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에베소서 1강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말씀/ 에베소서 1:1-23
요절/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 시기와 장소는 AD 61-63년경 로마 감옥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잠간 들렀다가 3차 전도여행 때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세워 3년간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그의 집중적인 말씀공부와 제자양육을 통해 에베소에 있던 마술사가 은 5만이나 되는 분량의 마술책을 불태우고 회심할 정도로 큰 말씀역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에베소 사역을 통해 에베소 뿐 아니라 근방에 여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향한 바울의 애정은 남달랐을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란무엇이며 교회에 두신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학기를 앞두고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교회에 두신, 또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에베소는 지금의 터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로마가 소아시아라고 명한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였습니다. 이곳은 마치 뉴욕의 맨하탄처럼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곳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진기한 물품들이 쏟아져들었고 세계 각지에서 돈을 벌려는 상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이곳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아데미 신전이 있어습니다. 이 신전은 길이가 105미터에 폭이 50미터였으며 높이가 17미터나 되는 대리석기둥이 100개 가량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의 보호를 기대하며 이곳에 거액의 돈을 예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신전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은행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무수한신들을 위한 신당과 신전이 있었습니다. 또 이곳에 몰려드는 돈과 수많은 사람들을 기반으로 지어진 화려한 대경기장, 대형 극장, 장터로 사용된 광장, 상점이 죽 늘어서 있는 줄기둥 회랑 등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하늘을 푹 찌르고 들어간 것 같은 초대형 빌딩들이 즐비한 도심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를 쌓고 대형 빌딩을 소유한 부자들이 도심 외곽에 궁전같은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는 그런 곳에서 허름한 상가에 위치한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또 마을 주민 전원이 불교 신도이고 온 마을에 불상 앞에 피운 향내가 가득한 곳에서 혼자 주일 기도하며 예배드리려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당시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이 딱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바다 위에서 작은 배를 타고 거센 파도와 싸우며 희망의 항구를 향해 나아가는 뱃사공과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70-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학교다니면 처지가 다 고만고만하였습니다. 다 먹고 살기 힘들고 부모님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고생하시고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입장이 많이 다릅니다. 비트 코인, 개인 유투브 방송 등 기회만 잘 잡으면 한 달에 수천만원씩 버는 빛나는 인생을 살 수도 있습니다. 처지가 비슷했다가 이러한 기회를 잘 잡아 갑자기 외제 차를 몰고 다니고 건물을 사는 친구들소식을 들으면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학원 다닐 시간도 부족한데 바쁜 시간을 쪼개 말씀을 공부하고 주일이 되면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예배드리는 삶이 혹 사치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청년도 있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에베소 교회에 다니던 청년들의 마음이 딱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말하고자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바울 사도는 먼저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밝히고있습니다. 하나님은 God, 곧 신입니다.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젖가슴이 많이 달린 아데미 여신이 풍요와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여신이라고 믿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실제 아데미 신전에 여신이 내려줄풍요함과 부와 보호를 기대하며 전세계의 상인과 권력자들로부터 수많은 돈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참된 신, 참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아버지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데미 여신처럼 돈을 쏟아부어줌으로 복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 땅에서 하는 일마다 잘되고 번성하여 건물을 사고 외제차를 사고 자식을 낳아 키우면 명문대에 척척 들어가는 그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복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복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하늘에 속했다는 것은 본질적이고 영원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번에 저희 집에 무려 14년만에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위해 모든 짐을 다 치운 후 수도세 등을 정산하기 위해 며칠 후 그 집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재개발로 인해 그 집은 텅 비어 있었고온 구석에 먼지만 가득하였습니다. 그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그곳에서 지난 14년간 먹고 자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살던 당시에는 이러한 삶이 매일 매일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니 그 모든 것이 뜬 구름처럼 다 지나가고 먼지만이 가득하였습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그 집마저 허물어지고 없어질 것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지난 14년간 함께 하여주셨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동시에 이 땅에서의 삶이 이렇게 안개와 같고 허무한 것이라는 의식이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땅의 복은 당시에는 영원할 것 같으나 실상은 안개와 같고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복은 본질적이고 영원합니다. 어린아이는 딱지를 달라고 하고 구슬을 달라고 보챕니다. 딱지를 뺏으면 온 세상이 망한 것처럼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아이에게 근본적으로 유익한 것을 주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같습니다. 하나님은 딱지같고 구슬같은 이 땅의 복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그러한 복에 눈이 멀고 마음이 부패해져 하나님을 떠날까 그것을 염려하십니다. 때로는 가진 딱지를 다 뺏고 구슬을 다 압수함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을 찾게 된다면 그 편을 택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주시는 신령한 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4-5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는 비록 신앙생활을 하지만 죄가 있고 거룩하지 않습니다. 흠도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거룩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엄청 벌면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번에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전역에서 여러선수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그들 중 몇 사람을 대표팀 선수로 선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자식처럼 아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뽑았어. 그러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부르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복입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람은 어떤 다른 이를 통해 마음에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으면 박수를 칩니다. 그 은혜와 감동이 크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온 몸으로 춤을 추며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하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찬양입니다. 찬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공로가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나대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그 공로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영원히 찬양하게 됩니다.
8-10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8-10절은 에베소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높고 위대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이것을 밝히 보고 깨달은 자는 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받지 않고 이것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에베소 성도들은 세계 부와 문명의 최첨단을 달리는 도시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아데미 여신이 가진 부와 능력을 매일매일 체험했습니다. 아데미 여신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상상을 추월했습니다. 에베소 도시의 모든 추가 아데미 여신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를 들면 가정에 둘 수 있는 작은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거기에 금박질을 하여 판매할 경우 엄청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습니다. 또 아데미에 관계된 책을 저술할 경우, <아데미 그녀는 어디에서 왔는가>, <아데미에게 기도하는 법>, <아데미와 함께 하는 하루> 등 제목에 아데미만 붙여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연극을 상영해도 아데미와 관련된 연극이라야 사람들이 보러 왔습니다. 에베소 도시의 모든 것, 돈, 건물, 사람들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 이 모든 것들이 아데미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모든 것을 통일시켰습니다. 아데미는 에베소의 머리였습니다.이런 에베소에의 한 가운데 살고 있던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진정한 머리는 아데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통일시키고 있는 것은 아데미의 또다른 형태인 돈과 쾌락입니다. 한 기사를 보았는데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는데 데이트 비용을 각자 지불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 고깃집을 방문했습니다. 식사비는 전에 약속한대로 각자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측에서 쌈에 고기를 두개씩 넣어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남자는 쌈에 고기를 하나 넣되 먹는 속도를 2배로 올렸습니다. 여자는 왜 그렇게 빨리 먹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똑같은 돈을 내고 똑같이 먹기 위해 2배로 빨리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두 사람은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다소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겠으나 이 기사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돈문제에 매우 민감하며 조금도 손해보려 하지 않습니다. 또 자기가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직장인들은 6개월간 일하여 모은 돈으로 6개월에 한 번씩 해외 여행가는 것을 로망으로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맛집에 가서 줄을 서서 맛집 음식 맛보는 것을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생각합니다. 최소한 5-6명의 이성과 거의 부부처럼 살면서즐길 것 다 즐기고 30대 중후반, 외모나 능력에 자신이 있다면 4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것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이 시대에도, 이 시대를 통일하는 머리는 돈과 쾌락이 아니라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에베소를 가보면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지 않아 고대의 흔적이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 화려하던 아데미 신전은 몇 개의 기둥만 흔적처럼 남아 있을 뿐입니다. 아데미라는 이름 자체도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만 기억할뿐 기억하는 사람조자 없습니다. 반면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터 위에 세운 작은 교회는 로마를 지나 전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2천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바치는 충성된 종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대세로 보입니다. 이에 비해 여기에 모여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minority group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 주역은 우리입니다. 세상 만물이 우리가 머리로 섬기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됩니다. 이 시간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아데미 여신을 섬기다가 안개처럼 사라져간 에베소의 수많은 젊이들 중 하나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충성하며 생명을 드린 에베소 성도들과같이 될 것인가.
11-14절에서 바울은 지금까지 내용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서 성령께서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심을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는 성령은 장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이다 이루어진다는 보증이 되십니다.
15-23절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기도입니다. 에베소서가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고 여러가지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 포인트를 집는다면 이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풍성함이 무엇이며” 바울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는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이 어떤 선수를 대표팀 선수로 불렀을 때에는 그 선수에게 둔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는 이런 이런 장점이 있으니 이 포지션을 맡아 이런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각자를 부르실 때 부르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본래 이과생이었므로 문과 대학인 외대에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과 다투면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외대에 외게 되었습니다. 1987년 청운의 꿈을 안고 한국 외국어대에 새내기로 들어왔을 때 UBF 모임을알게 되었고 이곳에서 신앙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던 1학년 때 대뜸 목자님에게 저는 스탭 목자는 절대 안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목자님은 어이가 없다는듯 “누가 시켜준대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스탭 목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외국어대니까 대학만 졸업하면 곧바로 외대를 떠나 아니 한국을 떠나 세계를 누비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난 30년간 군대 있을 때하고 국민대 2년 반 있던 때를 제외하고 외대를 떠나지 않고 외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외대 학생들을 위한 복음의 일꾼으로 저를 부르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부르실 때에도 구체적인 계획과 소망이 있으십니다. 이 부르심에는 큰 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실컷 부려먹고 연봉도 별로 주지 않는 그런 분이 절대로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에게상상할 수 없는 큰 상을 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 하나님의 생각을 성도들이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9-22절을 보십시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삼으셨느니라” 19-22절은 바울 사도의 기도의 핵심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베푸시는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던 그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위해 베푸시는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시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바로 그 동일한 능력입니다.
어린 아이는 아버지가 부드러운 손길로 자기를 안아주고 자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줄 때 아버지가 가진 힘과 능력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를 위험에서 확 건져내는 그 손길을 통해 아버지가 가진 힘을 다소간 체험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그 큰 힘과 능력을 잊어버리는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자기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으셨을 때 하나님은 별로 힘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입시를 준비하며 기도지원을 많이 받고 또 본인도 기도했던 2세들이 원했던 대학에 가지 못했을 때 대학에서 신앙적인 방황을 많이 하는 이유가 하나님은 내 기도도 들어주지 못하시고 별로힘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가진 힘과 능력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힘과 능력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던 그리스도를 만물이 머리요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힘과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베푸시는 힘과 능력이 그리스도를 살리신 능력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고 나에게 있어 힘과 능력이 부족한 분으로 느껴질까요?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생각과 소망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나의소망과 기도를 들어준다면 우리에게 두신 하나님의 생각과 소망이 다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운데 인생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안목과 통찰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더 성숙하고 능력있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대기업의 회장도 통찰력이 있는 경우 자식을 밑바닥부터 고생시키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장차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만유를 통치하도록 하십니다. 이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삶의 연단을 통해 우리를 키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이 비전과 소망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23절은 교회론입니다. 시간관계상 23절은 다음 에베소 본론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날로 발전하는 현대문명의 한 가운데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젊은들이, 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그 힘과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밝히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하나님의 비전과 소망을 붙들고 승리하는 봄학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