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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민수기 10강 `붉은 암송아지의 재⁠`(민수기 18.19장)2022-01-17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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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제 10

 

붉은 암송아지의 재

 

말씀 : 민수기 18, 19

말씀 : 민수기 19: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성탄과 신년 메시지로 인해 6주 만에 다시 민수기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랜 간 만이라 잠시 지난 말씀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지난 민수기 16장 말씀에서는 고라 자손의 반역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반역에 가담한 회중 가운데서 이름 있는 지휘관 250명과 회중 1 4 700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17장 말씀에서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심으로 다시 한번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이 아론을 택하셨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로서 반역 문제는 일단락 지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심판 받아 죽은 1 4 950명의 시신이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있어, 이를 장사하고,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가 시급했습니다. 이는 시체로만 꽉 채워도 축구장 2개 면적 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20세 이상의 남여 약 120만명이 38년 안에 광야에서 다 죽어야 합니다. 이를 계산해 보면, 날마다 90명 가까이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원치 않게 늘 죽음의 영향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수 많은 시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정하게 된 자들이, 또 다른 사람과 부지 중에 접촉하여 간접적으로 부정하게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날 수도 있다는 것 입니다. 진영 안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인 질서가 크게 위협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배경 가운데서, 하나님은 본문 말씀인 18, 19장 말씀을 주십니다.

 

먼저 18장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규례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규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말씀 해 주십니다. 제사장이 성소와 제단의 직무를 레위인들이 제사장을 돕는 일과 장막의 일들을 잘 동역하여 감당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다시는 미치지 않게 됩니다. 18장 후반부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에 대한 규정 입니다. 오늘은 19장 말씀 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장 붉은 암송아지의 재(19:1~10)

 

1,2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법의 율례를 이제 이르노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 끌어오게 하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한 특별한 제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져오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 입니다. 2절에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를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 가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예수님 입니다. 먼저 온전하여 흠이 없다는 것은, 흠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은 완전한 인간이셨지만, 죄가 없으셨습니다. 또 이 제물의 조건은 한번도 멍메를 메지 않은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한번도 죄의 멍에를 멘 적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제물의 또 다른 조건은 색이 붉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속죄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제물은 암컷이야 했습니다. 암컷은 생명을 상징 합니다. 가축을 키우기 쉽지 않았을 광야에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 입니다. 이런 제물을 어떻게 구한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런 제물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흠 없는 붉은 암송아지' 제물을 가져오라 하신 하나님께서, 시기 적절하게 합당 한 제물을 예비해 놓으셨을 줄 믿습니다. 

 

자 그러면 이 붉은 암송아지에게 어떤 일이 행해 집니까? 3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3 너는 그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줄 것이요 그는 그것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서 자기 목전에서 잡게 할 것이며

 

먼저 준비 된 제물을 대제사장 아론 앞으로 끌어 옵니다. 아론은 제사장 엘리아살에게 명하여 제물을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그의 목전에서 잡게 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떠올리게 됩니다. 히브리서 13 12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붉은 암송아지가 진영 밖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듯, 그리스도는 영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4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피를 찍고 그 피를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붉은 암송아지 제물을 잡은 후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회막을 향하여 7번 뿌립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로서, 완전함, 충만함, 거룩함 등을 뜻 합니다. 즉 피를 '일곱 번' 뿌린다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의미하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지닌 속죄의 완전성을 예표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5 그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르게 하되 그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하고

 

일반 속죄제의 경우, 보통 번제단 밑 혹은 주변에 남은 피를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정결케 하는 재를 만드는 제사에서는 속죄 의식을 위해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남은 피를 희생 제물의 나머지 모든 부분과 함께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일반 속죄제는 여기서 끝이 나는 반면, 본문의 제사는 한 가지 절차가 더 남아 있습니다. 곧 정결의식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6 동시에 제사장은 백향목과 우슬초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에 던질 것이며

 

백향목과 우슬초, 홍색실은 문둥병자나 누룩으로 오염 된 집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에 함께 사용 됩니다. 먼저 백향목은 재질이 좋고, 빛깔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나무이여서 오랫 동안 보존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 건축에서도 사용 되었습니다. 이 백향목은 생명의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우슬초는 야생풀의 한 종류인데, 솔처럼 피를 적셔 뿌리는 도구로 사용 되었습니다. 이 자체가 부정을 정결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도구로 쓰였습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장자들을 죽음에서 건져낼 때에도 우슬초가 사용 되었습니다. 이 우슬초는 정결하게 하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참고로 우슬초에는 의학적으로도 항균 성분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홍색실은 우리를 구속하시려 십자가에 못박혀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제물을 태우는 자는 이 세 가지를 붉은 암송아지가 타고 있는 불에 넣어 함께 태웁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성, 죄를 정결케 하는 능력, 희생의 피을 상징합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죄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정결하게 하기 위해 피 흘려 죽고 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 예수님은 흠 없고 완전하신 제물로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모든 육체의 생명, 곧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감사 찬양 드립니다.

 

7~9절을 형제, 자매 목자님들께서 번갈아가며 읽겠습니다.

 

7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라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송아지를 불사른 자도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물로 그 몸을 씻을 것이라 그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10 암송아지의 재를 거둔 자도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중에 거류하는 외인에게 영원한 율례니라

 

정결한 제사장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드는 일을 하는데요, 속죄제의 한 종류로 불리는 이 일은 마치고 나면 그는 부정 해 집니다. 그 이유는 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속죄 제물에 전가 된 부정에 의해 제사장도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부정한 자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일에 헌신 했음에도, 그 결과 부정해집니다. 제사장 뿐만 아니라, 송아지를 불사른 자와 재를 거두는 자도 마찬가지로 부정해 집니다. 이들은 자기의 옷을 물로 빨고, 그 몸을 씻고 저녁까지 기다려서 그 날이 지나야 정결함을 회복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간은 저녁 때 새 하루가 시작 됩니다. 완성 된 '붉은 암송아지의 재' 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요절 말씀인 9절 말씀을 다시 다 같이 읽겠습니다.

 

9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두게 됩니다. 진영 밖은 다 부정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진영 밖에도 정한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각종 제사를 드리고 난 후 재를 버리는 곳으로서, 이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시체로 인해 부정하게 된 자들은, 이곳에 비치 된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사용 하여 정결하게 될 수 있습니다. 마치 갑작스레 폭설이 쏟아질 때, 사전에 비치 된 염화나트륨을 급히 뿌려 길과 도로의 눈을 녹이듯,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폭설처럼 쏟아지는 부정으로부터 백성들을 건져내시고자, 부정해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정결하게 될 수 있는 길을 급히 마련 하십니다.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이루실 죄사함과 구원의 길을 예표 합니다.

 

 

2 장 사체로 인한 부정을 씻는 법(19:11~22)

 

11~22절에서는 사체를 만진 자에 대한 사례와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정결하게 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게 3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사람의 사체를 만진 자(11~13) 입니다. 11~13절을 형제, 자매, 형제 순으로 읽겠습니다.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렵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라

 

시체를 접한 자는 칠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그가 두 차례, 곧 삼일 째와 제 칠일 째에 '붉은 암송아지 잿물'로 정결하게 하면 제 칠일에 다시 정결 해 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도계속  부정 한 채로 남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자의 시체를 만지고서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그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히는 자가 됩니다. 그는 부정한 채로 여러 사람을 계속 만나게 될 것이고, 결국 부지 중에 부정한 채로 성막을 접하는 사람까지 나오게 될 것 입니다. 그는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힌 셈 입니다. 이런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 입니다. 

 

두번째,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 입니다. 14~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사람이 장막에서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치우기 위해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장막에 함께 있던 자는 모두 부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장막에 있는 그릇 중 뚜껑이 덮어져 있지 않던 그릇은 모두 부정하게 되어 버립니다.

 

세번째,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진 경우 입니다. 1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만일 사람이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진 자는 칠일 동안 부정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부지중에 생기기 마련인데, 그렇다 할지라도 앞의 경우와 동일하게 정결하는 잿물로 씻어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사례들이 있을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직간접적으로 시체를 접한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가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라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이들은 먼저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케 하려고 '불사른 재'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은  '붉은 암송아지의 재' 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흐르는 물에서 떠온 물과 함께 그릇에 담습니다. 흐르는 물은 생명력 있는 물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부정한 자가 아닌, 정결한 자의 도움이 필요한데요, 제사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가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과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립니다. 3일째와 7일째 2회를 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부정했던 자들과 장막과 가구와 모든 것들이 정결하게 됩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이 일을 위해 수고한 정결 한 자 역시, 앞서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만드는 일에 동참 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녁까지 부정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고, 저녁이 되어 그 날이 다 지나가야 다시 정결 해 집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0절에서는 12, 13절의 내용을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 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요소들, 곧 시체를 접하여 부정하게 된 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준비 되어, 언제든지 마음 만 먹으면 정결하게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고의로 부정 한 상태에 거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엄하게 책임을 묻겠다 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이, 내가 끊어버릴거야~ 이런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그런 식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점점 더 멀어져 결국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이미 거듭났지만 예수님께 발을 씻김 받기 거절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8b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8:13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나님의 백성도 허물지고 연약하여 종종 부정 해 지곤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이 마련 해 놓으신 '붉은 암송아지의 재' 를 통해 곧 정결하게 회복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죄라는 단어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죽음이 사람을 부정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죽은 자의 시신, 죽은 자의 장막 곧 죽음의 요소와의 접촉이 사람을 부정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늘 죽음의 요소에 노출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하여 시신을 보고 만지고 처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죄를 지어야, 잘못을 해야 부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시체를 만졌다고 부정해지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 철학에서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까지 말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왜 죽음을 이처럼 부정하게 여길까요? 죽음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은 불순종의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을 파괴합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속성과 정 반대입니다.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결과이며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의 요소와 접촉하여 부정하게 되었을지라도, 정결함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죽음의 요소들로 부터 깨끗하게 되어 생명력이 충만 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렇게 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주신 것 입니다.

 

본문이 오늘 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오늘 날 우리는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죽음의 요소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상조 회사나 장례 대행 업체가 잘 발달하여, 친 가족이 죽어도 시신과 접촉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또 우리 성도들은 시체를 만진다고 해서 부정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 권세를 파하심으로 죽음은 더 이상 믿는 자들에게 아무런 권세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14b 에서는 말씀합니다. "...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그러나 사탄 마귀는 불신자들 안에서 무기력, 허무, 낙심, 절망과 같은 죽음의 요소들로 권세를 잡고, 죽음의 바이러스를 퍼뜨립니다. 주일 날 은혜 받고, 월요일 새벽 양식 말씀으로 새 마음을 덧 입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점심시간 직장 동료가 늘어 놓은 제테크 성공 간증이, 직장 상사가 던진 한 마디 음란한 농담이, 부하 여직원이 무례하게 한 말대꾸에 마상을 입으면, 이에 온갖 죽음의 바이러스가 들러 붙습니다. 다음 날 새벽 기도 시간에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내 안에 죽음의 요소들을 털고 새 마음을 덧 입지만, 어쩌면 그 사이에 이미 내게 들러 붙었던 죽음의 바이러스가 가족들에게 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나마 새벽 기도를 기다렸다 날마다 죽음의 요소들을 털어내면 그래도 다행인데, 어떤 분은 한 주를 기다렸다 주일에 예배드리며 털어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수양회 때, 그것도 힘들면 연요절 소감 때 회개의 소감을 써서 털어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날 우리가 원치 않게, 늘 죽음의 요소들과 접촉하여 살 수 밖에 없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마음이 죽음의 요소로 인해 더렵혀 지는 것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도록, 본문의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준비 해 놓으셨습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보혈은 본문의 암송아지의 재에 비교하여 월등히 아주 월등히 우월 합니다. 히브리서 9 13, 14절에서는 말씀합니다.

 

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암송아지의 재로도 부정한 자의 육체가 정결하게 됩니다. 하물며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가 더럽혀진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마음에서 믿고, 입술로 시인함으로 그 능력을 날마다 수시로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암송아지와 예수님을 제물로서의 가치는 감히 비교 할 수 없고, 여기서는 효용성 측면 만 생각 해 보고자 합니다. 십자가 보혈은 하루에 선착순 100 1000명으로 제한 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것처럼 일정한 장소에 가거나 가서도 추위에 떨며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돈도 안 듭니다. 하루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사용 할 수 있는 횟수도 제한이 없습니다. 원하면 하루 종일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아예 들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같이 사는 가족들과 함께 보혈을 뿌릴 수 있고, 멀리 사는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원격으로 보혈을 흘려 보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려움 가운데 있는 연약한 지체를 위해 은밀하게 보혈을 뿌려주며 중보 기도 해 줄 수 있습니다. 요즘은 미디어 시대인데, 그리스도 보혈을 선포하고, 간증하고, 묵상하는 영상을 만들어 올리면, 미디어를 통해서 시시각각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영상을 접하는 사람을 통해 흘러가기까지 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일하면서도, 운전하면서도, 공부하면서도, 서서도, 앉아서도, 심지어 누워서도 묵상 할 수 있습니다. 잠이 안 올 때, 누워서 눈을 감은 채, 예수님의 보혈찬송이나 보혈을 묵상하는 고백을 하며 잠자리를 청하면, 내 마음이 상쾌 해 지고, 근심과 염려가 달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퇴근 길에 내 마음의 죽음의 요소를 십자가 보혈로 씻고, 집에 가면 집과 가족이 다르게 보입니다. 내 마음의 죽음의 요소를 십자가 보혈로 씻고, 센터에 가면 목자님들이 천사 같이 보이고 센터가 달라져 보이고, 예배의 감격이 새롭게 임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영생하도록 샘솟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을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마음 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보혈의 능력을 체험 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붉은 암송아지의 재보다 훨씬 뛰어난 우리를 정결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보혈의 능력에 힘 입어, 때마다 들어오는 세상의 죽음의 요소들을 털어내고, 나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늘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십자가 보혈' 이 비축 되어 있는 저장소임을 깨닫케 되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가 이를 잘 활용하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영적인 무지와 게으름을 회개합니다. 제가 이를 썩혀 두지 않고, 적극 활용하여, 먼저 제 자신의 내적 정화 작업을 잘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붉은 암송아지의 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의 요소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하심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죽음의 요소들과 접촉하며 영향을 받으며 살 수 밖에 없음을 아시고, 이를 위해 이 모든 것으로 부터 우리를 깨끗케 하는 십자가 보혈을 예비 해 놓았음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매순간 담대히 믿음으로 의지하여, 내 마음과 가정과 교회 공동체의 정결함을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섬기는 직장과 캠퍼스가 그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고 정결하게 하는 십자가 보혈로 적시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