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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부활절 특강 1강 `그가 살아나셨느니라`(마태복음 28:1-20)2020-04-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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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부활절 특강 1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말씀/ 마태복음 28:1-20
요절/ 마태복음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Happy Easter! 부활의 밝은 새 아침을 축하합니다. 온 지구촌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어둠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도 부활의 밝은 새 아침이 새롭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이 때에 자신이 죽고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먼저 갈 것이니 그 때에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이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체포되셨습니다. 체포된 예수님은 많은 수난을 당하신 후 마침내 십자가 형을 언도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예수님은 많은 수모와 수치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구나 지금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다, 하하하” 한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처럼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했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받으시던 예수님은 오후 세 시쯤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참혹한 버림받음의 고통으로 절규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잠시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바위 속에 판 새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신 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말했습니다. “저 예수가 죽은 후 사흘 후 다시 살아나리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한 후 그가 다시 살아났다 하면 큰 미혹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들에게 자체 경비병이 있으니 무덤을 지키도록 방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방향대로 예수님의 무덤은 큰 돌로 인봉되고 경비병들은 무덤을 굳게 지켰습니다.


28:1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토요일 안식일이 다 지난 후 곧 일요일 새벽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곧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무덤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의 장례습관을 따른 것으로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동굴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고인에 대한 마지막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여인들이 무덤에 도달할 때였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형상은 번개 같고 그의 옷은 눈 같이 희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이 일로 인해 두려워하며 시체처럼 되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여인들의 뇌리에는 바로 엊그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선명했습니다. 벌거벗겨진 채 단 세 개의 못에 의지해 십자가에 달려계시던 예수님. 가시 면류관을 쓴 채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예수님의 얼굴. 그리고 마침내 하늘을 향해 절규하신 후 고개를 떨구고 숨을 거두셨던 예수님. 예수님이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과 피가 함께 나오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했습니다.


여인들은 이처럼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죽으신 예수님이 무덤 속의 차가운 바위 위에 눕혔을 때 곧 부패가 시작될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와 미생물들이 곧 그의 몸을 잠식해들어가고 그의 몸을 썩게 할 것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그 부패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죽은 예수님의 시신에 정성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예수님의 시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천사는 예수님이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여러 번 그가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제자 일행과 함께 동행했던 여인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과 여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마 무슨 비유나 상징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죽은 후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말씀하셨던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이 예언한대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한 죽음이 됩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 인생들의 죄문제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생들의 죄문제를 친히 담당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창세기 3:15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또한 이사야 53:4-6절은 메시야가 당할 고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성경은 메시야가 원수에 의해 발꿈치를 상하게 되며 많은 수치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메시야가 당한 수치와 고난과 죽음은 죄인되었으며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이 받아야 할 수치와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저주와 수치와 죽음을 당하시며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러한 버림받음의 고통 가운데 예수님은 절규하신 것이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천사의 메시지를 들은 여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절규하셨던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절규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부르짖는 절규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난 후 그 절규가 사실은 우리 인생들의 죄와 죄로 인한 죽음 문제를 대신 지고 하나님께 버림받음으로 인한 절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인들이 정신없던 상황에서 어떻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여 3년간 항상 예수님을 따르며 그의 말씀을 경청했던 경건한 여인들의 영적인 감수성과 깨달음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습니다. 특히 8절에서 여인들이 큰 기쁨 가운데 제자들에게 달려간 것을 볼 때 여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수치와 죽음이 바로 내가 받아야 할 고난과 수치와 죽음을 대신 받으신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뉴스 기사를 통해 n번 방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한 사람은 n번 방에 입금했으며 그로 인한 수치와 정죄감을 이기지 못하고 한강에 투신하였습니다. 또 한 청년은 음독한 상황에서 경찰에 자수하였으나 이후 다시 장차 받게 될 사람들의 비난과 정죄와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n번 방에서 죄의 낙을 즐길 때 이것이 세상에 공개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도 양심으로는 이것이 큰 죄인 것을 알았으나 영원히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또 죄의 낙의 유혹이 너무 커서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그것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이것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잠시 후면 그들의 죄가 그들을 알고 있던 모든 지인들에게 공개될 것이며 이로 인해 받게 될 정죄와 수치가 피부로 다가왔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임했습니다. 그 공포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큰 공포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법으로 볼 때 우리 모두는 n번방 사건에 참여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평생을 살면서 머리 속으로 했던 모든 악하고 음란한 생각, 또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행했던 모든 음란과 정욕과 시기와 악행들이 전부 다 온 세상에 공개된다면 그 수치와 공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또 그로 인한 영원한 형벌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내가 받아야 할 수치와 저주와 형벌을 대신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절규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로 인해 법적으로 나의 모든 죄는 소멸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 (시편 103:12) 의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내가 지은 죄는 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이도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의 모든 죄를 기록한 의의 책에 내가 지은 죄의 기록은 전부 다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중한 죄를 지은 사람이 정부의 모든 공적인 기록에 그의 죄가 전부 깨끗하게 삭제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죄책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양심의 청결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에게 이러한 큰 은혜를 가져다 주었음을 웅장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발견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마태복음은 기쁨에서 시작하여 기쁨으로 마무리됩니다. 아기 예수님을 만난 동방박사들은 장차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예수님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은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 지구촌이 어둡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나에게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밝은 부활의 아침에 우리도 여인들이 누렸던 그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예수님께 자기에게 경배함으로 천하 만국과 그의 모든 영광을 얻으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서 2:5-1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마태복음의 전체 주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들처럼 무력을 통해 왕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의 왕이 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를 사로잡으셨습니다. 그 사랑에 매료되고 그 사랑에 압도되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를 그의 사랑의 포로로 삼으시고 나의 왕이 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죽음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 권세를 이기심으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외칠 수 있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이 예수님은 온 세상의 왕이요, 내가 참으로 믿고 신뢰하며 나의 삶과 나의 영혼까지도 맡길 수 있는 나의 왕이 되셨습니다.


셋째, 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부활소망이 없는 자들의 삶에는 죄와 죽음이 가져다 주는 깊은 어둠과 허무가 있습니다. 가장 밝게 웃고 있는 그 순간 그 웃음 속에 어둠과 슬픔이 깃들여 있습니다. 가을이 되어 지는 낙엽을 볼 때 무언가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바람에 휘날려 떨어지는 낙엽이 마치 우리네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더욱 쓸쓸한 생각이 듭니다. 또한 봄이 되어 아름다운 꽃이 피는데 어떤 꽃은 채 다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린 꽃도 있습니다. 그러한 꽃은 젊은 청년의 때에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기억나게 하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부활 소망이 없을 때 그러한 아픔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고린도 전서 15:51-54절은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성경은 소망의 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갑니까? 코로나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기를 소망하십니까? 내가 간절히 바라던 기도제목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러한 소망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참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소망입니다. 바울 사도의 간절한 소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가 이 소망을 굳게 붙들었을 때 그는 삶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 심지어 자신의 죽음 문제까지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여 우리의 마음에도 바울 사도가 가졌던, 또 본문의 여인들이 가졌던 이 부활의 소망이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전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던대로 갈릴리로 가서 그들을 만날 것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무서움 가운데서도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나 제자들을 향해 달음질하였습니다. 그 가는 길에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Good morning 아침 인사를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들고 예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저자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경배의 대상임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천사의 메시지대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11-15절은 이 사건을 보고한 경비병에게 제자들이 시체를 도둑질했다는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러한 거짓말이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퍼져 있음을 언급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기록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의 증언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경비병들의 거짓 증언을 통해 퍼진 소문을 믿을 것인지 독자들에게 판단해 보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증인들의 증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특히 마태는 당시 법정에서 그 증언의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여인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마태가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조작하려 했다면 여인들이 아닌 남자들의 증언으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하나님께서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쓰신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러한 증거는 많은 이들에게 믿어졌고 그들은 이 믿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오늘날 인터넷을 떠도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사실은 근거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마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증인들의 증거를 믿을 것인지, 인터넷을 떠도는 이런 저런 주장이나 이야기들을 믿을 것인지. 우리가 기록된 성경의 증거를 믿어 성경에 약속된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에 이르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본문의 앞 부분에서 저자 마태는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가 천사의 증거를 통해 가장 먼저 전해졌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한편 갈릴리에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부활신앙은 눈으로 보는 어떤 신비한 체험이 아닌, 부활의 증인들의 증거를 귀로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정말 만날 수 있다면 믿겠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신비한 기적적인 체험을 하면 믿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부활신앙은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 얻어지게 됩니다. 이 시간 오늘 우리가 마태복음에 기록된 이 부활의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참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른바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제 제자들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사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즘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뭐든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생각합니다. 경찰에 신고하기도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의 가르침을 거부합니다. 간섭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을지라도 자라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지키도록 도와야 할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덧입어 이를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차원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오감각적으로 느끼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은 분명 우리와 지금 이 시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코로나로 인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