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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누가복음 1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누가복음 3:1-20)2022-03-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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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누가복음 1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말씀/ 누가복음 3:1-20

요절/ 누가복음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먼저 세례 요한이 와서 장차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마음에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누가복음은 로마 고위 관료 데오빌로 각하에게 편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는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함으로 본문의 사건이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막연한 스토리나 루머, 혹은 전설이 아닌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를 시작한 지 15년 째 되었을 때,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 분봉 왕으로, 그의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유대 대제사장으로 있었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 있던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그때 요한은 어떤 일을 했습니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본래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행했습니다. 과거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가운데 행하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음받고 이제는 유대교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온 몸을 강물에 푹 담갔다가 나오는 것이 세례의식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요한은 이미 유대교인인 이들에게 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회개(悔改)란 하나님을 떠나 산 것이 죄인 것을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니요?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보니 그들이 겉으로는 유대인이요 신앙인이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요한이 오기 전 이스라엘에 무려 400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400년 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그결과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이 되고 생명력이 없는 죽은 신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먼 옛날 선지자의 이야기에나 나오는 분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는 국제정세가 사람들의 관심사였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어떤 정책을 펼치는가, 빌라도 총독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 이런 국제 정세 가운데 나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가이런 것들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어느 날 빈들에 있던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불꽃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메시지의 핵심된 내용은종말의 심판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였습니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독한 몸살을 앓은지 만 2년이 넘고 햇수로 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코로나 시국이 끝날려나 싶을 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른바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각국은 예전의 냉전 시대로 돌아가 군비 경쟁을 벌이며 온갖 무기로 재무장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평화의 시대가 끝나고 언제고 지구 전체가 멸망할 세계 대전, 핵전쟁이 벌어지는 것이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종말의 위협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선지자를 보내신다면 본문에 기록된 요한이 준 그 동일한 메시지를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산 것, 하나님을 잊고 산 것,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생각하고 산 것을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말씀하실 것입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한편 세례 요한이 등장할 것은 이미 700년 전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예언한 바였습니다. 메시야가 오시기 전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외쳐 말하기를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살던 삶, 하나님을 머리로는 믿지만 실제로는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던 삶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주께서 내 마음에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7-9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의 불꽃같은 메시지를 듣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가로 나왔습니다. 요한은 이런 그들을 칭찬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도 내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러 나왔구나. 잘했다.’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칭찬은 커녕 지독한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평소 주일 예배에 잘 나오지 않던 형제가 있는데 오랜만에 나왔다고 합시다. 그 형제에게 칭찬은 커녕이 독사의 자식아, 누가 너에게 예배를 나오라고 하더냐?’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그 형제는 영원히 예배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요한이 왜 이렇게 심한 말을 했을까요? 이는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요한에게 나오는 그 동기가 크게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죄사함을 주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니까응 말 그대로 세례만 받으면 되는거지, 아이 귀찮아 죽겠네, 빨리 세례 주세요. 집에 돌아가서 하던 일 마저 하게.’ 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다소 과격한 표현을 해서라도 그들을 일깨우기 원합니다. 그들은 현재 심각한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은 이것을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잖아요? 아브라함의 후손이 어떻게 심판을 받나요? 설령 우리가 잘못되었더라도 말씀하신대로 세례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세례 그거 받을게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올게요. 그러면 된거죠?’

 

이런 그들에게 요한은 세례라는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그 회개가 중요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한자어로 회개는뉘우칠 회(), 고칠 개()’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이 마음으로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아버지 품을 멀리 떠난 탕자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으며아 내가 아버지 품을 떠난 것이 크게 잘못되었구나깨닫고 뉘우치는 것이 회개입니다.

 

요한은 세례의식보다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회개가 진실한 회개, 참된 회개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이라고 말합니다. 탕자가 깨닫고 뉘우쳤으면 발걸음을 아버지 집으로 옮겨 그 뉘우침이 진실함을 입증하듯, 너희도 회개했으면 참된 회개의 증거로 회개의 열매를 보이라고 말합니다.

 

10-14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요한의 말에 무리들은 그러면 구체적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 예를 좀 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의 말에 요한은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

 

요한의 말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마치 지구가 흔들리는 것 같은 큰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회개의 표시로 어떤 종교적인 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회개의 표시로 한 마리에 수백만원씩 하는 송아지를 사다가 제물로 드린다면 회개의 표현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을 볼 때 그 회개가 참된 회개라고 여겼습니다. 또 회개의 표시로 하루나 이틀 금식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틀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옷을 찢고 잿더미 위에 앉아 금식기도한다면 이거야말로 참된 회개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평소 입지 않는 여벌 옷이 있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에게 주라고 말합니다. 또 먹다가 남아서 냉장고에 쌓아둔 음식이 있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에게 그것을 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참된 회개, 진정한 회개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이 요한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에서 당시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참된 회개의 표시로 앞으로 소나 염소의 제물을 드리라고 한다면 작게는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원 돈을 써야 함으로 물질적인 부담이 크고 힘든 일입니다. 이에 비해 여벌 옷을 나눠주고 풍족한 음식을 나눠주라는 말씀은 상대적으로 훨씬 부담이 없고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돈이 들더라도 화끈하게 제물을 드리고 그것으로 끝내면 개운하고 뒤끝이 없는데 평소 늘 날마다의 삶에서 내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이웃은 없는지,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없는지 신경써야 한다는 점에서 요한의 메시지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됩니다. 한 마디로 나 중심의 삶에서 이웃 중심의 삶으로 생각 자체, 가치관 자체, 삶의 습관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한의 말을 들은 세리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세리인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까? 요한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세리인 너희들은 정해진 세금 위에 부당한 과세를 하지 말아라.” 요한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세리가 정해진 세금만 딱 부과하고 그것만 받는 것은 얼마나 당연한 일이고 상식에 맞는 일입니까? 문제는 대부분의 세리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세리들은우리가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 이 거칠고 험한 일을 하는데, 마치 일제시대 때 동포를 잡아다가 고문하는 일제 고등계 형사같은 일을 하는데 그 대가로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돈도 못벌면 우리가 왜 일을 하는데?” 하는 그런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리들은 이른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또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는 논리로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했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이다. 그들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나름대로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행하는 그것이 수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아픔과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회개했다면 바로 그 관행을 고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요한의 말을 들은 군인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군인인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까? 요한은 대답합니다. “군인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들을 강탈하지 말고 거짓고발하지 말고 받는 월급을 족한 줄로 알라군인들이 하는 일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고생하는 것에 비해 월급이 턱없이 적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사람들을 강탈하고 거짓고발하는 방법으로 보충했습니다. 월급은 적지만 군인에게는 칼과 무기가 있고 공권력이 있으므로 이것을 남용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요한은 군인들이 만약 회개했다면 바로 그것을 고치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1994년 봉준호 감독이 만든 [지리멸렬]이라는 30분짜리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영화에 3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첫째 이야기에는 연구실에서 포르노 잡지를 보고 학생을 마구 부려먹지만 강의실에서는 근엄하게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의권위주의적 성격을 가르치는 심리학과 교수가 나옵니다. 둘째 이야기에는 아침 운동을 하면서 남의 집 앞에 놓여있는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먹은 뒤 신문배달원을 범인으로 모는 사람이 나옵니다. 마지막 이야기에는 아파트 잔디에 용변을 보려다가 경비원에게 훈계를 듣자 모욕을 당했다며 복수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영화 끝부분에 가면 TV 토론 장면이 나오는데 사회자가 반사회적 흉악범죄가 판친다며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진단하는 세 명의 전문가를 소개합니다. 그 세 사람은 각각 대학 심리학과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부장검사입니다. 이들은 학계, 언론계, 공권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바로 앞의 세 이야기에서 등장한 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그럴듯한 말로 토론을 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새벽 일을 나가기 위해 일찍 잠드는 신문배달원, 교수가 TV에 나오자 관심을 보이는 대학생,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순찰하는 경비원입니다. 이 세 사람은 앞에 나온 권력자들에게 각자 피해를 당한 사람입니다.

 

봉준호 감독이 가진 문제의식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 사회 지도자들로 행세하는 것이 이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문제의식과 본문의 세례요한이 가진 문제의식이 동일합니다. 종교적으로 경건하여 한 번에 수백만원짜리 소를 사서 제물로 드리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기도를 하지만 실제 삶에서 자기가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사람들을 괴롭히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사로운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그 금식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나에게 제사드리기 전에, 금식기도하기 전에 그동안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위선을 행하고, 대중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웃에게 갑질하고 피해를 준 것을 사과하고 그 피해를 충분히 변상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 각자는 어떤 점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이번 한 주간 각자 자신을 돌아보는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또 구체적인 영역에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5-20절에서 백성들은 이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신발끈을 풀 정도의 자격도 없으며, 나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요한은 자기가 전한 메시지대로 헤롯 대왕이 남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적인 행위보다 먼저 우리의 삶에 잘못된 것을 구체적으로 회개하여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 깊이 받고 나의 삶에 관행으로 굳어진 잘못된 것, 습관이 된 악행들, 구체적으로 남을 괴롭히고 주어진 권한이나 권력을 남용하여 갑질했던 것들을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고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