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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종로새봄맞이 수양회 주제2강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열왕기하 6:24-7:20)2022-02-28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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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맞이 수양회 주제 2 ( 이아브라함 )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

말씀/ 열왕기하 6:24-7:20

요절/ 열왕기하 7: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은 언제입니까? 지원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일 것입니다.  취업이나 승진이 되었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날일 것입니다. 내 집 마련을 하게 된 때, 자녀를 낳게 된 때등 그 날이 아름다운 날 일 것입니다. 아마 현재 상황에서는 코로나가 종식된다면 온 인류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네 명의 나병환자가 맞이한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입니다. 아름다운 소식, 즉 복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는지 이 복음을 왜 우리가 전해야 하는지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성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은 여호람으로서, 그의 아버지 아합처럼 우상을 숭배했던 악한 왕이었죠. 또 선지자 엘리사가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여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이 활동하였습니다. 어두움이 클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어느날 기습적으로 아람 왕 벳하닷이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쌌습니다. 아람의 전략은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여 모든 물자의 반입을 완전히 차단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성 안에 식량이 바닥나고 물가가 폭등하였습니다. 나귀는 유대인들이 평소 입에 대지도 않는 부정한 짐승인데 나귀 머리 하나가 노동자의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은 팔십 세겔에 거래되었습니다. 비둘기 똥 한 웅큼이 한 달 월급인 다섯 세겔에 거래되었습니다. 어떤 목자님은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플레이션이다라고 했습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성 안의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외치며도와주세요요청합니다. 이때 왕이 뭐라고 하죠?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라고 말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여러차례 도와주셨습니다. 바로 6장 앞에서는 아람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아람군인들의 눈을 멀게 하여 사마리아성으로 유인하여 그들을 모두 포로로 잡게 하셨습니다. 기근의 때에 엘리사가 기적을 베풀어 많은 사람에게 먹을 것을 공급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 우릴 돕지 않으니 내가 뭘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왕으로서 책임감도 목자 심정도 없습니다. 현재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28장에서 모세는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이러 이러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심판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성이 적국에게 포위되고 먹을 것이 없어 인육까지 먹게 되며, 마지막에는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임을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말씀을 기초하여 볼 때 현재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한 까닭이 아닙니까?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아서 생긴 것이 아닙니까? 실제로 이 여인의 사연을 들어보니 먹을 것이 없어 아들까지 삶아먹는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왕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옷을 찢는다고 해결됩니까? 굵은 베옷을 입었다고 해결됩니까? 참된 회개가 필요합니다. 자신과 백성의 죄에 대해 가슴을 치며하나님, 저와 우리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은 어떻게 합니까? 31절을 보면내가 엘리사의 머리를 베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려도 좋다고 합니다. 엉뚱한 해법을 내놓고 있습니다. 엘리사 탓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자객을 보냅니다. 뭔가 캥기는게 있는지 얼른 자기도 뒤따라가죠. 현재 우리는 전대미문의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소용돌이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때 엘리사의 집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함께 현 시국을 어떻게 극복할까 의논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아들이 내 머리를 베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느냐엘리사는 왕을살인한 자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의 아비 아합이 수많은 선지자를 죽인 것처럼 그도 지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선지자를 죽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자의 원조가 누구죠? 마귀입니다. 그가 지금 마귀의 조종을 받아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지적해 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왕은 여전히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하나님이 하신 것은 알겠는데~ 해결해 주지 않으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내 맘대로 할거야~ 그런 말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왕에게 알려줍니다. 7 1절에서 엘리사는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열왕기하 전체 요절말씀이기도 합니다. 왕은 그동안 똑똑하고 스팩좋고 논리적인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2절을 보면왕이 의지하는 장관이 나오는데~ 그런 사람의 말을 의지했습니다. 또 조그만 힘들면 내 맘대로, 혈기대로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제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 길이며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엘리사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한 스아는 네 되이고요, 한 세겔은 4일 품삯입니다. 그러니 내일 이맘 때가 되면 하루 품삯으로 고운 밀가루 한되나 보리 두되를 살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가격으로 회복될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죠? 그 방법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그동안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던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까? 왕은아멘했어야 합니다. 이때 왕 대신에 그가 의지하던 한 장관이 나서서 딴 소리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논리적으로 맞는 것 같지만 그의 말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요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을 광야 40년동안 하늘의 창을 내사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그 장관에게 뭐라고 합니까?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성안의 식량문제는 해결되겠지만 너는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의미를 알면 참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이 복음을 기쁜 소식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이 복음의 메시지를 비웃거나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복음이 사망에 이르게하는 냄새라도 되는 듯이 반응합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무법한 군중과 격한 대립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은 모든 불신자의 근본 문제를 마귀에게서 찾으셨습니다.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불신자들의 태도는 그들의 영적 아비인 마귀의 살인 본성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아 그리스도께 등을 돌린 것입니다. 복음은 사탄에게 현혹된 사람들에게 장차 멸망할 것을 경고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마리아 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3절을 보십시오. 성문 어귀에 있던 나병환자 네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여포처럼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나 제갈공명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나 언변 좋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고 천하며 심지어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나병환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습니다. 사도바울은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고 했습니다. 전쟁이 나면 누가 가장 불쌍합니까? 부모 잃은 고아와 병자들입니다. 네 명의 나병환자들은 원래 성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그동안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아무도 그들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안에 들어간들 음식이 없으니 죽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기 그냥 있어봤자 죽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차라리 음식이 있는 아람군대에게 항복하자고 합니다. 죽이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죠. 이판 사판, 죽기 살기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그들은 조금의 가능성을 찾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란 말이 있습니다. 가능성을 찾아 시도해보라는거죠. 그런 가운데서 해결책이 보이고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해질 무렵에 일어나 아람진영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첫 막사에 이르러 보니 군인들이 다 떠나 버리고 없는거에요. 사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람군을 무서운 소리로 위협하여 쫓아 보내신 것입니다. 아람군대는 그들에게 진격해 오는 큰 군대의 소리를 들었어요. 이스라엘 왕이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이 기습공격하는 것으로 판단하였어요. 두려움에 빠졌어요. 혼비백산하여걸음아 나 살려라모두가 줄행랑을 쳤어요. 장기전을 대비하여 가져온 엄청난 식량과 무기, 귀중품까지 다 남겨둔채 급히 도망갔어요. 사실 아람진영을 향해 온 사람들은 나병환자 네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병환자들이 걸어가는 힘없는 발소리가 말발굽소리로 들리게 하시고, 빌어먹던 깡통과 숟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한 병거소리로 들리게 하시고,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소리가 큰 군대의 함성으로 들리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아람군인들이 방금 시켜놓고서 입도 대지 않은 따끈따끈한 피자, 치킨, 콜라, 그리고 이국적인 아람요리까지 배불리 먹었어요. 그 뿐이 아니에요.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었어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신이 났습니다. 한몫 챙기는 것도 대단한데~ 다시 와서 두 번 챙겼어요. 인생역전, 로또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은과 금을 감추다 말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왠지 표정이 다들 이상한거에요. 9절을 보십시오.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왜 그렇습니까?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아람군대를 쫓아내신 것을 말합니다. 풍성한 물자를 다 남기고 도망가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굶주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제 살릴 수 있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보다 더 큰 구원의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아름다운 소식을 알고 있는 우리가 침묵하고서 아침까지 가만히 있다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들이 나병환자가 된 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했는데~ 굶어죽어 마땅한 그들을 하나님께서 먹고 마시게 하심으로 살게 하셨는데~ 풍성하게 탈취물까지 챙기게 하셨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배불리 먹고 재물을 감추고 욕심대로 행하고 있으니~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선치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성안에 나의 가족, 친지, 동포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아 굶어 죽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자기들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이들은 회개하고 사마리아성을 향해 달려갔어요. 즉시 문지기를 불러 외칩니다. “저기 서마가 문지기~ 나 아까 전에 성문앞에 있던 이 아브라함 문둥이인디~ 우리가 방금 아람 진영에 갔다왔는디~ 거기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더랑께.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랑께. 그리고 먹을 것이 엄청 많아~ 빨리 사람들에게 알려주랑께. 알았제~. 꼭 알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이러한 마음을거룩한 부담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누군가 내게 다가와 침묵하지 않고 복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제는 우리가 이 은혜의 빛을 다른사람에게 갚을 차례입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아름다운 소식을 침묵하지 말고 입을 열어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될 것입니다.

 

네 명의 나병환자에게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왕이 믿지 않았습니다. 아람군대의 매복작전이라 판단했습니다. 왕이 조금이라도 엘리사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이것이 혹시 하나님께서 우릴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가 의지하던 장관의 말을 신뢰하였기에 믿지를 않은 것입니다. 구원의 소식이 도착했지만 왕 때문에 그 기회가 날아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 한 신하가 ‘정탐이라도 해 보시죠.’ 간언을 합니다. 정탐을 해보니 나병환자의 보고가 사실이었습니다. 이 신하는 엘리사가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할 때 귀담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을 통해 구원역사가 이루어집니다.

 

구원의 소식이 성안에 알려지자 굶주리던 성안의 모든 백성들이 물밀 듯이 아람진영을 향해 몰려 나갔습니다. 아람진영에 있던 물건들을 마음껏 가져온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왕의 장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성문 앞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밖으로 빠져나가는 백성들에게 밟혀 죽습니다. 물가도 떨어지고 그의 머리도 떨어졌습니다. 불신하면 구원의 은혜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다참 신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에게 알리고 싶을 것입니다. 이제임스목자님은 아내의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사실을 가족카톡방에 올리고 지인들에게 알렸을터인데~ 맞나요? 김찬미자매님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아빠, 엄마에게 즉시 알렸을 것입니다. 특히 너무나도 좋은 소식인 경우에는 지붕위에 올라가 크게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그 단순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일 때 누리게 되는 영원한 축복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신자가 종종 가장 열정적인 복음전도자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훈련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전도 기법에 집착하지도 않고 거절을 당할까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순수하고 웅대한 복음의 영광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열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식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인간의 자부심을 훼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강력히 거부되고 거절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면 열정이 식어지고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조차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박해로 말미암아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고백합니다(고전2:3). 둘째,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온갖 염려와 분주한 일상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기다 보면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셋째, 복음의 내용에 익숙해지다보면 처음에 느꼈던 열정과 경이로움이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복음이 여전히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을 철 지난 소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에는 긴박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전도의 열정이 식어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갈렙목자님의 메시지에서 나온 것처럼 개구리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아니죠. 어떻게 복음전도의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복음전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타락한 세상이 복음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늘 새롭게 상기해야 합니다. 둘째, 복음전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가장 긴급한 임무임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복음전도보다 더 중요하거나 그보다 더 영원한 결실을 맺는 임무는 없습니다. 셋째, 복음전파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영적 활동들은 하늘나라에서도 계속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이에게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이 땅에 사는 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월을 아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넷째, 들판은 이미 희어져 추수할 때입니다. 오늘날의 세대는 역사상 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갈급한 영혼들이 애타게 목자가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약하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이 있다그는 이 말씀을 의지하여 용기를 내어 1 6개월동안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소수만이 구원을 얻었지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거부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택한 백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전파하되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딤후4:1,2). 많이 말씀을 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실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될까요? 올해 226일까지 코로나 누적 사망자는 594만명이었습니다. 그들중에 복음을 듣지 못해 영원한 사망으로 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거기에 나의 가족 친지들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3월이면 각 대학이 개학합니다. 캠퍼스마다 수 많은 신입생들이 들어옵니다. 그 가운데서 졸업할 때까지 복음을 한번이라도 들어보고 졸업하는 사람이 몇퍼센트나 될까요? 그들은 나의 후배들입니다. 우리는 네 명의 나병환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는 거룩한 부담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말을 잘하여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가정과 친척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