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수양회 제4강
네 발을 내밀어라
말씀/ 요한복음 13:1-11 요절 : 요 13:10a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번 수양회에서 우리는 복음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백성답게 우리를 성결한 성도로 빚어가시는 예수님을 배우겠습니다. 그러면 성결 즉 성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네 발을 내밀어라” 이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의 길을 함께 살펴 볼수있기를 기도합니다. 1a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유월절 전날이란 십자가를 하루 앞둔 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날 때가 이른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밤 체포되십니다. 그리고 내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런데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죽음이라 하지 않고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부활하신 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십니다. 홍콩 소림사 무협지를 보면 사부님이 적의 공격을 받아 죽어가면서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죽거든 저 원수들을 ~~하며 숨을 거둡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1b절을 자매님들께서 읽어 주시겠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라는 표현은 시간의 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NIV 성경에서는 “the full extent of his love” 그의 사랑의 가득한, 그의 사랑의 온전한 즉 완전한 사랑의 의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적인 끝이라고 한다면 어느 시점까지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는 오늘 밤까지 일까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까지일까요? 참고로 저자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의 나이는 90세가 가까운 나이입니다. 90세의 노년에 복음서를 쓰면서 그는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31장3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사랑은 세상 끝을 넘어 영원한 천국에서까지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이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제자들입니다. . 제자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2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저자가 감동적인 1절 말씀을 기록한 후에 갑자기 2절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은 제한이 없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내일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러나 유다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고작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배반자까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발도 씻어 주시고,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끝까지 도우셨습니다.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큰소리 치지만 몇 시간후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든다고 부인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수님 잡히시자 마자 모두 도망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란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조금도 그 사랑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상태와는 전혀 상관없이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태가 좋을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가 태반입니다.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결심했다가 또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합니다. “나는 안되나 봐” “예수님이라도 나는 어쩔수 없을 거야” “이런 나는 예수님께서도 포기하실 거야 ”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증거는 바로 십자가 입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권세를 자기 손에 맡기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 돌아가신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몇시간 후면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고 불법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제자들과 이렇게 함께 할 시간은 겨우 두어 시간 밖에 안남았습니다. 이 중요한 시간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요? 4절과 5절을 형제 자매님 순으로 읽겠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이 금쪽같은 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 소중한 시간에 제자들의 발을 씻고 계시는지? 예수님의 발 씻김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다시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잔치 장소로 가보십시다 만찬장에는 유월절 어린양과 무교병과 포도주가 상에 차려져 있습니다. 제자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며 유월절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만찬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십니다.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십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오시더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합니다. 순간 제자들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쌔하니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나 가장 낮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흙길을 걸었기 때문에 먼지가 땀과 함께 발에 묻어서 냄새가 나고 끕끕하니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오면 종이 발을 씻겨 주고, 종이 없으면 주인이 발을 씻겨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씩 발을 씻기시다가 드디어 베드로 앞에 이르셨습니다. 베드로가 당황하며 말합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우리는 베드로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당시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차라리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베드로는 매우 훌륭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예수님을 존경하였고 예수님만을 높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발을 씻기다니요.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최고구나’ 하며 엄지척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8절 하반절을 형제님들께서 읽어주시겠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내가 너를 씻겨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 직역하면 ‘너에게 줄 내 기업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씻음을 받지 아니하면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씻기시는 것은 단순히 발의 먼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으시는 것입니다. 발 씻김은 십자가를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로 죄인을 깨끗케 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직 그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도리를 생각했고 예수님의 품격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와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성인이 되었는데 이런 죄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고 요즘은 해마다 세상이 바뀌는데 예수님을 배우고 따른지 10년 20년이 되었는데 나는 변한게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이런 문제에 매여 있다니 예수님께 들고 간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조금 더 나아진 다음에 가야지.’ ‘이 문제를 극복한 후에 기도해야지.’ ‘ 또 똑같은 죄문제를 가지고 가기가 체면이 서지가 않습니다. 빈데도 낮짝이 있지 주님께서 실망하시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그러나 요한일1:9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번 몇번이라도 죄를 고백하고 깨끗케 씻음받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입니다. 더러워진 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주님께 숨김없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베드로다운 말입니다. 조금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고 우기더니, 이제는 온몸을 씻어 달라고 하네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10절을 자매님들께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는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이번 수양회 주제인 ‘성화’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목욕한자 란 예수님을 믿고 중생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제 우리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거듭남으로 바로 천국으로 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야합니다. 거듭났다고 해서 죄와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전히 넘어집니다. 생각으로 죄를 짓고, 말로 죄를 짓고,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발에 먼지가 묻습니다. 그 발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씻음을 받는 삶이 바로 성화의 삶입니다. 성화는 자신의 힘으로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발을 예수님께 내미는 것입니다. 성화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나를 씻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충성스러운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죄를 짓고 그 죄를 덮으려고 우리아를 전장터에 보내 교살하였습니다. 그의 죄는 참으로 파렴치하고 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지적받았을 때 하나님앞에 나아가 애통히 여기며 울며 회개하였는지 침상이 눈물에 뜰정도라 하였습닏. 다윗은 자기의 죄를 진정으로 애통히 여기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그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왕권까지 보전하여 주셨습니다. 잠언서28장13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 내 발을 내밀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는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면 얼굴의 먼지가 보이듯이, 말씀을 묵상하면 내 마음의 죄가 보입니다. 교만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거짓과 살인 음란한 생각이 보입니다. 그때 우리는 변명하지 말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이것이 제 모습입니다.” “주님, 제 발이 더러워졌습니다.” “씻어 주세요.” 그렇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의 발을 씻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만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열어 주님께 보여 드리는 시간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민도, 끊어지지 않는 습관도, 반복되는 실패도, 주님께 가지고 나갈 때 주님께서 치유하여 주십니다. 저 역시 발에 먼지가 많이 묻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니 돈과 연관된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주 돈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수년전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토양사업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광주시 UPS 사업에 충분한 검토도 하지 않고 투자하였습니다. 이는 토양정화사업이 굴곡이 심하고 불안정한 반면 UPS사업은 안정적이고 꾸준한 사업이 될 것 같아 투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이루지도 못하고 많은 손실을 보고 소송문제까지 뒤집어 썼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회사는 어려워지고 저의 심령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조금만 어려워도 요동치는 불신의 결과요 한번에 큰 사업을 해보고자 하는 욕심과 저의 어리석음의 결과였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었습니다. 죄인이 주님앞에 나갈 염치가 없었지만 주님께 무릎꿇고 주님 주님 하며 신음할 때 주님은 저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주님은 ‘너는 왜 그리 어리숙하고 바보같으면서 욕심도 많냐’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저를 오래 참으시고 꾸준한 생명의 말씀으로 상처입은 저의 심령을 치유하여주시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에 순종하여 새벽기도와 소감쓰기 또 주의 역사에 마음을 들여 섬길 때, 주님은 다시 회사를 열심히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 나의 능력과 행위로 따지면 망도도 몇 번 망하고, 회사를 말아먹어도 몇 번이고 말아먹었을텐데, 주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셨습닏. 주님은 문제를 들고 나갈때마다 수습하여 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며 회삭 안정을 찾고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치열한 삶의 전쟁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뒤에서 비난하며 험담을 잘하였습니다. 사람을 욕하고 나면 시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뒤에서 함께 욕하는 자신이 뿌끄러웠습니다. 이렇게 저의 발은 매번 때마다 더러워졌습니다. 그렇지만 죄인이 주님앞에 더러워진 발과 심령을 들고 나가 ‘주님 제 발과 심령이 또 더러워졌습니다 저를 씻어주세요’ 회개 할 때, 주님은 또 더러워졌냐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마다 그냥 받아주시고 저를 씻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저를 감당하시고 매번 씻어주셨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림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존경하는 목자님들과 은혜스러운 말씀공부와 소감을 나누며 주님앞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드림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신없이 1주일을 살다가 소감을 미루고, 말씀 앞에 신실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할 때 주님은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희철아 흙먼지가 많이 묻었구나 “네 발을 내밀어라”. “내가 다시 씻어 주겠다.” 주님 제가 요즘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사업과 세상소식과 주식소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음을 고백하고 이를 회개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말씀보다도 세상을 더 사랑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씻어주옵소서 저의 심령가운데 거룩한 소원을 더하여 주옵소서 제가 돈과 사업 세상소식보다 주의 말씀을 더 사모하고 주님께 저의 더러운 발을 내밀고 날마다 씻음받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 발을 내밀어라” 실패했습니까? 또 넘어 졌습니까? 그래도 예수님께 나오십시요! 예수님은 오늘도 대야를 놓고 기다리십니다. “네 발을 내밀어라.”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나의 발을 내밀고 씻음받는 사람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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