕들이 입는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손으로 때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습니다. 철썩철썩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평안할지어다 하면서 조롱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몸은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눌려 씌운 가시관에 찔려 예수님의 머리에서는 솟구친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습니다. 채찍에 터지고, 가시에 찔리고, 피에 젖은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4절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들 앞에 세웠습니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피로 물든 채 가시면류관을 쓰고 그 모든 괴로움을 참으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채찍질을 한 뒤, 이 처참한 고초를 당하신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무리를 만족시키고 풀어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아랫사람들과 합세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빌라도는 이 지긋지긋한 유대인들에게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자 유대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마땅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7) 그들은 유대인의 법을 대며 예수님은 신성모독죄로 죽어야 하고,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며 빌라도를 압박했습니다. 8절을 보면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관저 안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10) 빌라도는 자신이 로마 총독으로서 예수님을 못박을 권세가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위에서 주어진 권세,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빌라도가 예수님을 해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철저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의 죄보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유대인의 죄가 더 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기와 질투, 탐욕과 불신으로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죽임당하도록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이런 의연한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석방하기 위해 더욱 힘썼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줄까 봐 다시 소리 질러 위협했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2) 이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빌라도를 향해, 예수를 석방하면 로마의 반역자가 될 것이라며 위협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일로 고발하면 빌라도의 출세길이 막히고 총독지위에서 파면 당할수도 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석방하지 못하고, 이제야 정식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14절을 보면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는 새벽 6시에 공식재판을 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을 향해 다시 한번 호소했습니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 빌라도가 볼 때 이분이야말로 너희의 왕이라고 할 만한 분인데, 정말 사형시켜야 하겠느냐는 호소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크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또다시 호소합니다.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소리 질렀습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왕이시라고 신앙 고백하던 유대인들이, 시기심에 눈멀어서 지금 눈앞의 예수를 죽이기 위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이사를 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결국 빌라도는 최종 판결을 내려 예수님을 십자가 형벌에 처하도록 넘겨주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께서 사형 판결을 받으시는 과정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십자가형을 당하신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재판장인 빌라도 자신이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세 번이나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잃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빌라도는 양심을 저버렸습니다. 무리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으로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가 사도신경으로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고백합니다.

 

2.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17-30)

 

17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예수님은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의 무게는 대략 70kg에 달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인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18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언덕에 오르자 군인들은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 위에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양 손목에, 그다음에는 발목에 못을 박았습니다. 쾅 쾅 쾅! 둔탁한 망치 소리와 함께 큰 쇠못이 예수님의 살과 핏줄을 끊었습니다. 큰 대못이 신경 다발을 뚫고 뼈를 부서뜨리며 나무 십자가에 박혔습니다. 못을 다 박고 나서 군인들은 십자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자 온몸의 무게가 모두 못을 박은 발목과 손목에 실렸고, 예수님의 몸은 고통으로 소스라쳤습니다. 손목과 발목의 살이 조금씩 찢어지고 그 사이로 진액 같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 예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시편 22:14,15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한 형벌 중 가장 수치스럽고 무서운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의 목적은 단순히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극심한 수치와 고통을 주는데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빠르면 12시간, 보통은 2~3일이 지난 후에야 죽는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수없이 까무러칩니다. 고통스러워서 다시 깨어나고, 깨어났다가 고통 때문에 다시 까무러치기를 수십번을 반복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이리 무서운 고통과 형벌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3:4,5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악때문에 그 무서운 고통을 받으셨고, 우리 대신 저주받은 자가 되셨습니다. 바로 나의 죄악때문에 십자가에 주님이 무서운 채찍을 맞으셨으며 가시관을 머리에 쓰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악한 본성으로 인한 죄악들, 도저히 고백하기 어려운 수치스러운 죄, 고의로 지은 죄, 무의식 가운데 짓는 죄,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죄, 미래에 지을 죄, 반복하여 짓는 음란의 죄, 나의 욕심대로 행하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죄, 이 세상과 잔재미를 더 사랑한 죄, 그리고 시기와 미움으로 형제자매를 마음으로 죽인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의 온몸이 찢기셨고, 마디마디가 상하셨으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원래는 우리 자신이 그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십자가에서 고스란히 대신 받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4절은 말씀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 당하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죄 패를 붙였습니다. 당시 죄 패에는 강도죄, 살인죄 등의 죄목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죄 패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빌라도는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의 왕 되심을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십자가형의 형벌을 받으셨다고 선포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이를 심히 못마땅하게 여겨서,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를 무시하고, “내가 쓸 것을 썼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자 온 인류의 메시아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23, 24절을 보면, 군병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나눠 가졌고, 속옷은 제비를 뽑아 차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벌거벗겨진 채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는 육체에 최대의 고통을 안겨주는 사형 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모든 존엄을 짓밟아버리는 사형 틀이었습니다. 손목과 발목이 찢어지는 육체적 고통도 컸지만, 이에 못지않게 견디기 힘든 수치와 굴욕이 더해졌습니다. 24에 보면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메시아가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는 수치심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피를 흘려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이 장차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셔서 십자가에서 겪으실 일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서 벌거벗김을 당하심으로써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죄로 인한 수치심을 영원히 제거해주십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 한 순간부터 건강한 자존감을 상실했습니다. 그 결과 열등감, 인정 욕구, 강박에 의한 비교의식, 그리고 자기합리화로 끊임없이 자신을 가리려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복음은 평생 두려움과 수치심에 매여 있던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줍니다. 이제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자는 더 이상 세상의 평판이나 사람의 인정과 칭찬으로 자신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품어주시는 놀라운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구하며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안의 죄책감과 수치심이 완전히 제거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 나를 태초부터 사랑하시고 영원토록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얻게 될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세 마리아와 한 이모, 4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여 십자가 처형 장소까지 따라왔습니다. 잔인하고 처참한 현장이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했습니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2:35)라는 시므온의 예언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모친의 심정은 칼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옆에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는 제자 요한이 아들임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겼습니다.

 

28절을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얼마 후,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말씀하셨습니다. 많은 피를 흘리신 주님은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릴 정도로 극심한 탈수증상과 갈증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여섯시간 동안 매달리셔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30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목소리를 내기조차 힘드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우리에게 반드시 알려줄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로 다 이루었다!”라는 한마디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과연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代贖)을 다 이루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1:29)라고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속 역사를 위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한 대속을 다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죗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원어적 의미는 지불이 완료되었다’, 값을 다 치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피로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죄의 사슬을 끊고 참된 자유와 영생을 줍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자 참된 구원자가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삶의 슬픔과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죄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이 시간 십자가 복음을 저희 심령에 새롭게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 이루었다말씀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여름수양회 메시지를 준비하며, 제가 받은 십자가 은혜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도에 국민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깊은 열등감과 비교의식, 무의미한 삶을 살던 자였습니다. 내면의 고통을 해결해 보고자 불교 서적도 뒤적여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제 영혼의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말씀 공부로 인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하신 말씀이 제 마음에 생명의 빛으로 역사하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마음으로 저지른 음란과 시기, 질투와 미움, 지독한 자기 중심성의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 수치심에 떨며 돌에 맞아 비참하게 죽어야 했던 여인과 같은 자였습니다. 주님은 저의 죄 때문에 채찍에 맞고 가시관을 쓰시며 피를 흘리셨습니다. 죄로 인해 두려워 떨던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기심과 정욕으로 가득 찬 저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이 대신 죽음으로 죄사함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아무 가치 없던 제 존재가 가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의미하던 인생이 말씀을 전하는 목자의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은 열등감으로 무기력하던 저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1990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미비아 대사관에 취업하게 하셔서 자비량 선교사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아프리카 땅에 나아갔지만, 현실은 어려웠습니다. 제 아이에게는 가장 저렴한 분유를 먹이면서도, 양들이 수양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항공료를 지원하며 섬겼습니다. 그러나 제자로 남는 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들려오는 여동생의 죽음과 남동생의 암 투병 소식은 제 마음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직장생활 또한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야만 하는 철저한 낮아짐의 훈련장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십자가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아무리 환경이 힘들어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은 때마다 제 인생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이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통해 제 기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나미비아 대사관은 폐쇄되었지만, 주님은 1995년 짐바브웨를 개척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내 가슴에 부어질 때, 저를 누르던 어둠이 떠나가고 자유함을 얻습니다. 중풍병자처럼 무기력했던 자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오늘도 제 삶을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아무 자격 없는 자에게 이 위대한 십자가의 사랑을 부어주신 그 축복과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마침내 구원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죄와 허물때문임을 마음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질고와 슬픔으로부터 나음과 평화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죄로 인한 죽음과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30절 말씀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