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26년 마태복음 21강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태복음 13:24~58)2026-08-26 18:03
작성자

마태복음 21강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말씀: 마태복음 13:24~58

요절: 마태복음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지난 강의에서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배웠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씨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밭이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성경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찰스 스펄전은 청중들에게 이런 취지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말씀을 잘 전하는지 판단하려 하겠지만,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겸손히 말씀을 듣고 깨닫고자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유익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좋은 마음밭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뿌리시는 좋은 씨, 곧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1. 가라지의 비유


24-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것으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기는 하지만 앞의 비유와는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한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좋은 씨를 뿌렸기 때문에 그 씨로 부터 좋은 곡식이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곤히 잠을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습니다. 여기서 가라지는 독보리의 일종으로 '가짜 밀' 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논에 나는 '피' 와 같은 것이지만 싹의 모습이 밀이나 보리와 아주 흡사하여 실제로 이삭이 패기까지는 식별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 독보리는 사람이 실수로 먹으면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고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싹이 나서 자라 결실할 때가 되자 가라지가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종들은 이를 보고 주인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7) 그 가라지는 원수가 뿌린 것이었습니다. 좋은 씨를 뿌렸다면 좋은 곡식만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가라지가 나왔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허락먀 한다멘 당장 가라지를 뽑겠다는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29, 30절을 보십시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종들은 가라지로 인해 농사를 망칠까 염려하는데, 주인은 종들이 가라지를 뽑겠다고 설치다가 농사를 망칠까 염려합니다. 이 비유에 대해 36-43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그 뜻을 설명하여 주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이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비유에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게 됩니다. 곧 마지막 날에는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낼 것입니다. 천사들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게 됩니다. 그들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한편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43).


그러면 이상의 가라지 비유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무엇입니까?


첫째,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악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죄와 악이 없고 선만 존재하는 세상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곡식보다 가라지가 훨씬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본문에서도 원수가 하나님의 아들들을 상징하는 곡식 위에 가라지를 덧뿌렸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선했지만 인류의 원수인 사탄이 악을 뿌렸습니다. 이로 인해 의인과 선인들이 고통받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조차 사용하여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이를 통해 의인들이 인내를 배우고 연단된 인격을 갖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는 더 이상 악이 없습니다. 그때 의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악을 없애는 것보다 선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가라지를 빨리 뽑아버리지 않고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곡식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라도 잘못 뽑혀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악, 특히 교회 안의 악을 빨리 없애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악을 없애려다 보면 오히려 선한 사람들이 다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정의를 세운다는 이름으로 행한 교회의 징계가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을 보며 ‘가라지 아닌가?’ 생각하는데, 저 사람도 나를보며 ‘가라지 같은데…’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생각해도 내가 가라지인가 곡식인가 햇갈리기도 합니다. 죄는 사람을 속이고, 우리도 얼마든지 잘못 판단할 수 있기에 교회는 항상 신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교회 안의 악을 성급하게 다루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악을 분명히 분별하고 미워하되, 악한 사람에 대해서는 인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는 데 힘쓰기보다 곡식을 잘 가꾸고 선한 역사를 이루는 데 힘써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까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드러내십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인내와 겸손, 기도와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마지막 때에는 가라지의 정체가 드러나고 악인은 심판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는 말씀과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있는 반면, 인간 중심의 생각과 세속주의도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어렵듯이 참된 복음 신앙과 잘못된 신앙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둘 다 훌륭한 신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복음 신앙은 의와 생명의 열매를 맺지만, 십자가 없이 은혜만 누리려는 신앙은 결국 사람을 병들게 합니다. 악한 것은 결국 악한 열매를 맺으며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마지막 때에는 천사들이 가라지와 곡식을 정확히 구별하여 가라지는 불에 던집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며 수고했던 우리 목자님들의 얼굴도 그날에는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고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 모든 것을 부풀게한 누룩


31-32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겨자씨는 갈릴리에서 볼 수 있는 씨앗 가운데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씨앗이 땅에 심겨 자라면 사람 키보다 큰 관목이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어 쉽니다.


천국복음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한 말씀을 심는 것은 너무 작아 보입니다. 한 팀의 일대일 성경공부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 번의 기도, 한 번의 심방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겨자씨 속에는 천국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알의 겨자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작다고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우리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한 말씀이 그 심령에 심겨지만 그 안에 있는 말씀의 생명이 창조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무기력했던 중풍병자와 같은 자가 일어나 걷게 됩니다. 광풍같이 요동하던 심령에 잔잔한 평안이 임합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스스로의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심령에 자유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겨자씨의 생명력을 믿는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나 한 사람이 겨자씨처럼 자라 큰 나무가 될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내가 섬기는 한 영혼도 우리 공동체 안의 귀한 형제 자매들도 장차 이 시대의 거목으로 자랄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의 놀라운 생명을 전하는 겨자씨처럼 작게 여겨지는 한 번의 기도, 한 번의 심방, 한번의 일대일을 귀하게 여기고 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심은 작은 겨자씨에 생명을 주시고 크게 자라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가 ‘작음’의 문제라면 누룩은 ‘보이지 않음과 기다림’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누룩’을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날에는 주로 가루 효모(이스트)를 사용하지만, 고대에는 발효된 반죽 조각을 남겨 두었다가 새 반죽에 넣어 발효시켰습니다. 온도나 습도 등 조건에 따라 적게는 4시간 많게는 24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라지피자 60판을 만들 수 있는 많은 양 입니다. 누룩을 넣었울 때, 처음에는 아무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전부를 부풀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이는 시편 78편에 나오는 아삽이 한 말씀입니다. 아삽은 선지자였고, 자신이 계시 받은 말씀을 노래로 지어 백성들도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가 돌아본 이스라엘의 역사는 실패의 연속처럼 보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계속 반역했고, 사사시대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아삽은 그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시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도 바로 이런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하고 무너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겨자씨는 자라고 누룩은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당시에는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이 거세고, 로마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복음은 로마까지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보기 시작하면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겉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쉽게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약속을 따라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가지 비유를 통해 낙심하기 쉬운 제자들에게 바로 이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마지막 때를 강조하십니다. 세상 끝에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불에 던질 것입니다. 지금은 악이 강해 보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받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43절을 읽어 봅시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도 인정받지 못하고, 때로는 조롱과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에는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44절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십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하며 돌아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45, 46절에서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천국은 가라지가 있어서 힘들고, 겨자씨처럼 작아서 초라해 보이고, 누룩처럼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붙들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만이 결국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보화입니다. 47-50절의 그물 비유는 세상의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그물 안에 있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나누어집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가라지, 겨자씨, 누룩, 보화와 진주, 그물.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비유들은 모두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그러하오이다.” 이 시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비유 말씀을 배운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3.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학생을 평생 학생으로 남겨두려는 학교는 없습니다. 학교의 목표는 졸업입니다. 졸업 후에는 직장인이 되고 한 가정을 이루며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평생 학생으로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5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여기서 중요한 말이 “그러므로”입니다. 무엇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천국의 비유를 깨달았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이다.” 말씀하십니다. 


서기관은 단순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백성들의 현실을 해석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서기관의 모습은 부정적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많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를 보게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대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서기관들을 세우십니다. 단순히 성경을 많이 아는 서기관이 아니라 천국복음으로 현실을 볼 줄 아는 서기관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집주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집주인은 곳간의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한 때에 곳간을 열어 새것과 옛것을 꺼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곳간을 열어주셨습니다. 곳간이라고 하니 생소하고 낯섭니다, 메세지 성경에서는 이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다시피, 하나님 나라의 훈련을 잘 받은 학생은 마치 편의점 주인과 같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면, 신상품이든 재고든 꼭 필요한 때에 척척 찾아낸다.” 편의점 알바 해보신 분들, 귀에 쏙 들어오시나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가라지 때문에 낙심한 사람에게는 마지막 추수의 말씀을 꺼내 줍니다. 자신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겨자씨를 꺼내 줍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가 없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누룩을 꺼내 줍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꺼내 줍니다. 악이 이기는 것 같아 낙심하는 사람에게는 마지막 그물을 꺼내 보여줍니다. 얼마나 풍성합니까?


그렇다고 천국의 서기관은 모든 문제의 답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곳간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때에 예수님께 배운 말씀을 꺼내어 자신에게 적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이 있어 모를 때 물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모두 천국의 제제된 서기관들로 부름 받은 줄 믿습니다. 천국 곳간의 관리자로 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어지는 나사렛 사건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새롭게 볼 수 없었습니다. 천국의 서기관의 반대는 이처럼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여 겸손히 배우지 않고 말씀으로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가라지만 보이고, 겨자씨처럼 작고 미미한 현실 만 보이고,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밀가루 반죽으로 인해 현타가 오고 낙심이 되십니까? 밭에 감추인 밭을 사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만 보여 부담이 됩니까?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천국을 볼 수 있는 천국의 서기관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말씀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어 낙심한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