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봄맞이 겨울수양회 1강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말씀 여호수아 14:1-15
요절 여호수아 14: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쫒아내리이다 하고”
뜨뜻한 비이커 안의 개구리가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서서히 온도를 올릴 때 죽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를 아시죠? 이처럼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기를 잘 합니다. 본문은 갈렙이 무려 85세에 새로운 도전을 선포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그의 믿음의 도전을 통해 자극을 받고 새롭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도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14-19장에 나오는 가나안 땅의 분배 내용의 서론입니다. 가나안 땅의 분배는 제사장에 해당하는 엘르아살, 왕에 해당하는 여호수아, 그리고 12지파의 족장들이 참여하여 하나님 중심적이고 공정하게 집행했습니다.
2a를 보십시오. 분배방법은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제비를 뽑는 것이었습니다. 제비를 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으로 모두가 불만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방법입니다. 민수기 26:54-56절을 보면 제비뽑기와 함께 인구수에 따른 분배를 같이 언급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은 이것을 작은 지파는 작은 땅을 놓고 큰 지파는 큰 땅을 놓고 제비를 뽑았다고 번역했습니다. 어떤 학자는 지역을 놓고 제비를 뽑은 후에 인구수를 고려해서 땅 크기를 조정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2b-4절을 보면 요단강 서편에 9지파 반만 기업을 분배받는데 그 이유는 나머지 2지파 반은 이미 요단강 동편에서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레위지파 대신에 요셉지파가 2지파가 되어 12지파를 이루어 분배받았습니다. 참고로 레위지파는 48개 성읍에 분산되었고 그들에게는 거주할 성읍과 가축과 재산을 위한 작은 목초지만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레위지파는 오직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일반백성들의 제사헌물과 십일조로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그 땅을 분배했습니다(5).
15-19장을 미리 보면 유다지파부터 분배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유다지파가 영적인 장자요 모든 일에 선봉에 서서 희생적으로 싸웠기 때문입니다.
6-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였나이다. 가나안 정복의 중심지인 길갈본부에 유다자손과 수령 갈렙이 나와,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갈렙은 45년 전을 추억하며 말합니다. 그의 나이 40세 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11명과 함께 가나안 정탐대원에 뽑혔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성실한 마음으로’ 보고했습니다. ‘성실한 마음’이란 공동번역에는 ‘마음에 믿어지는 바’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마음에 믿어지는 바에 따라 보고했습니다. 한글 KJV에는 ‘마음속에 있는 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마음에 믿어지는 대로, 마음에 있는대로,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대원들은 불성실한 보고 즉 ‘불신의 보고’를 하여 백성의 간담을 녹게 했습니다.
같은 상황을 봤는데 갈렙이 열 두령과 다르게 보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음에 있는 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갈렙에게는 마음에 믿음이 가득 있었고, 열 두령에게는 마음에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특히 갈렙은 자신의 믿음이 아주 자연스런 믿음임을 표현하여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바’ ‘마음속에 있는 대로’ 란 말은 그가 억지로 가진 믿음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흘러나온 믿음입니다. 이를 보면 갈렙은 평소에 믿음으로 살았고 그렇게 쌓여진 믿음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자연스럽게 믿음이 표출될 정도의 믿음의 사람들’로 까지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갈렙의 이런 믿음은 무엇에 근거를 둔 것일까요? 8b와 9a를 보십시오.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갈렙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이 초지일관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충성합니까? 전에 어떤 검사가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이나 상황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 말씀에 충성하는 사람들은 상황과 조건을 넘어선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그들은 상황과 조건이 어떻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삽니다. 이것이 바로 갈렙의 믿음이며 충성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해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믿음의 보고, 긍정적인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갈렙의 충성심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 모세를 통해 그가 밟는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9).
그러면 이제 갈렙의 담대한 요청이 무엇입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갈렙은 먼저 자신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는 85세입니다. 그런데 그는 강건하합니다. 어느 정도 강건합니까? 45년 전이나 똑같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강건하냐면 전쟁에 참전하여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강건함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생존케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존케 하신 이유는 그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존과 강건함의 비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키셔야 어떤 사람이 강건할 수 있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튼튼하다고 자부하던 이들도 죽었습니다. 전염병에 죽고,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요단강 동편 전쟁과 서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이 지키시니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갈렙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그를 강건케 하셨습니다.
요새 사람들의 생존수명은 길어졌습니다. 그러나 생존수명보다 중요한 것은 강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강건할 뿐 아니라 할 일이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강건함이요 진정한 장수의 축복입니다. 종로의 시니어 목자님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강건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의 요청을 봅시다. 요절 말씀인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쫒아내리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갈렙이 달라고 한 산지는 헤브론 산지입니다. 헤브론 산지는 아낙 사람 곧 거인족속이 사는 곳입니다. 성읍들은 크고 견고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복하기 쉬운 곳을 달라고 합니다. 갈렙은 가나안 정복의 공로자요 이스라엘 2인자로서 그런 곳을 달라고 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가장 어려운 곳을 선택하여 정복함으로 형제들과 다른 지파들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확신, 어떤 자신감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강한 적들을 쫒아낼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었습니다. 거인들이 아무리 크고 성읍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더 크고 더 강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문제는 적들이 얼마나 크고 상황이 얼마나 어렵냐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여부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곳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갈렙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의 도전정신과 담대한 믿음입니다. 어려운 곳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것은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부담이 큰 만큼 많은 것을 배우며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생생한 믿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거창고 십계명을 아십니까? 거창고는 고등학교 중에서 명문대를 가장 많이 보낸 학교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고등학교에서는 진로와 직업선택에 있어 다음과 같은 십계명을 만들어 가르친다고 합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10번째 계명은 좀 무섭습니다. 하여간 이 진로선택의 십계명은 우리 대다수의 생각에 도전을 주는 아주 도전적이고 좋은 지침들입니다.
우리가 뜨뜻한 물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살기 쉽습니다. 낡은 가죽부대처럼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도전할 때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립니다. 우리 모두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합니다. 직업도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교사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안정 속에 침몰해갈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안정적인 배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자신도 예수님처럼 걷고 싶었습니다.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그 소원을 말씀드리고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발을 배밖으로 내밀고 물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는 인류최초로 ‘물위를 걸은 남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는 잠시 후에 두려움 때문에 믿음을 잃고 물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만 곧 주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건짐을 받아 주님과 함께 물위를 걸었습니다. 우리에게 위험한 곳은 물위가 아니라 오히려 안일 속에 영혼이 침몰되는 배안일 수 있습니다. 주님 있는 물위가 주님 없는 배안보다 더 안정적입니다.
갈렙은 도전할 때 그 시기를 언제로 말했습니까? 지금 달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다음에, 내년에, 언젠가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다음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두 갈렙장군의 믿음과 도전을 배워 늦기전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담대하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도전할 때 무엇에 도전해야 합니까? 60세에 유학에 도전해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70대에 바디빌더에 도전하여 상을 받은 할머니도 있습니다. 80대에 캠퍼스에 입학하여 수석 졸업하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영어공부에 도전할 생각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도전해야 합니까?
그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한 분 중에 사도바울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고 많은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로마 선교입니다. 그는 죄수로 로마에 나아갑니다. 1차 투옥에서 풀려나온 후에는 땅 끝 서바나에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로마로 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성 하다가 투옥되어 순교했습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복음역사는 퇴보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뜨뜻한 물에 안주한 개구리들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의 뜨뜻한 물은 얼마나 따스한지 예수님의 피의 복음마저 차갑게 만들어 버립니다. 전도자의 모든 뜨거움을 앗아가 버립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했던 것은 아득한 옛날이 되게 합니다. “아 옛날이여” 그들에게 복음의 ‘지금’은 없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상태가 똑같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그 마음, 그 열정을 죽을 때도 소유했습니다. 챨스 스터드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가장 강할 때 하나님 앞에 가야합니다. 우리가 갈렙처럼 “저는 45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나의 심장이 뛰게 하는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변함없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복음전파에 대한 도전을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인생 마치는 날까지 복음에 대한 감격이 살아 있게 하시고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입을 열어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여호수아는 갈렙의 믿음을 축복했습니다. 모두들 평지를 원하고 쉬운 곳을 달라고 하는 데 갈렙은 험지를 요청했습니다. 또 갈렙은 여호수아와 같은 레벨로 1인자가 되고자 권력투쟁을 할 수 있고 특권과 혜택을 주장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갈렙처럼 모두가 기피하는 힘든 일을 자처할 때 이것은 최고지도자에게도 큰 힘이 되며 전체에도 좋은 영향력을 미칩니다. 모두가 축복하고 싶은 대상이 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이렇게 해서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되었고 후에 다윗왕국의 초기 수도로 쓰임 받았습니다. 저자는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된 주 원인이 갈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온전히 할 때 좋은 결과를 얻고 영향력을 미칩니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를 때 온전히 따르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적 기업을 주시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습니다. 기럇 아르바란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입니다. 아르바는 아낙자손가운데 가장 큰 거인의 이름이었습니다. 기럇 아르바란 헤브론이 얼마나 정복하기 어려운 땅인 가를 말해줍니다. 동시에 갈렙이 얼마나 큰 믿음의 거인이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우리도 믿음의 난장이들이 많아지는 이때에 믿음의 거인이 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다시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포천이 통일한국을 위한 전진기지, 헤브론 같은 도시가 되도록 기도제목을 제시했었습니다. 제가 성경의 갈렙보다는 어리지만 적지 않는 나이에 새로운 도전합니다. 서원기도를 갚기 위해 여러 가지 합리적인 생각을 뒤로 하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단을 축복하셨는지 대진대 앞에 방이 4개있는 신축빌라를 서울의 전세가격으로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서원주택관리사무소”가 붙인 안내문을 볼 때마다 ‘서원’을 갚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센터도 모든 것이 갖추어지게 하시고 예배에도 말씀을 듣고자 하는 15명 정도의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100km 떨어진 곳에서 예배환경을 섬기기 위해 참석하는 분들도 보내셨습니다. 표진우 형제님도 일대일을 해보니 영적 소통이 잘되어 정말 하나님이 개척역사를 기뻐하신다는 표가 되고 있습니다. 이바울 형제님도 일대일을 꾸준히 하고 있는 데 다음 달부터는 포천에서 말씀공부를 하겠다 합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인사성이 밝아 참 마음을 행복하게 합니다. 예배인원중에 아이들, 외국인도 있지만 소통이 되는 말씀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또한 저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이 여러 행운을 주고 계십니다. 포천이 제게 포춘입니다. 제가 다하면 힘들 텐데 하나님이 다하시니 저는 부담이 적고 행복합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 큰 뜻을 이루시고 경기북부권 5개 대학을 개척하게 하시고 장차 통일한국과 북한선교에 필요한 일꾼들을 보내실 것을 믿습니다. 포천이 통일한국과 북한선교의 헤브론이요 전진기지로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도전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와 함께 하시며 그에게 큰 믿음의 체험을 하게 하시고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미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이 기뻐하시는 방향에 대담하게 순종할 수 있는 소원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새 학기에 즈음하여 갈렙처럼 자신의 산지에 도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