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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누가복음 4강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누가복음 5:1-11)2022-04-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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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4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말씀 / 누가복음 5:1-11

요절 / 누가복음 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지난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1,2절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이 Reset 되는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모든 얽매인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심으로 메시야로서 포로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것을 실제적으로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의 해를 다른 곳에서도 전파하시기 위해 그 동네를 떠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첫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다른 동네에 가신 것이 공간적으로 이동하신 것이라고 본다면,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주의 은혜의 해를 오고가는 모든 세대에 전파하도록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첫 제자인 시몬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이 시간 시몬 베드로를 취하사 그로 사람을 취하는 인생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소망과 비전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무리가 호숫가에 계신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나왔습니다. 또한 병 나음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바다 또는 디베랴 바다라고도 불리는데 길이가 약 20km, 폭이 약 11km에 이르는 비파형으로 생긴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헬몬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흘러들어 늘 신선하고 깨끗했습니다. 때는 어부들이 밤새 고기잡이를 끝내고 그물을 손질하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호수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태양빛을 맞으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무리가 점점 예수님 주위로 모여들었고 예수님과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물에 걸린 해초를 떼어내고 찢어진 부분은 꿰매놓아 다음 번 고기잡이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에 바빠 예수님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장모의 열병도 고쳐주신 적이 있는 시몬을 보셨습니다. 그의 배에 잠깐 올라갈 수 있도록 시몬에게 요청하여 오르시고는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주기를 청하셨습니다. 무리들은 호숫가에 있었고 예수님은 배 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시몬도 잠시 손을 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증거하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끝났습니다. 해변의 무리들은 흩어지기도 했고 병 고침을 받고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예수님은 누구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게네사렛 호수의 평균 깊이는 약 26m이고 가장 깊은 곳은 43m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습니다. 43m이면 상당히 깊은 편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그 깊은 데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들은 상대적으로 먹이가 많은 얕은 곳에 많았기 때문에 어부들은 주로 얕은 곳에서 조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시몬에게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시몬이 상식적인 이해를 극복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깊이 만나도록 하심이었습니다.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깊은 영적인 세계로 초대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이는 첫째로, 그는 밤새도록 수고하여 아주 피곤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물 한번 내리는 것이야 어부생활에 단련된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는 지금 밤새 수고하였지만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낙담이 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람이 최선을 다 했는데도 실패하게 되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따끈한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푹 자고만 싶었을 것입니다. 그물을 씻었는데 다시 그물을 내리고 또 씻어야 하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었습니다. 둘째로, 고기잡이에 대해서는 시몬이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아는 예수님은 전직이 목수였습니다.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의 어부로 눈감고도 호수 속을 그려낼 만큼 훤했습니다. 갈릴리 어부들에게는 해가 솟아오른 낮에는 고기가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고기들이 다 숨어버린 이 아침에 그물을 던지라는 것은 영접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시몬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5) 그는 먼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랍비 "Rabbi"가 아니라 "Master"로 되어 있습니다. "Master"는 예수님 당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을 부르는 것 같이 스승과 제자 간에 사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제자는 지식만 전수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스승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단순히 랍비가 아니라, 자신의 스승으로서 배울만한 분으로 인정하고 순종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가 그런 결단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의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 ("Because you say so.") 그는 지금까지 여러 번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랍비들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하고 진실되며 영혼을 파고드는 신선함과 어떤 힘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 4:12) 곧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생기자 그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다는 현실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에 한번 순종해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 10:17)

 

시몬은 배에 올라 호수 중심부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물을 들어 힘차게 던졌습니다. 밤새도록 여러 번 그물을 던졌었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분명히 어제 밤에는 피라미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었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물 안에 팔뚝만한 고기들이 꽉 들어차 힘차게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잡은 팔에 고기들이 마구 움직이는 진동이 감지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며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어이, 야고보, 요한, 이리 빨리 와! 나를 좀 도와줘!" 그들이 도착하여 배를 붙여서 두 배가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그물을 끌어올려 배 위에 올렸습니다. 두 배가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시몬의 동업자들은 이 엄청난 고기들로 인하여 탄성을 질렀습니다. ", 이런 놀라운 일이! ! !" 하며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 이 고기들을 갈릴리 시장에 내다팔면 한 밑천 마련하겠네!"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시몬 베드로는 갑자기 무엇을 하였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물을 끌어올린 시몬은 갑자기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얼굴을 배 바닥에 대고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아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밤낮 열심히 일만 한 그가 도대체 무슨 죄를 범했다고 이런 것일까요? 고기를 한 번에 엄청나게 많이 잡은 불법어로 죄라도 범한 것일까요? 아니면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라고 말했었는데, 불신과 불만에 차 있던 자기 속내를 드러내 보였던 죄를 용서해달라는 뜻일까요? 시몬은 갈릴리 호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고기가 있고 언제 잘 잡히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잘 잡힐 때는 보통 몇 마리나 잡히는 지, 역사상 갈릴리 호수 최대 어획량이 얼마인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는 지금과 같이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갈릴리 어부조합이 생긴 이래 초유의 일이, 아니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부들은 물의 온도와 흐름, 풍향과 풍속, 날씨와 지형 등을 시간대와 연관해 고기의 움직임을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어부의 수준을 엄청나게 초월한 것입니다. 그 차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원래 전문가가 전문가를 더 잘 알아보는 법입니다. 갈릴리 최고 어부 시몬으로서는 이는 도저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은 예수님이 호수 속의 고기들에게 명하사 그물 속으로 불러 모으신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예수님에게 압도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분이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는 신적 경외심 즉, 거룩한 두려움 (Holy fear)에 휩싸였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대면한 자는 죽는다는 것을 유대인인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말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자신이 예수님 앞에 철저히 낮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는 시몬의 두려움을 말해줍니다. 그는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기 목숨쯤이야 가볍게 가져갈 수도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런 분 앞에 있기가 두려웠습니다.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혼자 섣불리 도망을 갔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요청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였습니다. 그는 "나는 죄인이로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무슨 심각한 죄를 지은 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아프신 장모님도 모시고 사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가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을 죄인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거룩한 성전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5)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고 처음 보인 반응은 "나는 망할 자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자기는 그래도 귀족 출신으로 고상한 삶을 살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성전을 사랑하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는 입술이 부정한 자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불신의 말을 하는 비천한 죄인에 불과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절망하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자신의 죄악됨을 발견하고 진실되게 회개하게 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첫 단계는 주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참 자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아 발견은 한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자아 발견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있어야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자를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상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응답하십니다. 예레미야 29 12,13절은 말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겸손한 마음, 상한 심령으로 은혜를 구할 때 주님은 만나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본문의 시몬 베드로와 같이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죄악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이 진정한 깨달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면 자신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눈에서 자기 의와 교만의 비늘이 벗어지고 겸손과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의 야곱은 자신의 강한 인간성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교활한 라반 밑에서 대가족을 이루었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성실함과 강인함으로 맨 손으로 성공 신화를 일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자신을 대견하게 여겼습니다. 자기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얍복강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그와 씨름해주셨습니다. 야곱의 환도 뼈를 치사 그의 강인한 인간성을 깨뜨리시고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정말 어떠한 자인지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 곧 속여 빼앗는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존재가 변하였습니다. 그가 변화되자 그의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살인자로 보였던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과 같이 보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본래의 자기 모습 곧 하나님이 주신 형상을 되찾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진정한 자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역설의 진리를 영접하고 주님을 늘 새롭게 만나고 그 앞에 무릎 꿇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임을 고백한 시몬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예수님의 첫마디는 "무서워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죄인으로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또 이분 앞에는 잠시라도 서있을 수 없는 엄청난 권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당연히 그 두 가지 염려를 다 제거해주겠다는 뜻입니다. 첫째는 그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살아계신 주님께서 그를 영접하시고 사랑으로 그와 동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몬 베드로는 절대적 절망에서 구원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그가 이렇게까지 체계적으로 정리된 사고를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초월적 존재 앞에서 너무나 당혹되어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그 말 한마디로 그 불안감이 사라지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시몬에게 어떤 새로운 삶의 방향을 주십니까? 10b절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시몬은 지금까지 물고기를 취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날마다 좀 더 많은 고기, 좀 더 큰 고기를 취하기 위해 때로는 높은 파도와 싸우며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며 고기를 쫓아다녔습니다. 그의 삶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는 날에는 수고하고 땀 흘린 노동에 대한 보람을 느끼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밤새 수고했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날에는 깊은 실의와 낙심에 빠져 무의미와 절망에 신음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시몬과 같이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바다에서 재물과 명예와 권력의 고기를 취하려고 불철주야 쫓아다니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물고기를 취하는 삶에도 때로 스릴이 있고 기쁨과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자아발견이 없는 삶이요, 결국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단지 생존을 위한 삶,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무의미한 삶입니다. 반면에 사람을 취하는 삶은 어떠합니까? 고기를 취하는 삶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생활인의 삶이라면 사람을 취하는 삶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사명인의 삶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답고 영원한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NIV에는 "from now on you will catch men", 원문에 충실한 KJV에는 "from henceforth thou shalt catch men. "로 되어 있습니다. 4:19와 막1:17에는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시몬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예수님이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시겠다는 의지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사람을 낚는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를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은 큰 은혜요, 그 부르심을 영접하고 순종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임한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호수 가에 배 두 척과 그물과 거기에 잔뜩 실려 있는 고기가 주인도 없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 고기들은 태양 빛을 받아 점점 냄새가 나고 썩어 가고 있었습니다. 시몬과 동업자들은 그 많은 고기를 잡은 후에 고기포를 떠 말리거나 어묵을 만들어 저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두 배에 가득한 고기들은 더 이상 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더 큰 보화 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 전부를 단번에 모아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모두 살만한 재물이 있어도 예수님을 따르며 사람을 취하는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참으로 가장 귀한 보화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짧은 인생동안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구하는 모든 시간과 노력은 엄청난 기회비용 곧 손실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면 예전에 구했던 모든 유익하게 보였던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3:7,8) 예수님을 믿고서도 고기의 축복을 구하는 사람이나, 그의 부르심을 받고 고기에 미련을 두고 머뭇거리는 사람은 아직 예수님의 가치가 얼마나 크고, 그 부르심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계속하여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는 예수님을 알고 얻고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2:3)

 

마지막 한 가지,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시몬은 혼자 잘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집안 식구를 돌보지 않아 가족들은 힘들지 않았을까요?" 물론 우리는 그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6:33) 사랑하는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다른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로마서 8:32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들도 물질적으로 도우셨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크게 축복하셨음을 믿습니다. 여기 증거가 하나 있습니다. 고전9:5에 보면 바울은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자매"라는 말은 복음역사의 동역자를 의미합니다. 시몬의 아내는 초대 교회의 기둥인 베드로의 영적 동역자가 되어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섬긴 것을 봅니다. 갈릴리 바다의 비린내 나는 어부의 아내로 일생을 살다 갈 시몬의 아내가 페트라 사모님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은 귀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심에 순종한 사람들을 복의 근원으로 사용하사 그 주위 사람들도 축복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자신의 참 자아를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을 취하신 것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예수님께 취함 받음으로써 사람을 취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취함 당하는 일은 한 사람에게 임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두 배에 가득한 물고기를 버려두고도 좇아야 할 축복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고 그 앞에서 자아 발견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 취함 받은 우리가 사람을 취하는 하나님의 귀한 일에 축복의 도구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