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말씀/요한복음 19:17-30 요절/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하신 마지막 유언적 말씀이 나옵니다.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를 잘 나타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티끌 하나 없이 다 감당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의 죽음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죄를 어떻게 다 감당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깊이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다 이루었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깊이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7과 18절을 보십시요.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그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은 이미 채찍과 고문으로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몸으로 자신이 매달려 죽을 그 십자가를 꽉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골고다 언덕으로 나가셨습니다. 골고다에 이르자, 십자가 고통을 감해 주는 쓸개탄 포도주가 주어졌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군병들은 이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 형틀에 밀쳐 눕혔습니다. 두 팔과 발을 형틀에 동여 맨 후, 굵은 대못을 손목과 발목에 대었습니다. 군인들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치켜든 망치로 힘껏 내리쳤습니다. “탁, 탁, 탁” 망치 소리와 함께, 쇠못은 예수님의 살갖을 찢고, 모든 신경들을 끊고, 형틀에 박혀 들어갔습니다. 군병들은 십자가를 일으켜서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넣어 세웠습니다. 누가 이 예수님의 고통을 과연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시편 22:14절과15절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9절과 20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19 빌라도가 폐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 폐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말로 기록되었더라.
군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머리 위에 죄의 이름이 적힌 폐를 달았습니다. 이 폐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게한 예수님의 죄목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폐가 붙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십자가 죄폐에는 실제 예수님이 누구신지 기록되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약속한 대로 나사렛에서 오셨습니다. 나사렛은 천대받는 장소입니다. 그 곳은 멸시와 천대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시 이러한 두 사람의 대화를 상상해 보겠습니다. “A: 너 어디서 왔어?” “B: 응... 나사렛.” “A: ...” 이와 같이 A는 B를 무시하고 대화를 멈춥니다. 어느 날 공원에서 저의 넷째이자 막내 아들인 제임스가 또래의 초등학교 유대인 아이에게 같이 놀자고 말을 걸었습니다. 유대 아이는 제임스에게 “너 유대인이야?” 제임스는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유대 아이는 말없이 등을 돌려 가버렸습니다. 그 유대 아이는, 상냥하고 예의 바른 아들 제임스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보다 더한 무시와 천대가 있는 곳으로 친히 오셨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둘째,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은 오실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유대의 왕, 곧 인류의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다른 사람들을 짋밟고 죽여서 왕좌에 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었습니다. 이미 수 천년 전, 약속된 왕으로, 하나님 백성을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5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23절과 24절을 보십시요.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군인들은 무지하여, 왕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도, 예수님의 옷을 나누고, 제비 뽑았습니다. 희희덕 거리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군병들은 자신들의 죄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셔서 영적인 눈을 뜨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 성령 하나님이시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편 22:18절 “내 겉옷을 나누며 속 옷을 제비 뽑나이다.”는 말씀은 십자가 앞의 선 군인들의 모습을 오래전 성경에서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로 살아있고,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권능의 말씀이십니다.
28절부터 29절을 보십시요. 28절을 자매님들이 29절을 형제님들이 읽겠습니다.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이 절정에 다다를 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을 인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고통 가운데 본성적으로 터져 나올 신음소리 대신에 “내가 목마르다” 하십니다. 인생에 목마름 가운데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수를 주셨던 예수님(요4장),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신 그 예수님(요7:37)이 왜 지금 목마르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온 우주를 지으신 그분께서 얼마든지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목말라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바로 나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고질적인 문제를 저마다 안고 살아갑니다. 이것으로 목말라하다 병들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그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자,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시고, 대신 목말라하셨습니다.
3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이 한 말씀을 하시고, 33년의 이 땅에서의 생을 십자가에서 마감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신 것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사함을 다 이루셨습니다. 로마서 6:23절은 죄의 댓가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친히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형벌 죄값이 다 지불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예수님께서 나가면 됩니다. 이사야서 53장 5절은 말씀합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러면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는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죄값을 치루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사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죄를 없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는 다릅니다. 히브리서 10:10절과 11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예수님의 피는,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십니다. 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가 거듭난 새 삶을 살도록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영적변화를 확증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렇게 신분이 달라지면, 삶의 태도도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고, 끊임없이 놀라운 변화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카잘스라는 유명한 첼리스트, 첼로 연주의 거장이 있습니다. 그는 95세 나이임에도, 하루에 여섯시간씩 첼로 연습을 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I think I’m making progress. “내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기 때문이오.”” 우리에게는 이미 거듭난 새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가시는, 변화의 능력자 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그 분을 따라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I think I’m making spiritual progress. I am so happy!” “아, 오늘도 내 영이, 내 속 사람이 이 만틈 성장했네. 너무 좋아 아이 기분 좋아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참 소망을 허락합니다. 우리 중에 혹시 변화되고 싶지만, “나는 이미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소망이 없고 무기력하게 사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요. “다 이루었다.” 우리에게 변화의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요. 우리의 부족한 모습이 주님안에서 날마다 풍성해지는 소원, 창조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는 소원을 주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값비싸게 치르신 은혜를 덧 입고, 하늘 소망을 품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최후의 승리를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에서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우리를 빛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죄와 죽음은, 온 인류에 어두움의 그늘을 짙게 놓았습니다. 누구도 이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어마어마한 영적인 승리의 외침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신음하셨지만, 그 분의 영적인 외침은 벅찬 감동이 있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우리를 죄와 죽음의 어둠 권세로 부터 건져줄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리하신 예수님 뿐이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힘 입어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빛의 세계에서, 승리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다 함께 “다 이루었다” 를 힘차게 한 번 외쳐 보겠습니다. 시작. 최후의 승리를 주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다루이었다. 이 말씀의 능력이 저의 인생에도 역시 동일하게 역사하였습니다. 저는 과거 예수님을 만나기 전, 두려움의 종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두려움은 저의 말더듬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말을 더듬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자신을 꼭꼭 숨기고 싶었습니다. 자의식도 강해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였습니다. 말더듬의 언어장애를 생각할 때 온갖 인생의 염려와, 연속되는 불안으로 고통하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저의 삶은 하나님을 모른체 불신의 죄로 고통하는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두려움과 더불어 육신과 안목의 정욕죄로 마음과 영혼이 깊이 병들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두려움을 가려주고 위로해줄 자매의 사랑에 목말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금새 육신의 정욕으로 변질되어 저의 양심을 괴롭혔습니다. 저는 무거운 죄의 짐을 지며,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갔습니다. 자유가 없는 죄의 노예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우리 모임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과, 다 이루었다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깊이 영접하자, 죄사함의 은혜, 그로 인한 양심의 자유, 그리고 두려움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또한 정욕죄에 끌려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미 저의 모든 죄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분의 피를 흘리심으로 생명 구속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제가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절망대신 소망이, 두려움대신 담대함이 가득하였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가 너무도 커서, 카투사 군 복무후, 풀타임 목자로 우리 모임을 섬기며, 받은 은혜를 순수하게 갚고자 하였습니다. 섬기고자 했는데 하나님은 도리어 제게 2003년 미국 선교 가정을 허락하시며, 자격없는 저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지난 16년간 미국 선교지에서 예수님 한 분만을 배우고자 투쟁할 때, 2018년에는 안마틴 선교사님 가정과 새로운 센터를 개척하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과거 자신 하나도 감당 못하던 자가, 이제는 네 자녀의 인자한 아버지요,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남편이며, 한 교회의 책임자이자,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기며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요셉이 애굽의 공무원(prime minister)이었던 것처럼, 저도 요셉처럼 미국 연방정부의 금융감독원 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학부시절 자동차공학을 전공했으나, 미국에서 MBA 학위와 CPA 자격증을 취득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저의 인생은 참으로 많은 변화와 새로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졌지만, 믿음으로 결국 많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탁월한 능력도 없었습니다. 머리도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습니다. 좋은 집안 배경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제게 있던 것은 죄로 인해 병든 자아와 두려움, 장래에 대한 염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5년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영접했던 그 순간부터, 저의 인생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저의 인생에 이미 이루신 그 분의 “십자가 능력이” 제 인생에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제가 현재 금융감독원 감사로 일하며, 자신의 부족한 영어실력과 업무 능력의 한계, 리더십 능력의 부재를 겪으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불안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이미 저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의 여러가지 부족한 모습이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기며, 한 사람의 영혼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겸손한 주의 종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셨고, 죽으셨고,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구원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할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나를 위해, 다 이루신 예수님께 나가, 그 분을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축사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19:30> 할레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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