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 수양회 주제 2강
내 안에 거하라
말씀: 요 15장 1절~8절
요절: 요 15장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 시간은 수양회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잔치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참된
쉼으로 초청하시는 말씀잔치였습니다.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서 “돈”에 대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타는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을 어둡고 무겁게 하는 것이 죄문제이며, 죄문제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그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 15장 4절은 말씀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 즉, 목요일 저녁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의 만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이면 그 끔직한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돌아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형벌을 앞에 두고 극한의 심적 고통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제일 큰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누가 최고 자리를 차지해야 하나!”라는 문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심령에는 예수님이나 다른 제자에 대한 관심은 없고, 자기
앞길, 자기 성공 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부족함이 많고 이기적이고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에 얽매이기를 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포도나무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관계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시고, 정말로 행복하고 성공하는 삶으로 초청하십니다.
1절과 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 상호간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제자들은 가지입니다. 농부는 포도밭에서 좋은 환경을 예비합니다. 비옥한 토양을 가꾸고, 배수구를 정비하며, 병충해를 예방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에 심긴 참포도나무로서, 가지들에게 영양분과 수분을 전달합니다. 제자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서, 한 송이 두 송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냥 포도나무가 아니라 참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참이란 진정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많은 포도나무들이 있지만, 진정한 포도나무는 오직 예수님 뿐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포도나무에
붙으면 마치 다단계사기꾼의 마수에 걸려들 듯이 결국에는 많은 것들을 빼앗기게 됩니다. 왜 예수님이 참포도나무가
되십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가 못박혀야
할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우리에게 참된 구원을 주신 구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참포도나무
예수님에 대해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말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우리가 다른 포도나무가 아니라 참포도나무 예수님의 가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포도나무 예수님께 꼭 붙어 있기를 기도합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예수님이 참포도나무로 계시는 포도밭에는 밭을 가꾸시는 아주 특별한 농부가 계십니다. 농부의 주된 업무는 가지치기입니다. 포도나무에는 많은 가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가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지가 열매를 맺을 지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농부이신 하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매의 눈으로 정확하게 분별하시고, 가위로 싹뚝 잘라 제거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가지는 열매를 맺는 가지로부터 영양분을 빼앗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나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십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 가지 중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최고의 열매를 맺도록 전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최고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하는 전정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가지치기를 하지 못하고 이것 저것 하다보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꾸준히 노력하면 그 분야의
대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포도원에 거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전정작업을 받게 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아보이는 가지를 하나님이 자르시면, 지금 당장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고 내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시간이 흘러 지나고 보면 농부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전정작업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8절과 9절은 이 놀라운 은혜를 선포하십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최고의 열매를 맺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가지치기를 맡기기를 기도합니다.
제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하신 중요한 전정작업은 사법시험이라는 가지를 자르시고 학문의 가지를 남겨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법대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사법시험을 치러야 한다면서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신경성병으로 인하여, 공부를 하려고 책을 들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였습니다. 증상이 심해져서
옷이 배에 닿기만 해도 통증을 느꼈습니다. 시험공부를 감당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음에도 욕심 때문에
시험공부를 놓지 못했습니다. 저의 상황을 아시고 목자님은 대학원으로 가면 어떻겠냐고 권면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목자님께 “시험공부 할래요!”라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대학원 방향은 고생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이 들어서 군대에 가야 하고 또한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몸이 아픈 저의 상황을 알아주시고 대학원 방향을 생각하시고 기도해 주시는 것이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방황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에 기초하여 사법시험의 가지를 제거하고, 학문의 길이요 유학생선교사로서
나아가고자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학문을 하도록 하셨고, 이제는 법조인들을 선발하는 시험의 출제자요 법조인들을 제자로 키우는 로스쿨 교수로까지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있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부분을 아시고, 섬세하게
전정작업을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죄인의 모든 것을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많은 열매를 맺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에서도 서로 “누가 크냐” 하면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말씀 하십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은 다음의
세가지 의미로 보다 구체화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생의 방향을 자기성취적인 삶으로부터 관계지향적인 삶으로 전환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맺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성취적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아가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하였습니다. 지금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가는데도 무관심하였습니다. 오직 나의 앞 길 만이 마음에 있었습니다. 자기성취적인 삶에서는 나만 생각하게 됩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보다는, 나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봅니다. 나의
성공에 방해되는 자는 나의 적(敵)으로 돌려 세웁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누가 큰가” 라는 문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하심으로 예수님과의 수직적 관계성과 제자들 상호간의
수평적 관계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은 관계성에 대한 눈을 뜯는지 여부가 하나의 큰 이정표가 됩니다. 1938년 하바드대학에서 위대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바드대
학생 268명을 선발해서 90대 노인이 되기까지 삶을 추적하여
관찰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인생의 행복 내지 성공에 어떤 요인이 중요할까를 연구하였습니다. 2012년 즉, 연구시작 75년째
그 엄청난 연구의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좌우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나 다른 조건보다는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성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모임에 거하면서도, 다른 형제들이 나보다
더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이면 속이 불편하고, 모임을 떠날 생각으로 휩싸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이 자기 성취적인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포함하여
다른 제자들과의 올바른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관계지향적 삶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의존되어 있음을 알고,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게 됩니다. 관계지향적인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자기존재의 부각이나 자기업적의 성취보다는 서로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희생적
섬김에 있습니다. 이런 관계지향적 삶을 살 때, 우리의 심령에는
참된 쉼과 만족이 있으며 종국적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둘째,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에서
거한다는 말은 영어로 “remain”으로서 가지가 포도나무와 접붙은 그 곳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것입니다. 영어 remain을 분석해 보면,
main은 무엇이죠? 예!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re는 반복적으로 내지 지속적으로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remain은 한 곳을 중심으로 삼아 꾸준히 머물라는 의미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중심으로 삼고 머물러 있어야, 포도나무로부터 생명과 결실에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받게 됩니다.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졌다가 붙었다가를 반복하면 상처가 나고, 나중에는
접붙은 부위가 끊어져 생명과 결실에 필요한 영양분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거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마치
연인 사이에서도 다른 줄을 타는 것처럼, 그렇게 줄 타는 것이 자기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큰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 거하기 어려울 때나 예수님 안에 거하기 싫을 때에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거하여 하겠습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이삭은 엄청난 흉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흉년은
마치 전쟁의 발발이나 투자의 실패 등과 같은 엄청난 외부적 사건으로 인해서 커다란 경제적 곤궁에 빠진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현재의 장소를 떠나 전망이 좋아 보이는 애굽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이곳을
떠나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여러 모로 유리하게 보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삭은
하나님을 믿고 그 곳에 거주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100배나 되는 수확을 주셨고, 거기에 더하여 다른 복도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할까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유익할까 부단하게 계산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도 아닌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계산하려고 하니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프고 잠시도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이 눈 앞의 이익을 따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하는 삶을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교제 즉 Relationship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가 상호간에 물관과 체관을 통해서 수분과 영양분을 교환하듯이, 예수님과 제자들 상호간에 인격적인 사귐을 하는 것입니다. 인격(人格)적 사귐이란, 상호간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또한 상대방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15장 7절에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라고 해서 예수님과의 교제의 중심에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전 인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격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녹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요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설령 내 생각과 다를지라도, 예수님이 왜 저렇게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폭망할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길이 최고로 좋아 보여요! 그런데, 왜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시나요?”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께 소감이나 기도를 통해서 토로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섬세한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것이 말씀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계셔서 연약한 인생들을 이해하지 못하실텐데 어떻게 서로 교제를 할 수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제자들의 모든 고난과 아픔에 실제적으로 동참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모든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겪으십니다. 예수님도 배 고프시고 슬퍼하시고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느끼는 아픔도 함께 느끼시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영접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도우십니다. 최후의 승리로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권면하십니다. 자기성취적인 삶보다는 관계지향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눈 앞의
이익만을 좇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 믿음으로 중심을 지키고, 말씀 안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15장 5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힘이 없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한 채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유일한 길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열매에는 인생의 여러 열매들이 있습니다. 개인으로서 삶의 여러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한 열매입니다. 학생으로서 A학점으로 가득찬
성적표, 직장인으로서 승진과 포상, 사업가로서 늘어가는 매출도
중요한 열매입니다. 이런 외적인 열매 외에 내면에 잔잔하게 찾아오는 감사와 찬양 그리고 깊어가는 마음의
안정감도 열매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 전파를 통한 전도의 열매와 제자를 세우는 열매도 있습니다. 나아가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은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이 지니신 인격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격을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우리가 맺을 참된 열매입니다.
인격의 변화는 금방 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으로서 인격의 변화가 진정한 열매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반면에,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도 경고를 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 4절에서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5절에서 “나를 떠나서는” 그리고 6절에서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할 때 다가올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결과는 나무로부터 분리된 가지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결국 불쏘시개로 쓰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마음에 두시고 이런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그의 결국은 어떠합니까? 누가는 사도행전 1장 18절에서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무르면 어떻게 됩니까? 7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말씀이란 어떤 특정 구절일 수도 있고, 또는 전체적으로 말씀이 추구하는 방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이
제자들의 심령에 거할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는 영어로 “whatever you wish” 라고 해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구할 수 있습니다. 구하면 제자들을 위해서 주어집니다. 이를
통해서 열매가 맺혀 집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고 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맺는 열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시작):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제자들이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풍성한 열매가 예수님 제자의 징표가 됩니다. 열매를 맺는다고 할
때, 맺는다는 단어는 영어로 “bear” 라는 단어로서, 저절로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즉,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아등바등 노력해서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가지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게 은혜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무슨 일을 해서 열매를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내었다면, 자신들의 공로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 온전히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저도 저의 삶 가운데 예수님께서 맺으신 은혜의 열매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는 1964년 아주 시골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도시로 이사를 한 후, 아버님은 여러 가지 일로 돈을 버셨지만 도박으로
탕진하셨습니다. 어머님은 한 쪽 다리를 절뚝이시는 장애인이지만 자녀들을 키우고자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시면서 국시도 만들어서 파셨는데, 멀리 연탄공장의
인부들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 머리에 국시그릇이 여럿 놓인 쟁반을 이고 또 한 손으로 국시그릇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시면서 나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억척같이 모은 돈을 아버지는 빼앗다가 도박으로 탕진하시기를
반복하셨습니다. 술을 드시고 술주정을 하시고 어머니와 저희 3남매를
때리곤 하셨습니다. 저는 어린마음에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꿈을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셨는데, 선생님께서 집에 오시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선생님께
가난한 집안 특히 지저분한 듯이 보이는 “푸세식
화장실”을 보여 드리는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구멍가게
앞에서 핫도그를 만들어 팔기도 하였는데, 저는 핫도그를 굽다가 친구가 멀리서 가게 앞으로 오자 왠지
가난한 모습이 부끄러워서 슬그머니 가게 안으로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외모에 있어서도 곱슬머리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였습니다. 대학입학 시험에서 전국 상위 1% 이내의
성적을 받았지만 부끄러움으로 인해서 장래방향을 선생님과 상의하지도 못하였습니다. 1983년 법대 들어왔습니다. 법학은 한마디로 관계성의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혼자 살면 법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학을 공부하려면 관계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관계성에
대해서 무지한 제가 법학을 공부하려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신경성병을 얻었습니다. 옷이 배에 닿기만 해도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을 드러내고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누가 알면 저를 “정신병자”라고 조롱할까 봐 숨겼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욱 더 아파갔습니다. 저의 인생은 마치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진 마른가지처럼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학 동기의 초청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였고 형제들과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말씀공부를 통해서
인간의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고, 죄를 회개하면서 올바른 관계성을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공동생활에서 새벽에 쿨쿨 자는 형제들을 보면서 내심 좋아하였습니다. 나
혼자만 새벽기도하러 가니, 형제들을 따돌리고 나 혼자 영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말씀 앞에서 이것이 시기심의 죄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형제들을 깨워서 함께 새벽기도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회개를 통해서 조금씩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였을 때, 예수님은 저를 지성인들의 목자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사람 앞에 서면 덜덜 떨렸고 말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소감을 감당하면서 이런 문제들과 직면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때 문제의 핵심은 사람 앞에서 너무 완벽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임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면서 사람은 모두 부족하고 허물진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 앞에서 자유함을 얻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소감을 꾸준히 쓰기 시작하면서 하루는 소감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자님께 소감을 어떻게 쓰는 것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소감은 육하원칙에 기초하여 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제가 육하원칙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드러날까봐 순간 챙피한 감정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계기로 꾸준히 육하원칙에 기초한 소감을 감당하면서, 육하원칙이 가지는 놀라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사고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고, 나아가 지성인의 목자로서의 능력들이 조금씩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방학 때마다 서머스쿨과 윈터스쿨에서 어학강사로 세워 주심으로, 잠재적
능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어학강사로 섬기는 직분이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습니다. 스쿨에 처음에는 우루루 왔다가 다음날 쫙 빠져나가기도 하였는데, 저의
실력 없음이 드러났다고 생각하여 걱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꾸준히 감당하였을 때, 이삭이 100배의 결실을 거둔 것처럼, 어학이 합격의 당락을 좌우하는 석사장교시험에 합격하여 6개월 만에
장교로 군복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성균관대 인문사회계열 전체에서 1명을 선발하는 유학장학생시험에 합격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법학이 발달한 독일로 유학생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환경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관계성에 대해서 무지한 저는 여성을 사귈 수도 없었고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였을 때, 관계성을 잘 맺는 이화연 사모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녀로 토끼 같은 프리스카와 미소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은혜요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독일 유학생 선교사로 부르시고 이방 땅에서 양들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에 스테파니 하르트만이라는 자매님을 양으로 허락하셨습니다.
이 자매님이 말하는 독일어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써 가지고 온 소감도 흘림체여서 읽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매님이 쓴 소감을
읽고 또 읽어서 이해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 자매님 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꾸준히 기도하였고, 혼신을 다해서 독일어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자매님은 말씀으로
죄문제를 해결함 받고, 또한 거식증으로부터도 회복되었습니다. 쾰른대학교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어 열매맺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니엘, 크리스토프, 디트마 등 여러 독일 양들을 섬기는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독일 양들을 도왔을 때, 하루는 동역자가 제가 독일어로
잠꼬대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할 정도로 독일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독일어 실력이
향상되자 박사학위논문을 쓰는 것도 믿음으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조력자도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독일 쾰른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비자문제로 인해서 독일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수사회에서 나이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후배가 이미 성균관대의 같은 분야에 교수로 있으므로, 인간적으로
보아서는 제가 성균관대 교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
목자님들께서는 성균관대로의 전근을 위해 모임 때마다 기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불가능한데 왜 저리 기도하실까
생각하면서 슬퍼할 때도 있었지만, 목자님들이 꾸준히 기도를 하시자, 저도
기도라도 해보자면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성균관대로 전근하도록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버렸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성균관대 로스쿨의 교수목자로서 여러 좋은 환경을 예비하시고,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종로2부에서 여러 목자님들과 함께 말씀공부와 교제를 하면서 예수님을 배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의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종로2부 목자님들의 기도는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학문분야에서도 한국환경법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게 하시고, 정부부처와 관련하여서도 대통령실 행정심판위원회 위원과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위원을 비롯해서 각종 정부부처에서
위원으로서 활동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로스쿨 학생들에게도 말씀으로 섬기고, 복음을
꾸준하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신경성병으로 마른가지처럼 말라 죽어가든 죄인을 살리시고,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는 어느 듯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말씀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임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말씀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너무나
부족한 점들이 많은 제가 한 것이라고는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어찌하든지 붙어 있고자 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가지들을 전정하여 주셨고 인생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받은바 은혜를 잘 간직하기를 기도합니다. 더욱 더 예수님 안에
거하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한가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며, 말씀 안에서 예수님과
꾸준하게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저절로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됩니다.
이제 2022년 여름수양회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도 수양회를 통해서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계속하여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며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새롭게 예수님을 알게 된 새내기들은 이제 믿음의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혹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 세상에 거하는 경우에는 마른 가지처럼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다. 수양회
후에도 예수님 안에 거하며 말씀공부와 하나님 안에서의 교제를 꾸준히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흐른 후에 “그래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정말 잘했어!” 하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요절 말씀을 다같이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15장 4절입니다🙁시작)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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