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열왕기상 4강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말씀 열왕기상 8:1-9:9 요절 열왕기상 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본문은 성전공사가 끝나고 성전봉헌식이 진행된 내용이 주된 내용입니다. 특별히 언약궤 안치식과 솔로몬의 봉헌사와 봉헌기도가 주 내용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삶이 회복될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3a절을 보십시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이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성전완성은 착공 7년째인 솔로몬 재위 11년 8월(불월)에 이루어졌습니다(왕상 6:38). 그런데 현재 시점은 7월(에다님월)입니다. 대체적인 성전이 완성되었기에 온 백성이 모이는 초막절 절기(7.15)에 맞추어 봉헌식을 한 것 같습니다. 봉헌식의 하이라이트는 언약궤를 안치하는 것입니다. 언약궤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의 상징인 십계명 돌판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언약궤가 앞서 행진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앞서 행진하는 것입니다. 언약궤가 안치되는 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언약궤의 안치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왕의 즉위식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 뜻 깊고 경축해야 할 행사이므로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어른들이나 지도자들이 다 참여하도록 하였습니다. 3b와 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여호와의 궤는 제사장들이 메고 기타 성막의 기구들은 레위인들이 메었습니다. 성막의 기구들은 철저히 어깨에 메도록 되어 있습니다. 전에 다윗 왕이 잘못 알고 편리한 수레로 옮기다가 하나님의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언약궤의 경우는 레위인 들보다 윗급인 제사장들이 메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어떤 코멘트나 징계가 없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진심과 경외심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참으로 정중하고 경외심 있게 받들기 위해 제사장들이 그것을 메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은 언약궤 안치식을 적당히 치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지휘하며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왕과 백성들이 언약궤 안치식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경외심을 가지고 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6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매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의 아무데나 놓지 않고 성전의 가장 내밀하고 지극히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의 그룹천사들의 날개 아래에 안치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본래 언약궤안에는 십계명 돌판 외에도 하나님의 표적의 증거인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월이 흐르며 소실되었고 십계명 돌판만 남았습니다. 그 돌판은 모세가 호렙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넣었기 때문에 거의 500년 된 돌판 이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가득한 구름은 하나님의 신성하고 충만한 임재를 뜻합니다. 이것은 성전이 해발이 높은 지역에 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구름이 잠깐 걸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현상입니다. 이런 일은 485년 전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도 똑같이 있었습니다.(출40:34,35)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나 갈릴리의 변화산에서 똑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성전에 구름이 가득한 것은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승인하신 것을 뜻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될 때 일어났습니다. 이상에서 성전의 핵심은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을 때 성전이 성전기능을 합니다. 중요한 것이 빠지면 “그것 빠지면 시체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헤롯대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더 화려하였지만 말씀이 없고 물질에 눈이 어두운 장사하는 이들만 있으므로 예수님은 채찍으로 노끈을 만들어 장사치들을 내어쫒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입니다(고전 3:16,17) 우리도 언약의 말씀이 없으면 텅빈 건물이요 죽은 시체와 같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말씀이 있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히 나타납니다. 오뎃사의 이요한 선교사님은 x값이 무한히 커지만 y값도 무한히 커진다는 말을 듣고 ‘무한대’를 생각하면서 공황장애를 앓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습니다. 수위에 들던 실력도 전교 600명중에 500등 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이 창세기공부를 하고 “너는 복이 될지라” 언약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때 그의 삶에 놀라운 하나님의 임재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무기력하던 삶이 생명력이 충만하여 졌고 공주를 넘어 우크라이나 대학생들의 복의 근원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물질문제, 자녀문제도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 있을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소감한편을 깊이 쓰는 가운데 다시한번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자리하기를 기도합니다. 12-21절 말씀은 솔로몬 왕의 성전건축에 대한 경과보고입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하나님은 캄캄한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캄캄한데’라는 것은 인간의 이해와 이성적 분석이 미치지 못하는 초월적 영역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아름답게 지었다 한들 사람이 지은 집에 갇혀 제한을 받으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심혈을 기울여 성전을 짓고 그곳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셔 달라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시키는 무례와 교만으로 보아야 할까요? 이것은 교만과 무례차원보다는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기 원하는 솔로몬의 하나님께 대한 겸손과 사랑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할 때 누군가를 가까이 두고 싶지 않습니까! 역대하 6:13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높이 1m 35cm 의 단상 위에서 봉헌사와 봉헌기도, 축도 등을 시행합니다. 우선 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합니다. 당시 초막절이라 전국에서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고 왕은 그들을 앞에 두고 축복하는 데 이런 왕의 모습은 왕같은 제사장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그의 봉헌사는 어떻게 시작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먼저 솔로몬은 자신의 치밀한 계획이나 지혜로운 운용이나 수고를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며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이하 그의 봉헌사를 보면 주어가 모두 ‘여호와께서’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 왕에게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고 그가 재물을 모아 하나님께 드려 성전건축준비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솔로몬이 그의 지혜를 사용하여 성전건축을 가장 좋은 소재로 철저하게 진행시켜 완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셨고 왕위계승자요 성전건축자로 자신을 지명하셨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솔로몬의 봉헌사를 생각할 때 생각나는 다른 봉헌사가 없습니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봉헌사입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 이 말이 입에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왕위 폐위선언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15:10). 이런 사람들은 롱런합니다. 우리도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철저히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솔로몬의 봉헌사에서 다윗 왕의 주권신앙과 겸손도 배웁니다. 그는 성전건축에 대해 처음으로 마음에 품었던 사람입니다. 성전건축의 식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성전건축을 위해 많은 재물도 모았습니다. 축구선수라면 골을 몰았으면 자신이 골을 넣고 세리모니까지하여 영광을 독차지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왕에게 성전건축의 사명을 솔로몬에게 패스하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이때 다윗 왕은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건축의 사명을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넘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가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곳에서 멈출 줄 아는 겸손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22-53절은 솔로몬 왕의 성전봉헌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봉헌기도를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성전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22-24절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크심과 신실하심을 찬양한 내용입니다. 23,24절을 읽겠습니다.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특히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5,26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후손들이 다윗이 그런 것처럼 자기 길을 삼가며 하나님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 앞에 행하면 하나님이 다윗 왕의 후손들이 끊어지지 않고 왕이 되게 하신다는 언약입니다(25,26 삼하 7:4-17). 다윗 왕조는 번성하며 다윗 왕조는 영원한 왕조가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확실히 지켜달라고 두 번씩이나 재차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나 잘하면 됩니다. 당시는 솔로몬이 최고로 성령충만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행하던 때라 하나님이 약속을 안지킬 까봐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본격적인 봉헌기도에 앞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여호와여,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28)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 이 단어는 당시 솔로몬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의지하고 진심을 다해 기도하던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럼, 그의 간절한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요절 말씀인 30절을 읽겠습니다.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을 보면 성전에 대한 솔로몬의 관점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솔로몬은 하나님이 성전에 영원히 계셔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성전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성전을 향하여 비는 간구를 들으십니다. 이후 솔로몬의 기도에 계속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라는 말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기보다는 성전을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이는 솔로몬이 이해하는 성전이 장소개념을 넘어 섰음을 보여 줍니다. 사실상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매일 혹은 매주 성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율법에도 3대 절기에 20세 이상의 남자들만 성전을 찾을 의무가 있습니다. 더구나 적국과 전쟁 중에 있거나, 적국에 포로로 끌려간 경우,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경우,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이 성전을 향한 창을 열고 기도한 것과 같습니다(단 6:10). 솔로몬이 말하는 성전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영적 매개체요 구심점입니다. 성전개념이 장소개념을 넘어 구심점 개념, 매개체개념으로 발전한 것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을 볼 때 성전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하시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범죄하는 존재요 무엇보다 죄사함이 가장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제 솔로몬은 다음 7가지의 기도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여기서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죄를 짓고 안 지었다고 거짓말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거짓 맹세한 경우 하나님이 재판관이 되사 사람들의 죄를 드러내시고 인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앞에 정직히 행하도록 솔로몬은 기도합니다. 33-40절에서 인간은 범죄하는 존재이며 그로 인해 다양한 징계를 받는 존재입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주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돕지 않으시고 하나님 믿지 않는 나라와의 싸움에서 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이 이것이 죄 때문임을 깨닫고 성전에 와서 간구하면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 백성들이 무사히 귀환하도록 해달라는 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36-39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한 사람이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백성의 삶에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기근이나 전염병이 발병합니다. 잘 자라던 곡식이 시들거나 열매에 까만 곰팡이가 핍니다. 잘 가꾼 밭에 메뚜기나 황충이 떠서 순식간에 다 먹어 버립니다. 그러면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적국에 포위된 경우,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람의 수고가 의미가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개 우상숭배의 죄 때문입니다. 아합 왕의 우상숭배와 하나님과 바알사이에 머뭇거리던 백성들의 죄때문에 3년간 하늘이 닫혔습니다.(왕상 18:17,18) 재앙의 때에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도 생각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그런데요. 그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극복해 냅니다. 반면에 원망과 탓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 직접적인 피해의 동기를 제공한 사람을 원망하고 탓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나 공동체가 재앙을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고 성전을 향하여 무슨 기도나 간구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라는 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한 자를 받으시고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고 다시 하늘 문을 여시고 단비를 내려주십니다. 모든 것이 회복되게 하십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고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솔로몬은 원했습니다(40). 41-45절은 이방인들이 기도하는 경우, 전쟁에 출전하며 기도하는 경우,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라는 간구입니다. 이방인들도 주님의 크신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의 소문을 들습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하나님이 큰 능력을 가진 분임을 알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럴 때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도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여 결국은 만민이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는 한 기도입니다. 출전의 때는 사람이 가장 겸손하고 간절해집니다. 이 때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럴 때는 영적으로 부흥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그렇게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를 받아주시고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달라는 선교적 기도를 하였습니다. 46-50절은 선민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적국에 넘겨진 경우, 그들이 적국에서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를 깨닫고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님께 돌아와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을 돌봐주시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사로잡혀 간 곳에서 불쌍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특히 51-53절에서 이스라엘은 세상만민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불러내신 백성이기에 특별히 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간구입니다. 54-61절은 백성들을 위한 솔로몬 왕의 축도입니다. 내용은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고, 하나님이 앞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자신과 백성들이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날마다 봉헌기도처럼 기도하고 죄사함을 받으며, 필요한 것을 공급받게 하시고 세상만민에게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증거하는 백성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마음을 온전히 여호와께 바쳐 완전히 그 법도를 행하는 삶을 살라는 당부를 합니다. 62-66절은 왕과 백성들이 무수한 제물을 드리며 봉헌식을 마무리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봉헌식과 초막절을 두 주에 걸쳐 성대하게 치루었습니다. 9:1-9절은 성전건축과 왕궁건축을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경고하신 내용입니다. 성전건축 후 왕궁건축까지 마쳤으면 재위 24년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처럼 항상 그 마음을 성전에 두실 것입니다. 문제는 솔로몬이 그 마음을 어디에 두는 가입니다. 그가 만약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면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내치며 성전이라도 던져버리고 그들이 비웃음거리와 속담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솔로몬의 성전봉헌 기도에 나타난 인간은 허물지고 연약한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때마다 하나님 대신에 다른 신을 섬깁니다. 마음중심에 다른 것을 놓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있고 망연자실할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우연히 일어난 일로 보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가운데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고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회개와 회복을 원하셔서 고통스런 일들을 겪게 하십니다. 우리가 고통중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회개하는 가운데 우리를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새롭게 마음의 지성소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안치시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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