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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창세기 14강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창세기 21:1,2장)2019-06-23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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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세기 14강




약속대로 이삭을 주신 하나님




말씀/ 창세기 20:1-21:34


요절/ 창세기 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마침내 12장에서 아브람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이루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의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19장에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얼마나 죄악된 사람들인지 보았습니다. 동성연애에 빠져 있던 그들은 아이돌 스타같은 꽃미남 청년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롯에게 찾아온 것을 보고 그 청년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롯을 잡아 죽이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자들인지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곳 그랄 사람들도 아리따운 그의 부인을 빼앗기 위해 그를 죽일 위험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말할 경우 유력 인사에게 사라를 빼앗길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 사라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사라를 빼앗기고 홀로 장막에서 밤을 지새우게 된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지금 이 밤에 사라가 아비멜렉에게 당할 그 수모와 수치를 생각할 때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약속의 자녀를 낳아야 할 사라가 아비멜렉의 후처가 되었으니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땅에 떨어뜨린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하나님은 이러한 절대절명의 순간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브라함이 수치심과 절망감, 자괴감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장막 벽에 기대어 고뇌하던 그 시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던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복입니다. 우리가 나의 허물과 실수로 인해 굉장히 난처한 가운데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 때에 신기하게 갑자기 사람의 마음이 바뀌고 상황이 바뀐 것을 경험한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위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여름 수양회 위한 기도 모임 때 시편 121편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엄청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인생길을 살면서 실족하려 할 때에 내 발을 붙들어 주심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낮의 해로부터, 밤의 달로부터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아침에 집밖에 나올 때부터 밤에 집에 돌아오기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켜주십니다. 우리가 늘 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젊은날부터 노인이 되기까지 이 하나님 한 분을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추상같은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이는 내 누이라 하였고 그 여인도 내 오라비라 하여 그는 그렇게 알고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다고 아뢰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줄 알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 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을 들은 아비멜렉은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들, 곧 신하들을 불러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경고의 말씀을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이곳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딱 한 번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던 롯의 사위들은 롯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고 비웃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바로는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점점 더 완악하고 교만해졌습니다. 우리가 몇몇 마음이 완악한 양들을 경험하고 난 후 양들은 다 이와같이 마음이 완악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합니다. 그러나 양들 가운데에는 말씀을 딱 한 번 듣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바로 생기는 양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레 짐작하고 포기하지 말고 이와같이 마음이 준비된 양들을 여름 수양회에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받은 아비멜렉을 인도자로 하여 시작된 새벽 Group Bible Study를 마친 신하들은 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왕의 질문에 만장일치로 아브라함의 아내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에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하였는지 두 번이나 반복하여 따져 물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였다고 답하였습니다. 또 사라는 정말 그의 이복 누이이며 고향을 떠난 날부터 이렇게 하기로 서로 약조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아비멜렉은 알았다고 하고 보상 차원에서 양과 소와 종들을 내어 주었습니다. 또 그의 땅 가운데 아브라함이 원하는 곳에 거할 수 있도록 영주권을 내주었습니다. 또 특별히 은 천개(세겔)를 주어 사라가 받은 수치를 가리도록 하였습니다. 신명기 22:29절을 보면 신부의 지참금으로 은 오십 세겔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일반적인 신부 지참금의 20배를 배상금으로 지불했습니다.




모든 조치가 끝난 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출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과 그의 부인 가운데 자녀를 출산할 수 없는 무슨 질병이나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아비멜렉은 사라를 가까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이 기도했을 때 그러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비멜렉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 편에서 볼 때 아브라함의 속 두려움과 불신자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그는 괜히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해 우상을 섬기던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현몽하여 만나고 그의 신성과 그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불신자들에게 복을 나누어주시는 하나님은 이 시대 우리들을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우리를 통해 불신자들에게 복을 나누어주십니다. 설령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왕같은 제사장으로 쓰십니다. 우리가 이 소망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이번 여름 수양회를 통해 많은 양들을 위한 왕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1: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은 17장에서 사라의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18장에서 “내년 이맘 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실 이 약속의 말씀은 근본적으로 12장에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실 때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와 한 몸인 사라에게도 이 약속의 말씀을 공동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5년이 지난 지금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창세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그 피조물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늘과 바다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특별히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며 땅을 정복하라,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고 대신 자기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바벨탑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붙들고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때가 되어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새로운 삶의 모델로 삼으셨습니다.




인간이 각자 자기가 가진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각자의 바벨탑을 쌓는 삶에는 치열한 경쟁이 있습니다. 영어표현에 The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영화 맘마미아의 OST곡 제목이기도 합니다. 바벨탑의 세상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갑니다. 승자 독식입니다. 멋진 훈남 훈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승자가 다 가져갑니다. 각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도 1등이 다 가져갑니다. 2017년 4분기 기준으로 휴대폰 시장에서 애플이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87%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삼성이 10%를 가져갔고, 남은 3%를 놓고 수많은 업체들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의 치열한 경쟁을 하였습니다. 회사에서도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모든 인정과 칭찬과 승진과 유익을 다 가져갑니다. 학교에서도 1등이 선생님들의 인정과 관심과 사랑을 다 가져갑니다.




바벨탑의 세상에서는 무엇을 하든 최고가 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1등만 기억합니다. 1등만 웃고 나머지는 다 우는 것이 바벨탑 세상의 슬픈 현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이와같이 죽기살기의 무한 경쟁의 삶을 사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하셨습니다.




한나 허나드라는 여성 작가가 지은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잔 번연의 천로역정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천로역정과 비교하여 전혀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리를 저는 사슴입니다. 그의 이름은 겁쟁이입니다. 그는 저 높은 곳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사슴을 보며 그도 그와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소심하고 겁쟁이이며 다리를 절기 때문에 절벽은 커녕 평지도 제대로 걷지 못합니다. 어느날 이런 그가 목자를 만났습니다. 목자는 그가 저 높은 곳을 뛰어다니는 사슴이 되도록 변화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줍니다. 다만 그가 인도하는 길로 순종하여 따라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겁쟁이 사슴은 너무 기뻐하며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목자는 하루라도 빨리 저 높은 산으로 가기 원하는 겁쟁이를 자꾸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거치른 광야와 사막으로 인도했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골짜기로 인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겁쟁이에게 목자는 때마다 약속의 말씀을 줍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조약돌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겁쟁이는 마음이 너무 힘들고 불신이 들어 목자가 준 조약돌을 전부 다 웅덩이에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았습니다. 먼저 목자가 준 첫 번째 조약돌을 꺼냈습니다. 그 돌은 하박국 3:19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겁쟁이는 이 말씀을 쓸모없다고 여기고 버리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직 사슴의 발을 갖지 못했지만 벌써 이 정도 높은 곳에 올라와 있으니까 이 정도만 해도 여한이 없어.” 그리고 돌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돌을 집어들었습니다. 그 돌은 요한복음 13:7절 말씀이었습니다: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겁쟁이 사슴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적어도 반은 맞아. 나머지 반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걸 버리지는 않을거야.” 세 번째 돌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겁쟁이는 이 말씀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목자가 준 모든 약속의 말씀을 전부 되새겨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겁쟁이는 목자가 약속했던 대로 높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게 다니는 사슴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목자가 주었던 조약돌들이 전부 찬란한 보석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지금 당장 주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어떤 목자님은 젊은 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오늘날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지금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최근 저에게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여러 상황을 보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저에게 먼저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라고 내적 방향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사라는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가 기뻐한 것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에게 최후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과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겪은 여러 내적 외적 어려움은 사실 성경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겪은 여러 어려움을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갔으며 여종인 하갈을 남편에게 내어주기로 결심했을 때 여자로서 모든 자존심을 다 내려놓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하갈이 마침내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고 자기가 정실 부인인 척 행동할 때 분노를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아픔이 지내놓고 보니 그녀를 열국의 어미의 내면을 가진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또 그러한 아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25년간 믿음의 훈련과 연단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간은 인간적으로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에 비해 사라는 25년간 날마다 가난한 심령, 간절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라의 신앙과 인격은 열국의 어머니로 성장했으며 마침내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선물로 주십니다. 지금까지 흘린 눈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큰 기쁨을 주십니다. 오히려 그 눈물이 보석으로 느껴지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 청년들이 우리를 반드시 웃게 하시고 최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이번 한 주간도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기쁨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이삭이 젖을 떼는 날이 왔습니다. 그 날에 아브라함은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늘 기도하는 가운데 주변 환경을 유심히 살피던 사라에게 애굽 여자 하갈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20절에서 이스마엘이 활 쏘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에게 화살을 쏘는 장난을 하였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장난 안에 이삭을 향한 뿌리깊은 적대감과 미움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라는 이 이스마엘을 내버려 두면 장차 반드시 그가 이삭을 해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사라는 먼저 간절히 기도한 후 남편을 찾아가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을 것을 아주 분명하고 단호한 어투로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일로 인해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라가 한 말을 그대로 다 듣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갈과 그의 아들을 내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지켜주시고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22-34절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장면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화친 언약을 맺기 원했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해 정당한 항의를 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잘 몰랐다고 사과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암양 새끼 일곱을 주고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브엘세바라 불렀습니다. 브엘은 우물이고 세바는 일곱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암양을 두고 맹세한 맹세의 우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에셀 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이며 크기가 10미터에 이르는 큰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엘 올람)을 상징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참으로 신뢰할만한 하나님이신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이신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우리 청년들도 젊은 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가운데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엘 올람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