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회

제목2019년 종로II_북악 여름수양회 1강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 (요한복음 3:16 ~ 21)2019-07-04 12:25
작성자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


말씀 요한복음 3:16 ~ 21


요절 요한복음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안녕하십니까. 오늘 개회 말씀의 제목은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요절 말씀인 요한복음 3장 21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개회 메시지를 섬기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입을 주장하셔서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하고, 빛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이 다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영화 ‘기생충’을 보셨습니까? (공감이 되셨나요?) 저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요. 이 영화가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그 이유는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성경 말씀은 어떨까요?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은 한 시대를 넘어서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듯이 성경에도 말씀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수양회 기간 동안 이것을 깨달아가고 마음으로 영접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다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세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란 ‘유일무이한 자’라는 뜻으로, 다른 어떤 것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고,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구별된 자를 가리킵니다.

제 일대일 목자님은 서애란 목자님입니다. 목자님의 첫째 아들은 서기드온 입니다. 제 허물과 죄로 인해서 목자님의 첫째 아들 서기드온이 희생 제물로 바쳐진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절대 있어선 안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유일무이한 아들 예수님이 세상의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정도로 세상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하시는 걸까요? 17, 18절을 보십시오. 17, 18절을 형제, 자매 순으로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 받은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님은 멸망에 놓여 있는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입니다. 그 빛 되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자기 행위가 악해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빛을 피할 뿐만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빛이 왔는데도 어둠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심판 받은 증거입니다.


20절 말씀에서는 악한 자가 빛으로 나아오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의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악한 자는 자기의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둠을 사랑하는 세상은 은밀하게 악한 것을 행하고, 정죄 받지 않을 명분을 만들어내고, 아닌 척 거짓말을 일삼고 속이고 감추고자 합니다. 진리의 빛으로 나오면 악한 것이 더욱 대비되면서 수치스럽고 두렵고 죽을 것 같기 때문에, 악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 숨고자 합니다.


반대로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다 함께 읽겠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거룩한 빛으로 나아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힘만으로 빛 가운데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자기 힘만으로 어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된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십니다.


우리의 내면도 드러날까 두려워 나아오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주인을 스스로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책임지는 삶을 살아갈 때, 드러날까 두려워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이혼이었습니다. 제가 10살이었던 때에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저는 조부모님 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양육권을 아버지께서 가져가셨지만, 조부모님 댁에 맡겨진 후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렸던 저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에게 사소한 것으로 자주 혼났고,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 없이 지적받을 때마다 무엇을 잘못한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는 부모님이 그리웠습니다. 자꾸 비교되는 과거와 현재로 인해 집은 무섭고 가기 싫은 곳으로 인식이 박혀버렸습니다. 한마디 말을 하면 또 상처받을까봐 집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 없이 자란 아이로 비춰지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서 부모님의 이혼이 저의 약점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끼리 대화할 때 우연히 나오는 부모님과 관련된 대화에도 저는 가정사를 들키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안고 거짓말을 해가며 그럴싸하게 대답하곤 하였습니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공란으로 있는 부모님 인적사항이 제게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창피와 수치였습니다. 군대를 갈 때는 찾아와줄 부모님이 없다고 생각해서 군대 가기를 싫어하였고, 결혼도 식장에 나란히 설 부모님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고자 생각하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점점 운명주의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고, 왜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으며, 내 잘못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마지막엔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어느 물음에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없어 인생이 절망스러웠습니다. 한심스럽고 비참해서 방에서 이불을 덮고 울부짖은 적이 많았습니다. 깊은 슬픔 후에는 극도의 허무함을 느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저는 인생의 아무런 소망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남들 하니까 나도 하고,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산다는 생각으로 속은 병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갔습니다.


그랬던 제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고 확실하게 느꼈던 시기는 2012년 여름수양회 때였습니다. 일대일 성경 공부를 시작으로 여름수양회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느끼고,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과 함께 회개의 심정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 이후로 그 동안 받았던 아픔과 상처들을 하나님께 들고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나도 하나님 안에서 치유 받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 고통하고 싶지 않은 소원이 가득하였습니다. 결국 소감을 통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이야기들을 하나님께 들고 나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을 남남처럼 생각하고, 불행해지기만을 바라는 죄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게 하시고, 죄인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말씀의 힘과 위로를 동시에 주셨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얻고 평안해지고 감동이 있을 때, 부모님의 이혼 문제가 더 이상 저를 옭아매는 상처와 슬픔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불쌍히 바라보시는 눈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저도 똑같이 가족들을 그런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머물러 있던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이후로 하나님은 저를 계속해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빛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생명의 말씀을 깨달아나갈 때, 말씀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을 통해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알려주시므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말씀을 통해 군 광야 훈련을 기쁨으로 감당케 하시고, 죄인의 마음을 찢어 넓히셨습니다. 그리고 제 평생에 요절로 삼게 하신 창세기 17장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말씀을 통해 도저히 품을 수 없을 것 같은 한 영혼을 온전히 품케 하셔서 죄인에게 위로와 비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영접한 이후로 인생을 돌아볼 때, 하나님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멸망과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자를 이제는 여름수양회 메신저로 세우셔서 진리를 따르도록 계속 도와가십니다. 고통 하는 죄인의 삶을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어두운 인생 문제를 해결하시고, 지금은 저를 친히 돌보시므로 비전과 소망 가운데 인도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제가 진리를 따르며 하나님께서 원하는 뜻을 좇아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빛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수양회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을 물리쳐주시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한복음 말씀을 통하여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기까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인생 가운데도 빛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멸망할 수 밖에 없던 인생을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양회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빛 되신 예수님께로 나아와서 충만한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