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도행전 7강
스데반의 삶과 죽음
말씀: 사도행전 6:8∼7:60
요절: 사도행전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부족한 죄인이 말씀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의 허물을 가리우시고 오직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말씀을 통하여 스데반의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7집사 중의 한 명인 스데반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시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제1장 스데반의 삶(6:8~15)
8절을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그는 칭찬받고 모범이 되어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성경선생으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목자였습니다. 말씀의 권세가 있어 복음을 영접하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민간에 믿고 변화된 사람이 나왔습니다. 스데반은 은혜도 있었지만
말씀의 권세가 있는 실력있는 목자였습니다. 9~10절을 보면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여기의 자유민들은 기원전 53년에 로마장군 폼페이의 유대 정벌 때
노예로 팔려갔다가 자유인이 된 사람들의 후손 들입니다. 이들은 나름 그 시대의 철학과 논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명이 더불어 스데반과 논쟁하여 기독교의 복음진리를 깨고자 하였으나 그렇지 못했습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으로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였습니다.
13~14을 보겠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스데반이 거룩한 곳,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고소하였습니다. 이들의 고소는 두 가지의 이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신성모독죄에 해당되어 즉시 체포하고 심문을 받게 하고자 함입니다. 둘째로는 당시 성전은 예배와 제사를
드리므로 제사에 필요한 것을 사고 파는 경제활동의 장이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면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스데반을 공회 앞에 세웠습니다. 공회 앞에 선 스데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5절을 보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은 오해받고 고문당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스데반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스데반은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 대속의 십자가에 죽으시고 새 생명을 주신 구원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사랑에 감격하고 기쁨과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에 기초하여 집사로서 교회 일도 섬기고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장 스데반이 고소당하여 공회 앞에서 전한 메시지(7장)
2-1 아브라함과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1~8절)
1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산헤드린 공회
의장인 대제사장은 물었습니다. 이에 스데반은 자신의 결백이나 그들의 고소가 잘못되었음을 말하지 않고
구약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테반은 구약의
역사를 통해 이들이 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되는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약속하신 하란에
거하다가 가나안에 정착하여 거하다가 아내 사라가 죽음으로 막벨라 굴이 있는 약간의 땅을 샀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라”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할례의 언약을 믿고 몸에 새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했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2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사랑(9~17절)
9-10절을 보겠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심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렸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셔서 바로가 애굽과 자기온집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 때 조상들이 양식이 없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게 됩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형제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은 두 번째 방문 때에 자신의 정체를 형제들에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사람을 보내어 그이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75명을 청하였습니다. 이로써 야곱과 75명의 가족들이 애굽 고센 땅에 정착하여 400년 동안 거주하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야곱의
자손들 중 장정만 60만이 될 정도로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서 400년 동안 괴롭힘을 받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2-3 모세와의 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18~36)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는 무섭게 번성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두려운 존재로 여겼습니다.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노예로 삼아서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서 죽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석 달 동안 집에서 키운 후에 갈대상자에 담아서 나일강
갈대숲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데려다가 궁중에서 키웠습니다. 40세가 되자 모세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들었습니다.(23)
24절을 보겠습니다.“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애굽사람에게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튿날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화해시키려 하였지만 오히려 배척받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 도주하여 40년간 나그네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34~35절을 보겠습니다.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그들의
말이 누가 저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사십 년이 차매 하나님께서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의 나이 노년 80에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80이 된
모세를 쓰시고 40년간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함께하시고 120세가 될 때 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저를 쓰실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살고자 소원 갖게 되었습니다.
2-4 모세를 통해서 예수님을 약속하신 하나님(37~43)
3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모세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언하신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역사입니다. 모세는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 곧 율법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수없이
원망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지만 늘 죄악된 애굽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40년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후에도 여전히 그를 거역하며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머물러 있는 동안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만들라 요구했고 아론이 주동이 되어서 애굽사람들이
섬기던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제사하며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상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갖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세우신 모세를 배척하고 불순종한 조상들의 죄를 언급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율법을 전해준 선지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조상들은 영적 무지와 교만 때문에 배척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에게 버림받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놀라운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스데반은 당시 유대인들이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 ‘그 선지자’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합니다. 스데반은 이런 사실을 깨우쳐주므로 회개하로록 강력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도왔습니다.
2-5 성전의 올바른 이해(44~50)
스데반은
참 성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47∼49절을 보겠습니다.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평화의 왕
솔로몬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이곳에서 제사드리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하늘이 그 보좌요 땅이 그 발등상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한 장소에 머무른 분이 아니십니다. 아브라함이 이방땅에
있을 때 메소보다미아에 나타나셨고 요셉이 애굽의 종노릇 할 때 그와 함께하셨고,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늘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자의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전6: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제 3장 회개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스데반(51~56)
51∼53절을 보겠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에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고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성전과 율법과 끊임없이 불순종한 조상들을 언급한 다음에 유대인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몸에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과 귀는 할레받지 못하고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고 깨달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이들의 죄는 조상들이 의인이 오리라는 예고한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죄입니다. 이들은 ‘그 의인’ 예수님을 시기하여 이방인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습니다. 조상들처럼
마음을 굳게 하고 고의로 성령을 거슬러 행동하였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을 때 더욱더 죄성이 그들을 지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도 목이 곧고 성령을 거스르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는 삶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54절을
보겠습니다.“유대인들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든” 그들이 이를 갈고 분노하였습니다. 반면에 스데반의 어떠했습니까? 55~56절을 보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은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더욱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에게 천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스데반은 이 천국의 예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제 4장 스데반의 죽음(57~60)
57∼5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더욱 죄성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을 붙잡아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돌로 칠 때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그들이 공모하였음을 말해줍니다. 59~6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서서 하고 무릅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이렇게 돌에 맞아 피흘리며 예수님과 같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스데반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도 깨지고 험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게
죽어갔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원수와 같이 나쁜 놈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들을 위해 마음으로부터 용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공모자 사울을
위해서도 기도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기도하시는 기도와 같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은
고난과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잠자는 것처럼 영접했습니다. 이제 잠이 들어 죽었습니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인간에게 정해진 일이요”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어떻게 죽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난번
중국 상해에 출장을 갔습니다. 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들렸습니다. 그 곳에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일황의 생일인 천장절겸 전승축하 기념식에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는 거사 전에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강보에 쌓인 두 아들, 윤 종은 3살이었고 윤
담은 아내의 뱃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조국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 이 사랑에 목숨을 던지려고 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사랑보다 더 큰 조국의
사랑을 깨닫고 그곳에 목숨을 던졌습니다. 그 후 많은 고문을 당한 후 총살형으로 그의 나이 24살에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후에 조국 독립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출장 중에는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 추모비를 보았습니다. 이수현씨는
2001년 신오쿠보역 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던 전철을 기다리던 중에 일본인 취객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선로에 떨어졌습니다. 이를 목격한 이씨는 취객을 구하고자 몸을 던졌지만 함께 사망하였습니다. 자기의
삶에 충실한 일본의 문화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사고 이후 신오쿠보역에는 이수현씨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건립되었고 그곳의 일본사람들은 한국인의 살신성인을 기려 매년 기념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 동네에서 만큼은 한국인을 욕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씨의 희생은 한일 양국에 민간외교의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어떤 죽음입니까? 그의 죽음은 허무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퍼져나가는 세계선교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개척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해자 사울이 변화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구원하시고 자 십자가에 피 흘리시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큰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는 삶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성숙한 믿음의 종이었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마5:10) 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던져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드렸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고통의 죽음 대신 하나님 나라에 낙원에 잠들게 하셨습니다.
1866년 프랑스 국적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으로 왔습니다. 위협을
느낀 관군과 관중들을 돌을 던지고 활과 대포를 쏘았습니다. 셔면호는 불길에 싸이고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불타는 배에서 탈출하여 뭍으로 온 사람들은 살해당했습니다. 이 배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에 복음을
전하고자 조선어를 배우고 셔먼호의 통역겸 안내자로 승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병졸 박춘권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그는 복음 한 번 전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박춘권에게 성경책을 전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박춘권이 거절했지만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후에 심경의 변화가 생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주워가지고 가서 읽은 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안주교회의 영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신앙의
명문가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는 평양복음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주와 복음으로 고난을 받은 자의 헌신을 다 받으시고 오늘날과 같이 복음의 물줄기가 이어져 우리나라를
복음의 나라요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저의
성경 선생님이셨던 최사무엘 목자님은 췌장암으로 소천하셨습니다. 목자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인생의 문제해결 외에는 관심 없는 자였습니다. 영적으로 눈먼 자요 지독한 물질주의자요 이기주의자요 한 혈기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목자님의 영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제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사무엘 목자님을 소천하셨지만 죠셉킹,
강제임스, 강환민, 오영찬, 강창훈, 송다윗, 무엇보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영혼들을 위해 일생을 드렸습니다. 복음으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낙원에서 편히 잠자고 계십니다.
결론입니다. 스데반의 성령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상은 밝게 빛났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부터 요셉, 모세에 이르기까지 언약으로 함께 하셨고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언약의 완성을 이루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를 생명의 복음이 널리 퍼지게 하는 한 알의 밀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깊이 생각하며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무엇보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는 데 힘쓰고,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는 스데반과 같은 삶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무엇보다 내면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는 삶, 저를 위해 돌 던지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 살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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