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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사도행전2강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2:1-41)2023-03-1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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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사도행전 제 2

 

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본문 / 사도행전 2:1-41

요절 /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지난 1장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직 예수님의 증인, 즉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대답도 듣지 않으시고 바로 승천하셨습니다. 이는 이 사명이 그들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할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상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을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이스라엘 회복은 그런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영적 회복이었습니다.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2장에서 드디어 성령님이 강림하십니다. 제자들은 권능을 덧입습니다. 그들은 이제 능력 있는 증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본문을 통해 성령 강림과 성령충만한 삶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때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은 헬라어로 '펜테코스토스'인데, 이는 '50번째'라는 뜻입니다. 유월절 후의 안식일 다음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23:15,16) 유대인들은 이 날이 조상들이 애굽 땅을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날이라고 믿었습니다. (19:1) 오순절은 유월절, 초막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대개 유대력 시반(Sivan) 16일로 현재의 태양력으로는 5월말이나 6월 초순이 됩니다. 그 날에는 예루살렘에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오순절날 제자들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장소가 어디였는가에 대해서는 본문은 확실히 언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행1:13에 언급된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제자들이 모였던 곳은 성전의 한 모임 방이었다라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누가복음 마지막 구절을 보면 "그들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라는 말씀이 있고, 또 그들이 각국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거기 모인 많은 사람들이 들은 것을 볼 때, 그들이 다락방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하튼 그들은 한 곳에 모여 예수님의 명령(1:4)에 따라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2,3절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예수님이 약속하신대로 드디어 성령님이 강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사십 일 후에 승천하였으므로, 승천 하신 후 열흘 만에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오실 때는 말구유에 조용히 나셨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오심은 공개적이었고 매우 극적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극적인 현상은 두 가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성령은 영이라서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성령의 강림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일어난 것입니다.

 

첫째,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 실제로 바람이 분 것은 아닙니다. 바람 같은 '소리'였습니다. 그들은 공기의 흐름이 없는 실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처음 강림하셨을 때, 강한 바람이 불 때 일어나는 급한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말씀하실 때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3:8). 성령(프뉴마)과 바람(프노에)은 어원이 같은 말입니다. 성령께서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이  나타나심으로 성령의 임하심을 청각적으로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 이 또한 실제적으로 뜨거운 불이 난 것은 아닙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여러 번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하였습니다(3:2-5; 13:21).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이 나타나게 하심으로 성령의 임하신 것을 시각적으로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3절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임한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일시적으로 임하였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각각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상의 성령강림은 '홀연히' 일어났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성령이 오시리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날과 그 때는 몰랐습니다. 성령의 임하시는 방법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그들에게는 '홀연히' 임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오순절에는 성령님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표적과 함께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성령이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만큼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신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개통식과 비슷합니다. 이제는 믿는 누구에게나 성령이 임하십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 능력을 덧입고 사는 성령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4절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잠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은사주의 모임에서는 우리가 반복하여 성령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즉 구원 받을 때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신자가 된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신자는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우리를 중생시키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고전3:16, 6:19, 8:9)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8:15). 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십니다. (8:11)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 몸의 부활의 보증이 되십니다.

 

한편 성령충만이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배와 인도함을 받는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죄를 짓게 되면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게 됩니다. ( 5:17) 이때 우리는 죄를 자복하여 사함을 받고, 성령을 간구함으로 성령충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자주 죄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회개하고 성령을 구하면 성령님이 다시 우리를 다스려주십니다. 우리로 성령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세례는 일회성이지만 성령충만은 거듭난 신자에게 여러 번 되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순절날에 성령이 처음으로 위로부터 제자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동시에 받은 것입니다. 그 근거는 행1:5에서 예수님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을 것을 약속하셨고, 또 행11:15,16에서는 성령세례가 오순절에 일어났다고 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령세례가 주어질 때 동시에 성령충만이 이와 같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처음 성령님이 강림하신 특별한 경우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이 강림하신 오순절 이후,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성령 없는 크리스천은 없습니다. 8:9b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던 느끼지 않던 모든 신자들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내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지만 우리는 보통 성령님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신자이지만 성령님을 무시하고 나의 욕심대로 살면서 육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삶의 방식을 회개하고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5:18은 명령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은 옵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요 우리가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바입니다.

 

오늘날 성령충만한 신자가 드뭅니다. 성령님을 우리 마음의 한 쪽 구석에 계시게 하고 자기가 알아서 신앙생활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기보다 자기의 정욕과 감정대로 살며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습니다.  이런 세상을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사랑으로 교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하십니다.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지속적으로 살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성령의 열매는 영적 상태가 좋을 때 일시적으로 반짝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내면에 맺어지는 인격의 열매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면 인격이 변하고 성품이 변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은혜롭고 아름다워집니다. 누가복음 11:13에 의하면 우리 하늘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 고갈의 시대에 우리가 성령충만을 사모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14:17)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함과 다스림을 잘 받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복하고 능력 있는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증거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4절을 보면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종 외국어를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외국어 학습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전혀 알지 못했던 말을 초자연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령님은 제자들이 외국어로 말을 하게 하셨을까요? 이는 증인의 사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한 언어는 그들이 복음을 전해야 할 다양한 민족을 의미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시작으로 땅 끝까지 모든 민족과 방언 가운데 불러 모으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일회적이듯이 성령강림은 일회적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성을 확증해주고, 선교하는 교회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으로 인해 본격적인 복음 전파 사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 강림은 선지자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하나님은 성령강림 약 800년 전 요엘을 통해 말세에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이 꿈을 꿉니다. 남종과 여종들은 예언합니다. 예언, 환상, 꿈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계시해주시는 방편이었습니다. 민수기 11장을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9) 하나님의 영을 받는다는 것은 선지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령을 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다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해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영적으로 볼 때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큰 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합니다. 또한 말세에 이루어질 일을 말합니다. 그것은 장차 이루어질 우주적인 변혁입니다. 19,20절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하나님은 기사와 징조를 베푸십니다. 최후에는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임합니다. 곧 주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이러한 말세에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구원하십니까? 21절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부른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그 이름을 믿고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복음을 듣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캠퍼스 동아리 소개제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힘든 수험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들의 앞날에 정말 좋은 일과 밝은 미래만 있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 죄사함과 구원을 얻지 못하면 인생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국은 파멸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성경공부에 초대하고 복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이후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이 말세입니다. 이 기간에는 구원의 문이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님께서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들을 변화시켜주십니다. 그들의 생애를 놀랍게 축복하시고 또한 그들을 쓰셔서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저나 여러분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배우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의 성품이 변하여 예수님 인격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은 이러한 복을 누리게 하심이요, 또한 우리를 통해서 다른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캠퍼스 역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들도 복음을 영접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소망 가운데 성령을 의지하며 힘써 복음을 전파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메시지를 볼 때 참으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설교인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은사주의 운동을 하는 분들을 보면 성령강림 때와 같은 비슷한 기적을 흉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사주의 운동에는 성경 중심적 설교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성령충만의 능력만 강조하기 때문에 청중들이 병고침이나 초자연적 경험만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 예수님을 초점으로 한 성경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22절부터 베드로는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증언합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큰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이러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23절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법 없는 자들이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25-31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이 다윗을 통해서 이미 예언된 것임을 증언합니다. 33절에서는 예수님의 승천과 그들이 받은 성령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오른 손으로 높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제자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요 승천하여 지금도 살아계신 증거입니다. 이 예수님은 장차 큰 권능으로 재림하십니다.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사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두십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36절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이스라엘 온 집이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이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이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 분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외에는 구원자가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굴복시키실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주와 그리스도라는 말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파해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들은 반발하며 거칠게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37절입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찌 할꼬!"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사나운 사람들이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양심에 타격을 받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아파하며 사도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8절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먼저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는 예수님께 대한 자세를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저 한 위대한 사람이라고 보는 관점을 버리고, 그가 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를 주요 그리스도로 모시지 못함으로 인해 그간 잘못된 인생을 산 것을 슬퍼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는 세례는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공적인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성령의 인치심을 상징하는 예식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다른 번역에는 '성령을 선물로'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성령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게 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약속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먼 데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차별이 없이 주어집니다. 그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삼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성령님께서 사도들을 쓰셔서 이루신 역사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제자들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담대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약한 베드로를 강하고 담대한 말씀의 종으로 쓰셨습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사 삼천 명이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담대하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