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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누가복음 36강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누가복음 21:5-38)2022-12-0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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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제 36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말씀 / 누가복음 21:5-38

요절 /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과 이 세상에 임할 최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는 참으로 귀중한 내용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지를 예수님이 분명히 알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신 이 역사관을 잘 배우고 미래를 대비하며 깨어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현재 예루살렘 성전 앞에 계십니다. 5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였습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칭송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한명이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13:1) 이 성전은 원래 솔로몬성전이 있던 자리에 헤롯대왕이 세운 것입니다. 그는 이두매 사람인데 로마황제의 총애를 받아 BC 37년에 유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행세를 했으나 실상은 부모 모두 에돔 혈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 하스몬왕가의 공주 마리암과 재혼하였고 거대한 성전과 왕궁, 원형경기장, 목욕탕, 도로 등을 지었습니다.

 

헤롯성전의 규모는 솔로몬성전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였습니다. 솔로몬성전은 성소의 높이가 15미터 정도였는데 헤롯성전은 30미터나 되었습니다. 특히 헤롯 성전 현관의 높이는 약 50미터에 이르며, 현관 정면과 동편이 금으로 꾸며져 그 화려함이 세상의 어떤 건축물과도 비할 바 아니었습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기까지 약 80년이 걸렸습니다. 황금으로 덮인 성전은 아침에 태양빛을 받으면 찬란한 광채를 발하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라본 때가 저녁이었기 때문에 아마 저녁노을 빛을 반사한 성전은 매우 찬란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성전이 그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요 지상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건축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화려하고 웅대한 성전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철저히 파괴된다니! 예수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누가복음 19장에서 보았듯이 성전이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요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나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내적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승천 약 40년 후, AD 70년에 로마 군대는 성전을 철저히 파괴합니다. 당대의 금자탑이라 불렸던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되고 성전 서쪽 벽 일부만 남겨진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은 다른 민족에게 주지 않은 성전을 유대인들에게 주셨습니다. 성전은 유대인들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을 자랑만 하고 종교지도자들은 온갖 탐욕을 채우는 방편으로만 이용했습니다.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파괴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배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건물을 화려하게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가 충만하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만민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면 서로 사랑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기능을 상실하면 하나님이 멸하십니다. 또한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전3:16,17) 우리가 외모보다 내면을 정결하게 하며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죄악된 욕망이 가득합니다. 세속의 물결이 거세게 교회공동체를 공격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시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끊임없는 내적 갱신을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현대의 과학문명은 헤롯성전과 같이 멋진 모양을 자랑합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층빌딩들, 초고속 교통수단, 우주왕복선의 기술을 자랑합니다. 인공지능과 유전자공학, 통신혁명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외적인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물과 사건의 내면을 보는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장차 이 땅에 임할 멸망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문명은 반드시 멸망합니다.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과학문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주 예수님께 소망을 두기를 기도합니다. 사라져 버릴 것을 소망하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을 위해 애쓰고 투자하는 지혜로운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그 때와 그 때의 징조를 묻습니다(7).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첫째,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8) 예수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마지막 때의 징조가 무엇이며 제자들은 그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날 것이라 하십니다. 이런 그들에게 미혹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는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이적과 기사로 미혹합니다. 그들은 미래 일을 예언할 수도 있고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13:3, 7:22, 8:9) 설사 그런 능력을 본다고 놀랄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다고 다 하나님의 종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입니다.

 

진리의 말씀보다 이적 행하는 것에 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름난 집회를 쫓아다니며 이적 보기를 좋아합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 능력 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미혹을 당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곧 진리를 받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이 미혹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심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 같이 예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둘째, 전쟁과 질병, 하늘의 징조,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있습니다. 9-11절입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예수님 당시에 로마 제국은 주변 국가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유대 국가에도 내전과 종족 분쟁이 있었습니다. 64년에 로마에 큰 화재가 일어났고, 곳곳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기근과 전염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이나 인류의 멸망 때가 되기 전에 신자들에 대한 심한 박해가 있게 됩니다. 12-15절입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신자들은 집권자들에게 끌려갈 때 스스로를 변호할 말을 잘 준비하여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리어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주님께서 대적들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신자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왜 그런 구변과 지혜를 주십니까? 이는 단지 박해를 잘 피하도록 하고자 하심만이 아닙니다. 그 박해를 통해서도 임금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심입니다. 16-19절을 보면 제자들은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 넘겨져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20-24절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1차 유대 독립전쟁이 AD 66년에 발발했는데 이는 당시 유대 총독 플로루스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으로 예루살렘 성전 보물창고에서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로마는 이에 항의하는 유대인들을 강경 진압을 하였고 이에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동세력은 66 6월에 로마 세력을 완전히 유대에서 몰아냈습니다. 네로 황제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보내 진압하게 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3개 군단 6만여 명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네로의 사망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던 전쟁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디도(Titus)가 재개하여 70 8 10일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불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철저히 약탈당했습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성 안에는 약 270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있었고, 죽임 당한 사람이 무려 110만 명, 포로로 잡힌 수는 9 7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 바로 옆에 디도 개선문이 있는데 당시 성전에서 메노라와 같은 성물을 약탈하는 로마군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장차 올 이 세상 최후의 심판과 멸망의 예표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인류 멸망의 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25,26절입니다.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마지막 때가 되면 전우주적으로 이상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게 됩니다. 그때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27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은 우주적인 사건을 동반하며 공개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2천 년 전에 아무도 모르게 베들레헴 한 마구간에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는 전혀 다릅니다.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십니다. 우주적인 사건을 동반하며 큰 나팔소리와 함께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인류 역사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세 또는 종말이라는 말에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합니다. 다른 하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려움을 이용해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일정 시점을 정해놓고 그때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재물을 갈취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예언했습니다. 몬타나스는 2세기에 세계 종말이 온다고 했고, 이레니우스는 3세기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 안식교의 밀러는 1844 10 22일에 종말이 온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847년에 온다고 했는데 그 예언이 틀리자 여호와의 증인 2대 회장인 루터포드는 1914년에 온다고 했습니다. 또 틀리자 1976년에 온다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장막성전 유재열이 1969 11월에, 하나님의교회 안상홍증인회는 1988년에, 영생교 승리제단은 1990년에, 다미선교회 이장림은 1992 10 28일에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세상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예언하는 근거는 각기 다르지만 제일 큰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인적 환상에 근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본 환상을 근거로 날짜를 예언합니다. 이런 것은 출처도 불분명하고 객관성도 결여되어 있습니다. 둘째, 세대주의 (성경의 상징적 표현들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직접적, 문자적으로 적용하여 해석하는 것) 정보에 근거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대주의자들에게서 나온 정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창조 후 6,000년이 차면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이라는 내용,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낸다는 비유를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보는 내용(1948), 짐승의 열 뿔을 유럽연합공동체로 보는 내용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이 오실 때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각지 않을 때에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36에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가 오심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그가 오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 이적과 표적을 보여도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언제 온다, 어디에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 때는 우리 신자들에게는 구원이 완성되는 날입니다. 데살로니가 4:16,17절은 말씀합니다. 그날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믿은 자들은 무덤에서 일어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때에 살아 있는 신자들은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날에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나타나면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더 이상 기죽지 않고 일어나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라는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그 모든 일로 말미암아 찬양과 존귀를 받으십니다. 이러한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을 굳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29-33절입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았습니다. 그처럼 종말의 징조들을 보게 되면 주께서 오실 때가 얼마 안 남은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헬라인들은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보았고 히브리인들은 40년 정도로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이 예언이 주어진 약 40년 후에 멸망합니다.

 

34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집니다. 방탕은 타락한 본성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생활의 염려가 많은 시대입니다. 대학을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장래 염려가 가득합니다. 우리도 먹고 사는 문제로 마음이 갈라지면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영적인 기운이 막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36절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우리들로 깨어있지 못하게 하는 것, 곧 영적인 잠 속에 빠져 들어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큰 것이 세속적인 영향력입니다. 세속적인 삶은 이 세대를 본받는 생활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는 생활은 우리들로 영적인 잠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로마서 12:2절에서 사도 바울은 권고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생활이 세속에서 탈피하여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생활을 하려면 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고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하는 삶이 늘 새롭게 변화 받는 생활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라면 깨어 있다는 것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자기가 맡은 일에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소에 공부를 성실히 한 학생은 불시에 시험을 봐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이 언제 재림하셔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이라고 불리는 이 날을, 인생의 마지막 날을 사는 자세로 살아감으로 재림과 심판을 준비해야 합니다. J. C. 라일은 "장래 일과 현재의 의무"라는 소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언제라도 그리스도가 오실 것처럼 사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 마지막인 것처럼 하십시오. 성경 어느 장을 읽든 다시는 읽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읽으십시오. 기도할 때마다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가장 잘 준비하는 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류 역사는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향해서 빠르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날은 불신자들에게는 슬픔과 절망의 날이지만 신자들에게는 구원과 승리와 영광의 날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독교역사관과 산 소망을 가슴에 간직하고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과 시험을 이기며 어떤 환난과 고난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을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내적 외적인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오시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런 칭찬을 받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