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추수감사절 메시지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 살전 5:12-18 요절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558년 영국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임시 피난처였던 네델란드로 갔던 청교도들은 왕이 바뀌자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새로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제임스 1세, 챨스 1세등이 왕권신수설에 기초해 영국 국교회를 믿기를 강요하며 청교도들의 입국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들은 1620년 9월 29일 102명이 영국의 플리머스 항을 떠났고 2개월의 힘든 항해 끝에 11월 9일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바닥난 식량, 매서운 추위, 인디언의 습격의 공포가운데 괴혈병, 폐렴으로 하루에 2-3명씩 죽어갔고 결국 절반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비극의 겨울을 어떻게 인내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확신, 신앙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일념으로 그 차갑고 혹독한 고난을 감사로 이겨냈습니다. 현재의 보스톤 근처에서 황무지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디언들과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게 되었고 왐파노악 부족들이 옥수수씨를 주고 토지경작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은 식량이 없어 1주일에 3일씩 금식했는 데 이 때 인디언들이 짐승들을 잡아주어 버텼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경작했으며 드디어 기다리고 기대하던 감격적인 첫 추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지도자였던 브래드포드는 첫 추수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도움을 준 인디언 부족들에게 감사하기위해 감사 예배와 잔치를 열었습니다. 1621년 11월 마지막 목요일이었습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5년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감정에 복받치는 마음을 억제할 길이 없다고 말하며 감사와 기도의 날을 지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것을 국경일로 만든 사람은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루즈벨트는 추수감사절에 대해 이 날만큼은 모든 국민들이 일상을 멈추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수많은 축복들로 인해 감사하고 기도하자고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이 도착하기 전 13년 전 범죄자들이 미국에 도착하여 제임스타운이라는 것을 건설했는 데 미국인들은 이들이 아닌, 청교도들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버린 청교도들의 감사예배에 기원하고 있고 이런 청교도들의 신앙과 감사가 오늘날 미국의 토대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Thank you” 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데살로니가 전서 후반부로 권면과 끝 인사인데 전반부에서는 사람에 대한 감사, 후반부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신앙을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12-13a). 감사절하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사람들에게 대한 감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 지도자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가운데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사도바울은 사랑안에서 가장 귀히 여길 대상이 영적 지도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알고”라는 말은 알아주라,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영적 지도자의 수고에 대해 알고 감사해야 합니까? 그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스리며 권하는 일에 수고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다스리며 진리로 권면하는 일입니다(딤전 3:15b, 행2:42)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모든 행사는 사도의 가르침위에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분별하고 가르치는 영적 지도자들의 역할을 매우 중대하며 성도의 신앙에 지대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 어떤 사람보다 영적 지도자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격려하고 기도지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지도자는 어련히 잘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적 지도자도 사람입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어디가나 불평과 요구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의 십자포화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홀로 이해와 격려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 있습니다. 왜 특별히 영적 지도자들 위한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까? 사탄이 교회의 기초와 기둥역할을 하는 그들을 흔들어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장수를 공격하여 넘어뜨려 그리스도의 군대를 사분오열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자는 많은 요구와 비난속에서 아픔과 절망을 겪을 수 있고 그런가운데 사탄이 뻗힌 유혹의 마수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영적 지도자들을 각별히 챙기며 그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많은 기도지원을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공동체 성원들을 귀히 여기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14,15). 먼저 성도들은 화목해야 합니다. 성도상호간도 화목해야 하고 지도자와도 화목해야 합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서로 얼굴보기가 부담스러워지고 공동체생활이 불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걸리는 것이 있으면 다른 것보다 먼저 화목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도중에 게으른 자, 마음이 약한 자, 힘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영육간에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문제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능력부족이 문제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따끔한 권고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자신의 몫을 다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공동번역에 보면 소심한 사람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는 데 그런 것을 보며 큰 두려움가운데 떨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음을 조근조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힘이 없는 자들은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는 사람들, 죄와 싸울 힘이 없는 자들, 믿음의 경주를 더 이상 달릴 힘이 없는 자들을 뜻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분들은 십자가를 나눠주고, 혹은 대신 져주어야 합니다. 군인이라면 총은 들어주고 부축하어 함께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떤 상태인 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권계할 자와 격려할 자를 분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얹어 주어야 할 사람과 십자가를 줄여줄 사람을 구분해야 합니다. 이런 분별력은 어디서 생길까요? 함께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생깁니다. 자기 맘대로 정욕대로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같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동역자들의 존재자체를 감사하고 심히 귀히 여길 때에 사랑가운데 정확한 분별력이 생깁니다. 또 교회에서는 누구든 원수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나에게 악을 행했다고 해서 악으로 갚으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에 대해 오래참고 항상 선을 추구하는 패턴으로 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16-18). 16-18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 가지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40일 금식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명확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세가지 명령만 순종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는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생명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신앙생활의 세 가지 키가 무엇입니까? 우선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을 항상 웃는 으로 볼 수 있습니까? 웃는 것이 좋습니다. 웃으면 웃지 않는 사람보다 암걸릴 확률이 70배 줄어듭니다. 억지로라도 웃으면 뇌는 그것이 억지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하고 엔돌핀을 쏟아내기 때문에 억지로 라도 웃으라고 했습니다. 또 웃으면 심장근육까지 움직이기 때문에 온 몸의 신진대사가 원활하게 됩니다. 웃는 얼굴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기뻐하는 것은 웃는 얼굴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뻐서 우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러니 내면에서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슬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슬픔의 일반적 이유는 이별이나 죽음이나 질병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내가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내 중심적인 상황 이해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상황이해를 하면 슬퍼할 이유가 없는 데 내 중심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에 우울하고 슬퍼집니다. 결국 자기중심성이 슬픔과 우울함의 뿌리요 근원입니다. 우리 중에 항상 웃는 사람이 있고 대체적으로 우울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기질때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자기중심성때문은 아닌지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자기중심성의 깊은 뿌리를 뽑아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기쁨의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을 하루 단위와 신앙역정 전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하루중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 때 호흡은 한순간도 정지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호흡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니요 의무도 아닙니다. 호흡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 인간존재의 기반입니다. 사실상 호흡은 멈추기가 더 어렵습니다. 호흡을 3분 이상 멈추어 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듭니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기를 쉬지 않을 수 있습니까? 기도가 특권이요 무기인 것을 알 때입니다. 이것을 아는 어떤 사람은 시간만 나면 엎드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걸으면서 중얼중얼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또한 그의 영혼의 안테나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만이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같은 마귀의 세력을 이길 영적 무기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자가 달려오는 데 우리의 혈과 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관총을 가지고 있다면 해볼만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북한은 장사정포, 대포동미사일을 남한을 향해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의 미사일을 북한으로 날리면 북한을 무력화시키고 북한으로부터 우리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각기 대륙에서 고분분투하고 있습니다. 포병지원없는 각개전투는 승산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도의 ICBM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선교사님들은 선교지에서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차게 싸워 영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적진을 향해 나가라고 하고 포격지원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포병처럼 악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기도는 가장 큰 특권이며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이 특권을 잘 누리고 이 의무를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쉬고 있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대한 불신으로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으로 기도를 중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한대로 다 응답되지 않으며 되어서도 안됩니다. 내 소원대로, 우리 소원대로 다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도에 대해 한가지 분명한 것은 기도는 하나님앞에 등기택배처럼 반드시 배달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스트의 때에, 베스트의 방법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사탄이 주는 불신을 이기고 다시 기도생활에 붙을 붙이길 기도합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는 것은 성령의 불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등불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심장이며 엔진입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특히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선 일상적인 일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대해 당연시 여기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먹을 것이 넘쳐서 항상 다이어트를 생각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특히 값싸고 다양하고 손쉽게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어디서나 물을 틀면 샤워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언제든지 말씀을 볼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UBF에서 인격적인 성경공부하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북한 지하교회 성도가 성경책 한 권을 갖다 줄 수 없는 가 간절히 부탁해서 한 북한선교일꾼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성경책을 몸속에 숨겨 세관을 통과했습니다. 목숨값과 진배없는 성경을 받아든 북한 성도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말했습니다. “중국에 있을 때는 늘 성경책을 볼 수 있어서 몰랐슴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없이 신앙생활을 하려니 얼마나 힘든지... 중국에서 몇절이라도 더 외워서 올 걸 하는 후회가 많이 됐슴다” 영적 기갈에 시달리던 북한 성도는 해갈의 기쁨으로 가득찼고 위험을 감수하고 성경을 배달한 일꾼도 복음을 전달한 자의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2019년 올 9월 함경남도 15호 관리소에서 금화자매가 옥사했습니다. 그녀는 40세였던 7년 전 살기 힘들어 중국에 나왔다가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창세기 말씀과 진화론의 허구 강의를 듣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3일간 성경공부하고 감격적인 세례를 받고 흑암에 갇힌 조국과 북조선인민의 영적 해방을 위해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투옥되기 전 19명의 성도들을 섬기는 지하교회인 [욥]교회의 목자로 살았습니다. 2014년 투옥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2개월 전에 사망했습니다. 1주일간 먹은 밥이 200g인 적도 있었고 13일간 금식기도하며 하나도 배가 고프지 않는 영적체험을 했습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여기에 모인 우리]라는 찬양과 [사명]등의 찬송을 즐겨 불렀습니다. 이처럼 같은 한반도인 북한에서는 계시록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숫자를 채우는 역사가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지난번 가을수양회 장소에 갔을 때 300여명의 성도들이 대강당에서 수양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북한선교를 지원하고 일꾼들을 키우는 모퉁이돌 선교회 수양회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부터 느헤미야 야간전도를 시작했습니다. 밤에 무너진 성을 돌아보고 마음아파했던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낮에 전도하기 힘든 분들이 모여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인 분들에게 “전도는 쉽다. 우리가 전도하는 데 우릴 향해 총을 쏘는 사람, 칼을 꺼내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기독교역사상 가장 신앙생활하기 편하고 쉬운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북한성도들에 비해 너무나 자유스럽고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음을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할 때, 범사는 in all circumstance로 ‘모든 상황속에서’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결국 감사하기 힘든 상황이 닥칠 때, 그러한 상황속에서 감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 중 다니엘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생활 때문에 총리에서 짤리고 사자굴에 던져질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 감사했습니다(단 6:10). 왜 이런 상황을 주셨는 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그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여한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로 충분했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인생을 마친다고 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습니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여전히 통치하시며 자신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때 그는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상황이 나쁠 때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진정한 면모와 수준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두 아들의 영결식에서 드린 감사의 기도는 유명합니다. 그의 감사제목은 두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답사대신 발표되었습니다. 첫째,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을 낳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내게 맡겨주셨는 지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삼남 삼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는 데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자리에 누워서 임종하는 것도 큰 복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전도하다가 총살 순교당함이리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하는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두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같은 역경속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과 여유있는 믿음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오 주여, 나에게 분수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나이다. 오늘 이시간은 분명히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부르짖으시던 삼십오륙년의 눈물의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 형제자매들의 23년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준 그 열매로 확신하며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감사하기 힘든 상황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 상황과 기간은 왜 찾아 옵니까? 나의 신앙을 연단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나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검증하기 위해서 옵니다(롬 5:3,4) 로키산맥 해발 3000m 높이에는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습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 무릎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로 자랍니다. 이 나무들은 이렇게 험한 조건에서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견딥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공명이 가장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꿇고 있는 나무로 만듭니다. 고난은 우리를 정말 명품 하나님의 자녀로 빚기 위해 찾아옵니다. 고난은 명실공히 우리를 품격있는 하나님 나라 시민들로 만들기 위해 옵니다. 때문에 우리는 고난속에서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나뻐 보이는 상황은 있을지언정 나쁜 상황은 없습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그 선하심을 독생자를 주신 사랑으로 입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항상, 범사에,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가장 나빠 보이는 상황에 가장 깊고 높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가 있습니다. 감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본성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명령형으로 주어졌습니다. 억지로라도 순종하여 감사하면 감사가 깊어집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깊이 신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본인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감사하는 성도는 어디가든, 어떤 상황에 있든지 자신이 처한 곳을 행복의 동산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고 슬퍼하는 성도는 자신이 처한 곳을 어디든 지옥으로 만듭니다. 또한 불평은 자신뿐 아니라 전염성이 있어 다른 사람마저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불평하는 사람은 지옥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을 멸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악한 죄악으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할 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하기 심각한 죄입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해있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해있습니다. 감사는 천국문을 여는 열쇠이며 불평은 지옥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는 최고의 신앙의 척도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입을 통해 그의 신앙의 수준을 보며 원망하고 불평하는 입은 그의 신앙과 인격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2019년 감사절, 감사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앞에서 감사제목들을 잘 찾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적 지도자에게 감사합시다.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원들에게 감사합시다. 무엇보다 나빠 보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뻐 보이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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