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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8년 로마서 제2강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2:1-3:20)2018-08-1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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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로마서 2강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말씀/ 로마서 2:1-3:20

요절/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지난 시간 1:18-32절에서 이방세계의 죄악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바울은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해 논증합니다. 여기에는 양심대로 산다고 하는 도덕주의자들과 행위를 기초로 사는 율법주의자들이 다 포함됩니다. 바울은 3:20절까지의 긴 논증을 통해 결론적으로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다 죄인들임을 선언합니다.

영국에서 한 젊은이가 저명인사 20명에게 장난으로 이런 전보를 보냈다고 합니다. “당신의 모든 비밀이 탄로 났으니 즉시 피하시오” 나중에 조사해보니 그 전보를 받은 20명이 하나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존경받는 저명인사들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 부끄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예쁘게 차려입고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우리도 다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깊이 인정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a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여기서 ‘판단’이란 자신은 전혀 그런 죄와 무관한 사람처럼 남을 정죄한다는 말입니다. 1차적으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그렇게 정죄하기를 잘 했습니다. 또 도덕주의자들이나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판단합니다. 지난 1장 후반부에 나오는 수 많은 죄악들을 들을 때 “어찌 저런 더러운 죄를~! 저런 놈들을 위해 지옥이 있는거야” 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1b절을 보십시오.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그들도 핑계할 수 없는 죄인들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뒤로는 호박씨 까고 똑같은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사람들은 돌을 들어 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자, 모든 사람이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습니다. 이것이 단적으로 무엇을 말해 줍니까? 우리가 구약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의 악행과 우상숭배의 죄를 질타하는 선지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17,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거룩한 척하는 유대인들도 실상은 똑같은 죄를 짓는 죄인들입니다.

  

의인인 체하며, 남을 판단하는 자들에게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남을 판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됩니다. ‘진리대로’란 공의롭게, 공평무사하게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이것과 반대말이 편파적으로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독일과의 월드컵 때 심판들이 은근히 편파적으로 독일에 유리하게 심판을 보는 것으로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2:0으로 이긴 것이 더 통쾌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선진국과 후진국, 빈부귀천, 학벌과 외모등에 따라 엄청나게 편파적으로 사람을 대우합니다. 가장 편파적이지 않다는 군대에서 조차도 “군인들이 죽을 때 ‘빽’하고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금도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기 민족만을 특별히 편애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셨다, 그리고 율법을 주시고 할례를 주셨다는 것에 특권의식을 가졌습니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로서 개, 돼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지옥의 불쏘시개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고, 이방인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의 잘못된 특권의식에 강력히 제동을 걸면서 말합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은 유대인이라고 호의적으로 봐주지 않고 진리대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심판하십니다. 이미 세례요한도 유대인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눅3:7,8)”

혹시 우리들에게는 유대인같은 특권의식이 없는지 돌아보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니까, 나는 목자로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으니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도 하고 일대일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바울은 헛된 특권의식에 빠져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도리어 더 큰 죄를 짓고 있음을 말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남을 열심히 판단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한없는 인자와 용납하심과 풍성함으로 길이 참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모르고 계속 남을 판단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지독한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임할 진노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6절부터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원칙을 말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의 심판원칙은 첫째는 각 사람마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도매금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 UBF 전체, 또 가족단위로 그런 식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각 사람마다 개별적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원칙 둘째는 그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행한 대로 심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내용을 근거로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삶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7,8절을 보십시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여기서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한다는 것은 영어로 seek glory, honor and immortality입니다. 반대로 오직 당을 짓는다는 것은 self seeking을 말합니다. 곧 하나님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 왔는가 곧 마음속의 동기와 인생목적을 보고 심판하십니다. 또 9,10절도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악을 행하는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를, 반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주십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11).

  

이제 12-16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있는 유대인과 율법이 없는 이방인의 심판 기준에 대해 말해 줍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있는 자신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만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 소유와 관계없이 범죄한 그 사실 자체로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 율법을 소유한 자가 의인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이제 바울은 율법 없는 이방인의 경우, 범죄 했을 때 무슨 기준으로 정죄를 받는지를 말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방인들에게는 비록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들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합니다. 예를 들어 불효나 도적질, 간음, 살인과 같은 것은 율법이 없어도, 이런 것이 죄라는 것을 본성적으로 알고 삼가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새겨져 있는 양심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고발하기도 하고 또 변명하기도 함으로써 그 마음에 새겨진 율법의 행위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새겨 놓은 양심의 작용이 율법의 기능을 대신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최후 심판의 날에 예수님이 심판장이 되셔서 모든 은밀한 것을 다 심판하십니다. 그 날에는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고자 했던 죄도 다 드러납니다. 모든 은밀한 것까지 다 심판하시는 주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 심판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진지하고 진실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바울은 17-29절에서 유대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폭로합니다. 17-20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했습니다. 곧 율법을 소유한 것으로 구원받았다고 안심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 율법의 교훈을 받은 자신들이야말로 교사요, 선생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부심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 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유대인들은 남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자신들은 다 했습니다.

‘도둑질 하지 말라’고 하고는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하고는 간음했습니다. 가르치는 것과 실제 삶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들이 이런 위선자들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들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남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자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위선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선의 죄는 목자들, 성경선생들이 범하기 쉬운 죄요, 특히 메신저들이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자신은 다 안다, 자신은 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열외시키고, 남만 열심히 가르치기 쉽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자신에게 적용하기보다 ‘아, 저 말씀은 누구누구가 듣고 회개해야 할 말씀인데...’ 하며 그 사람이 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남을 가르치기에 앞서 자신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우리가 바울처럼 남을 가르칠수록 더욱 자신을 말씀에 쳐 복종시키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5절부터는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유대인들은 할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본래 아브람이 이스마엘에 빠져 소시민적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 주시면서 주신 것입니다(창17장). 따라서 할례는 소시민적인 삶을 회개하고 열국의 아버지로 살겠다는 결단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들은 할례를 했다는 것 자체로 구원을 받았다고 과신했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구원의 자격도, 천국행 티켓도 아닙니다. 아무리 할례를 했더라도 율법을 범하면 무할례자와 똑같습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닙니다. 참된 할례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는 사람이 참된 할례자요 참된 신앙인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해, 유대인들도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는 죄인임을 밝혔습니다. 또 그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할례도 행함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발끈할 것을 예상하면서 문답식으로 말합니다.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이 특권으로 생각했던 것을 바울이 차례차례 다 깨뜨리자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 유대인들을 택하신 유익이 무엇이란 말인가? 또 할례의 유익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범사에 많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축복에 대해서 로마서 9:4,5절은 8가지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말씀을 맡은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맡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지만, 실제 삶은 말씀을 지키지 않고 위선적으로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두 번째 질문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유대인들이 교만하여 복음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만민구원역사를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미쁘심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신실하지 못한 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지 않은 것을 괜히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단호하게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편 51편을 인용하여 주님만이 의로우시고, 주님만이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어떤 자들’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다 복음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2제자들과 바울처럼 믿고 순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믿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은 만민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두 번째 반론에서도 깨진 유대인들은 이제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불의를 행해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는데, 그러면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7,8절도 보십시오.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게 드러나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바울은 지금 우리들에게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퍼뜨리고 있는 겁니다” 바울은 이런 궤변에 대해 그들이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들의 궤변은 마치 ‘가롯유다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가롯유다에서 상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자기들의 불신의 죄를 회개하기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합리화하고자 하는 자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상으로 바울은 유대인들의 반론을 잠재웠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이방인들과 똑같이 죄인임을 논증하였습니다. 이제 바울은 온 인류에 대한 최종선고를 내립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합니다. 온 인류가 다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의인은 단 한 명조차도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하게 보여도, 아무리 성자처럼 보여도 인간 중에는 의인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의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윤동주 시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버트 맥체인은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1813년에 태어나 23세에 목사가 되어 약 7년간 사역을 섬긴 후 30세의 나이에 소천하였습니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경건한 삶이 스코틀랜드의 영적 부흥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맥체인 성경읽기표가 유명한데, 1년에 신약과 시편을 두 번, 나머지는 한 번씩 읽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복음이 육적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첫 번째 사역은 죄를 책망하는 것이다....본성적으로 인간은 매우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상한 심령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성도들은 맥체인 목사님의 말보다 그 분의 경건한 삶에서 경외감을 느끼고 “당신은 성자 같습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당신이 내 마음의 생각을 볼 수 있다면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것입니다”라며 자신도 추한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성자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바울은 이제 11-18절에서 온 인류가 어떤 점에서 죄인인가를 조목조목 이야기 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깨닫는 자도 없다는 말은 하나님을 깨닫는 인식능력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찾는 자도 없다는 말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었다는 것은 다 죄악에 치우쳐 쓸모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은 없다 없다, 없다 없다, 하나도 없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죄악된 인간들은 그 죄악을 입을 통해 마구 쏟아냅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처럼 죄의 악취로 가득합니다. 혀로는 속임을 일삼습니다. 사람들이 혀로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한 번은 거짓말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누가 일등을 했는지 아십니까? 자신은 태어나서 한 번도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한 사람이 일등을 했다고 합니다.

또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세치 혀로 사람을 상처주고 죽입니다. 입으로 남을 저주하고 험담합니다. 한마디로 이 입이 악과 독으로 가득합니다. 요즘 언어폭력이 얼마나 심각합니까! 요즘 청소년들의 입에서 욕을 빼면 말이 안 된다고 합니다.

또한 입술 뿐만 아니라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릅니다. 인류의 역사는 죽고 죽이는 피 흘리는 역사입니다. 이런 죄인들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있을 뿐 평강이 없습니다. 인간이 이런 모든 죄악들을 행하는 근본원인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이 온 세상에 대해 내리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통해,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의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선언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란 율법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선행이나 노력으로도 하나님 앞에 감히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아래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인간들은 일생 죄악을 행하며 저주스런 삶을 살다가 결국 죽어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저는 본문의 유대인과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모태로부터 교회를 다닌 저는 교회를 다니는 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 ubf 모임에 참석했을 때 제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ubf 사람들은 기쁨과 확신이 넘쳤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ubf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여 인생소감을 듣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발표하는 사람과 같은 죄를 지은 것이 생각났지만, 시치미를 떼며 의인인체 하면서 소감발표를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죄를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이 로마서 특공대를 할 때, 눈물을 흘리며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 말씀들 앞에서 저는 남을 판단하며 살아온 교만의 죄, 의인 척하며 살아온 위선의 죄 그리고 과거에 지은 정욕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100% 죄인임을 깊이 인정하였습니다. 죄인임을 100% 인정하는 회개소감을 썼을 때, 하나님은 제게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해 주시고, 넘치는 죄사함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후 저는 목자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이 말씀을 연요절을 자주 붙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금방 바리새인처럼 위선적이 되고 외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설교하기 전에 늘 제 자신에게 설교하고 적용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늘아래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여 있습니다. 마치 집행일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오직 하나님의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함으로 구원의 복음의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중의 최고의 복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로 달려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