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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사도행전 1강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1-26)2023-03-06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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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1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 사도행전 1:1-26

요절/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즈음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립니다. 코로나도 펜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어 이제 마스크를 벗어도 됩니다. 새 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전환점입니다. 시작이 중요하기에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죠. 오늘 말씀이 사도행전 첫 메시지인데,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길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수신자인 데오빌로는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처음 들은 청중입니다(1:3). ‘데오빌로는 한 개인을 말하면서 동시에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 즉 이방인 신자를 말합니다. 부유층이면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수준은 초보 단계입니다.

‘내가 쓴 글에는~’ 누가복음을 말하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누가 썼나요? 누가가 썼습니다. 그는 의사이며, 이방인이며, 믿음의 2세대에 속합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인칭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장부터 15장까지 3인칭 복수인그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1장만 보더라도, ‘그들이란 단어가 3, 4, 6, 9, 10, 13절에 나옵니다. 이러다가 16장부터 1인칭 복수인우리로 변합니다. 이것은 저자인 누가가 사도바울의 선교여행에 직접 참여하였음을 알려줍니다. 누가는 사형집행을 앞둔 사도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켰던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그는 사도행전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이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어떻게 전파되었는가를 추적하며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신약의 역사서라 부릅니다.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 누가복음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1,2절은 누가복음의 핵심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여러 가지 일을 행하셨다’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그분이 사도들을 택하셨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승천은 누가복음을 끝맺게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져 오사 지상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사 높아지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그의 영인 성령을 보내시고 그의 사도들을 통해 지상사역을 친히 진두지휘하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심으로 천상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살아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가실 때까지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왜 성령으로 사도들을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예수님과 성령 사이의 관계가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은 성령님을 통해서 계속됩니다. ‘사도행전이면서성령행전(The Aacts of the Holy Spirit)’입니다.

 

살아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3절을 읽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첫째,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살아있는 자신의 몸을 직접 보이셨습니다. 떡이나 물고기를 잡수기도 하였습니다. 구약에 나와 있는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믿지 않던 혈육의 동생들에게 보이사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왕국입니다. ‘Nation’이 아니라 ‘Kingdom’입니다. 장소 개념이 아니라 통치 개념입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 나라는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예수를 선포하는 것 (예수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살아나신 예수님을 설명하고, 또한 살아나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합니다. 사도행전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며, 또한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무슨 방향을 줍니까?

4절을 읽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함께 모였다이 말은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사이의식탁 교제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식사할 때 무슨 말씀을 합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왜 떠나지 말라고 할까요? 떠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죽은 곳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자리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실패한 자리입니다. 대적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떠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실패하거나 어려움이 있거나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예수님은떠나지 말라하십니다. 그 이유가 5절에 나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떠나지 않아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도하는 역사가 이제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약에 약속된율법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2:3) 말씀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떠나지 않는 신앙이것을그루터기 신앙’, ‘남는 자 신앙이라 합니다. 다른 말로는버티는 신앙’, ‘붙어있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불 받고, 기적을 체험하고, 숫적인 증가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는 자 신앙, 붙어있는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떠나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이에 그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물어봅니까? 6절을 다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그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요? 이전에 누가복음에서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자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알았습니다.(19:11)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랬는데~ , 글쎄 말이여~ 죽어버리시다니~’하며 비통해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그 기대도 함께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고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니수도인 예루살렘에서 깃발을 올리려나 보다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몇 날이 못 되어 성령까지 받게 된다고 하니이번에 틀림없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겠구나. 야호~” 그들의 야망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 해방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스라엘이라는 영토와 백성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통하여이스라엘 백성의 개념이 바뀐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일의 증인인 것을 몰랐습니다( 24:47-48). 예수님은 유대인만이 아닌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7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이스라엘을 다시 세울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이니 너희는 신경 쓴 일이 아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신경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8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이란 말은 그들이최우선적으로 신경써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예수님은정치적인 이스라엘 나라 회복을 생각하는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방향을 바꾸십니다. ‘권능을 받고권능은(might)’, ‘능력(ability)’입니다. 성령이 사도들에게 와서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사도들에게 어떤 권능을 줍니까? 성령의 권능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하나님 나라가 구현되게 하는 통치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들은 먼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깨닫고 아는 것이 필요한데 이 일을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을 받자 베드로가 유창한 설교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기 전에는 우리가 영적 소경이었으나 성령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사 말씀을 밝히 보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또한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선포된 말씀이 사람들의 심령을 터치하여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회개케 하며 거듭나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또한 성령의 권능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마음에 평강과 기쁨을 줍니다. 초대교회에 박해가 심할 때 로마당국은 그리스도인을 붙잡아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에게 내어주어 죽였습니다. 원형경기장 감옥 벽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나는 내일 맹수의 밥이 되어 죽을 것이다.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그런데 밤에 성령께서 찾아오사 나에게 힘을 주셨다. 이제 평안 가운데 죽을 수 있다. 곧 천국에 입성하게 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끝까지 예수를 붙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순교까지 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까지도 극복할 권능을 성령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의 권능은 예수 이름 권세로 나타나는 여러 기적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이름을 의지하여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걷게 하였고, 여러 특별한 치료 능력을 행하였고, 마술사를 제압하였고, 죽은 이까지 살리는 능력을 행하였습니다.

 

이 모든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도록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나님 나라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행전은 이 말씀에 기초해서 기록하였습니다. 예루살렘(1:1-7:60), 유대와 사마리아(8:1-12:25), 그리고 땅끝으로(13:1-28:31) 이어집니다. 사도들은이스라엘을 생각했는데, 예수님은땅끝을 말씀하십니다. 편협한 지역주의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거센 물결은 이제 예루살렘과 유대라는 지역을 힘차게 넘어서서 유대인이 무시했던 사마리아, 그리고 온 땅을 향하여 확장할 것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우리는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에 관해증언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보고 들은 바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로마는 새 황제가 즉위하면 전령을 보냈습니다. 서쪽으로는 스페인, 북쪽으로는 영국, 남서쪽으로는 이집트까지 보내서 그 소식을 알렸습니다. 죽음 권세를 깨고 살아나신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인류의 구원자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제 사도들의 입을 통해 예수의 이름이 열방에 전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만민의 기치로 우뚝 서게 될 것이며 열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복음 전파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전파의 영역을 말씀하시면서 단순히땅끝까지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땅끝까지 순차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복음역사는 예루살렘에서 증거되기 시작하여 점차 먼곳으로 확장된 것을 봅니다. 자신의 주변 사람은 외면한채 자신과 별로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은 원칙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각 지역을 ‘~라는 등위 접속사로 연결시키심으로써 그 어떤 특정 지역에서 증거되는 것이 다른 지역에서 증거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증거되는 것이나 땅 끝에서 증거되는 것이나 모두가 동등하게 중요합니다.

 

지난 주에 황제이콥목자님 가정의 초대로 시카고 문누가, 폴린 선교사님과 함께 가정을 심방하고 함께 식사하고 교제를 하였습니다. 황준표형제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준표형제는 저에게 가정의 자녀를 먼저 잘 돌보면 좋겠다며 저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제가 회개합니다.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가족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일상사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증인으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동안 한 사람을 위해 기도케 하셨는데, 죽을 수도 있는 병에 걸려 약속된 날짜에 오지 못하고 있는 환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셔서 치과를 방문하고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틀 전 그 분이 치과 문을 열고 몸이 많이 회복된 상태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찌나 기뻤던지~ 치료하면서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습니다. 가실때 전도용지를 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는데 흔쾌히 받아가셨습니다. 다음에 오면 영적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고자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자 힘쓰는 이 일이야 말로 얼마나 역동적이고 가슴벅찬 일인지~ 치과의사 일보다 증인의 삶이 더 보람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 찬양드립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 그리고 다시 오심을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를 믿도록 도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만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확신을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군인에 의해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증인에 의해서, 그리고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복음을 증언함으로 확장이 됩니다.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증인으로 산 사도들의 승리가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이제 도망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을 힘이 생겼습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면서 받는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그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그 승리의 개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더라”(6:7) 이 승리의 표현이 사도행전 곳곳에서 반복하여 나옵니다. 성도들은 박해받는데, 말씀은 흥왕하여 세력을 얻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옵니다.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위축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쁘게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승리와 다릅니다. 한번은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베스도총독이 이렇게 말하죠. “~ 그렇게 머리 좋고 학문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지금 네 꼴이 뭐냐? 안됐다. 쯧쯧쯧...” 그럴 때 바울이 뭐라고 하나요? ‘, 내 꼴이 거지 같네.’ 이러지 않고내가 쇠사슬에 묶인 것 외에는 당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이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감사하고, 고난 받는 것을 감사하고, 복음이 증거되고, 말씀이 세력을 얻어 확장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 실제적으로 그러한 일에 참여하는 것, 이것이 승리입니다. 사도행전은 몇 장까지 있습니까? 28장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바울이 2년동안 로마 감옥에 갇힌 채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서 재판 받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 후 사도 바울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직 사도행전 역사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음을 알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28장이후를 지금 우리가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후 어디로 가십니까? 9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천상사역을 시작하십니다. 구름은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과 땅에 있는 제자들을 갈라놓습니다. 그들에게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예수님만 붙들고 있지 말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합니다. 새 역사를 맞이하고자 그들은 준비해야 합니다.

 

천사는 사도들의 관심을 어디로 돌립니까?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사도들로 하여금 성령을 기다리게 하고, 어떤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소망이 됩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1:4)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함으로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12-26절는 사도들과 예수의 가족을 포함한 120명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쓴 내용입니다. 세상은 강한데, 자기는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새 역사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유다문제를 해결하고자 성경말씀에 기초하여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합니다. 맛디아가 열두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행전 대장정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빈자리를 채울 성령님을 기다리면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즈음 기독교계에서캠퍼스 선교, 끝이다이런 말이 종종 흘러나옵니다. 맞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으로 능히 하십니다. 우리는 끝인데, 하나님은 시작하십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 종로 2부는 그동안 내외적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하고 합심의 그릇을 이루기 위해 힘썼습니다. 어느 정도 이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 버티어주신 사랑하는 2부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바닥까지 내려왔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작년 한해 성령께서 종로2부 청년들 가운데 이루신 역사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의 증인이라는 정체성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덧입고 우리가 있는 자리, 그리고 우리가 가는 그곳에서, 또한 우리에게 특별히 맡겨주신 국민대와 상명대에서 증인으로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