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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9년 창세기 1강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2019-03-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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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강 메시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창세기 1:1-25
요절/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현대는 고도의 정보통신 사회로 사람들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하는 진정한 정보와 지식은 없습니다. 그것을 알려고 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학의 교수님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생 왜 사는 지도 모르고 허무하게 살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우주와 인류의 시작으로부터 종말까지 우리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특히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기원의 책 (the book of origin)으로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 가정의 기원, 민족과 언어의 기원, 불행과 구원의 기원 등 모든 기원을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이 귀한 창세기를 공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주와 만물의 기원에 대해 밝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시간 우리가 우주와 나를 선한 목적가운데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하므로 참된 자기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 삶의 기반인 천지는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다고요? 천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천지란  영어로는 the heavens and the earth로 ‘우주와 지구’를 뜻합니다.

이 천지가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우주영존설은 밑도 끝도 없는 학설이며 쾌락주의자들이 삶에 대해 평가를 받지 않고자 만들어낸 것입니다. 또한 이 우주와 만물이 우연히 어떤 물질에서 생겨났다는 견해가 있는 데 물질에서 과연 정신, 도덕, 윤리와 같은 세계가 생길 수 있는 지, 현대의 유물론의 경우 폭발이 질서와 정신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또 그런 견해를 취하는 경우, 우주와 만물은 우연의 산물로 어떤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공허하고 슬프고 운명적인 삶을 살다가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주와 만물의 기원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니 아예 생각을 말자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존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우주와 만물과 인간은 도대체 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 가의 질문 앞에 반드시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 없이 결코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기 힘듭니다.


창세기 1:1절은 이런 물음에 명쾌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함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자연계시를 통해서 입니다. 로마서 1:19,20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리가 자연만물을 대할 때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운 모습들을 보며 조물주를 생각합니다. 우주의 신비나 인체의 신비를 접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태양계는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로 도는 시계처럼 정교하게 운행되고 있습니다. 톱니가 아니라 만유인력으로 보이지 않는 줄에 달려 행성들이 돌고 있으니 더 놀랍습니다. 인체의 신비는 어떠합니까? 뇌신경세포는 1000억 개이며, 신경을 연결해주는 시냅스는 1000조 개입니다. 가늠키도 어려운 복잡한 신경망을 통해 초당 4천억 바이트의 정보를 처리합니다. 이는 최고의 컴퓨터의 1000배에 해당됩니다. 혈관은 경부고속도로 133번 왕복, 지구의 3바퀴를 돌 수 있는 길이 입니다. 우리 혀는 9000개 이상의 미각세포를 가지고 있으며 눈은 10만개의 색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주와 인간이 폭발에 의해 우연히 생겼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을 유심히 보면 전능한 창조주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특별계시, 성경입니다. 성경은 1400년간 40명의 저자가 다른 장소에서 쓴 공동저작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놀라운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유일의 책이며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기에 이 책에 나온 모든 예언은 성취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창세기 1:1절을 읽어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천지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선언이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입니다.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해 토론하거나 세미나 하지 않습니다. 논증하지 않습니다. 믿어달라 구걸하지도 않습니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태양의 존재를 내가 믿을 수도 있고 안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든 안 믿던 태양은 변함없이 뜨고 집니다. 태양을 받아들이고 그 앞으로 나아간 사람은 밝고 빛난 삶을 살며, 태양의 존재를 부정하고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간 사람은 계속 어둠속에 살 듯,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을 때 혼돈과 공허와 슬픔, 무의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밝고 빛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태초에’라는 말은 시간의 시작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시간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창조하셨다’는 것은 원어로 ‘바라’라는 동사입니다. 히브리어는 만들다는 동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 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고 다른 단어는 “아사”로서 유에서 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는 1000억 개의 별을 가진 은하계가 1000억 개쯤 있습니다. 태양계는 단지 9개의 행성이 있는 우주의 작은 동네입니다. 그런데 뉴호라이즌 호가 태양계의 끝에 가는 데 9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면 우주는 얼마나 큰 것입니까? 태양계도 꽤 크고 우리에게 태양계만 있어도 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크심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알 때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작아짐을 체험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창세기는 이런 것을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원은 다루지 않고 하나님의 행동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창세기의 저자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출 3:14)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현재형으로 자존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피조되었다면 그분은 하나님 자격이 없습니다.


이상에서, 창세기 1:1절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천지는 우연히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라는 것은 목적과 계획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아무렇게나 살다가 갈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발견함으로 그 목적을 이루는 가치있는 삶을 살다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지 않으셨으면 이 천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천지가 존재하지 않은 적은 있어도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 적은 없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보다 크십니다. 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의 영원한 경배와 찬양과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우리를 돕는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수단화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중심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을 믿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어떤 기적이 믿기 힘들까요? 홍해를 가르신 기적이 믿기 어렵습니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어렵습니까? 사람이 죽었다가 부활하는 게 믿기 어렵습니까? 우리가 창세기 1:1절을 믿으므로 성경의 모든 기적을 믿기를 기도하며 우리 삶에도 기도할 때 기적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처음에 창조 지구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처음 지구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혼돈하였다는 것은 영어로는 formless로서 뒤죽박죽되어 형태가 없다는 뜻입니다. 공허하다는 것은 empty로서 생명체가 없이 텅 빈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것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깊음이란 깊은 물로 지구가 뒤덮여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최초의 지구의 상태는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지구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운행이란 움직이며 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구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지구주위를 감싸고 도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암탉이 달걀을 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칠흑같은 우주에 하나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Let there be light!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이 우주공간과 지구위에 빛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넷째 날 만들어진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에너지의 근원이요 창조사역을 밝혀줄 빛을 맨 먼저 만드셨습니다. 창세기는 당시 태양과 달을 신으로 섬기던 시대에, 태양없이도 빛이 있음을 말함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책임을 보여줍니다. 고린도후서 4:6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치라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이 빛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말씀의 빛, 성령의 빛을 말합니다. 첫째날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둘째 날과 셋째 날에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은 지구위에 있는 물을 크게 둘로 나누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구에 남아있는 물과 궁창위에 떠 있는 물로 나누셨습니다. 궁창이란 넓은 공간이란 뜻인데, 그 궁창을 ‘하늘’(sky)이라 부르셨습니다. 궁창위의 물은 무엇입니까? 고대지구위에는 거대한 물 띠(water canopy)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지구에 없는 것입니다. 이 거대한 물 띠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가 놀라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거대한 물 띠는 어떤 역할을 했을 까요? 태양이나 우주로부터 오는 나쁜 광선들을 적절하게 차단했습니다. 그래서 지구에 온실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럼으로 지구가 최적화된 환경이 되게 했습니다. 이것은 거대식물이나 거대동물이 존재하게 했으며 인간의 수명도 엄청나게 길게 했습니다. 창세기 7:11절을 보면 노아의 홍수 때 하늘의 창이 열리고 40일 동안 비가 쉬지 않고 밤낮 내렸습니다. 이 물량이 얼마나 많았든지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을 7.5미터 이상 덮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이후에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거의 1/10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달라진 현상을 설명하기에 단서가 되는 것이 바로 궁창위의 물입니다. 궁창위에 있다가 쏟아진 물들은 현재는 수증기로 증발하거나 북극과 남극에 얼음으로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궁창의 존재는 지구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이 살도록 설계하시고 배려하신 주거환경임을 보여줍니다. 태양계에 있는 다른 별을 보면 그야말로 사람이 살 수 없을 환경만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를 보면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구는 하나님의 손길이 집중되어 있는 우주의 중심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궁창을 하늘이라고 부르셨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되었습니다(9).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이름을 붙이신 행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붙인 것은 낮과 밤, 하늘, 땅과 바다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소유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큼직큼직한 단위에 자신이 그 주인임을 표시하셨습니다. 낮과 밤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후에 하나님은 작은 것들은 인간이 그 이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땅은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식물들뿐 아니라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어류, 조류, 육상동물들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신 식물은 23만종, 동물은 107만 종입니다. 본문에는 ‘각기종류대로’ 라는 말이 10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예술성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각 피조물을 얼마나 신기하고 독특하게 만드셨습니까? 딱따구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나무를 쪼아대는 데 1초에 15번이나 쫍니다. 기관총의 두 배 속입니다. 딱따구리는 부리를 이용해 계속 쪼아대기 때문에 부리와 뇌가 손상될 수 있는데 부리와 머리뼈 사이에 충격 흡수장치를 가지고 있어 수십 년간 나무를 쪼아대도 뇌진탕에 걸리지 않습니다. 또한 딱따구리의 부리 끝에는 끌 같은 부분이 있어 나무를 쉽게 쫄 수 있게 되어 있고 부리에 콧구멍이 있는데 나무를 쫄때 톱밥이 콧구멍으로 들어오지 않도록하는 여닫이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딱따구리가 어쩌다가 진화되었을 까요? 하나님이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학생으로 공부를 할 때, 인생문제를 풀어 갈 때, 지혜와 능력의 한계를 느낍니다. 복음역사를 섬길 때에도, 아이들을 도울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느낌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5) 바울사도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 3:20)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지혜가 부족할 때마다 무궁무진하신 지혜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날 하나님은 하늘의 두 광명체와 별들을 통해 징조와 계절과 날(day)과 해(year)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지구가 한번 자전하여 낮과 밤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23.5도 기울어서 태양주위를 돌므로 4계절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지구가 한번 태양을 도는 시간이 정확하게 365.25641일인데 이것이 1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삶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루라는 매우 적절한 작은 단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큰 단위로 삶을 계획하도록 1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살도록 4계절을 주셨습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은 자전을 하며 태양을 돌고 있으며 각 행성에 딸린 위성들도 행성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또 태양은 황도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양계는 이 지상의 어떤 시계보다 더 정확하고 오차가 없는 하나님의 시계입니다. 참고로 지구의 공전속도는 초속 29km, 자전속도는 초속 430m 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비행기 비즈니스 석에 앉아있는 것보다 더 평안함을 느낍니다. 너무 잘 만드셔서입니다. 그들은 서로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자전과 공전을 하며 어떠한 충돌도 없이 수천 년을 완벽히 운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설계와 만유를 붙드시는 그 능력을 인정하며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날 하나님은 어류와 조류를 만들어 바닷물과 하늘을 가득 채우셨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물 반 고기 반, 공기 반 새 반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섯째 날 하나님은 육상의 동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고 창조의 정점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6일간의 천지창조에는 어떤 조직과 질서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첫째 날 우주와 지구와 빛을, 둘째 날에는 궁창을, 셋째 날에는 육지와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첫째 날 만드신 우주를 채우며 지구를 비추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둘째 날에 나누신 아래 물에 사는 어류와 윗물 밑에 살 조류들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셋째 날에 만드신 육지에 살며, 셋째 날에 만드신 식물을 먹을 동물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환경을 만드시고 그 후에 그곳을 채우고 활동할 주역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아무렇게나 하신 것이 아니라 치밀한 조직과 질서를 가지고 일하셨습니다. 지구가 유기체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러브록이란 과학자가 [Gaia 이론]이라 명명했습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는 말씀이 8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절을 보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종류인데 선포되는 말씀과 기록된 말씀 입니다. 기록된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을 다해 공부할 때 놀라운 창조의 역사, 빛의 역사, 충만의 역사, 무질서가 정리되는 역사가 우리 삶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그 평가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이는 만물이 하나님이 뜻대로 완벽하게 지어졌음을 뜻합니다.


결론적으로 우주와 인간은 우연히 존재하게 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 허무하고 공허한 존재가 아닙니다. 운명과 슬픔의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과 섭리가운데 지으신 목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막살아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 나를 뜻가운데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만나고 분명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