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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1년 신년 3강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골로새서 3:1-17)2021-01-11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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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신년 3강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본문: 골로새서 3:1-17
요절: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는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장은 교리 편으로서 그리스도가 모든 것의 주가 되신다는 '그리스도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3,4장은 실천 편으로 신자의 생활원리, 즉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장기간의 코로나 사태 가운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올 한 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분명한 영적 방향을 허락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러므로’란 앞에 있는 말씀을 받는데, 특히 2장 13절과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를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서 그와 연합된 우리를 다시 살리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육체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활을 말합니다. 이 생명의 근원은 예수님이십니다(요1:4) 우리에게 있는 새 새명은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에게 뿌리를 둔 생명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로 연합된 생명이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과 생명의 연합을 받은 은혜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절은 말씀합니다. ‘위의 것을 찾으라.’ 우리가 과거 영적으로 죽어 있었을 때에는 ‘위의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세계, 땅의 세계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들만 보고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위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세계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신 후, 모든 권세와 통치권을 손에 쥐시고 위엄과 영광으로 관을 쓰신 채 지극한 복을 누리며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2). 당시 골로새 성도들에게 땅의 것이라는 것은 단지 세상의 정욕이나 쾌락, 물질 등을 추구하는 생활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종교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숭배, 금식, 율법적인 생활을 추구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영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실상은 사람의 영광과 종교적 권세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땅에 속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세상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살아야 됩니다.

3절은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언제 죽었습니까? 로마서 6:6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와 함께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죽었고 그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갈2:20). 그가 부활하실 때에 우리도 부활하여 지금 부활의 새 생명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엡2:5,6).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의 새 생명이 어디에 있다고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와!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것은 절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요10:28,29절은 말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의 원수 마귀가 아무리 우리의 생명을 찾아 멸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보다 더 강한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지만 우리의 참 생명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님 안에 안전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얼마나 안심이 되고 감사한 일인지요!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사는 나그네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우리의 참 생명이 있는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고후5:1).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됩니다(4). 그때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과정이 마침내 완성되고 그와 같이 변화되어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요일3:2,3) 우리가 이러한 소망을 갖고 힘써서 위의 것을 구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위의 것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하고 둘째는,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란 아담의 본성을 가진 옛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중생하였을 때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지만,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은 여전히 옛 사람의 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뱀이 머리가 상하여 죽은 것과 같이 되었지만, 그 몸통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육체 가운데 사는 동안 이러한 옛 사람의 타성을 지속적으로 죽이고,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부패한 본성을 죽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가고자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불가능했었습니다. 옛 사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머리가 깨어진 옛 사람은 과거처럼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면 얼마든지 옛 사람의 타성을 죽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6:14절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그러면 우리가 죽여야 할 땅에 있는 지체는 무엇입니까? 5절 하반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는 주로 성적인 욕망과 물질적인 욕망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옛 본성은 선정적인 것을 좋아하고 음탕하며 호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욕망을 죽여야 합니다. 5절 하반절은 탐심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특히 돈을 사랑하여 더 가지려는 욕망을 말하죠. 돈을 사랑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기까지 하는데 이런 면에서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엡5:5). 과거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로 살 때 옛 사람의 욕심 가운데 행하였습니다(7). 그때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얻고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들을 언급한 후 외적으로 표출되는 죄들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분함이나 노여움, 비방은 살인과 같습니다. 이런 것을 때가 잔뜩 낀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듯 내 던져야 합니다. 거짓말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죠. 거짓말은 불신 사회의 보편적인 악덕이며 심지어 신자들 간에도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어떤 악보다 미워하십니다(요8:44). 우리 스스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했듯이 우리의 내면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합니다(렘17:9). 입만 열면 거짓을 말하죠. 예를 들면 과장하는 것도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할 때는 확대하여 장황하게 말하고 남의 장점은 잘 말하지 않죠. 남의 약점은 많이 열거하고 자기 약점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도 다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부패한 자신을 회개하며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여기 보면 우리는 이미 새 사람을 입었다고 나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후5:17).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음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요17:3). 영생을 소유하게 된 성도에게 하나님은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고 그 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십니다(벧후1:3,4), 하나님을 아는 만큼, 즉 하나님을 아는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가 그 사람의 신앙수준이 됩니다. 그것이 실제 생활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지식은 사변적인 지식이 아니요, 현실에서 실제로 능력을 발휘하는 생생하고 살아있는 지식입니다(요일2:3). 하나님은 새 생명을 얻은 우리의 지각을 여셔서 이러한 살아있고 신령한 지식을 알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에 강하게 이끌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지식과 의지를 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고 그리스도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 성삼위 하나님의 복된 교제권 안에 들어오게 하십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요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이러한 구원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 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를 통일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자의 주가 되사 모든 자 안에 계십니다(11).

그러면 우리가 입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0절에서와 같이 우리는 새 사람을 이미 입었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운 자들로 여기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는 마치 혼인 예식에 입장하기 위해 주최 측이 준비한 예복을 걸쳐 입은 것과 같습니다. 이제 예복에 걸맞게 속사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여 받는 것이요, 새로운 지식과 성품, 새로운 소원과 성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서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12).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로서 서로 용납하며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그리하여야 합니다(13). 

14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신자의 최고의 윤리는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아무리 수고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도리어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사랑으로 끊임없이 선한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은 의복을 띠로 묶어 단정하게 하듯이 성도들의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불화 상태였던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평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하늘에서 오는 깊은 평강입니다. 참된 사죄와 구원,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하였다는 확신가운데서 나오는 깊은 안도감에서 나오는 평강입니다.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개의하지 않는 그런 평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평강이 우리 내면을 통제하는 가장 큰 영향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늘 주장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한 선교사님은 수입이 줄어들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수입에서 꼭 필요한 지출을 빼니 200불이 남았습니다. 그 돈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한 달을 살아야 되었습니다. 그는 앞날을 생각해볼 때 집세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였고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 앉을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큰 걱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의 마음을 다스리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이해되는 상황입니다. 그가 어떻게 그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다스리게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서 나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은 기도와 믿음에서 나옵니다. 빌립보 4:6,7절은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마음이 평강으로 다스려지고 있지 않으면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안 생기면 주님께 믿음을 도와주시도록 기도하며 매달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이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결국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경을 말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5:39). 새 생명을 얻은 신자들의 삶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풍성히 거할 때 우리는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서 나오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게 됩니다(17).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캠퍼스에 나가 전도하고자 해도 학생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학원을 운영하는데 수입이 제로입니다. 늘상 마스크를 써야하니 불편합니다. 형제들은 좋아하는 축구도 못합니다. 온라인 성경공부, 온라인 모임만을 해야 하니 정신적으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유트브를 무절제하게 보면서 영적으로 안일해졌다고 탄식합니다. 집이 좁아서 조용히 기도할 장소도 없다고 합니다. 참으로 코로나로 인해 고난이 많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과 나의 현실적인 빵 문제 해결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자 양성을 하기 어려운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요 제자를 세우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34:10 은 말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구약에 나오는 다윗은 그를 기필코 죽이려는 사울에게 쫓김을 당했습니다. 그는 병력을 모으고 전술을 짜서 원수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시편 119:23 은 말합니다.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또한 시편 119:97은 말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곤란의 때에 현실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읊조리는 것은 대책이 없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종일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모해하던 자들을 친히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한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절은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이어지는 19, 20절에 성령 충만의 결과를 말하였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19,20) 여기에서 열거된 성령의 모든 열매는, 본문 골로새서 3:16절에서 언급하는 ‘모든 지혜로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입니다.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충만 곧 성령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 운동력이 있습니다. 약동하는 힘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합니다.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4:12).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장 완벽하게 파악해서 우리 각자에게 가장 지혜로운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가르쳐줄 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모든 문제를 이기게 합니다. 

우리는 앞의 본문에서 여러 가지를 ‘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악한 일을 제거해야 합니다.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서로를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등등.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모든 명령의 말씀을 들을 때 심히 부담스럽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런 것을 우리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들이 옳은 말씀이라고는 알지만 들을 때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만 하시고 우리가 하지 못하면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 명령을 행하도록 만드십니다. 어떻게 만드시냐고요? 하나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사, 우리로 하여금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머리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우리의 영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속에 간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을 통해 우리를 친히 도우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순종하여 살 수 있도록 소원과 능력을 충만히 공급해 주십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때에 변함없이, 아니 더욱 열정적으로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도 능히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당장 나아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풍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진리의 말씀이 내면에 충만한 말씀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소원, 내면의 깊은 성향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코로나 기간뿐 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우리 마음에는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죄의 유혹이 역사합니다. 그것들과 싸워 우리 힘으로 물리치고자 하면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몰아내고자 애를 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두움의 요소들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지게 됩니다. 밀려 나갑니다. 우리가 시대가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늘 성경을 가까이 하여 읽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깊이 묵상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 묵상에는 엄청난 복이 있습니다(시1:1-2). 말씀 묵상의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말씀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0-30번 소리 내어 읽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깊이 묵상이 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남습니다. 이와 같이 귀한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먹고 마시고, 그 가운데서 숨 쉬기를 기도합니다. 머리로만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믿음을 결부하여 말씀을 받아, 말씀이 우리를 날마다 변화시켜 나아가도록 우리 자신을 말씀께 맡기기를 기도합니다(행20:32). 

세계대표이신 윤모세선교사님은 이번 코로나 기간 중에 말씀 읽기와 암송에 힘썼다고 합니다. 새벽을 깨워 양식말씀을 깊이 먹고 성경 통독을 하였습니다. 영국 목자들과 성경공부를 위해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코로나가 와서 사람들과의 접촉이 힘들어지자 예전에 암송했던 성경암송카드를 다시 꺼내어 약 3천 구절을 다시 복습, 암송하였습니다. 그러자 윤모세 선교사님 마음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고, 말씀에 기초하여 사고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도전과 시련 가운데서도 그의 마음에 하늘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신령한 지혜로 문제 해결을 하였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축복의 원천이라며 ‘Praise LORD’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힘을 주고, 성품을 변화시키고, 모든 상황에서 능력을 공급합니다. 

저도 올 한해 제 안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도록 방향을 잡습니다. 그동안 말씀 암송했던 240구절을 복습하고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앞으로 공부하게 될 디모데후서, 요한복음의 주요 요절 말씀을 추려 암송하고자 합니다. 말씀 공부를 깊이 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말씀이 제 마음과 삶을 지배하여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현실만 보면 염려와 걱정, 두려움과 낙심이 몰려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 속에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기 원하십니다. 새해 2021년 우리 각자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말씀이 풍성히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깊이 공부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기도에 힘쓰게 하시며 맡겨주신 캠퍼스 제자양성의 사명을 위해 힘쓰게 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