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태복음 제 9강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 마태복음 6:19-34 요절/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현재 코로나 19로 항공업계, 운송업계, 관광업계, 학원, 식당등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파송된 선교사님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건강, 안전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 어려움 앞에서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닌가? 굶어죽는 것 아닌가? 염려하게 됩니다. 천국 시민된 제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천국 백성이 재물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19-24절까지는 재물이 있을 때, 25-34절은 재물이 없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천국시민의 삶인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적 물질관과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길 기도합니다.
19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보물이 무엇인가요? 어떤 분이 보물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0장의 빈 카드에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쓰게 합니다. 거기에는 ‘남편’, ‘자녀’, ‘집’, ‘예금통장’, ‘자동차’, ‘말씀노트’, ‘자격증’, ‘나’ 등이 쓰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씩 버리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최후에 남는 카드에 적힌 것이 그 사람의 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말하는 보물은 재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보물이 무엇이었을까요? 옷이나 돈이었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겉옷은 노동자의 열 달 품삯을 모아야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땅에 쌓아두면 약탈자들이 훔쳐가기 때문입니다. 옷을 쌓아두면 좀 벌레가 갉아 먹습니다. 동전을 쌓아두면 동록이 해합니다. 귀금속을 장롱에 숨겨두면 도둑이 흙담으로 지은 집의 구멍을 뚫고 들어와 훔쳐갑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은행이나 투자 전문업체에 맡겨두면 고대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안심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전혀 안전하지 못합니다. 유명 자산 전문기관에 맡겼는데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는 라임사태가 벌어져 수조원의 피해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 더 이자를 받겠다고 ELS에 투자했다가 원금은 고사하고 투자한 돈의 5퍼센트밖에 돌려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모아둔 돈을 다 까먹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피와 땀과 시간과 열정을 드려서, 그리고 전 인생을 드려서 얻은 보물이 한 순간에 이처럼 여러 모양으로 도둑을 맞아 없어진다면 이 얼마나 허탈하고 속상한 일입니까? 특히 죽음이란 큰 도둑이 오면 이 땅에서 이룬 성공과 업적도 은행과 금고에 쌓아둔 재산도 다 빼앗아 가 버립니다. 이처럼 땅에 쌓아둔 재물은 이처럼 결코 안전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하늘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이 살아야 90세, 100세입니다. 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 보물 창고에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오직’이란 말은 지혜로운 유일한 투자 방법이란 말이며, ‘너희를 위하여’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좀이나 동록이나 도둑이 없어 안전하고 영원한 보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익률도 어마 어마 합니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로 돌려받습니다.
어떤 돈 많은 사업가가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갔다고 합니다. 천사가 그를 인도해서 아주 멋있고 으리으리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자기 밑에서 일하던 종업원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은 더 좋을 줄 알고 천사에게 “내 집은 어디 있는지 빨리 좀 가봅시다” 졸랐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아주 허름한 집으로 그를 인도했습니다. 그 부자가 따져 물었습니다. “아니, 내 종업원의 집도 저렇게 좋은데~ 왜 내 집은 이렇게 허름해요.” 그러자 천사가 대답하기를 “당신이 땅에서 보낸 재료로는 이 정도의 집 밖에 지을 수가 없었어요.” 말하더랍니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보물, 즉 물질과 시간과 젊음과 재능을 기쁘게 주님께 드려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히 자신의 피와 땀과 시간과 열정을 드려서 얻은 재물을 엄한데 투자하여 날리지 말고, 하늘에 쌓아 보상받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즈음 온라인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목자님들은 온라인 주일헌금을 잘하고 있습니까? 부끄럽게도 제가 몇 번 주일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인색한 마음, 핑계대는 마음을 회개합니다. 그동안 제가 빼먹었던 것까지 합쳐서 헌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중에 혹시 저처럼 하신 분이 있다면 돌이켜 하늘에 재물을 쌓기를 권면드립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눈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눈은 가치관이며 분별력입니다. 눈이 성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물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이 성한 사람은 물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땅의 부자가 진짜 부자가 아니라 하늘의 부자가 진짜 부자라는 것을 알고 하늘에 보물을 쌓고자 애씁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살았던 인물들 중에 부자들이 꽤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욥,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놓아 가난한 성도들을 섬겼던 바나바, 바울에게 집과 먹을 것을 공급하여 유럽선교를 지원했던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가진 재물을 가지고 주와 복음을 위해 섬겼고 이웃을 섬겼고 선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한 눈으로 재물을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가진 것은 없었지만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현재 가치로는 천원정도)을 연보궤에 넣어 예수님께로부터 부자들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칭찬받은 가난한 과부, 그리고 거지로 살다 죽었으나 천국에 간 나사로도 성한 눈을 가진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반면 눈이 나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의 눈이요, 세상 사람들의 눈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가치, 세상의 이해득실에만 주목합니다.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두움속에서 봉사 문고리 잡듯 잘못된 선택을 하고 멸망의 길로 갑니다.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섬기게 됩니다. 성경에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고자 그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재물에 대한 미련과 욕심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열두 제자중에 한 명인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그는 삼년동안 예수님을 따랐으나 예수님이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나를 따를려면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라’, ‘내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리라’ 이런 말을 자주 듣자 어떻게 했나요? 돈을 사랑한 그는 은 삼십에 그의 스승을 팔아버렸습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돈에 미치면 우리의 눈이 흐려지게 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사는 삶, 천국백성으로서 말씀대로 사는 삶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고 경쟁사회에서 뒤쳐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헌금하는 것을 아까워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나의 영적 눈이 많이 흐려졌구나’ 빨리 회개의 누액으로 눈을 씻고 눈을 성하게 해야 합니다.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이 지혜로운 삶임을 다시 리마인드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24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재물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중립적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재물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후6:10)라고 했습니다. 재물이 인간을 유혹하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돈만큼 많은 노예를 소유한 주인은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사용하지만 돈을 사랑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천국 백성인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어떻게 물질을 다스리며 살 수 있을까요?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5절에서 34절까지 ‘염려’라는 단어가 6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염려란 ‘마음이 분열되다, 나뉘다’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나친 근심 걱정 때문에 마음이 나뉘는 것입니다. 물질 염려가 생기면 초조해집니다. 주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얼굴이 어두워지고 신앙생활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숨과 몸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음식보다 중요한 목숨, 의복보다 중요한 몸을 주셨는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덜 중요한 음식과 의복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인 것입니다. 큰 사랑을 베푸신 이가 어찌 작은 사랑을 베풀지 않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음식과 의복을 비롯하여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줄터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새는 먹을 것을 위해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굶어죽지 않고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로센타 앞 놀이터 나무에 앉은 새들을 가끔 보는데 얼마나 포동포동 살이 쪄 있는지 보기에도 좋습니다. 들의 백합화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옷은 남자들의 수고와 여자들의 길쌈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만들졌습니다. 반면 들의 백합화는 사람들의 돌봄 없이 홀로 자랍니다. 그런데도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보다 더 낫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디자이너도 흉내낼 수 없는 조화롭고 완벽한 치장입니다. 이처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백합화와 같은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만유의 으뜸으로 창조하신 사람을 어찌 입히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자명한 진리를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우리 아버지 아닙니까? 자녀가 굶는데, 자녀가 물질이 필요한데 그냥 내 버려둘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바울목자님~ 자녀가 굶는데 그냥 보고만 계시겠어요? 아니죠. 육체의 부모는 능력이 부족해서 돕는데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창조주시오 만유의 주이시니 도와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공급해주십니다. 롬8:32은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는데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두 말하면 잔소리라는 거죠. 그럼에도 염려하는 이유가 뭐죠?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공급에 대해 확신있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저는 어려움의 때에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여~ 천국밲성들이여~ 자기 아들까지도 아낌없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공급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써 구하고 행할 것이 무엇입니까? 33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이 말씀을 “ 너는 하나님을 염려하고 하나님께서 너를 염려토록 하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어떻게 내 장래를 대비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 나라, 내 왕국을 구축할 것인가? 그것부터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할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지? 내 뜻을 어떻게 이룰까? 관심을 갖기보다 나의 삶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에 관심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좋은 자녀, 좋은 동역자가 되고자 힘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나 살 궁리만 하고,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면 잘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서운하게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일이 안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미처 구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서 챙겨주십니다.
사무엘하7장을 보면 다윗왕은 자기는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휘장가운데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받으시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을 축복해 주십니다. 그것은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다윗의 계보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을 먼저 염려하고 기쁘시게 하고자 할 때 생각지 않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나요? 부와 귀를 구했습니까? 아닙니다. 주의 백성, 주의 나라를 위해 필요한 지혜를 달라고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까지 주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것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나는 현재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먼저 세상 양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그의 의를 추구하는 열망이 우리 마음 중심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종로2부 최희철 목자님은 졸업 후에 캠퍼스 목자로 살고자 서울에 있는 중소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회사를 전전하였습니다. 기술도 쌓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무엇을 먼저 추구하고 있습니까? 먼저 세상 양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열망이 우리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세 보증금마저 까먹고 건강마저 안 좋아졌습니다. 이러다가 망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자기를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의지할 것은 하나님밖에 없음을 깨닫고 매일 새벽기도와 말씀읽기를 하고서 캠퍼스에 올라서 전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책임져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토양산업의 길로 인도하셔서 회사 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2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두 개의 큰 공장을 운영하는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하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희철목자님은 주신 물질을 주와 복음을 위해 풍성하게 기꺼이 내어 드림으로 하늘에 쌓는 삶을 현재 살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들을 많이 지원한 것으로 압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 목자님들~ 이 말씀을 믿으시나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참으로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동안 근심하여 열심히 수고하여 겨우 하루 세끼 먹고 사는데 매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열심히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며 영적인 열매를 맺습니다. 날마다 내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필요를 다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복된 약속을 주신 하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34절에서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내우리는 현재 무엇을 먼저 추구하고 있습니까? 먼저 세상 양식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열망이 우리 마음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까지 당겨서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루 하루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연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매일 매일 주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토록 하십니다. 내일은 내일을 창조하신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5주 동안 26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상황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물질을 쌓아두는 것이 최고구나’ 이렇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 나의 물질관을 테스트 받는 시기구나. 믿음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 이렇게 해석하고 행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어떤 시대에 살든지 물질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코로나 19 기간이 믿음을 배우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명하게 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고 다음으로 자기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실제 삶속에서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물질주의 시대에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천국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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