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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민수기 15강 `⁠절기와 제사`(민수기 28-30장)2022-02-2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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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민수기 15

 

절기와 제사

 

말씀/ 민수기 28-30

요절/ 민수기 28: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오늘 말씀은 민수기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여러 절기와 제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민수기를 총정리하고 하나님이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8:1-8절은 매일 하루에 두 번 드리는 상번제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가 되면 일 년 되고 흠이 없는 숫양을 한 번에 한 마리씩 그러니까 합하여 매일 두 마리씩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숫양 한 마리 당 고운 밀가루 4.5리터, 포도주 1.8리터를 같이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이 매일 드리는 것은 아니고 제사장이 모든 백성을 대표해서 드립니다. 이 제사는 한 번 드릴 때 약 3시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매일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365일 쉬지 않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물론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매일 이런 상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광야 시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도 그들과 함께 하시고 밤에도 그들과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하는 의미로 아침 제사와 저녁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이런 상번제를 드리도록 한 것은 가나안의 풍습을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신과 아스다롯신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면이 많았습니다. 술마시고 놀고 음행하는 것을 신을 섬기는 의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들어가면 이런 술과 음란 문화에 물들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매일 상번제를 드림으로 이런 문화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교제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당시 가나안 사람들처럼 술과 음란 문화가 삶의 중심 축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싫은 소리 들으며 스트레스가 가득한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집으로 갑니다. 술을 마시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속에 있던 모든 분노와 짜증과 스트레스를 밖으로 쏟아냅니다. 스트레스와 짜증이 가득할 때 음란한 영상을 보면서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를 다소간 해소합니다.

 

오늘날 신앙인 가운데도 이런 문화의 영향을 받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 똑같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달라야 합니다. 신앙인이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가장 큰 특징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 미리 선제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TV 아나운서가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법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그녀는 현재 한 방송사의 저녁 메인 뉴스 아나운서입니다. 그는 과거 새벽 5시에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았습니다. 이로 인해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야했습니다. 이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어 그 프로그램을 하차한 후에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그날 해야 할 일을 하나씩 마음으로 새겨보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처 방안까지 다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책에는 그냥 그날 일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준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날 일과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도록 기도함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하루를 48시간을 사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스트레스와 짜증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으로 마음이 상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준비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저도 올해 들어 갑자기 폭발적으로 일정이 많아졌습니다. 하루하루 숨돌릴 틈이 없이 바빴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때마다 생각지 못했던 지혜를 주셨습니다. 전에는 너무 피곤하면 좀 쉬었습니다. 그런데 일정이 너무 많아 쉬었다가는 도저히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피곤할 때 쉬기보다 걷기를 했습니다. 그랬을 때 피곤이 사라지고 다시 집중력이 생겼습니다. 또 전에는 몇 주에 걸쳐 하던 할 일을 한 주 안에 해야 했습니다. 이때 그 일을 한 주 안에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혜가 생겼습니다. 십자가가 늘어날수록 능력이 계발되는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도 이전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그날 하루를 위해 충분히 기도하고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랬을 때 이전에 알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것을 믿습니다.

 

9,10절은 안식일에 드릴 제사입니다.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이외에 일 년되고 흠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밀가루, 또 포도주를 드려야 합니다.

 

안식일의 의미는 생계를 위해 6일간 하던 일을 멈추고 그날 하루 쉬는 것입니다. 안식일 날 주인이 쉬어야 그 밑에서 일하는 종업원들도 같이 쉴 수 있습니다. 밭을 갈며 농사에 동원되는 소도 쉴 수 있습니다. 이때 쉬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날 쉬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예배드립니다.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었습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로 오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일은 바뀌었지만 그 정신은 동일합니다. 예전에 제가 미국 국제 수양회 참석차 미국에 갔을 때 관광 가이드 하시던 분의 자기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초기 이민자 생활할 때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트럭 운전을 했는데 일요일날 일하면 평일의 따블 임금을 받는 유혹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교회가자고 했는데 주일날 일하면 평소의 따블로 임금을 받는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지 않고 일했습니다. 평소 100불받는데 주일날은 200불 때로는 300불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일을 지키지 않고 일해서 돈을 많이 벌었느냐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도 이렇게 관광 가이드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직접 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처럼 이민 초기에 먹고 살기 힘드니 주일 성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주일에도 일하는 한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인들은 한인 교회를 세우거나 한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힘들면 백인 교회를 찾아가 몇 시간만 교회 예배당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여 그 때 한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영어 설교를 잘 못 알아들으니 한국어로 예배드리고 서로를 위로하고 눈물로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한인들이 1세대들은 고생했지만 2세대에 들어 대부분 성공적으로 미국 주류 사회에 정착했습니다.

 

주일날 쉬지 않고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은 큰 유혹입니다. 또 주일날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늘어지게 푹 자거나 아니면 어디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는 것이 마음의 시험이요, 유혹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주일이 되면 가장 최소우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시간이요,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예배드리는 자의 삶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예배자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주일날 절대적으로 예배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1-15절은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초하루는 음력을 기준으로 한 달이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이 날은 앞으로 한 달을 인도해주시도록 기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조금 있으면 2월이 지나고 3월이 시작됩니다. 3월이 시작하는 3 1일은 2월 한 달 간 부족했던 것을 돌아보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로 한 달의 계획을 짜면 좋겠습니다.

 

16-25절은 유월절에 관한 규례입니다. 유대 달력에서 1월을 아빕월이라고 하는데 아빕월 14일 저녁이 유월절입니다. 오늘날 현대 달력으로 유월절은 매년 바뀌는데 대략 3월에서 4월 사이에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 이날 저녁 이스라엘 백성은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당장 이집트를 떠날 준비를 다 마치고 함께 보여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과연 그날 밤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의 모든 큰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 문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죽음의 사자가 죽음을 집행하지 않고 건너 뛰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말이 바로건너뛰었다는 뜻입니다. 그날 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비천한 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자가 다 죽음으로 큰 통곡이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왕은 그날 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 이집트를 떠나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그 밤 이스라엘 백성은 양고기를 든든하게 먹고 여행길을 출발했습니다. 그 밤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이 끝나면 그러니까 1 15일부터 1주일간은 발효하지 않은 빵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발효하지 않은 빵을 무교병이라고 하는데 그러므로 이 절기를 무교절이라고 불렀습니다. 무교절 첫날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신약적으로 볼 때 유월절은 수난절과 부활절로 지켜집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기간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절기를 통해 이집트의 노예된 삶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고 감사했습니다. 신약 백성은 수난절과 부활절 절기를 통해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기념하고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부활의 새 몸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소망하며 죽음의 위협과 공포가 가득한 이 세상을 부활 믿음과 소망으로 승리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또 신약적으로 무교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누룩없는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삶에서 죄를 제거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6-31절은 칠칠절입니다. 칠칠절은 유월절 마지막 날 그 다음날로부터 7주가 지난 다음 날 곧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밀의 첫 수확을 하는 때이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주의할 것은자 하면 보리가 생각나는데 사실은 밀의 첫 수확입니다. 보리의 첫 수확은 좀 더 빨라서 유월절 기간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보리 추수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는 초실절입니다.

 

신약적으로 바로 이 오순절 때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여러 언어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어로, 어떤 사람은 일본말로, 어떤 사람은 중국말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오순절 때 성령이 임함으로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실절 첫 열매로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순절 열매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을 성령 강림절이라 부릅니다.

 

29:1-6절은 일곱째 달 초하루에 대한 절기입니다. 당시 가나안 지방의 대부분의 민족들은 농사를 기준으로 7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7월은 모든 농사를 마치고 수확한 것을 창고에 저장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다음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한 해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양력으로 9월에서 10월입니다. 하나님이 유월절이 있는 달을 1월로 삼으신 것은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백성된 것을 기념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7월은 그 해 농사를 다 마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7 1일은 한 해 농사가 마감되었음을 알리는 의미로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날 나팔을 무려 100번을 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것을 비유로 해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마지막 나팔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면 이것으로 한 해가 끝나고 새 해가 시작됨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여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7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은 대속제사를 통해 지난 한 해의 모든 죄가 용서받는 의미가 있습니다.

 

7 15일부터 1주일간은 장막절입니다. 장막절은 이스라엘이 40년간 광야생활하던 것을 기억하고 광야생활 기간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풀로 장막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광야 생활을 추억하고 기념하고 감사했습니다. 풀로 장막을 만들었다고 해서 초막절이라고 하고 또 이 기간이 추수한 것을 창고에 저장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광야 기간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의미를 강조하고 싶으면 장막절 혹은 초막절이라고 부르고, 추수 감사의 의미를 살리고 싶으면 수장절이라고 부릅니다.

 

민수기에 가장 강조된 것이 장막절입니다. 이때 가장 풍성한 제사를 드리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장막절 첫날 무려 수송아지 13마리, 숫양 2마리, 1년 된 어린 양 14마리, 염소 1마리, 여기에 고운 밀가루와 포도주를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다른 제물은 동일하지만 수송아리는 한 마리씩 줄어서 일곱째 날에는 7마리를 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7일동안 하나님께 드린 수송아지가 총 70마리가 됩니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입니다. 7일날 천지창조가 완성되었죠. 6 7에서 하나 부족한 수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함에 이르기 원하지만 7에 도달하지 못한 6이 세 번 나타나는 666 - 이것은 악의 상징, 사탄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666은 하나님이 필요없다는 교만함, 완악함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는데 그 드라마의 결론이 왜 신이 인간세계에 관여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신이 인간을 만들었으면 인간들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둬야지 천국이니 지옥이니 해서 인간을 협박하느냐는 것입니다. 참 나름 멋있는 결론이고 신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선언하는 말 같습니다. 이것을 모티브로 한 소설, 문학작품, 그림과 음악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신을 완전히 몰아내자, 인간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룩하자 - 이것이 바로 666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666은 무슨 바코드가 전자칩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666을 바코드나 전자칩으로 이해해서 손목이나 이마에 전자칩을 심으면 지옥에 간다고 설교하는데 완전히 엉터리 성경해석입니다. 666은 그것이 아니고 지옥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그 결론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내 삶의 신조로 삼는 것이 바로 666을 몸에 새기는 것입니다. 666의 메시지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저 옛날 에덴 동산에서 뱀이 여자에게 했던 말입니다. 뱀의 말을 들은 여자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빼면 영원히 7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7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면 6까지밖에 이를 수 없고 666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7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장막절 기간 70마리의 수송아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하심을 드러내십니다.

 

민수기는 그 책의 제목대로 숫자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뿐만 아니라 에스겔서나 요한 계시록을 보면 숫자의 해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숫자의 의미만을 깊이 연구하는 성경학자들도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숫자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물의 숫자와 양을 정확하게 지정해 주심으로 헷갈리지 않고 그 정해진 수량만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숫자를 정확하게 지정해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나치게 인색하게 조금만 드릴 수 있습니다. 혹은 몇몇 지도자들의 말로 인해 생계에 지장이 있을 정도록 과도하게 드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수를 지정해 줌으로 마음에 부담이 없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러한 제사를 충분히 드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결실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보증의 의미도 있습니다. 또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드러내는 의미도 있습니다.

 

, 이쯤에서 여러 절기의 의미를 정리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드리는 이 절기와 제사의 가장 핵심되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며 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공동체입니다. 제사 곧 예배가 삶의 중심인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민수기 공부가 끝이 납니다. 민수기 전체를 한 번 정리해 봅시다. 민수기 전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광야는 사막과는 달라서 그런데로 살 수는 있습니다. 가시덤불처럼 생긴 나무도 있고 소량이지만 흙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살기에 험하고 위험한 곳입니다. 광야는 물과 나무, 흙이 부족하여 일교차가 심합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일사병에 걸리기 쉽고 밤에는 매서운 추위로 인해 얼어죽을 위험이 있습니다. 바위 밑에 무서운 전갈과 독사가 숨어 있습니다. 또 광야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애써 길을 만들어 놓아도 모래 바람이 불어닥치면 순식간에 길이 사라집니다. 또 광야는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광야는 한 곳에 오래 머물면 안됩니다. 광야는 끝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또 광야는 외롭습니다. 광야는 택시를 타고 갈 수 없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갈 수도 없습니다. 자동차 바퀴가 험한 광야의 바위로 인해 금방 망가질 것입니다. 광야는 오직 내 두 발로 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외로운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야말로 광야와 같습니다. 바위밑에 숨어있던 전갈이 내 발을 확 물어버리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는 재난과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또 우리 인생은 때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 길을 알지 못해 방황입니다. 이리 가야 할지 저리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또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20살이 되었으면 30살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30살이 되었으면 40살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50살이 되었으면 60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외롭습니다. 나의 마음의 깊은 아픔과 슬픔 고통을 그 누구도 대신해서 감당해줄 수 없습니다. 광야가 홀로 걸어가는 길인 것처럼 우리 인생은 각자가 홀로 걸어가야 하는 외롭고 고독한 길입니다.

 

이런 인생길을 살면서 죽지 않고 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광야길을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중요한 특징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성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걸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성막에 임재하셔서 모세와 함께 대화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대시 그들과 함께 동행하지는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그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그들과 함께 동행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들과 다시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서 드리게 될 제사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제사 한 번 참여하는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립니다. 1시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제사의 자리에 임재하시고 그들이 드리는 제물에서 나오는 냄새를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에도 임재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더 나아가 공동체로 모여 예배드릴 때 더욱 풍성한 성령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 은혜로 한 주간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귀한 민수기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희가 민수기 말씀을 마음에 꼭 간직하고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올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