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마태복음 20강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말씀/ 마태복음 13:1-23 요절/ 마태복음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장에서 저자 마태는 예수님의 8가지 비유를 기록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입니다. 천국의 시작이요, 기초가 되는 마음 밭의 비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천국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마음 밭이 되도록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집에서 다시 바닷가로 나가셔서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큰 무리들에게 뱃머리를 강단 삼아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어느 이른 봄날 씨뿌리는 자가 씨를 가득 가지고 나가서 밭에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씨는 각각 네 종류의 밭에 떨어졌습니다. 더러는 길가,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 더러는 가시떨기, 더러는 좋은 땅입니다. 씨앗 자체에는 무한한 열매를 맺을 놀라운 잠재력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이 찬란한 결실이 될지 허무하게 사라질지는, 씨앗이 떨어진 '밭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딱딱한 길가 밭`에 떨어진 씨앗은 심겨지지 못해 나뒹굴다가 배고픈 새들이 와서 날름 먹어버렸습니다. `흙이 얇은 돌밭`은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렸습니다. `가시떨기`는 어느 정도 자랐으나 가시가 더 왕성히 자라서 기운을 막음으로 결국 결실치 못했습니다. `좋은 땅`은 결실한 땅으로서, 어떤 것은 100배, 어떤 것은 60배, 어떤 것은 3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4가지 밭은 `크게` 열매 맺는 밭과 열매 맺지 못하는 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9절에 보면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 차이는 바로 들을 귀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귀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귀 있는 자’는 누구일까요? ‘귀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영적인 깨달음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10절에 보면 제자들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알고자 예수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11절을 일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비밀'이란 사전적으로 남에게 감추어 알리지 않는 것으로, 허락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은혜와 진리, 부활과 영생, 이 모든 귀한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비밀을 통해 우리에게 거듭남과 천국을 알게 하십니다. 또한 천국의 비밀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택함받은 자들에게 계속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듣고자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뻔한 이야기, 이미 다 아는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매년 수양회에서 십자가 메시지를 들어도 예수님께서 끔찍하게 죽으셨다는 이야기 정도로만 들립니다. 성경 전체도 그저 똑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권면 정도로만 들립니다.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한 절 한 절을 의미 있게 듣지 않을 때 천국의 비밀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는 영적으로 없는 자는 자신이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있는 자’와 ‘없는 자’입니다.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이처럼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있는 자가 더 받아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영적 원리입니다. 말씀의 비밀을 더욱 풍성히 얻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더 큰 은혜와 더 큰 소망을 얻게 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갈수록 풍성해지고,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은 갈수록 빈곤해집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는 있으나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말씀을 듣고는 있으나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마음이 완악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시대는 달라도 사람들의 마음은 동일하게 완악했던 것입니다. 15절 상반절의 '완악하다'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살이 쪄서 비둔해진 상태'를 뜻합니다. 즉, 세상의 사상과 자기 생각으로 마음이 살찌고 영적으로 둔해져 무감각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적인 사고와 자기 고집으로 영적인 감각을 잃으면 마음은 점점 완악하고 완고해집니다. 이렇게 완악해진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제자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으로써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증거하시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깨닫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 천국 복음의 비밀을 듣고 보기를 원하였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천국 복음을 보고 들었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도 제자들이 보고 들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보고 듣는 것은 바로 천국의 메시지이자 천국의 비밀이며, 예수님께서 직접 선포하시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이 특별한 복을 소유한 사람은 바로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있다면, 이미 천국의 비밀을 아는 특별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옆에 계신 분에게 “특별한 복을 받으셨습니다.”라고 인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는 사람이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18~23절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3~8절)에 등장하는 네 가지 마음 밭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첫째, 길가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려진 자요.”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19절은 4절 비유에 대한 해석으로, 천국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 악한 자(4절의 ‘새들’)가 와서 길가처럼 딱딱한 마음 밭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 간다고 하십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은 딱딱하고 굳어진 땅입니다.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은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이다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면 말씀이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무신론적 사상을 따라가면 말씀은 역사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완고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한 마음 때문에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단은 더욱 근본적입니다. 그 배후에는 악한 자, 곧 사탄이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배후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성경공부를 했더라도 마음 깊이 역사하는 말씀이 있어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나 교만과 편견과 불신으로 말씀을 튕겨 내면 사탄은 그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새가 곡식을 쪼아 먹으면 그 씨앗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듯이, 빼앗긴 말씀은 더 이상 사람 안에서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이 영접한 말씀이 있어야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나는 왜 이리 믿음이 자라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생각하던 중 19절 말씀을 통해 자신이 말씀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말씀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변화되어 은혜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치열한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악한 자 사탄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이 싸움의 승패는 말씀을 받고 지키느냐 아니면 빼앗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에 반응이 없으면 사탄이 빼앗아 갑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 한가운데 있음을 알고 겸손히 기도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천국의 비밀을 깨닫고 말씀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둘째, 돌밭입니다. 20절과 21절을 보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5~6절 비유에 대한 해석입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을 때 곧바로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21절 하반절에도 ‘즉시’, ‘곧’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즉시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박해를 받으면 곧바로 넘어지는 신앙인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말씀을 귀로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나아갔기에, 길가와 같은 마음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모습입니다. 말씀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한 고난도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옮겨 가도록 도전합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이 훼손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다 보니, 박해나 환난이 오면 신앙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고난이 올 때 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말씀을 잠시 받아들이더라도 말씀으로 인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고 맙니다. 이 비유는 바로 그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말씀도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그 능력을 체험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바위 같은 마음이 깨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끝까지 붙들고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릴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셋째, 가시떨기 밭입니다.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 말씀은 7절 비유에 대한 해석으로,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세상의 염려로 인해 마음이 나뉘어집니다. ‘염려’의 원어적 의미는 ‘마음이 나누어지다’, ‘분열되다’라는 뜻입니다.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지만 세상의 염려로 인해 마음이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재물의 유혹’이란 풍요로운 물질 속에 숨어 있는 속임수를 뜻합니다. ‘기운을 막다’ 원어의 의미는 ‘목을 졸라 죽이다. ’질식시키다‘ 입니다. 가시가 얼마나 날카롭게 찔러대는지 숨이 막혀질식해서 죽게됩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마음에 품기도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신앙인이 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염려거리는 끊임없습니다. 꼴등도 염려에 시달리지만, 1등도 염려에 시달립니다. 재물의 유혹은 많은 돈을 벌어서 마음껏 누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겠다는 욕심입니다. 이는 하나님 사랑이 아닌 세상 정욕에서 비롯됩니다. 주변에서 누가 어디서 투자해서 얼마 벌었다네 하는 소리를 듣고 돈을 벌고자 하는 욕심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런 염려가 가시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찔러댑니다. 가시가 드세게 자라셔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집니다. 말씀의 공급을 막고 차단시켜 영적인 성장을 막아버립니다. 결국 시험과 올무에 빠져 영적인 힘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이럴 때 마음이 어두워지고 낙심하는 것을 말씀의 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디.전 6:9,10,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말씀의 생명력을 질식시키는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먼저 차지하도록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공부를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는 가시를 제거하여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힘 있게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넷째, 좋은 땅입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3절은 8절 비유에 대한 해석입니다. ‘좋은 땅’은 천국 백성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순종하면 말씀의 놀라운 생명력으로 인하여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저희 안에 믿음이 좋으신 목자님들 대부분 과거 심각한 죄인들이었습니다. 딱딱하고 돌덩이 가득하고 온갖 가시로인해 고통당하던 영혼이었습니다. 그런데 꾸준히 말씀을 들으며 마음을 갈아 엎다보니 영적으로 풍성한 천국 비밀을 갖게되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는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천국이 확장됩니다.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면 회개하고 죄 사함과 구원을 받습니다. 말씀의 놀라운 생명력을 통해 변화됩니다.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에 가득하여 기쁨이 충만하고,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이처럼 천국 백성에게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은 열매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으며 영적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좋은 땅이 되어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고, 듣고,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사역하던 이태석 신부의 삶이 남수단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이분이 의사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곳에 가서 섬기고자 내전과 가난으로 고통하는 남수단에서 나병환자들과 어린이들을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사랑과 섬김의 열매를 몸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이분은 말씀과 의술과 음악으로 섬기다가 47세에 대장암으로 소천했습니다. 짧은 삶이지만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으로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세운 허름한 학교에서, 6년 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들은 의사가 되어서 한센인 마을로 봉사 진료를 나섰습니다. 주민이 60명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환자가 300명이나 몰려왔고,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밥을 굶어가며 진료했다고 합니다. 영화 <울지 마 톤즈>를 통해 '아프리카의 슈바이처'라 불린 그의 삶은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스승의 뒤를 이어 사랑과 희생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40년 전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제 마음 가운데 뿌려졌습니다. 혼돈과 흑암 가운데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제 심령에도 말씀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저는 어둠과 정죄의식에서 벗어나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고,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인도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나미비아와 짐바브웨로 보내셔서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양들의 문제와 많이 싸웠습니다. 양들의 교만과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고, 제가 애써 섬긴 양들이 하나둘 떠날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애썼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말씀을 통해 먼저 제 마음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저 안에 있는 교만과 불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의 돌, 다른 사람에게 섬김받고자 했던 마음의 돌을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불신과 불평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말씀 앞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가 변화되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양들도 함께 회복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제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결국 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변화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종로2부 책임목자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부르심 앞에서 제 마음에는 큰 부담이 있습니다. 짐바브웨에서 1년 더 연장하여 사역할 수도 있었기에, ‘조금 더 그곳에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세미한 음성으로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여호수아 1장 7~8절 말씀을 통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강하고 극히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의지해야 할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제 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동역자들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에게서 힘과 지혜를 얻으려고 하기보다 제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위로와 용기와 힘과 지혜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씨가 제 마음에 뿌려졌을 때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변화시키셨던 것처럼, 제가 날마다 말씀을 진실하게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제 안에 믿음과 생명의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능력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먼저 말씀 앞에서 제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여 마음의 완고함을 깨뜨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돌과 같은 마음은 말씀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깨뜨려야 합니다. 또한 가시에 찔려 물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말씀을 꾸준히 듣고 순종함으로 유혹을 이겨 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선하고 착한 마음과 인내로 풍성한 열매 맺는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