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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종로2부 여름수양회 주제1강 `생수의 근원, 예수님` (요한복음 4:1-30)2022-07-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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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수양회 주제1

 

생수의 근원,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4:1-30

요절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뜨거운 여름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들은 다들 피서 계획을 세우셨나요? 여름에 시원한 물 한잔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듦니다. 물은 우리에게 참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원한 물도 다시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아주 특별한 생수와 그것을 주시려는 분이 나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지친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려고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Part 1. 목마름의 해결자, 예수님

 

  본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갈릴리로 가는 길 중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유대인들은 혼혈의 땅 사마리아를 밟지 않고자 돌아가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예수님은 왜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만 했나요? 바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고자 하심입니다. 그녀는 누구 입니까? 유대인도 아니며 유대인에게 멸시받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또한 이름도 기록되어지지 않았으며 사회적 지위도 없었습니다. 배운 사람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손가락질 받을 만한 여인이며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을 만나러 가십니다. 또한 이런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높은 자리에 앉아 냉정하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시며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시간을 뚫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피곤함과 지치심을 무릅쓰고 사마리아 땅에 야곱의 우물로 가셨습니다. 이 여인의 궁극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것이 죄인을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며 열정입니다.

 

  7-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먹을 것을 사러 보통은 몇 명만 가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은데 모두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마침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여인과의 대화를 위한 무대가 준비된 것 같습니다. 삶속에 우연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됩니다. 여인의 구원은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예수님을 메시야로 깨달았을 때일까요?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해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일까요? 모든 계획과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기초를 놓기도 전에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을 때가 아닐까요? (1:4-5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주님이 주관하지 않으시면 단 한사람도 구원을 받거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물을 좀 달라하시며 여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여인의 반응은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입니다. 여자의 반응이 차갑게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은 생수라고 합니다. 생수는 살아있는 물, 흐르는 물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성령을 말합니다.(7:38-39) 생수라는 표현은 구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강이 에덴에서부터 흘러 나와 동산을 적셨다고 하였습니다.(2:10) 에스겔 471-9절에도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흘러 나와 강을 이루고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의 물이 되살아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날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원천인 생수가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되살아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힘찬 인생으로 이끕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한 이후 에덴을 떠난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수를 마실 수 없음으로 인하여 목마름의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하나님을 버린 모든 인간들은 스스로 웅덩이들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 웅덩이들이 물을 가두지 못하는 웅덩이라서 우리는 평생을 웅덩이를 파는데 힘을 쏟아도 만족이 없게 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만족을 주며 생명을 주는 생수! 그 생수를 예수님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목마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방면으로 애를 씁니다. 어떤 이들은 좀 더 나은 대학에 가고자 치열한 입시 속에 자신을 채찍질하며 공부합니다. 대학에 들어갔다는 기쁨도 잠시 취업을 위한 준비에 돌입합니다. 직장에 들어갔지만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무엇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깊이 사랑해주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이성을 만나 목마름을 채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성에게 매일수록 도망가거나 트러블이 생깁니다.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지만 자녀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서 나의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낌없이 학원비를 대고 아이를 닦달하며 더 잘 키우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아이가 오히려 비뚤어지고 관계성이 안 좋아집니다. 돈이 더 많이 생기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직장 월급으로는 부자로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식에 과도하게 몰빵하였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빚이 늘어나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와 반대로 자신이 얻고자 했던 우물에서 물을 얻어낸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만족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엄청난 부를 축척하고 아름다운 부인들을 두고 학자로서 많은 연구 결과를 내고 왕으로서의 지위와 명예도 얻었지만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고 고백합니다.

 

   여자는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하고 물어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3, 14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3절에 이 물을 마시는 자는 현재형으로 표현되었지만 14절에마시는은 부정 과거형으로 단 한 번의 섭취만으로 그 효과가 영원히 지속됨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의 우물에서는 잠깐의 만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다시 목마름으로 고통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인해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그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어떻게 해결해 주십니까? (출애굽기 176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애굽기에 하나님은 애굽 심판의 상징으로 사용했던 모세의 지팡이로 반석을 치게 하심으로 생수가 흐르게 하셨습니다. 그 반석 위에 바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치게 하심으로 생수가 나오게 하십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의 생수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누가 인간의 죄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인간들이 당해야 하는 심판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력 넘치게 하는 생수를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의 죄만 용서해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 절대로 고갈되지 않는 충만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b)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는 자세를 바꾸어 그런 물을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15) 그러자 예수님은 대화를 전환하여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 하십니다. 그녀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니였습니다. 그녀에게 참남편이 없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그녀의 모든 인생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여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아셨지만 책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에게 옳다고 하시면서 그녀를 깊이 이해하십니다.

 

 

Part 2.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여자는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19-20)하며 예배장소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비밀을 알 수 없었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기고 예배 문제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을 경배했던 여자가 이제는 참 경배의 대상을 경배하려고 할 때에 생기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언약관계를 맺었습니다.(19) 그리고 성막을 짓게 하시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식으로 제물을 가져와 제물을 잡고 드렸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맺게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과의 분쟁으로 인해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지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자신들만이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르게 예배를 드린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여자는 분명하게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21, 22) .

  구약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이라 약속하셨고 예수님은 유대인이며 다윗의 후손으로 성육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기, 성막, 제사법 등을 통해 보내실 예수님을 예표하게 하셨습니다. (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신명기에 여호와를 뵈올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오고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라고 합니다.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 없이 드려지는 제사는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 없이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친히 십자가 제단에서 죽으시므로 더 이상 짐승 제사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이 만들지 아니한 성전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장소에 매이지 아니하고 성전이 된 우리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이방인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안에 성전 되신 예수님이 임할 때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예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은엎드리다’, ‘절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 때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23-24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의 중심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받으십니다. 우리에게 넘치게 생수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예수님의 의만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찾으십니다.

 

  여자는 말합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 예수님은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26) 메시야는 우리의 죽음 문제,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오는 목마름 문제를 유일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여인 앞에 있습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자는 더 이상 야곱의 우물물을 길으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메시야를 만난 기쁨으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 사람들에게 달려가 외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목마름에 고통하는 여인이 예수님과 대화를 통하여 거룩한 생명을 얻게 되고 기쁨과 환희를 가지고 목마른 영혼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여인의 초청에 동네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인격적으로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의 메시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 만나주시고 근본적인 목마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겨우 목마름을 해결 받는 정도가 아니라 흘러 넘치는 생수를 주십니다. 그리고 창조주이며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넘치는 생수를 우리에게 공급해 주십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수 있게 해주시며 참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다른 우물을 파지 않아도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참 자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