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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1년 새봄맞이수양회 출애굽기 특강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출애굽기 14:1-31)2021-02-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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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출애굽기 특강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말씀 / 출애굽기 14:1-31

요절 / 출애굽기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는 너무나 유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듣기 전에 벌써 찰톤 헤스톤과 율브린너가 주연한 영화 십계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합니다. 홍해가 기적적으로 갈라진 후 이스라엘 백성은 지나가고 뒤따라온 애굽 군사들은 순식간에 바다에서 몰살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생각합니다. "역시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야. 우리도 믿음으로 건너갑시다!" 하는 마음이 듭니다. 여하튼 오늘 이 귀한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새롭게 배우며, 더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로 믿는 믿음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중요한 노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그들을 보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바로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자 재앙을 당한 바로와 애굽 백성은 이스라엘 자손을 내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도망치듯이 애굽을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 1318절을 보면 그들은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왔습니다. 질서 정연하게 대열을 유지한 하나님의 군대로 출애굽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148절도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나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애굽인들의 은금 패물을 탈취하고(12:35)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부분인 132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14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여기서 '돌이켜'라는 말은 'turn back' 으로 왔던 길로 방향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왔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여 바란 광야를 거쳐 가데스 바네아 쪽으로 들어가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뒤쪽으로 방향을 틀어 바알스본 맞은 편 홍해 바닷가에 장막을 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여기에 장막을 치는 것은 마치 막다른 골목이나 낭떠러지 위에 장막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리라." 이스라엘 자손을 내 보낸 바로는 속이 쓰린 가운데 있었습니다. 막대한 노동력을 상실한 손해의식 뿐만 아니라, 그동안 열 가지 재앙을 당한 원한이 있었습니다. 이런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바닷가에 장막을 쳤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역시 지혜가 없는 노예 백성이로다! 광야에서 독안에 든 쥐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바로를 어떻게 하고자 하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바로가 마음을 굳게 먹고 이스라엘 자손을 추격하여 결국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서 몰살을 당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도록 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이란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지 않은데 완악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는 것을 그대로 두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도 있지만,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완악하게 먹었다는 표현도 여러 번 나옵니다(7:13, 7:22, 8:19, 9:34, 9:35, 13:15). 사람의 본성은 심히 부패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누구나 완악해지고 악심을 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 선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그렇게 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도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 멸망하는 것은 부패한 본성의 소유자인 자기 자신 때문인 것입니다.

 

둘째 의문은,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답은 예스입니다. 잠언서 16:4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인도 지으시고 적절하게 사용하십니다. 세상만사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 악인들에 대해 힘들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리어 악인들을 통해서도 결국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믿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악한 마음을 방치하시고 그를 쓰셔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세상의 근본 문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지만 지금도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냅니다(19:1). 우리의 죄로 인해 영적인 감각이 떨어져 잘 알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장차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2:14). 하나님은 그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돌이켜 바닷가에 장막을 치도록 명하셨습니다. 무리가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여기서 무리는 이스라엘 자손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나아갈 때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 나가주시겠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은금 패물과 의복도 달라고요? , 물론입죠! 나가주시기만 한다면! 다시 안 오실 거죠?" 하며 보냈습니다(12:35,36). 그렇지만 그들이 나가고 나자 마음이 변했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이제 국고성은 누가 짓고 피라미드는 누가 건설할꼬? 누가 가축들을 돌보고 우리 집 청소는 누가할꼬!" 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들을 추격하여 다시 사로잡아 옵시다!" 하는 강경 의견이 대세였습니다.

 

이에 바로가 그들을 추격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 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바로는 곧 자기 병거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최정예 병거, 요즘 말로는 신형 장갑차 600 대를 선봉에 배치하고, 그 뒤로 애굽의 모든 장갑차들이 따르게 했습니다. 애굽의 전 병력과 군사들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속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추격하였습니다. 9절입니다.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이스라엘 자손은 아이들과 심지어 양과 소와 같은 가축도 같이 움직였기에 이동속도가 아주 느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보니 광야에서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애굽 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10b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해가 됩니다. 이제 그들은 모두 몰살당하거나 다시 애굽에 끌려가서 종살이를 해야 되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상황을 굽어 살피시고 구원해주시도록 외쳤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귀합니까? 그런데 문제는 11,12절입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면 기다려야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틈을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고는 바로 모세를 향하여 원망의 말을 쏟아 놓습니다. 이것이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기도 후에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은 기다리지 못하고 즉시로 원망의 대상을 찾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은 11,12절에서 반복되어 나오는 "당신"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머리로는 믿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도 않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당신'''만 있을 뿐입니다. 영국 런던 UBF에 김여호수아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에게 배우는 바가 많은데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의 말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시려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드실 거 같아요. 참 감사하네요." "하나님께서 .." 로 시작하는 그의 말에는 원망이나 비관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모든 일을 낙관적으로 보고 감사함으로 인내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당신이 말이야...", "당신이 그랬으니까 그렇지!" 하는 말이 나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만물을 주관하심을 실제적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하는 여러 죄 중에서 가장 심각한 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이 불신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불신하여 두려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잡히면 정신없는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까지 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개선장군 같이 담대히 나왔습니다. 불신하는 사람은 추하게 보입니다. 그런 사람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그런 사람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이 다만 놀랍기만 합니다. 백성들의 불신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이 출애굽 역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부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 모세는 이런 그들을 감당하며 믿음을 심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백성들의 문제는 불신이요 곧 두려움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렵습니다. 오두방정을 떱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눈으로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오늘 그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볼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대로 애굽 군사를 보았을 때 자기들을 잡아먹을 사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보면 그들은 영원히 다시 볼 일이 없을 죽을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 자기들을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이 친히 애굽 군대와 싸우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할 바는 요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가만히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이미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뜻하신 바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횃불 언약을 맺으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15:13,1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신 목적은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곧 온 세상의 목자 나라로 삼으셔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을 통한 만인구원입니다. 하나님은 그 의도하신 바를 못 이루시는 바가 없으십니다. 그의 뜻하신 바는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가 이루시는 일을 가만히 보는 것입니다. 애굽 군사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치러 온 이 사건은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 역사 가운데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해결하십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당하여 캠퍼스 복음역사를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바가 전혀 없습니다. 복음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도 만드신 분이십니다. 당장 없애실 수도 있으십니다. 코로나 사태는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역사 가운데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코로나 시대를 허락하신 데에는 여러 가지 선한 뜻이 있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우리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을 지금은 다 알지 못할 뿐입니다(55:9).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복음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라는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심을 믿습니다. "I am God, you are not" 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환경 가운데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하면 됩니다. 그동안 분주하게 다니느라 가만히 있지 못했던 면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법을 익혀야겠습니다. 지성인의 목자로서 깊이 있는 영적인 책들을 읽고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겠습니다. 또한 소수의 제자들을 영상으로라도 깊이 있게 일대일을 섬겨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중보기도의 줄을 길게 늘여야겠습니다.

 

지난 1월 초에 북미 스탭수양회에서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캠퍼스 역사를 섬길 것인가 하는 주제로 포럼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코로나 시대 가운데 당신에게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패널리스트들에게 던졌습니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말했습니다. 피싱을 못 가는 것이다, 심방을 못하니 제자양성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다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미니에폴리스 지부의 Spencer Luben 목자가 말했습니다. “The biggest obstacle is myself!” 코로나 시대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다! ,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심을 믿지 못하는 내가 문제입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장애물은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으로 갖고 감사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히 우리가 많은 일을 하기 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한 유명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바는 나의 성결이다." 자신 한 사람의 성결,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자신이 세상에 최고로 기여하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모임의 책임자 중의 하나로써 물론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자신이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자신의 성결한 삶과 경건한 사상, 거룩한 열망을 갖고 예수님을 배우고자 하는 삶 자체가 우리 모임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꾸준히 말씀을 가르치는 목자의 삶을 사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시간 계획과 방법에 따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코로나도 반드시 끝이 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현재 주어진 코로나 기간을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경건한 사람, 믿음의 사람들, 기도의 종들로 힘차게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가 이제 그만 부르짖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 하십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먼저이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이 나중입니다(3:15). 백성들이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까지 의미합니다. 아직 바다는 갈라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방향을 주시고는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와 구름 기둥을 뒤로 옮겨 애굽 군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위치하여 애굽 군사들이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19,20). 2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불게 하셨습니다. 바다가 금방 갈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바닷물이 말라져가는 광경을 보게 하심으로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백성들이 바다를 마른 땅으로 행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홍해가 가끔씩 일어나는 큰 간만의 차이로 마른 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간만의 차로 땅이 드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좌우측에 벽이 생긴 것입니다. 폭포수 같이 벽이 양쪽에 생겼지만 그 물 벽들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물 벽들은 언제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로 지나가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특히 밤에 컴컴한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혼자는 절대로 못 들어갔을 것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들어가니 용기를 내어 같이 들어간 것입니다. 장정들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노인들, 어린 아이들과 가축들까지 그 사이를 걸어갔습니다. 믿음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노예 백성들도 가는데 우리라고 못가? 하는 마음으로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고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기셨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들을 대적하여 싸우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너가자 모세에게 다시 그의 손을 내밀어 물이 흐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순종하니 물 벽이 무너져 애굽 군대를 다 덮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사람들의 시체만을 볼 뿐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이 홍해 도하 사건을 한 문장으로 짧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11:29). 홍해 도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의 대적과 싸우시는 분이요 또한 그의 백성들의 믿음을 축복하는 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15장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나의 실제적인 삶에서 체험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실제 삶에서 매일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하는 삶이 정상적인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사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네 가지 단계를 정리하여 말씀드립니다. 첫째, 홍해와 같은 문제 앞에서 내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둘째,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그 일에 도전하십시오. Do it! 넷째, 승리한 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십시오. 만일 실패 시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다시 도전하십시오. 이 네 가지 단계를 실제 삶에서 부단히 시행하여 믿음의 승리를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를 믿으면 됩니다. 우리는 매일 홍해를 만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그때 기도와 믿음의 도전을 통해 승리를 경험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이론이 아니라 날이 갈수록 믿음이 더욱 생생하며 견고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지속적인 믿음의 승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 내면에 기쁨이 충만하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