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성탄1강
영원한 왕, 무궁한 나라 말씀/눅1:26-56 요절/눅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오늘말씀은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요 그가 통치하실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우리는 현재 온 세상이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인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한계적이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영원할 수가 없음을 더욱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정계는 어수선하고, 미국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가들은 의료 시스템에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냄으로 감염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늘 성탄말씀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저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본문의 마리아처럼 나에게는 어떠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했는가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찬양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실 예수님은 나에게는 어떤 분이 되시는지 깊이 배우는가운데 우리 심령에도 성탄의 기쁨이 충만히 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임신한지 육개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 지방의 아주 소박한 동네 나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정혼한 마리아라는 순시처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에 관한 족보가 나옵니다. 그 족보 맨~끄트머리에 바로 요셉이 등장합니다. 그는 지금은 비록 목수이지만 왕손이고, 무엇보다 하나님 구원역사에 이름이 올라갈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마 그녀는 사랑하는 요셉과 결혼할 꿈에 부풀어 털실로 목도리를 만들거나, 결혼식에 입을 예쁜 옷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요셉과 함께할 스윗~홈에 대한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이처럼 행복한 꿈에 젖어있는 마리아를 찾아가 말합니다. 2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보통 유대지방에서 하는 인사는 샬롬~ 입니다. 제가 중동지역 언어인 이란어를 전공했었는데요, 대부분 그쪽 사람들 인사는 ‘살롬 알레이꼼’ 즉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 깃들기를~ 정도로 인사합니다. 그런데 본문의 가브리엘 천사의 첫 인사에는 은혜를 받은 자여~ 라는 말이 먼저 들어가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는 인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사사를 부르실 때 쓰는 인사말입니다. 때문에 이런 인사를 받은 마리아는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놀라서 다음과 같이 속으로 말합니다. 29절을 자매님들이 놀란 토끼입으로 읽어주시겠습니다. ‘처녀가 그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왜 나에게 이런 인사를 하시지?’ 불안해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더 기가 막힌 소식을 전합니다. 30,3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는 먼저 마리아여 무서워하지말라~ 안심시키면서 그녀에게 임하게 될 놀라운 은혜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 예수님을 잉태하여 낳는 것입니다. 천사는 낳을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도록 알려주었습니다.
Jesus~예수의 뜻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인데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서에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도 심각한 문제는 바로 죄문제인데 이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원자가 바로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 되십니까? 다같이 32,3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큰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첫째, 예수님은 큰 자가 되십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큰 자, 다른 말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4대 성인 석가나 공자,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형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구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 되십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삶을 통해서 위대성이 드러나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이 모든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다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말구유에 태어나심으로 인간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다 담당하셨습니다. 또한 공생애 기간동안 선한 목자로서 냄새나는 각종 죄인들을 품고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의 가장 큰 불행인 죄와 사망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위대한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와 사망권세를 박살내시고 부활의 주,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로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시간 위대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릴 영원한 왕이 되십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하시기만 하고 다스려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감당치못하고 다시 죄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구주로서의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하듯 왕으로서의 예수님도 우리인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라의 행불행은 왕이 무엇으로 다스리느냐? 에 달려있습니다. 중국 진나라는 법치주의를 채택했는데 이것이 백성들 맘을 무겁게 짓눌름으로 엄격한 법치주의가 결국 멸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도 사울 왕이 나오는데 그가 율법적이고 감정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자 백성들은 공포에 떨며 많은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이 나타나 공평과 정의, 사랑과 평화로 나라를 다스리자 백성들은 기뻐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역대 대통령들이 나라를 다스렸지만 그분들 대부분이 청와대에서 감옥으로 그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로인해 국민들은 행복을 잃고 분노했습니다. 또한 가정의 행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가 술먹고 처자식을 때리게되면, 그 집안은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이해해주고, 사랑과 진리로 섬기며 다스릴 때 자녀들은 행복을 누리며 자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사탄이 다스리느냐? 예수님이 다스리느냐에 따라 행 불행이 좌우됩니다. 우리 마음에 정욕과 시기심, 미움과 불평, 인간적인 생각들로 가득하게되면 사탄이 우리 맘을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 우리 마음은 지옥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요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이 내맘과 생각을 다스리도록 한다면 우리 내면은 참 기쁨과 자유와 평강으로 가득하게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로 섬기시고 나의 허물과 실수, 연약함과 죄짐을 다 담당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권위를 부리거나 강압적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인격적으로 다스리십니다. 이시간 우리가 일생동안 영원한 왕되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참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메시야 왕국의 특징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세상나라는 아무리 오래가도 천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제가 요즘 트로트가 대세가 되면서 나훈아 씨의 ‘공’이라는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우리네 인생은 이처럼 잠시 머물다 갈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잠시 머물다 갈 세상에 코를 박고 영원무궁하게 살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땅에 영원히 머물다 갈 세상은 없습니다. 한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영국도 해가 진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세계 제일의 제국을 세웠다고 자랑하던 바벨론이나 페르시아 제국, 몽골이나 로마 제국 등도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현재는 미국과 중국이 힘대결을 하며 서로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패권을 확장코자 하지만, 이땅에서는 영원한 패권국가는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의 국화, 나라 꽃은 무궁화입니다. 잘은 몰라도 아마 나라가 영원무궁하게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라꽃을 무궁화로 정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가운데서도 망하지 않고 이를 잘 견뎌내었고, 약 50여년의 짧은 기간동안 초고속 발전을 이루게 된 현재의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름 자부심을 갖게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무궁화처럼 대한민국이 끝까지 영원무궁하기를 염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염원일 뿐 이땅에서 영원한 나라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이 땅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체험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우시고 다스리는 나라는 어떠합니까? 그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수님안에서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를 통해 이땅에 오실 예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영원히 다스려 주시는 왕이 되십니다. 그 나라가 무궁합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잉태하게 된다는 것이 마리아에게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그러나 이 은혜를 감당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나 기드온 조차도 첫 대답은 ‘저는 못하겠습니다’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4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그녀는 천사의 말에 수긍하기 힘든 점을 질문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을 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순종이 맹목적 순종이 되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다같이 3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세상 상식으로는 동정녀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고 그 능력이 마리아를 덮을 때 이 모든 일이 가능해집니다. 인간의 이성의 한계로 하나님 역사를 결코 가둘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가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시퍼런 홍해를 가르셨고, 태양을 멈추셨으며,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고, 죽은 자같은 한 사람을 통해 해변의 모래같이 수많은 자손을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문제는 내편에서 ‘이게 가능하겠어?’하며 지레 불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편이든 남편이든 내 생각을 한계속에 가두지말고,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께 둠으로 믿음을 확장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천사는 마리아에게 친족 엘리사벳도 성령의 능력으로 벌써 임신한지 여섯달이 되었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천사는 결론적으로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천사는 마리아에게 자신의 이성이나 경험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제 마리아의 결단만이 남게되었습니다. 마리아의 결단이 무엇입니까? 38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좋은건 알겠는데요~ 성모가 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하니, 다른 마리아를 찾아보시죠?’ 라며 겸손을 가장해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저는 요셉과 정혼했기에 남편 될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라며 나름 정당한 사유를 대거나, ‘기도 한 번 해볼께요~’라며 시간을 끌지도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부르심 앞에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결단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이 결단으로 성모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결단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물론 마리아가 이 결단을 함으로 실제 삶에서는 숱한 아픔과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간적인 소박한 꿈을 부인해야했고, 사람들로부터 애매히 오해받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처녀가 임신하는일은 돌에 맞아 죽을정도로 심각한 죄로 여겼기에 죽음까지도 각오해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칼이 마음을 찌르는듯한 아픔 또한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마리아의 이 결단은 자신의 인생 스케쥴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리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어떻게 이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가 정체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종으로서의 자기 발견,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깨닫게 됨으로 자신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기를 주장하거나 자기 계획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이 이러하니 자신을 봐달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과 계획이 나를 통해 이뤄지기만을 바랄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마리아의 귀한 결단과 순종을 받으시고 그녀를 하나님 구속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아픔이 큰 만큼 받는 영광도 큽니다. 이시간 우리에게도 마리아와 같은 고백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거룩한 고백과 결단을 함으로 마리아처럼 각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천사가 떠난 후 마리아는 부모님이나 요셉을 찾기보다 믿음의 선배인 엘리사벳을 만나러 유대 산골까지 찾아갔습니다. 그 길은 걸어서 3일길이나 되는 먼길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문안함을 듣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큰소리로 축하해 줍니다. 45절 말씀을 자매님들께서 감격스럽게 읽어주시겠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의 격려를 받은 마리아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성모로 부르셨다는 부르심을 확신하게되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46절로 55절까지는 마리아의 찬송시입니다. 마리아의 찬송시를 형제, 자매순으로 읽겠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 내리치셨으며 비천한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것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리리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리아는 자신을 가리켜 여종의 비천함으로 표현하고있습니다. 어찌보면 어린 마리아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의아하기도한데 사실 그녀의 이런 고백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솔직한 깨달음입니다. 아무리 멋진 요셉과 가슴 설레는 결혼을 하고 산다 할지라도 결국 그 인생의 한계가 무엇인지 마리아는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매일 신혼처럼 계속 가슴설레이는 생활만 한다면 얼마 안가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결국 사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설레는 날도 있지만 결국 인생의 온갖 풍파를 다 겪어내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대단한 것 같아도 이 범주를 벗어나질 못합니다. 즐겁고 기쁜 날도 있지만 괴롭고 슬픈날 또한 벗어날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삶은 죽음으로 모두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를 깨달은 석가는 ‘인생은 고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비천함을 벗어날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바로 이런 자신의 인생을 ‘여종의 비천함’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리아를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찾아오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할 메시아 탄생소식을 전해준것입니다. 마리아는 이 천사의 메시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스리시고 그 나라가 영원무궁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자신이 비천하고 슬픈 인생으로 끝나지 않음을 이렇게 시로 표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모로서 메시야 탄생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감당하는 사명인으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그 은혜가 모든 백성들에게 임함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49-55절까지의 시를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써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긍휼을 대대로 베푸십니다.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를 내치시고 비천한 이들을 높이십니다.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런 일을 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옛적에 약속하신 긍휼을 기억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대로 그 후손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이처럼 영적시야가 확~넓혀져서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이처럼 시로 표현할 수있었습니다. 틴에이저인 소녀 마리아가 이런 놀라운 시를 썼다는 것이 참으로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정도 깨달음을 얻으려면 (산전수전 다겪어본) 최소한 제 나이인 50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도 최근에서야 비로소 이런 영적 세계에 맛을 느끼는 것을 보면 역시 믿음은 나이순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마리아와 같은 영적 시야를 허락하여 주심을 이시간 감사합니다. 마리아는 사가랴 집에 약 석 달간 머물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요 그가 통치하실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저희가 이 예수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으며 예수님 안에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는 가운데 마음깊은 곳에서부터 온전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흘러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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