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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신년 제 1강 `인자가 온 것은`(마가복음 10:32-52) 2019-12-30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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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신년 1강

 

인자가 온 것은

 

말씀 / 마가복음 10:32-52

요절 /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훌륭한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꿈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이 너무 많고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명문대 유명학과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위 0.1% 이내에 드는 수재이든지, 아니면 정치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정치 권력을 얻든지, 아니면 빌딩 몇 채를 소유할 정도의 돈을 모으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다수의 청년들은 삶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면서, 예를 들면 일 주일에 한 번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 주말에 시간을 내어 하고 싶은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하는 것 등에 작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2019년에도 그렇게 살았고 2020년에도 변함없이 그렇게 살 예정입니다.

 

사람이 꿈이 작고 목표가 작으면 그의 생각의 스케일이 작아지고, 생각의 스케일이 작아지면 그의 성품과 사람 됨됨이, 인격이 작아지고 종내에는 그의 전체 삶이 작아집니다. 반면 큰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생각이 커지고, 생각이 커지면 그의 삶도 커집니다. 그가 가진 생각과 꿈의 크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동네 뒷산과 같은 존재가 되고 어떤 사람은 백두산이나 지리산과 같은 큰 산이 됩니다. 지리산의 경우 최정상의 높이는 백두산에 밀리지만 그 스케일은 어마어마합니다.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세 개의 도에 걸쳐 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산자락을 보면 바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종로센터 청년들이, 또 우리 목자님들이 2020년에는 백두산과 같이 높은 기상을 가진 사람, 지리산과 같이 큰 스케일을 가진 사람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요? 예수님은 세상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엄청난 것들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마음에 소원을 갖고 결단하기만 하면 실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비결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2020년 큰 꿈과 스케일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0:32-52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먼저 32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예수님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수난과 고난, 죽으심, 또 그 이후에 있을 부활의 영광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진정시키거나 달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당할 고난과 죽음, 능욕과 침 뱉음, 채찍질과 죽음, 또 그 후 있을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비록 지금은 이 말씀이 듣기 힘들지만 이 말씀을 지금 들어두어야 이후 그들이 깨닫게 되고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35-37절을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주께서 영광받으실 때 자기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받으실 수난과 죽음에 대해 귀를 막았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무슨 비유나 상징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로마 정부를 타도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며 다윗과 같은 통치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때에 자기들에게 개국 공신 중 서열 1,2위를 달라는 청탁이었습니다.

 

38-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제자들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또는 화를 내지도 않으셨습니다. 한없는 온유와 인내의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먼저 질문하셨습니다. 곧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주께서 마시는 잔과 주께서 받으시는 세례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을 수만 있다면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지만, 곧 야고보는 사도들 중 첫 순교자가 되고,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어 많은 고난을 당하지만, 그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고 답하여 주셨습니다.

 

한편 예수님과 두 제자 사이에 이러한 대화가 오간 것을 알게 된 다른 제자들은 분기탱천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다 부른 후 말씀하셨습니다.

 

42-4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 당시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아랫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였습니다. 또 고관들은 권세를 부렸습니다. 제자들은 평소 그런 일을 당하면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자기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게 되자 어찌하든 이 기회를 붙잡으려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진정으로 위대한 자, 진정으로 큰 자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다시 한 번 43-4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본문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whoever wants to become great(NIV)”로 곧 “위대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위대한 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진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보셨습니다. 다만 위대한 자가 되는 그 방법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세상의 방법과 다르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곧 위대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섬기는 자는 원문상 servant를 가리킵니다. 이는 식탁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섬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종은 원문상 slave로 섬기는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위치입니다. 종은 자기 소유, 자기 재산이 없습니다. 철저히 주인에게 속해 있으며 그의 생명까지도 주인의 소유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학문, 예술, 스포츠 등 그 분야에서 상위 0.1% 이내에 드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인터넷으로 통합되면서 나타나게 된 무서운 현상 중 하나가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상위 0.1%가 99.9%의 부와 명예와 영광과 권세를 다 독식하게 된 것입니다. 각 분야별 실제 수치가 그 정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아마도 이에 수렴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많은 청년들이 위대하게 되는 꿈 자체를 접었습니다.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작은 행복을 누리는 것이 한 주간의 꿈이 되었습니다. 1년간 열심히 일해서 1주간 해외여행하는 것이 1년의 꿈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이 10년, 혹은 20년에 걸친 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꿈이 작으면 사람이 작아지고 삶이 작아집니다. 큰 꿈을 꾸는 자가 누리는 가슴 벅찬 기쁨과 희열과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창세기 1:2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여기에서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여러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대한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후 사람이 큰 꿈을 꾸고 위대한 삶에 도전하는 존재가 되기 원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그러한 위대한 존재가 되는 비결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다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섬기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 어려움과 역경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섬기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남을 섬기며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남을 섬기며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의 기간 통해 섬김받지 않으시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섬기는 삶을 사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인처럼 제자들이 식사하는 동안 음식 서빙을 하고 식사가 끝난 후 예수님께서 직접 설거지를 하셨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당연히 제자들이 테이블 서빙을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이 식사준비와 설거지를 하였을 것입니다. 또 그날 그날 예수님 일행의 잠자리를 알아보는 일 또한 예수님이 하인처럼 직접 알아보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맡아서 담당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이 섬김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섬기는 삶을 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까?

 

이는 예수님이 여러 죄인들의 죄문제를 섬겨주셨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거듭나지 못한 지성인 니고데모의 죄문제를 말씀으로 섬겨주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한 소리를 할 때 예수님은 인내하시고 때로는 적절하게 야단도 치시면서 그를 진리의 말씀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떽떽거리고 반발할 때에도 온유한 마음으로 그녀의 죄문제를 진리의 말씀으로 도와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죄문제는 곧 그의 근본문제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근본문제를 터치하면 반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죄 문제를 돕고 섬긴다는 것은 많은 반발을 받고 때로는 돕는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합니다.

 

일전에 스탭 모임에서 한국 대표이신 이모세 목자님이 본문을 기초로 스탭 목자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는 키우기 쉽지만 사람은 섬기기 어렵습니다. 평소에 좋을 때는 섬길만한데 자기주장이 강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정말 섬기기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예전에 전요한 목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노랭이 세 마리를 꿀꺽 삼키고 난 후 참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사조는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삶에 일체 간섭하지 않는 것이 곧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요,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맞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죽음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상대방이 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으며 종내에는 그 죄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경우 영원한 죽음에 처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의 죄문제를 도와주어야 하고 그의 죄문제를 섬겨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무지와 교만입니다. 불순종입니다. 질병으로 고통하는 환자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지만 죄로 병든 자는 자신이 죄로 인해 고통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상하게 교만합니다. 반발심이 충만합니다. 자기 뜻대로 하고자 하는 고집과 불순종의 영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죄로 병든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로 병든 한 영혼, 반발심과 자기 중심성과 교만이 충만한 한 영혼을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있습니다. 다시 한 번 45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누구든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이 자기 목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대속물이란 곧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신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를 위해 채찍질과 침뱉음, 사람들의 조롱과 수모를 참고 감당하신 예수님, 손과 발목에 굵은 대못이 박히는 고난을 끝까지 참고 감당하신 예수님, 종내에는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참고 감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람을 섬기는데서 오는 작은 아픔과 어려움들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한 영혼을 돕고 섬길 수 있으려면 다른 무엇보다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있되 단지 이론적이고 지식적인 말씀이 아닌 내 영혼을 변화시킨 말씀, 나에게 생명이 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말씀은 사람을 돕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종로 센터 청년들, 목자님들이 매주 한 편의 소감을 진실되게 감당하는 가운데 내가 체험한 나의 말씀, 나를 변화시킨 말씀을 많이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2019년 한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 한 해였습니다. 오랜 기간 사랑과 섬김으로 도왔지만 힘들어진 한 리더를 볼 때 실패감이 깊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장애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자녀를 출산하면서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을 때 이런 아픔과 고통을 감당하셨구나 깨닫고 운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의 질긴 죄문제를 감당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이러한 수난과 고통을 다 참으셨구나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게 된 귀한 한 해였습니다.

 

어제 종로7부 송년 감사의 밤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요회별, 팀별로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지난 한 해 마음에 있었던 아픔들이 감사와 찬송으로 바뀌는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술 마시러 돌아다니는 연말, 송년 감사의 밤을 준비하기 위해 싱얼롱과 자리 준비, 시와 찬양, BC 시절 부르던 노래와 AD 시절 노래 등으로 섬겨주신 요회 목자님들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3주간 수목금 매일 모여 엄청난 연습으로 준비한 사모님들의 연극이 있었는데, 이제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등 학생들과 나이차가 있고 이단의 도전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주님을 의지하여 변함없이 캠퍼스에 나가고자 결단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세들이 자기 엄마들이 연극하는 것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는데 그들이 자기 부모의 삶과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며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청년들이 주축이 된 스쿠루지 연극을 통해 청년들이 회개하고 변화될 비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실패 의식과 상처 가운데 있던 저에게 이 분들을 통해 위로하시고 새 소망과 비전 가운데 힘차게 2020년을 출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제가 이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고 무엇보다 나를 위해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끝까지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2020년에도 한 영혼을 돕는 일, 진정으로 위대한 이 일에 다시 새롭게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종로 센터 청년들, 목자님들도 다 함께 한 영혼을 사랑과 인내와 말씀으로 섬기는 이 위대한 일에 도전하는 귀하고 복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