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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11강 (계시록 11장)2017-03-1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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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1강

11장은 10장에 이어서 말씀을 받아먹은 사명인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교회와 사탄과의 영적 전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12-14장으로 이어집니다. 

1,2절. 두루마리를 받아먹도록 말씀하신 이후에 이번엔 지팡이와 같은 갈대를 주시면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십니다. 성전을 측량하라는 것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성전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측량하도록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그 에스겔이 보았던 에스겔 성전은 실제 세상에서 실현되지 않은 성전이었습니다. 그것은 말일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었는데 그것과 본문의 성전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에스겔이 받아먹었던 책과 요한이 받아먹은 책이 연결되듯이 성전도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흔 두 달은 3년 반입니다. 3절에 나오는 천이백육십 일도 3년 반입니다. 이는 12:14에 가면 한때 두때 반때로 나옵니다. 이는 전부 단12:7에 나오는 ‘한때 두때 반때’에서 차용한 말입니다. 다니엘서 문맥에서 이 기간은 종말로 치닫는 종말적 기운이 충만한 특정한 기간을 가리킵니다. 요한은 이 때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초림은 종말의 시작이며 재림은 종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을 세대주의에서는 실제 3년반이라고 해석하지만 144,000이나 2만만이 실제 숫자가 아니듯이 이것도 그렇게 보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마흔두 달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받는 기간이며 마지막 시련의 시기라고 봐야 합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에는 성전은 이미 무너지고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측량하라고 하시니 이것이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요 비유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 혹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측량되는 부분은 이방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구역이고 측량되지 않는 구역은 이방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곳입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 안은 철저하게 보호를 받고 그 밖은 처절하게 심판을 당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이 결코 유린당할 수 없을 곳으로 보았던 시온성 예루살렘도 유린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지켜주십니다. 

이런 보호하심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두 증인의 삶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십니다. 증거가 효력으로 확정이 되려면 두 명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증인을 한 명으로 세우시지 않고 두 명으로 세우셨다는 것은 그들을 통해 증거 되는 예언의 말씀이 거짓이 아니며 확증된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치 마28장과 막16장에서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회개하던 구약 백성들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증인들은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를 느끼며 회개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증인의 삶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십니다. 교회가 생존하며 어려움을 겪는 그 같은 기간 동안 예언 사역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생존 = 예언 사역’입니다. 

예언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누구라고 하십니까? 4절.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십니다. 이는 슥4장에 나오는 순금등잔대 환상과 비슷합니다. 순금등잔대가 있고 양쪽으로 두 감람나무가 있어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어 등잔대에 불이 빛나는 환상이었습니다. 그 두 감람나무는 당시 이스라엘의 개혁과 부흥을 이끌던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를 상징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두 증인이요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두 촛대라고 함으로서 1장에서 나오는 일곱 교회를 촛대로 말씀하신 것과 연관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5,6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라고 하십니다. 두 증인의 역할과 권세를 얘기하면서 구약의 엘리야와 모세를 끌어다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이 나온 것이나 하늘을 닫은 것은 엘리야가 한 일입니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한 것은 모세가 한 일입니다. 그것은 전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불신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낸 그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이처럼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환난 속에서 타협과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교회가 여럿 있었음을 우리는 앞에서 보았습니다. 두아디라, 버가모 같은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니골라당이나 이세벨과 타협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로마제국과 세상을 향해 모세와 엘리야처럼 살게 하실 권세를 하나님은 주십니다. 예언을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7절.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올라온다고 말씀합니다. 두 증인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고 그들을 이기며 죽인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로 철저하게 보호를 받았던 그들이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안타깝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그 증언을 마칠 때에’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증언을 다 하기도 전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의 사명을 다 감당하지도 않았는데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할 사명과 역할을 다 하고 죽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이 얘기한 것처럼 사명인은 그 사명을 마치기 전에는 죽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습니다.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고 애굽입니다. 요한은 상징적인 단어를 가져다가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애굽이면서 동시에 주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곳이라고 말합니다. 어디를 말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극심한 윤리적 신앙적 타락을 보이는 세상 한 복판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모든 나라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본다고 말합니다.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시체를 오랫동안 보고 장사도 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의 개념 속에서 가장 수치스런 일을 당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맞습니다. 두 증인은 사흘 반 동안 수치를 당합니다. 사람들은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마음껏 조롱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 역시 치욕을 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13장에서 본 것처럼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 삶은 삼 일 반이 전부입니다. 11절.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말합니다. 겔37장이 생각나실 것입니다.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생기가 임했을 때 그들은 크고 거룩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리는 데 ‘이리로 올라오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에녹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의 원수들은 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구경만 할뿐이었습니다. 누가 이긴 것입니까? 짐승이 이긴 것입니까? 땅에 사는 자들이 이긴 것입니까? 

13절.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었습니다.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고 말씀합니다. 매우 중요한 교훈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땅의 사람들은 사분의 일의 재앙을 당하고 삼분의 일의 사람이 죽어도 회개하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귀신을 찾아가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런데 두 증인이 죽고 부활한 다음에 재앙이 일어나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의 삶은 살아서는 예언하고 권세를 발휘함으로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고 죽어서는 그 영향력으로 남은 자들을 회개시켰으니 그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영화로운 것입니까? 하나님은 바로 교회의 가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두 증인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14,15절. 지금까지는 여섯째 나팔 재앙에 따르는 일들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나팔에 따르는 일을 보여줍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힘차게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났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늘의 찬송은 4장부터 생물들, 혹은 장로들, 혹은 천사들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였습니다. 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본 찬송은 한 단계 더 나아갔습니다. 그의 손에 의해 구원과 심판을 받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됩니다.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로마황제가 세상 나라 위에서 왕 노릇했을 수도 있습니다. 맘몬이, 아볼루온이 왕 노릇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세세토록 왕이 되십니다. 그 왕권은 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십 사 장로도 같은 내용의 찬송을 드리며 경배를 합니다. 17절 하반절에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고 노래합니다. 왕이신 주님은 분노하는 이방들에게 진노를 내리시고 심판하시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가 누구든지 상주십니다. 이런 찬송과 함께 19절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인다고 말씀합니다.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등극하시며 임재하시는 모습입니다. 갈수록 재앙과 핍박도 심해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와 등극하심도 더 가까워집니다. 우리도 종말의 재앙 속에서 왕으로 등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장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증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증인의 역할을 하고자 할 때 교회는 언제나 죽음의 수치와 부활의 영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승리하심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십니다. 교회 공동체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적대적입니다. 종말의 때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재앙으로도 회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인들의 순교와 영향력이 그들이 회개하는 데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가 종말의 때에도 증인으로서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