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종로관악 새봄맞이 수양회 주제 2 강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말씀 / 학개 1:1-15 요절 /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은 황폐한대도 판벽한 집에서 하루하루 살며 그저 잘 먹고 잘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런 그들의 삶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도전하시고 바로 잡아 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는 삶을 결단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임하니니라.” B.C 538년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신흥 강대국 폐르시아제국이 지중해의 중심 국가로 우뚝섰습니다. 초대왕고레스는 유다 백성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선언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에스라1:2,3) 이방 나라 왕이 직접 성전건축 지시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레스왕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무상으로 지원 해주겠다 약속 하였습니다. B.C 537년 스룹바벨과여호수아를 포함한 약 5만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보니, 화려하고 아름답던 성전은 온데 간데 없고, 잡초만 무성한 채 겨우 터만 남은 성전을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에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자는 마음으로 온 백성이 똘똘 뭉쳤습니다. 자원하여 물질을 드리고 구슬땀을 흘려 성전기초를 다졌습니다. 성전 기초가 완성되던 날 모두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그 땅에 거주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우리도 동족 아이가? 마, 함께 성전 건축하자’ 제안하였습니다. 좋은 제안인 것처럼 보이나, 스룹바벨과여호수아는 단호하게 ‘No’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겉으로는 여호와를 찾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른 우상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신앙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이유가 혼합주의 때문이었기 그 제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제안이 거절당하자, 그들은 앙심을 품고 성전건축을 훼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르시아 구청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어떻게든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전건축을 하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벼”하며 성전건축을 포기하고 처음 열정과 소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무려 16년이나 흘렀습니다. 성전은 황량하게 버려졌습니다. 잡초 사이로 들고양이들만왔다갔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 스룹바벨과여호수아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누가 등장하여,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확” 깨우는 선지자 학개가 등장하여 백성들을 깨웠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1차 포로 귀환을 한 약 5만명의 백성들은, 나름 자기 부인과 희생을 감수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성전 건축에 대한 열심과 소원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공사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하나님의 때가 아닌가 보다 하며 손을 놓았습니다. 누군가 ‘성전 공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여’ 말하면 ‘때가 아니여!’ 라며 성전을 뒤로 하여 집으로 향했습니다. “때가 아닌 것같습니다.” 이 말을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면서 종종 사용합니다. 새벽기도 가기 싫은데 마침 비가 오면 ‘오늘은 때가 아니여, 내일부터 나가지 뭐’ 말합니다. 전도 하기 싫은 마음을 부인하고, 캠퍼스에 갔는데 수위 아저씨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면, ‘아 오늘은 하나님의 때가 아닌가 보다’ 하며 발길을 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에 때가 있을까요? 디모데후서 4:2은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요한복음 4장에서 제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 받을 때가 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의 변화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때가 아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백성들에게 때보다는 그들의 관심과 우선순위가 더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성전보다 자신과 가족의 안정이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때가 아니다’는 것은 하기 싫은 마음을 합리화하는 핑계였습니다. 이렇게 황폐한 성전을 버려둔 채 핑계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4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먼저 옳으냐 질문하십니다. 성전 공사가 중단 된 지난 16년동안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판벽한 집이란 언뜻 들으면 판자집 생각이 나서 허름한 집으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 레바논 백향목판으로 벽을 꾸민 집은 성전과 궁궐밖에 없을 정도로 최고수준의 luxury house였습니다. 백성들은 성전 건축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내 집이나 잘 꾸며보자는 마음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근처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집안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집 인테리어를 바꾸니. 장롱도, 침대도, 주방도 바꾸고 싶었습니다. 온 종일 집 꾸밀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은 e 편한 내집을 짓고 꾸미는데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은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황폐한 지금,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은지 물으십니다. 마치 부모님은 곧 무너질 것 같은 판자집에 사시는데, 자신은 80평대 자이 아파트에 사는 것이 옳으냐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라면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 집을 먼저 수리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으냐는 질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양심이며, 도리를 묻는 것입니다. 부모를 좋은 집에 모시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옳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설령 가난하더라도 옳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으로 그들의 행위를 살피라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 이 말씀은 성전은 황폐한 채, 판벽한 집에 거주할 때 잘 살았는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 대신 자기 집 짓기에 빨랐던 백성들의 삶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많이 뿌려도 수확이 적고, 먹고 마셔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이 쌓이지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9절 보십시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노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에 위하여 빨랐음이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10~11절을 보면, 하나님은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셨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땀 흘려 밭을 갈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 밭작물이 다 말랐습니다. 겨우 남은 보리도 황충과 깜부기가 떼가 와서 다 먹어버렸습니다. 설상 가상 우박까지 내려, 그 해 농사는 망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시편 127:1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6:33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집을 짓는 데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지을 때, 거꾸로 하나님께서 나의 집을 지어 주십니다. 통계에 의하면 서울에서 내 집마련을하려면한 푼도 안쓰고 11년을 모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집을 포기하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명이었습니다. 특히 동역자가 캠퍼스 양들을 섬기느라 맞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서 다섯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집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5년전 하나님은 생각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내 집마련을 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집 주인이 갑자기 사업이 부도가 제가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결국 제가 경매에 참여하여 전세금으로 집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세입자에서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집을 짓고자 할 때 하나님이 내 집을 지어주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삶은 어떤지 돌아봅시다. 많이 뿌린 것 같은데 수확이 적고, 먹어도 만족이 없고열심히 일했는데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 같이 되고 있지 않은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을 돌아보도록 도우시는 손길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여,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풍성한 열매 맺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이 회복되려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함께 8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것은 오랫 동안 방치해온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건축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시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은 말씀합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이 설령 좋은 집에서 잘먹고 잘산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성전 건축을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바벨론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16년전 성전 건축을 위해 바벨론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삶의 포인트와 포커스가 없습니다. 대적들의 방해로 인한 어려운 상황을 핑계 삼아 자기중심, 가족중심의 삶을 그저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한마디로 중심(core)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본래 가졌던 분명한 삶의 가치와 목적을 회복하라 하십니다. 다시 한번 요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우리가 좋은 뜻과 방향을 가지더라도 그것이 머릿속의 생각에 그치기 쉽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방향을 주었습니까? “너희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건축하라 했습니다. 내 집을 짓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쉽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열정과 소원이 사라지고, 대적들이 두 눈 부릎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성전 건축을 위해 산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무를 베고, 다듬고, 날라야 하는 실제적인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은 생각과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리고 몸을 움직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학개 선지자의 방향을 받은 스룹바벨과여호수아,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자칫 80대 노인의 상황파악 안돼는꼰대같은 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황폐한 성전을 버려둔 채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 말씀 앞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문제많은 현실을 볼 때도 학개 선지자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안을 수없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성전을 재건할 힘을 주십니다. 다함께 14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하나님이 지도자와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합심하여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와 감동의 역사로 다시 시작된 성전건축은 4년만에 속히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AD 70년 로마에 의해 무너질 때까지 약 600년간 이스라엘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축해야 할 성전은 무엇일까요? 첫째, 내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헤롯대성전을 보시며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물리적인 성전은 부패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이들은 갈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육체를 찢으심으로 완전한 성전이 되셨습니다. 참 성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내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3:16~17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먼저 마음을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볼거리, 먹을 거리, 놀거리의 유혹이 심합니까? 제 아들 다윗이는 이제 곧 중학생입니다. 그런데 틈만 나면 스마트폰 영상을 보곤합니다. 이런 아들을 나무라지만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출퇴근 시간 스마트폰을 켜고, 습관적으로 네이버 기사나 EPL 축구 하이라이트를 봅니다. 또 TV는 어떻습니까? 설연휴 기간 우연히 ‘스카이캐슬’ 드라마를 보는데, 배우들의 열연과 스토리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습니다. 3~4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하루 해가 졌습니다. 말씀 강사임에도 드라마의 유혹에 힘 없이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만약 말씀 강사도 아니고, 말씀을 가리킬 양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말씀과 기도의 나무를 베어 내면성전을 짓는씨름을 할 때,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거하시고,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피곤에 쩔어 세상에 끌려가는 Follower가 아니라, 엔진달린 보트처럼 힘 있게 삶을 앞장서는 Leader가 됩니다.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상태입니까? 혹시 황폐해진 채 들고양이만왔다갔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의 나무, 기도의 나무를 베어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공동체안에 하나님의 성전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는 몸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교회는 에수님이 피로 사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건강할 때도 있지만 때론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면 약해지고, 아픈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이 피로 사신 공동체와 지체인 형제자매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지체 중에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마귀는 때마다 그런 지체를 미워하거나 냉담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무너진 상태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지체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계신 골고다 산으로 올라 가야 합니다. 그 산에 올라 십자가를 부둥켜 앉고 감당하기 힘든 사람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힘을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씨름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 나무를 베어다가 자신의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내 안에 십자가 사랑의 성전이 세워 지고, 그 때 형제 사랑의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할 때 내가 속한 공동체가 다시 건강해 집니다. 또한 봉사의 직무를 충성되게 감당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제가 속한 종로 2부는 6부 3팀이 있습니다. 평신도, 사모님, 학생들이 자원하여 각자 원하는 부에 참여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과거 한 목자님은 센터에 오면 아싸가 되는 것 같다며, 힘들어 하셨는데, 이제는 인싸가 되어 숨겨진 은사를 발휘하며, 얼굴이 해맑게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교회내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며 맡은 바, 봉사의 직무를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이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셋째, 캠퍼스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지난 설에 고향에 가서 오랜 만에 조카를 만났습니다. 마냥 어린 코흘리개로만 알았는데 벌써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한 것에 대해서 축하한다고 말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 대학에도 UBF가 있던가? 아직 신앙이 없는 조카들이 대학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만약 전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드니 캠퍼스 전도가 새삼 중요하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목자님은 매주 목요일마다 밤에 전도를 나가신다고 합니다. 연락처와 말씀이 쓰인 명함 12개를 챙겨 12명에게 명함을 주며 말씀을 전하면, 듣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찬밥 대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도하던 학생들에게 가장 차가운 대접을 받았던 그날, 과거 전도했던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로 발령을 받아 올라왔다고 하면서 목자님을 찾아 뵙겠다고 하였고 그는 직접 센터에 와서 말씀공부도 하여 힘든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또 한번은 전도명함을 캠퍼스 화장실에 두고 왔는데 화장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전화를 했습니다. 교회 다니는데 말씀을 잘 몰라, 배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톡친구가 되었고, 카톡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어떻게 서라도 캠퍼스 산에 올라 캠퍼스 형제자매들의 마음에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 그분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열매가 있든 없든 캠퍼스 산에 올라가 성전을 건축하려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렇게 내 마음에, 공동체 안에, 우리가 섬기는 캠퍼스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성전 건축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십니다. 새 봄학기 적극적으로 산에 올라 기도의 나무, 말씀의 나무를 베어 이 땅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과거 성공과 출세의 산을 목표로 살았습니다. 가난한 집을 일으키고, 고생하시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등학교를 집을 떠나 도시에서 홀로 유학하였습니다. 머리를 빡빡깎고, 쌍코피 흘리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공하여,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능시험에서 기대이하의 점수를 받아, 결국 국민대 입학하자, 실패와 절망감으로 방황하였습니다. 흰눈이 흩날리는 어느 날, 검은색 가죽 잠바를 입고 시커먼 얼굴과 살기어린 눈빛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로 갔습니다. 당시 전도하시던 목자님들은 모두 저를 피했는데 태권도유단자인 한 분이 저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일하게 제게 말을 거시고, 설문지를 보여주며 인생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 분과의 성경공부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게 할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어둡고 차가운 마음을 밝히시고 따뜻하게 녹여주셨습니다.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현재, 저는 북한산이 바라보이는 정릉에 살고 있습니다. 졸업후풀타임으로 캠퍼스 역사를 섬기며, 양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그후 취업하고자 했는 데 무진장 애썼지만 번번히 미끄러졌습니다. 풀타임으로 주의 역사를 섬기느라 스펙으로 내세울 만한 게 대학 졸업장과 1종보통운전면허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절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마6:33 말씀을 주시고, 먼저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방향 주셨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취업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한 회사가 면접을 보는데 토익점수도, 학점도 보지 않고, 오로지 운전실력과 체력만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체력측정은 놀랍게도 제가 늘 기도하러 오르내리던 국민대 뒷산인 북한산 정상까지 빨리 가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북한산을 동네 뒷동산처럼 오르내렸던터라자신있었습니다. 그리고 구기동 입구에서 대남문까지 2시간 30분, 2등으로 정상에 올라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운전과 체력은 남달랐지만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여, 회사에서는 중요직책보다 허드렛일을 주로 하였습니다. 해외사업부에 있을 때는 영어를 잘 못해, 한국 사람이 에이전트인 곳만 맡아서 했습니다. 마케팅에 있을 때는 알아주지 않는 제품, 다 죽어가는 제품만 맡았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힘들어도 목자생활을 감당하며 인내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제가 회사의 빅 히트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엔요라 요구르트가 매출이 바닥을 치고 설비도 곧 사라질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 엔요에 빨대를 붙히고 용량도 키우고 디자인도 바꿔 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10만개에서 30만개로 3배가 성장하는 대표상품이 되었습니다. 이제 회사 안에서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섬기며 세상에서는 인정받았지만 하나님도 죄인을 칭찬하실까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제 안과 양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데 소홀하였습니다. 대신 물질의 산, 잔재미의 산, 운동의 산은 열심히 올랐습니다. 퇴근 하고 배우는 수영은 절대적으로 나가면서 새벽기도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생기면 나갔습니다. 영업부서로 옮기면서 골프를 배워야 한다는 주변에 말을 듣고, 골프의 산을 정복해볼까 생각은 하면서, 여호와의 산에서 말씀을 베는 투쟁은 등한시했습니다. 또, 때로는 직장이고 사명이고 그냥 혼자 산 속에 들어가 사는 자연인의 삶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 말씀을 섬기며 이런 저의 마음을 돌아보도록 하십니다. 다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하십니다. 특히 국민대 동아리가 탄핵된 동방이 사라진 이 마당에 제가 자연인만 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과거 성공과 출세의 산을 오르다 절망과 허무 가운데 죽을 죄인을 구원하시고 이제는 여호와의 산에 올라 나무를 가져다 이 땅에 하나님 성전 건축에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감사 찬송드립니다. 제가 구원의 은혜와 십자가 사랑의 힘으로 자연인이 아닌, 직장인인 아닌 사명인의 삶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성전이 황폐한 이 때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너희의 행위를 살피라 하십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옳은 일이고 또한 그렇게 할 때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 약속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힘써 산에 올라 성전 건축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