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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마태복음 4강 `다만 그를 섬기라 `(마태복음 4:1-11)2020-03-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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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제 4강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 마태복음 4:1-11
요절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 가운데도 확찐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여기서 확찐 자란 몸을 안 움직이고 집에만 있기 때문에 살이 확찐 사람들을 말합니다. 확찐자들의 동선을 추적해보니, 식탁 – 쇼파 – 냉장고,  쇼파 – 식탁 – 냉장고 – 침대 였다고 합니다. 러시아 혁명 때 수감자들은 하루에 300 개 씩 팔굽혀 펴기를 하면서 체력을 유지했습니다. 유대인중에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사람은 깨진 유리로 날마다 면도를 하며 자기관리를 하며 생의 의지를 불태우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적 격리가 시행되는 이 시기에 우리가 아무도 보지 않아도 몸과 영혼을 단련하는 성숙한 개인영성을 덧입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마귀가 시험하는 포인트는 무엇이었습니까?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을 까요?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시고 그리스도로 인정받 받으셨습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로 인정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사 마귀의 시험을 받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원수를 통해서 진정한 인정을 얻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통한 인정이 진짜 인정인 것은 원수는 가장 악랄하고 강력하게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어떻게 시험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무엇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알 듯 모를 듯 합니까? 어떤 분은 반말하는 게 시험이 되었을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시험하는 지를 알려면 예수님의 대답을 읽어보면 시험의 포인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시험포인트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메시야의 능력을 먼저 떡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라는 것이었고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최고로 배고픈 상태에서 정말 무엇을 앞세워야 하는 가? 를 시험했습니다. “굶어봤으니까 알겠지! 먹는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지, 그러니 당신의 능력을 먼저 먹는 문제, 경제문제 해결에 쓰시오” 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떡문제는 현실적으로 매우 절박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 세끼도 제대로 못먹는 제 3세계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충분하지 못한 물질을 버는 사람의 경우, 물질을 더 버는 것보다 시급한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떡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으로 진정으로 만족하는 지, 힘을 얻는 지, 행복을 얻는 지 아셨습니다. 그리고 절대적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지키지 않으면 삶이 한없이 무너진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가장 배고픈 상황에서도 타협치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신명기 8:3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광야에서 어떤 훈련을 시키셨는 지를 가르쳐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바라보고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들은 말씀붙들고 광야 길을 갔습니다. 그때 아무것도 없던 빈들에서 먹을 것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영육간에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40여년간 부족함 없이 먹이셨지만 물질적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게 하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근근히 살아감으로 그들이 물질을 의지하고 물질적 만족에 머물지 않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전공공부도 하고 취업준비도 해야 합니다. 직장생활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분명한 삶의 우선순위가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영적생활, 말씀생활을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를 경제적 동물, 배부른 돼지로 전락시키는 사탄의 시험에 든 것입니다. 오늘날 경제문제는 너무나 크게 여겨집니다. 경제문제앞에서 모든 것이 후순위로 밀립니다. 고3이나 대학 4학년에게 성경공부를 권하면 미친 사람입니다. 이것은 온 인류가 사탄의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나중에 썩을 육신만 남고 하나님앞에서 영원한 만족과 가치가 남지 않아 허무가운데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먹는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하면 그는 먹는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우선순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영적 만족과 함께 먹는 문제도 해결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한번, 두 번 우선순위를 잃을 때 그의 삶은 뒤죽박죽이 됩니다. 우선순위가 그의 삶입니다. 우선순위 문제를 가볍게 볼 일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만족을 육적만족보다, 그리고 떡보다 말씀을 앞세우는 분명한 우선순위를 실제 삶에서 생활화 하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성전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는 시험이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보고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서 뛰어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시편 91편입니다. 시편 91편은 하나님이 그 사랑하시는 자를 보호하실 것이니 그를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사탄의 시험은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대로 하시는 지 테스트해보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그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셨기 때문에 시험해 볼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신뢰하셨습니다. 

마귀가 태초부터 한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과 신뢰를 금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과 신뢰 관계를 끊음으로 사람의 영적 생명을 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 에덴동산을 행복의 동산에서 저주의 동산으로 바꾸었습니다. 모든 인간불행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창조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보통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까? 로마서 8:35절을 보면  환난, 곤고, 박해, 기근, 헐벗음, 생명의 위협이 다가올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하였습니다. 놀라운 구원을 받고, 장애물이 걷히고 길이 열리고 먹을 것이 주어질 때 그들은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을 소리높혀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곤경에 처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이런 상황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원망의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길이 험하고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떨어졌을 때 그들은 차라리 노예백성으로 살때가 좋았다고 하나님을 격노하게 하는 도발적 발언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곤경에 처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과 형통만 주시면 그런 원망받지 않으실 텐데 어려움과 곤경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함입니다. 쇠가 물과 불에 들락날락해야 좋은 도구가 만들어지듯 사람의 믿음은 곤경을 통해서 연단되기 때문입니다. 곤경의 때는 우리의 신앙인격이 연단되는 시기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존재자체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자체에 대한 신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떤 것이 주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고 심지어 가진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하십니다.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를 보기위함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만 가지를 주시고 한 가지를 안 주셨다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만가지가 없고 한 가지 구원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몇가지를 받았는 가가 신뢰도의 절대근거는 아닙니다. 표적에 중독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표적주의가 영적 소원이 아닌 불신의 산물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외에는 더 이상 표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 장사된지 사흘만에 부활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최고의 표적입니다. 로마서 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 하겠느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 중에 물질적인 축복을 받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며 충성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있던 양들이 떠나고 병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며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수많은 내적인 마귀의 시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물리친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신뢰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디 이런 분들의 믿음을 마침내 축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예수님을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보이는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려갔습니다. 이곳은 아마 환상속에 산일 것입니다. 마귀는 당시 로마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영광을 다 보여주며 그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조건은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영광은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파우스트에게도 개인적인 사랑보다는 광대한 나라의 영광을 얻는 것이 더 만족도가 높은 유혹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영광을 얻는 것,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것, 곧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이는 매우 강렬한 유혹입니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마귀는 과연 세상 모든 영광을 예수님에게 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가에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귀를 세상 임금, 세상 신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마귀는 불법으로 하나님께 속한 세상의 지배권을 일시적으로 찬탈했습니다. 그러니 마귀는 세상영광의 불법적 찬탈자로서 그가 주는 영광도 한시적이고 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영광은 아버지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요 다 지나갈 헛된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고 이어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분을 섬겨야 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그 유혹이 강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의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인생목적과 방향에 대한 시험입니다. 우리는 세상영광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영광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세상영광을 얻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성공입니다. 마귀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왜곡시키기 위해 세상영광이란 커다란 미끼를 던집니다. 더 소중한 것을 그보다 못한 것과 바꾸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바뀌치기해서 가장 어리석은 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친구들은 대제국 바벨론의 도지사의 영광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국무총리의 자리와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영광과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과 하나님 섬기는 것과 바꿀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 전체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로마서 11:36절을 보십시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렇게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는 자가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자입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적인 유익이 없어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아니하실라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섬길 때 축복하시고 필요하면 세상영광도 주십니다. 높은 자리도 주실 수 있고, 박수갈채를 받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목적은 세상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영광을 얻기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버린 성공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세상영광의 유혹은 강렬합니다. 그런 유혹이 올 때 “사탄아, 물러가라라” 사탄을 대적하므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마귀의 시험포인트를 파악했습니다. 마귀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흐트러뜨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케 하며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바꾸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설령 굶어죽는다고 하더라도 타협해선 안되겠습니다. 설령 상황이 최악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선 안되겠습니다. 초라하고 빛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면 그 길을 뚜벅이처럼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시험을 이긴 사람의 삶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긴 자는 이만희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승리할 때 마귀는 떠납니다. 승리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곁에 맴돌며 우리안에 들어오며 우리를 계속 어지럽히고 괴롭힙니다. 우리가 마귀를 애매하게 대처하지 않고 확실하게 이김으로 마귀를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보내기를 기도합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고 안들고가 뭐 대수인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험에 들게되면 그는 가장 중요한 것들, 본질적인 것들을 다 잃게 됩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되면 땅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슬피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 때 그의 영적 생명력은 점점 죽어갑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입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을 파괴하기 위해서 온갖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마귀는 배고픈 사자처럼 꿀꺽 삼킬 자를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기록된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에서 ‘기록된’ 이란 ‘정확하게 새겨져 있다’ 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워딩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은 자칫 부정확한 말을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새겨진 활자체처럼 분명합니다. 기록된 말씀을 잘 알고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문자인용을 하신 것이 아니라 문맥적 의미를 인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묵상훈련을 할 때 거기서 성령의 검을 뽑아 마귀의 시험의 핵심을 정확히 찌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경을 매일 10-30분을 묵상하면 영적인 검객이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검객이 되는 방법은 본문을 읽을 때 항상 본질과 비본질, 현상과 결과, 지금과 영원을 생각하며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본질과 비본질,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는 것, 시급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뒤섞어 우리의 판단력을 왜곡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비본질적인 것, 중요하지 않는 것, 시급하지 않는 것에 우리의 시간과 마음과 에너지를 쏟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속에서 빛과 성령의 검을 발견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2: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아뢰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기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붙드는 것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두 번째 비결입니다. 성도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고, 목자가 양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가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요회목자가 요회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기도대상들이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합니다. 분별력이 생깁니다. 헤메지 않습니다. 헤메다가도 정신을 차립니다. 우리가 영적 곤경에 처한 이들을 위한 기도지원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고뇌에 차 있거나 어둡습니다. 누가 마귀의 먹잇감이 됩니까? 심각한 물질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 더 많은 물질의 유혹을 받는 사람, 환난과 곤고와 열매없음으로 고통하는 사람, 더 높고 많은 세상영광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이 없는 사람, 기도지원을 못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마귀의 시험을 분별하고 승리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