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성탄 2강 한 아기, 우리를 위해 나셨다.
말씀: 이사야 9:1-7 요절: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 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지난주 메세지 7,8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임마누엘’을 예언하였습니다. 본문은 그 아이가 누구고, 그 아기의 출생 곧 임마누엘로 인해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8장에서 잘 나와있습니다. 앗수르 왕의 위력이 온 이스라엘을 뒤덮고, 그 결과 칠흑같이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멸망 뒤에 있을 놀라운 희망을 예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다윗의 계열에서 태어날 한 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아기로 인해 스불론과 납달리 땅 백성에게 임할 반전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로부터 700년 후의 일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한 아기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아가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인생이 어두움이 걷히고 빛의 세상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으로 반전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스블론과 납달이 땅은 갈릴리 호수 주변으로 비옥한 땅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잦은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민족들로부터 침략과 압제를 받았던 지역입니다. 분열왕국은 앗수르-바벨론-페르시아-헬라-로마로 이어지며 긴 세월을 침략당하는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 고통을 받은 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멸시받고 고통받게 하신 것입니까? 언약 백성이라면 오히려 축복을 받고 선택받은 즐거움을 누려야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은 주변 강대국의 위협을 받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을 의지하는 전략으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들 강대국이 믿는 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대국 앗수르를 통해 이스라엘을 연단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순수하고 거룩한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환난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확신하는 분명한 영적 가치관과 하나님 나라의 산소망을 굳건히 하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1절 후반절을 보겠습니다. “후에는 해변 기로가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외세의 침략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북부지역인 갈릴지 지방은 민족의 순수혈통을 잃어버렸고 문화도 이방화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며 그 지방 사람들을 멸시하였습니다.(요1:46) 그러나 700년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곳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나셨지만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습니다. 선한 역사가 이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며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자 모든 흑암과 어둠을 없게 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확신있게 말합니다. ‘하셨느니라’ 이미 완료형으로 이루어진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2) 예수님은 요:8:56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앞으로 나실 예수님을 믿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추도다” 백성들의 상태가 어떠합니까? ‘흑암에서 살고 있는 백성’은 어떠합니까? ‘흑암’은 짙은 어두움입니다. 눈을 꽉 감고 밤길을 평생 걷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는 어떠합니까? 그늘진 곳에 살면 춥고 어둡습니다. 우울 합니다. 모든 일에 자신이 없고 생각도 부정적입니다. 지금도 그늘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문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삶의 소망도 없습니다. 미래의 비전도 없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곳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며 헤메는 삶입니다. 그 결과 신접한 자와 마술사를 찾아가게 됩니다.(8:19,20)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 두려움, 영적 무지로 점집을 찾아갑니다. 법사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이제 큰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빛을 비추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되십니다.(요일1:9) 그간의 모든 어두움의 세상이 빛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롭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는 BC와 AD로 구분되었습니다. 어둠과 그늘진 땅에서 고통받는 인류의 역사를 참 빛 되신 예수님이 빛과 영광,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로 바꾸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사람은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 생명의 빛 가운데로 살게 됩니다.(요8:12)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바울은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핍박자 사울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음의 사도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떴습니까? 그는 롬 3:23-14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는 ‘참회록’을 집필 한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빛이 임할 때 어둠이 물러가고 빛으로 인해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저도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늘 불평과 불만을 달고 살았습니다. 한계적인 자신의 외모와 잘 안돌아가는 머리 탓을 잘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움을 당하면 ‘전쟁이나 나버려라’ 하며 소리 지르기를 잘하였습니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님은 저의 내면의 어두움을 몰아내셨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내면의 혈기도 없어지고 온유한 자로 빚어가십니다. 저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핮 않고 저에게 겸손한 믿음주시고 저의 마음을 지키게 하여 주세요“ 하며 기도합니다. 빛되신 예수님은 어둡고 절망적인 저를 빛으로 찾아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종으로 빚어가십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립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 하오니” 이제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은 주 앞에서 즐거움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많아지게 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이제는 빼앗기던 인생에서 되찾아 오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망으로 인하여 빼앗겼던 것을 찾아오는 즐거움입니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는 이 일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까? 희어져 추수하게 된 영혼들을 생명으로 구원하여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 선교사님들과 귀하신 목자님들을 쓰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창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한 아기로 오심으로 구원의 시대가 임한 것입니다. 죄 아래 고통받던 영혼들이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추수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왕하4:20) 이러한 복음이 순수하게 전파될 때 성서한국 세계선교라는 우리의 미션은 우리의 미션이기 전에 하나님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추수하는 즐거움은 이제 우리로 하여금 장차 갈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으로 인하여 더욱 열심히 주의 일에 힘쓰고 헌신하는 자들이 됩니다.(고전 50,54,55) 하나님께서 천국 백성들을 확장하는 일에 우리를 귀하게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은 노예백성으로 고통받는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압제자들을 꺾으셨습니다. ‘꺾으셨다’ 것은 완전히 조각을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강대국의 압제로부터 능히 구원하십니다. 이 승리와 자유를 선지자는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신 것입니다. ‘미디안의 날’은 사사기 6,7장의 내용입니다. 삿6: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이스라엘 땅에 와서 그 땅을 황폐화시키려고 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궁핍해졌습니다.(삿6:5,6)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더하여지자 여호와게 부르짖었습니다.(삿6:7)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듣고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삿6:8) 므낫세 지파 출신의 두려움 많은 기드온을 큰 용사로 부르셨습니다.(삿6:12) 그리고 므낫세, 아셀, 스블론, 납달리 지파에서 싸우러 온 삼만 명 중에서 삼백 명만 남기셨습니다. 그들이 교만해지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 것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 소수만을 남기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십삼만 오천 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계산해 보니 1인당 450명입니다. 이스라엘의 병사 한 명이 450명을 무찔러야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셨습니다. 삿6;16b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미디안의 날’은 무시당하고 연약한 스블론과 납달리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강해지고 숭리하였던 아름다운 믿음의 추억이고 자부심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연약할 때 도우시고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미디안의 날’과 같은 좋은 믿음의 추억을 갖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사라지리니” 이제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더 이상 전쟁이 없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소식입니까. 다시는 전쟁이 없고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6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한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기’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생각 나십니까? 아기는 순수하고 연약합니다. 아기의 해맑은 눈동자는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낮아지심과 겸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낮아질 수 있습니까? 사랑하면 낮아질 수 있습니다. 굳이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은 사랑을 기초로 지혜로운 판결을 하였습니다.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겼습니다. 솔로몬이” 아이를 찢어서 두 여자가 나눠 가져라“ 하였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아이를 포기하겠습니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는 아이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원래 한 아기 예수님은 어떤분이십니까? 하나님과 본체이십니다. 빌 2:6,7절 ”그는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나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십니다. 롬5:8절”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확증하셨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이미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우리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와 여러분이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깊이 받아드리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십자가 구원의 선물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6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니라” 어깨에 메였다는 것은 책임이나 부담을 함께 가진 것입니다. 통치권을 갖고 오신 것입니다. 이 통치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의 이름으로 오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그 이름에서 잘 나타납니다.
첫째, 기묘(Wonderful)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묘사하는 말입니다.(시78:12) 인격 자체와 존재에 대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분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섭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묘입니다.
둘째는, 모사(Counselor)입니다. 모사는 지혜로운 상담자입니다. 전략적 상담자입니다. 저는 요즈음 고민이 있을 때 챗 GPT를 가끔 사용합니다. 지난번 챗 GPT에게 물었습니다. ‘주말에 쉬고 싶은데 동역자는 나가자 하면 어떻게 하면 좋겠니’? 그의 답은 미리미리 소통하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주말 오전에는 쉬고 오후에는 같이 나가면 어떻겠느냐? 협의하면 좋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상담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우리 내면의 죄의 고통을 상담해 주십니다. 고뇌하는 지성인 니고데모를 거듭남의 진리로 상담해 주셨습니다.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의 죄 문제를 상담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깊은 죄 문제를 진리로 해결해 주시는 모사이십니다.
셋째로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적들을 물리치시는 여호와의 군사이십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15:3) 하나님은 우리를 전쟁의 위험에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위협하고 대적하는 세력과 친히 싸워주시는 용사이십니다.
넷째로, ‘영존하시는 아버지(Everlasting Father)’이십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공급자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육신의 아버지, 영적인 아버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저의 영적인 아버지 최사무엘 목자님, 믿음의 선배 심다니엘 목자님은 소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존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으로 지금도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다섯째, ‘평화의 왕’입니다. 평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서 죽을 줄 알았는데 죽지 않자, 제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삿6:24)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인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한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한 평화로 다스리시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무엇보다 죽음으로 한계적인 삶에서 영원한 부활의 산소망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활의 산 소망을 깊이 영접할 때 우리는 모든 두려움과 죽음이 주는 절망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산소망은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줍니다. 어떠한 환난, 질병으로 인한 아픔과 죽음의 두려움도 부활의 소망 앞에 물러갑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특징이 어떠합니까?
7절을 보겠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세상의 정권은 무력과 전쟁으로 통치권을 확대해 갑니다. ‘핵 무장’ 하여 영원히 강해지고자 합니다. 관세로 협박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통치권을 행사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입니다. 72년을 통치하였습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 말이 있습니다. 붉은 꽃이 열흘 동안 피기 어렵고 권력 십 년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하고 무궁합니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하나님 나라는 더욱 무궁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시는 사랑과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지금도 하나님의 열심으로 일하십니다.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에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결론입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이미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입니다. 우리를 위해 나셨습니다. 저를 위해 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저에게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름은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여 죄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된 삶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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