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메세지

제목2018년 신년 3강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1-14)2018-01-14 13:56
작성자

2018년 신년 제 3 강


너희는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 / 사도행전 1:1-14

요절 /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 신년 특강으로 사도행전 1강을 전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행전(The book of Acts)은 예수님의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누가복음을 쓴 누가인데 그는 의사요 사도 바울의 선교 동역자였습니다. 누가복음은 AD 80~85년경, 그 후속편인 사도행전은 AD 90~9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열두 사도의 행적인 다 나오는 것은 아니고, 1-12장에는 주로 베드로, 13-28장에는 주로 바울이 행한 일들이 나타납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성령께서 이들을 통해 행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또 제자들에게 무슨 유언적인 명령을 주셨습니까?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며 주님의 우리에 대한 소망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사도행전의 수신자는 데오빌로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데오빌로 각하’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눅1:3). '각하'라는 말은 당시 총독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에게 붙이는 경칭이었습니다. 수신자는 아마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스도나 벨릭스 같은 지방장관으로 보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메시아 사역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절정이 무엇일까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구원의 복음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여기서 '고난 받으신 후에'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는 부활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세상에서 일하실 마지막 때로 매우 중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우리가 20대일 때는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가지에 도전하며 인생의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30대, 40대가 되면 점점 인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부터 40일만 이 땅에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심정이셨을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기간 동안 두 가지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첫째는 사도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제자들에게 꼭 알려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조금 더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친히 사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는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역사에서 일어난 실제적 사건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구원에 이르는 교훈을 가르칩니다. 이런 저런 선행을 하고 고행을 하고 도를 쌓으면 구원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교훈이 아니라 한 사건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 나 자신이 예수님이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전가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말하면, 과거에도 부활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엘리야에 의해 다시 살아난 것이나(왕상 17:22), 수넴 여인의 아들이 엘리사에 의해 다시 살아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왕하 4:35). 신약에도 야이로의 딸이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부활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능력으로 잠시 다시 살아났지만, 그들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히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전파해야할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1:22을 보면,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뽑을 때 사도의 직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1:22)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세력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셔서 죽음을 삼켜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죽음은 부활에 들어가는 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이제 그를 모든 믿는 자도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고린도전서 15:22은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런데 이 사실을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실제로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어떤 확실한 증거들이 있습니까? 빈 무덤을 보이시고 세마포와 수의와 머리 수건들을 부활의 증거로 남겨놓으셨습니다. 열 명의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있던 방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할 때는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나타나사 그의 손가락을 예수님의 손바닥에 그의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도록 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많은 고기를 잡게 하시고 비치 파티를 열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6절에서 놀라운 증언을 합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쓰던 당시 그 오백여 형제중 대다수가 살아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들 중 하나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나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확신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자신이 살아나셨음을 알려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제자들로 하여금 정말로 그 사실을 믿도록 하심입니다. 뼛속까지, 무의식까지 온전히 믿도록 하심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나라요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실제적으로 도래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며 살다가 장차 그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나라가 우리 믿는 자들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것도 지상 메시아 왕국이 이루어질 때 한 자리씩 차지하며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에 목을 매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이 잠시 있다가 썩어 없어질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세상 나라에 관심을 두고 목을 매고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비참하게 죽으신 실패의 도시, 공포의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 비밀경찰들이 현상 수배된 제자들을 뒤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루 빨리 그 도시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조용한 갈릴리로 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시14:7, 53:6, 65:1, 102:2, 135:21, 사 2:3). 


예수님은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머무를 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 하십니다. 메시야의 선구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세례는 물로 자기의 죄를 씻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물세례는 과거의 자기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남을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의 의식행위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한 사람의 영혼을 실제적으로 예수님과 연합하게 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 중생, 곧 거듭나게 됩니다. 물세례를 일생에 단 한번 받듯이 성령세례도 신자의 삶에 단 한번 있는 신비한 영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와 달리 성령충만은 계속하여 받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심으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이제 성령세례를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떤 뜻하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들은 확실한 많은 증거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 예수님이 부활하셨어! 부라보!" 이에 따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산간조각 났던 그들의 꿈도 부활하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꿈은 부활하다! 이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능력 앞에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어!“ 그들은 합심하여 예수님께 여쭙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6절에서 '여쭈다'는 동사는 미완료과거형으로, 계속하여 여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계속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렇죠. 이제죠? 드디어 때가 온 것이죠? 예라고 대답을 좀 해주세요!" 과거 이스라엘은 700년 이상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살았습니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의 통치를 받았고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식민지하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청년들은 기를 펴지 못하였고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절박한 문제, 꿈에도 소원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오직 메시야가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 메시아 되심을 확신했습니다. 로마를 몰아내고 그 옛날 다윗 왕국과 같은 위대한 나라를 이룰 것을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예수님은 이스라엘 회복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 때와 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에 붙인 분도 하나님이시요 로마에서 해방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십니다. 이 하나님은 독재자 같이 무엇이든이 임의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이 사랑의 하나님,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문제를 믿음으로 맡겨야 합니다. 

 

그 대신 그들이 힘써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제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이 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명령의 말씀을 주시고는 그들의 대답도 듣지 않으시고 승천하십니다. 그만큼 8절의 말씀은 제자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지상명령(Supreme Commandment)입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스라엘 회복의 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들은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속한 모임을 선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내 증인” 곧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증인이 누구입니까? 법정에서 자기가 직접 본 것,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사건에 대한 1차 목격자로 진실을 말함을 그 생명으로 합니다. 제자들은 친히 목격한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 그대로 증언해야 합니다. 고대의 증인들은 종종 그들의 증언으로 유죄선고를 받을 수 있는 상대방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증인(마튀스)은 순교자(마터)와 같은 의미를 갖는 단어입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 그대로 말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증언의 범위. 사도들이 부활사건을 증언해야할 범위는 그들이 있는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입니다. 곧 온 세상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할 소식 -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셋째, 성령의 능력. 당시 제자들이 이러한 일을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밖을 거의 나가보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화는 복음의 가치관과 전혀 달랐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중죄인을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런 능력을 덧입도록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이 세계선교 명령은 또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 지상명령은 열두 사도들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부활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기 원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듣고 믿고 구원을 얻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이 받는 그 세계선교사명을 또 다른 제자들에게 위임하며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기 원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절에도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마28:19,20)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희생이 따릅니다. 한마디로 나의 이스라엘 회복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중요하고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해결해야할 나의 이스라엘 회복 문제가 있습니다. 노부모님을 섬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복음화부터 먼저 해야지 웬 세계선교냐 하는 마음도 듭니다. 취업하여 현실 문제부터 해결해야 될 것 같습니다. 결혼문제가 있습니다. 건강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의 문제, 남북통일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들으면 공감이 되고 눈물이 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다 이스라엘 회복 문제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지혜로우시고 능력이 많으시니 안심하고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우리 모임에 처음 나왔을 때, 모두 똑같은 용어를 쓰며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에 심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에 어떤 ‘집단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선교사명은 우리 모임이 만들어내 모토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상 우리 모임은 처음에 세계선교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4.19 와 5.16 이후 방황하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민족복음화가 방향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공부할수록 하나님은 우리가 세계선교 명령에 순종하기 원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과거 탐라국이었던 제주도에 첫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 이후 동남아 선교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싱가포르에 첫 해외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에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나아가는 일이 생겼는데 간호사 몇 명을 데려다가 선교훈련을 주고 선교사로 임명하여 파송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그 이후에 독일과 미국, 캐나다에 계속하여 선교사를 파송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90여 개국에 3천명이 넘는 평신도 선교사가 나아갔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말씀을 공부하는 우리들의 심령에 성령께서 선교 열정을 심으시며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역사였습니다. 


저도 말씀 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부활의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과거 정욕과 교만 가운데 살다가 멸망할 죄인을 구원하시고 부활의 생명을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하여 ‘세계선교 제자양성’을 인생목적으로 정하였습니다.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세계선교의 길이 있으면 어찌하든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동역자는 미국에 미싱공 선교사로 가고자 수속을 하였습니다. 80년대 말 중국이 개방되기 시작하자 저희 가정은 중국 현지 공장에 취업하는 방향을 갖고 수속을 준비했습니다. 막상 나갈 때가 되니 두 딸아이가 중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잠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1989년에 천안문 사태가 터져 모든 외국인의 비자를 중지했고 중국으로 가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 이후 유고슬라비아가 민주화가 되면서 저는 유고 대사관의 운전사로 지원했습니다. 최종 합격이 되어 운전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런데 주 유고 한국 대사님이 나중에 저의 이력서를 다시 보셨습니다. 명문대 출신이 유고에 대사관 운전사로 온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운동권이 틀림없다, 여기서 북한과 내통할 것이다 의심하여 합격을 취소하였습니다. 


그 이후 저는 다니던 직장에서 유럽담당과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저는 매일 밤늦게까지 회사에서 시차가 다른 영국 거래소와 통신해야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이면 정시에 퇴근하여 센터에 와서 양들과 일대일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요한 목자님께 회사를 그만두고 우유배달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자님은 아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요셉처럼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근무하였습니다. 그러자 제가 담당하는 일이 규모가 커지면 실무책임자인 제가 해운회사의 현장인 영국 런던에 가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점심시간에 회사 근처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3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학원에 다니며 어학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1993년 4월에 영국 런던에 주재원 선교사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자존심이 센 영국 대학생들을 피싱하여 제자양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년 동안 한 명과도 일대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제가 커다랗고 시커먼 절벽 앞에 서서 그것을 깨려고 계란 하나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 다시 기도하며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 명령을 주셨다는 것은 결국 이루어질 일이기 때문에 주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증인이 되라’가 아니라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순종할 때 하나님이 친히 되도록 하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믿음을 축복하시고 소원 있는 양들이 오게 하시고 목자들로 자라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들을 영국 캠퍼스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들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1980년까지의 경제 목표는 1인단 국민 소득 1,000불이었습니다. 올해 3만 불이 될 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루어진 경제발전 및 민주화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저는 그 이유가 그 동안 우리 모임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에 힘썼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세계선교를 이루기 원하시는데 그 명령에 어찌하든 순종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 나라를 축복하사 그 일을 더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렵습니다. 남북평화통일, 빈부격차, 청년 실업, 저출산으로 인한 암울한 미래 등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일을 해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일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세계선교명령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이스라엘 회복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살 길은 세계선교입니다. 


우리가 나의 작은 소망을 깨고 만민 구원을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소망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올해 선교사님들을 위해 더욱 뜨겁게 기도하며 우리 가운데 새롭게 선교자원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041년 10만 선교사 파송을 이루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일생 나와 가족,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나 관심을 갖고 살다 죽을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로 삼으사 세계를 품고 섬기는 자들로 삼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올해 ‘세계선교 제자양성’의 목표를 분명히 하며, 우리가 섬기는 캠퍼스 가운데서 맹렬한 일대일 역사를 통해 미래의 세계선교 전사들을 길러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9-11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올려져 가실 때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왜 가리었겠습니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올려가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성령이 임하실 영적 환경을 준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의 끝부분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마가복음의 끝부분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 요한복음은 "내 양을 치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살펴본 예수님의 유언적인 말씀도 세계선교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매우 명확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만민을 구원하고자 원하시는 뜻, 주님의 간절한 소원을 나의 소원으로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