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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6년 요한계시록 특공대 19강 ( 계시록 19장)2017-03-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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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9강

19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1-10절은 할렐루야를 외치는 이유, 11-16절은 예수님의 승리를 따라가는 성도들, 17-21절은 짐승과 추종자들의 멸망입니다. 

우리는 18장에서 바벨론의 멸망이 그에게 빌붙어 살던 자들에게는 통곡을 가져왔지만 바벨론의 박해를 받았던 성도들에게는 기쁨을 가져왔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19장에는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기뻐해야 할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가 나옵니다. 

I. 할렐루야를 외치다(1-10)
바벨론이 한 시간에 망하는 것을 요한이 보고 있을 때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들렸습니다. 1절 하반절.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니 할렐루야였습니다. 바벨론을 의지해서 사는 자들이 승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벨론이 강력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와보니 하나님이 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를 구원하시고 그를 대적하는 자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시니 할렐루야였습니다. 

2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습니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음녀를 심판하여 의로운 종들의 피 값을 갚아주시는 것이 의롭습니다. 공의대로 구원과 심판을 행하시니 할렐루야입니다. 

4절. 4,5장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을 찬양하던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보좌에서 음성이 나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이제 6절에서 네 번째 할렐루야가 들리면서 우리가 크게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7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날이 가까이 왔고 아내의 준비가 끝났으니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들, 곧 성도들, 교회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성도들을 향해 ‘신부’라는 말 대신에 ‘아내’라는 말을 쓴 것이 인상적입니다. 신부도 맞지만 아내도 맞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찍이 신부로 택함을 받았고 그 사실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정혼기간에 있는 신부도 아내인 것처럼 잔치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내입니다. 이제 잔치를 하는 것은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택함을 받았지만 준비는 덜 되었었나 봅니다. 8절을 보면 아내에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이 됩니다. 우리나라 전통혼례에서 신부가 고운 비단 색동옷을 입고 족두리를 쓰듯이 윤기가 흐르는 실크 세마포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서 부연하기를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인내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에 옷을 빨았습니다. 그와 함께 다녔습니다. 열심을 내어 회개하였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고 바벨론에서 나왔습니다. 그 행실이 그로 하여금 아내로 준비가 되게 하였고 세마포 옷을 입을 자격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택하실 때 약속하신 대로 드디어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9절. 천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니 기록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일찍이 복음서에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마22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어떤 임금이 혼인 잔치에 백성들을 초청한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혼인 잔치 자리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바깥 어두움으로 쫓겨나는 내용이 나옵니다. 혼인 잔치는 기쁜 자리이지만 예복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들의 예복이 준비되는 기간으로 종말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종말은 선악 간에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택함 받은 성도들이 혼인 예복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그냥 성도들을 유혹하며 대적하던 상대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성도들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결국 교회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예비 되도록 사용된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혼인 잔치에 들어갈 백성답게 되도록 바벨론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로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바벨론은 우리의 현주소, 영적 위치를 늘 알려줍니다. 바벨론은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갈망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은 중간에 변사또가 끼어 있었기 때문에 더 깊고 더 애절하고 더 지고지순한 것이 된 것입니다. 나중에라도 춘향이는 변사또를 미워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몽룡 서방님과의 사랑을 더 돈독하게 해 준 대상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종말의 때에 우리에게 바벨론 같은 대상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만 없다면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있기에 내가 어린 양 혼인 잔치에 세마포 옷을 입은 아내로 준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종말의 때에 내게 필요하기에 바벨론을 세워두셨고 또 때가 되면 한 시간 안에 무너지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자신을 어린 양의 아내로서 끊임없이 준비시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II. 예수님을 따라가며(11-16)
11절. 요한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보는데 백마와 그것을 탄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고 합니다. 이는 변함이 없는 신실함과 진실함으로 충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고 말합니다. 그는 당연히 백마 타고 오시는 왕자님, 우리를 포함한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눈은 불꽃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습니다. 이 관은 승리를 상징하는 면류관입니다. 그에게 이김이 있습니다.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는데 자기밖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소유하고 계신 분임을 의미합니다. 
13절.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옷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피가 뿌려진 옷’이란 그의 대속적 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지만 본문의 흐름상 대적하는 자들을 밟아서 그들의 피가 옷자락에 묻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요한이 요1장에서 말했던 로고스이신 하나님, 성육신하셔서 낮은 곳으로 오신 그 분이 이젠 세상을 정복하는 백마 탄 기사가 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 뒤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따릅니다. 천사들도 있고 144,000처럼 택함 받은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잘 준비된 신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그들 옷에는 대적자들의 피가 안 튀겼습니다. 싸움은 앞에서 신랑 되신 예수님이 다 하시고 그들은 실제 하는 것이 없고 따라만 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데 그들도 백마를 탔습니다. 신부는 신랑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15절을 보면 신랑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그 검으로 만국을 칩니다. 만국은 그의 말씀 앞에서 저항하지 못합니다. 그는 철장으로 다스리십니다. 왕이 통치 방망이를 휘두르면 만국은 그 앞에서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사정없이 밟습니다. 그 밟는 옷과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는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세상 전쟁에서는 지휘관이 ‘전부대원은 돌격 앞으로, 후퇴하는 자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나가야 하고 인생이 어찌될지 한 치 앞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부대원은 나를 따르라’ 입니다. 그가 입에서 나오는 검과 철장을 들고 앞장 서셔서 대적하는 것들을 다 밟아버리십니다. 1,2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탱크 뒤였습니다. 탱크가 다 밟고 부서트리고 총알을 막아주면서 가니 그 뒤만 잘 따라가면 그냥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근본적으로 내가 앞장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앞에 서시면 우리가 뒤 따라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그는 우리를 사랑하는 신랑이기 때문입니다.  

III. 짐승의 최후(17-21)
이 부분은 신랑과 신부가 베푼 피로연장을 연상시킵니다. 백마를 탄 신랑과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가 주관하는 피로연장이 어떠합니까? 17절. 한 천사가 공중에 나는 새들을 향해 큰 음성으로 외칩니다.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먹으라” 먹을 게 정말 많은가 봅니다. 18절을 보니 근사한 뷔페가 차려졌는데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자들의 살과 자유인이나 종이나 작은 자가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입니다. 각종 살코기 뷔페로 피로연이 준비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피로연장의 살코기가 되지 않은 자들이 신랑에게 대듭니다. 19,20절.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에게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앞에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며 각종 이적을 행하던 짐승, 그리고 그를 경배하도록 미혹하며 표를 받도록 했던 두 번째 짐승, 여기서는 그의 정체가 거짓 선지자임을 말합니다. 그들이 드디어 함께 잡혔습니다. 도심을 어지럽히며 뛰어다니던 멧돼지를 잡는 것처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어서 피로연장의 살코기가 됩니다. 유황불 붙는 못은 ‘불못’이라고도 하는데 둘째 사망, 곧 영원한 심판을 받는 장소입니다. 나중에 용도 이곳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영원이 결정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피조물의 최후 종착지입니다. 18장에서 바벨론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19장에서는 두 짐승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이제 20장에서는 용, 곧 사탄이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그 백성을 아내로 묘사합니다. 본문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위치해야 할 자리가 어린 양의 아내의 자리요 신랑의 뒤를 따르는 신부의 자리임을 가르쳐줍니다. 종말의 여러 환란은 우리가 신부로서 준비되도록 역할을 해주는 하나님의 선하신 도구입니다. 그러니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은 신부가 되기까지 옳은 행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